# 28
028. 불가사리(1)
어릿광대: 어, 저건 설마?
옵저버가 비추는 화면이 빠르게 움직였다.
어릿광대도 방금 전에 날아간 새를 본 모양이다.
어릿광대의 옵저버는 새를 빠른 속도로 쫒았다. 추격은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는 나뭇가지 위에 사뿐하게 올라섰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속 찾아다니던 사람의 앞에.
“어?”
화면에 비친 영상을 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화면에 비치는 영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별한 일은 없었나?]
[예, 특별한 일은…… 아 그러고 보니 새로 온 플레이어 두 명이 이곳에 왔습니다.]
[새로운 플레이어?]
은색 털을 지닌 새, 아마 ‘까마귀’인 게 분명한 그것의 입에선 거친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 까마귀는 어떤 존재의 전령인 모양이다.
까마귀의 앞에 서있는 자는 바로 송창우.
그는 까마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보고하고 있었다.
나는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눈을 찡그렸다.
‘까마귀는 아니야.’
내가 기억하는 까마귀의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오늘 들은 철웅이라는 이름의 센티넬이 분명했다.
[과연 그렇군.]
창우의 보고는 길지 않았다.
오늘 이곳에 온 나와 민아에 대한 보고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너는 계속 그 둘을 지켜봐라. 그리고 그곳의 플레이어들이 움직이게 되면 바로 보고하도록. 슬슬 카라스 님도 인원보충을 원하신다.]
[예. 알겠습니다.]
까마귀의 말에 창우는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명백한 복종의 표시다.
둘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지만, 잠자코 지켜보던 어릿광대는 이 상황 자체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던 모양인지 신나서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어릿광대: 헐, 대박. 완전 반전이다. 너 이것도 예지한 거야? 설마 스파이일 줄 몰랐자너.
익명 48: 비밀입니다.
어릿광대: ㅋㅋㅋ신비주의 하고는. 맘대로 해라.
어릿광대는 그저 작금의 상황이 재밌는지 연신 창우를 빙빙 돌며 관찰했다.
까마귀는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창우는 여전히 그 자리에 부복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의문이 생겼다.
‘……대체 왜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수도 없이 본 탓에 어느 정도 진심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나다.
아까 보았던 창우의 모습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뭣보다 전생의 송시우의 말에 따르면 그의 형은 굉장히 선량한 성격이었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희생해 송시우를 살렸다고 했다.
‘흐음.’
나는 영상에 비친 창우를 보며 깊이 고심했다.
문득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혹시…….’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선 송창우와 한번 대화의 시간을 가져 봐야할 듯 싶었다.
***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우선 주변에게 물어 정보를 모았다.
우선 모은 건 센티넬 철웅에 대한 정보였지만, 전생과 달라진 점을 체크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현재 유원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철웅이 사람들에게 어떤 위협을 끼치고 있는지, 등등.
다행인 점은 철웅을 제회하면 전체적인 흐름은 전생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저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갑자기 등장한 철웅에 사망자가 제법 있었다는 정도.
‘불가사리라……’
형석의 말에 따르면 철웅은 까마귀의 말을 받아 실행하는 행동대장격인 놈이다.
센티넬인 만큼 평범한 플레이어들로는 감히 덤빌 생각도 할 수 없으며, 몬스터 중에서도 극히 희귀한 편인 ‘불가사리’다.
불가사리는 금속을 먹을 수 있으며, 속도는 느리지만 단단한 외피와 강력한 힘을 지닌 몬스터다.
아마 현재 내 공격으로도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없겠지.
던전을 돌며 미리 준비를 해오긴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센티넬을 죽일 무기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은 무리려나.”
“뭐가?”
“그런 게 있다.”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옆에서 하품을 하던 민아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마치 이번엔 또 뭐야? 라는 눈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그 센티넬이라는 거 잡으려는 거 아니지?”
“……글쎄.”
“뭐야! 그 개고생을 하며 잡았으면서 또 잡는다고?”
“당장은 무리야.”
“마치 나중에는 가능하다는 것 같은 말이네.”
“여건이 되면 말이지.”
슬쩍 송시우를 봤지만 여전한 모습이었다.
당장은 무엇을 말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리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테고.’
그러니 일단은 얌전히 두기로 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다른 일들도 많았으니까.
“아무튼 난 오후에 볼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 올 거야.”
“응? 오빠는 어디 가게?”
“잠시 만나러 갈 녀석이 있어.”
마음 같아선 먼저 창우에 관한 일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일렀다.
나중에 저녁시간에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니 그사이에 다녀와야지.’
조금 있으면 정오가 가까워졌다.
아침에 들었던 정보에 따르면 슬슬 나가지 않으면 위험했다.
“누군데? 혹시 나도 같이 가도 되는 거야?”
“아니.”
“뭐야, 궁금하게.”
민아는 인상을 와락 찡그렸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심통이 난 얼굴로 고개를 휙 돌릴 뿐이었다.
‘불가사리인 철웅에게 민아는 상성이 안 좋으니까.’
민아의 변신 능력이나 트릭키한 다양한 스킬들은 분명 대단했지만, 철웅에게는 대부분 소용이 없었다.
단단한 방어력을 앞세워 피지컬로 몰아붙이는 불가사리들에게 통용되는 공격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저 둘을 잘 지켜보고 있어라.”
“저 둘? 왜?”
창우와 시우를 가리키며 말하자 민아가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건 나중에 알려줄 테니, 내가 올 동안 같이 있어. 혹시 이상한 기색이 보이면 연락하고.”
“음. 뭐 어려운 것도 아니니 알겠어.”
어차피 내가 없으면 퀘스트를 깨는 것도 에로사항이 꽃필 거다.
민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낭비할 시간 따위는 없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녀석을 만나봐야만 했다.
바로, 철웅을.
***
로메월드 아일랜드 캐슬.
로메월드에 이어진 긴 다리를 지나면 있는 장소다.
거대한 성과 같은 그곳에 거대한 까마귀가 거만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지금 한창 재미있는데 무슨 일이야?”
넓은 공간에 부서진 잔해들.
그 잔해들 틈에 서있는 괴물을 보며 까마귀 카라스가 말했다.
신화시대에 목소리를 잃은 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간신히 되찾을 수 있었다.
자랑스런 은빛 깃털 또한 잠시라면 겉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좀 더 격을 올릴 필요가 있어.’
그런 의미에서 이 유원지는 카라스에게 최적이다.
인간들에게 공포와 경외를 얻을수록 조금씩 자신의 ‘격’이 상승하는 게 느껴졌다.
유원지에 둥지를 튼 건 반쯤은 재미 때문이었지만, 그런 이유도 있었다.
“즐기시는 와중에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괴물은 전신이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덩치는 대략 5미터가 넘는 상당한 크기로,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을 느낄 법한 괴물이었다.
“뭐냐, 철웅.”
“어트렉션 관련 일입니다. 세 번째 메인 퀘스트 말이죠.”
“아, 그거? 지금 최고 많이 깬 플레이어가 세 개던가? 도장 두 개도 못 받은 애들이 대다수라 벌벌 떠는 꼴이 우습던데.”
“예, 어제까지는 그랬습니다.”
철웅의 말에 카라스가 깍깍, 거리며 웃던 웃음을 멈췄다.
“뭐?”
“네 번째 도장을 받은 플레이어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둘이나.”
“……진짜?”
“예.”
“어떻게?”
까마귀자리의 카라스.
그는 그다지 대단한 격을 지닌 별자리는 아니었지만 머리는 그럭저럭 좋은 편이었다.
인간들을 가지고 놀고 괴롭히기 위해 구상한 어트렉션의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세 번째 도장을 받은 플레이어도 솔직히 대단할 정도인데 네 번째 도장까지 받은 놈이 있다고?
“이 두 명입니다. 네 개의 어트렉션에서 촬영한 영상입니다.”
화면에 비친 건, 인상이 나쁜 남성 하나와, 새치름한 인상의 여고생이었다.
“이런 애들이 네 번째 도장까지 받았다고?”
카라스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좀 더 역전의 용사와 같은 이를 생각했는데, 이 둘은 도무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어진 영상을 본 카라스는 부리를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같이 다니는 여자도 꽤 능력이 있는 플레이어인 건 분명했지만, 그 정도는 납득할 수 있는 선이었다.
그러나 같이 다니는 남자가 문제였다. 분명 특출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지극히 능숙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매끄럽게 일을 진행했다.
분명 대단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신의 후원을 받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그저 본인의 기량을 통해 어트렉션을 가볍게 극복했다.
그것도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극악의 난이도라 부르짖으며 포기했던 어트렉션들을.
“유령의 집과 후룸라이드. 거기에 자이로드롭과 롤러코스터까지.”
하나같이 플레이어를 죽이기 위해 설계된 어트렉션이다.
이 유원지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만 쏙쏙 골라서 탔는지 모르겠다.
거기다 도장을 네 개까지 받았다면 거기서 추가적인 난이도 상승도 있었을 터.
“이대로 가면 오늘 안에 다섯 번째 도장을 받고 퀘도 깨겠는데?”
“아마 그렇게 생각됩니다.”
“끄응.”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직접 나서는 건 부담이 있다.
고작 메인 퀘스트 세 번째인 시점이다. 아직 별자리급에 속하는 자신이 직접적인 개입을 하는 건 아무래도 문제가 있었다.
사실 이렇게 게임에 관여하는 것도 편법에 속하는 거다.
‘하지만 만약 녀석이 직접 이곳에 온다면…….’
아니, 아니지.
카라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내버려 둬.”
“예?”
“두 명 정도는 클리어한 플레이어가 있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어트렉션에 도전하는 플레이어가 좀 줄고 있거든.”
“아무래도 난이도가 높으니 플레이어들도 몸을 사리는 것 같습니다. 신규 유입도 적고요.”
“하지만 만약 단 두 명이라도 클리어한 플레이어가 있다면? 그리고 그놈들이 성공적으로 유원지를 나간다면? 다른 플레이어들도 자극을 받지 않겠어?”
사람의 심리란 참 단순한 법이지.
카라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깍깍 웃었다.
‘하여간 새대가리 주제에 나쁜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요.’
철웅은 그런 카라스를 보며 그저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센티넬이라고 하더라도 ‘별자리’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법이었다.
거기다 카라스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두 명이 클리어하고 나가게 되면, 그 모습을 본 플레이어들이 예전처럼 어트렉션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철웅은 화면에 비치는 두 명의 플레이어를 보았다.
여성 플레이어도 대단한 실력자인건 분명했지만, 남성 플레이어는 뭔가 격이 달랐다.
‘어차피 녀석에게 말해뒀으니 알아서 잘 처신하겠지.’
카라스는 다섯 번째 퀘스트를 깨게 두라고 했지만 철웅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카라스에게 한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서둘러 처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아, 슬슬 순찰 갈 시간인가?”
“예.”
담담한 철웅의 말에 카라스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참 성실한 녀석이네. 처음 봤을 때만해도 멍청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때는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됐으니까요.”
“그렇겠지. 그렇게 갑자기 센티넬이 추가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카라스는 새까만 날개로 자신의 부리를 쓰다듬었다.
지금이야 철웅과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GM에게 문의를 해봤지만 GM도 모르는 눈치였다.
“지금이야 편해서 좋다만. 귀찮은 일을 떠넘기기도 딱 좋고.”
“그러시겠죠.”
“깍깍! 그러면 잘 다녀와라! 아, 그리고 인원 부족해지면 알지?”
“그렇지 않아도 슬슬 한번 뒤집을까 생각 중입니다.”
“그래, 그래!”
즐겁게 웃어재끼는 카라스를 뒤로하며 철웅은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보고가 좀 길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에 딱 맞췄군.”
현재 시간은 정오.
언제나 정기적으로 철웅이 순찰을 나가는 시간이었다.
어트럭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플레이어들을 죽이거나, 간혹 도망치려는 일반인들을 다시 잡아들이는 것이 철웅의 역할이었다.
정확히는 카라스에게만 즐거운 이 유원지에서 철웅이 가지는 유일한 취미생활이기도 했다.
“오늘은 벌레들이 좀 많이 보였으면 좋겠는데.”
철웅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