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7화 (27/332)

# 27

027. 시작되는 변화(4)

헤파이스토스의 아바타, 송시우.

전생에는 가장 유명한 탑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만든 무기는 언제나 경매장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거래되었고, 탑 플레이어들 중에 송시우의 장비를 하나도 가지지 않은 자는 없을 정도였다.

인류가 아득바득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송시우의 장비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송시우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분명 전생에 들었던 대로라면 이때의 송시우는 제법 밝은 성격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그렇게 내게 이야기했었다.

“우와, 저 애, 완전 세상 다 산 표정이다.”

내 시선을 쫓아 시우를 본 민아가 중얼거렸다.

녀석의 말처럼 시우는 어두운 얼굴로 멍하니 구석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주변의 사람들 표정도 좋지 않았지만, 시우는 그 정도가 유독 심했다.

‘옆에 있는 건, 아마 형이겠지.’

시우에게는 형이 있었다.

다만, 세 번째 퀘스트 마지막에 죽었다고 했었지.

아직 살아 있는 건 그 시기가 오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괜찮으면 같이 앉아도 괜찮을까?

나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시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소년, 송시우는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전생에 알던 송시우와는 달랐다.

시니컬한 분위기다, 어두운 모습은 그에게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때 나이가 아마 16살이었지.’

겉모습은 10대 초반 정도로 보이지만 민아와 3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누구 왔습니까?”

나와 민아가 옆에 앉자, 장님 청년이 바닥을 더듬으며 말했다.

바로 시우의 형이다.

‘형이 장님이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전생의 송시우가 말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무언가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예, 주변에 있을 곳이 없어, 자리 좀 빌리려고 하는데 괜찮죠?”

“물론 상관없습니다.”

남자는 해맑게 웃었다.

“다들 저희를 피해서 말이죠. 이렇게 다른 사람이 오니 기분이 좋네요.”

“좋기는 뭐가 좋아. 어차피 다들…… 후, 아니야.”

청년의 말에 소년이 투덜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런 둘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다면 이름을 물어도 괜찮을까요?”

“예, 물론이죠. 제 이름은 송창우이고, 얘는 제 동생인 송시우입니다.”

“그렇군요. 저는 김세한입니다.”

“전 이민아예요.”

민아도 순순히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은 나랑 지수한테만 반말하는 기분인데. 처음 만남이 그래서 그런가?

“좋은 이름이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부디 좋은 인연이 됐으면 하네요.”

“하하, 그랬으면 좋겠군요. 분명 이곳에서 빠져나간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예.”

경쾌하게 웃는 창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계속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는데.’

송시우는 내가 유원지에 온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흘깃, 창우를 보았다.

송시우의 형인 이 남자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겉모습만 보면 평범한 플레이어인데…….’

장님이라는 특이점이 있지만, 특별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가 앉아 있는 바닥에 놓여있는 길쭉한 검정도.

응? 검?

“거기 그건 검입니까?”

“아, 예. 이래봬도 검을 좀 사용할 줄 알거든요. 하지만 도망치는 도중에 눈을 다쳐 이제는 지팡이로 사용할 뿐입니다.”

창우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창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시우가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형, 거기까지만 말해.”

“아, 미안.”

“그런 말을 하면 자꾸 생각난다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창우의 말이 시우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시우는 나와 창우를 번갈아보며 입을 달싹이다가 자리에 누웠다.

“됐어! 난 잠이나 잘래.”

더 이상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나로선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니었기에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저…….”

우리가 물러서는 기척을 느꼈는지, 창우가 느릿하게 우리를 쫒아왔다.

시우가 있던 장소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창우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요즘 많이 예민하거든요.”

“아뇨, 괜찮습니다. 애초에 제가 먼저 말을 건 거니까요. 그리고…….”

슬쩍 창우의 얼굴을 살핀 뒤, 말을 이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도 저희를 상대해 주지 않기는 매한가지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본 건 아니었지만, 주변 분위기가 그랬다.

우리가 옆으로 지나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저 시우처럼 어두운 안색으로 배회할 뿐이었다.

“그건 그렇죠.”

창우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당연합니다. 그놈에게서 도망 온 지도 얼마 안 됐거든요.”

“그놈?”

까마귀 카라스를 말하는 건가 싶어 되묻자. 창우가 크게 놀랐다.

“설마 그놈을 모르십니까?”

“아, 예. 저희는 세 번째 메인 퀘스트를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들어온 거니까요.”

“저런.”

창우는 진심으로 안 됐다는 듯 혀를 찼다.

“하필 이곳에 오시다니 운도 없으시네요. 이곳에는 괴물이 있습니다.”

“괴물이라면 까마귀를 말하시는 겁니까?”

놀이공원을 지배하는 건 까마귀자리의 카라스였다.

나는 당연히 녀석을 말하는 건가 싶어 말했지만, 창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확실히 녀석이 이곳을 지배하는 녀석인 건 맞지만, 저희들에겐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더 큰 문제?”

“네. 이곳을 지배하는 센티넬…… ‘철웅’이라는 놈이 말이죠.”

“철웅?”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보다 센티넬이라고?

‘왜 여기에 센티넬이 있지?’

카라스의 영역에 지역을 지배하는 센티넬이 존재하다니.

서울 지역의 현재 이 근방 스테이지를 지배하는 센티넬은 내가 죽인 바질리스크 오르가다.

로메월드 타워와 여기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장소다.

그런데 센티넬이 하나가 더 있다고?

‘이거구나.’

현재 문제가 생긴 원인이.

이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퀘스트가 달라진 것도, 송시우가 달라진 것도 녀석이 원인인 게 분명했다.

‘나를 인식하기 시작한 건가.’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GM이라는 존재가 서버를 나눠 관리하는 게임이다.

그렇다고 해서 GM이 이 게임에서 가장 높은 존재냐면 절대 아니다.

진짜는 그 위.

바로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존재와 퍼블리셔다.

시스템은 말 그대로 온 우주의 게임에 간섭하는 법칙.

퍼블리셔는 이런 행성에 게임을 유치시키고 관리하는 존재다.

사실상 GM도 퍼블리셔에 속한 알바다.

‘이번 일의 경우엔 시스템이겠지.’

이래서 최대한 조심하려고 했지만, 연속해서 세 번이나 센티넬을 죽였으니 당연한 결과다.

센티넬이라는 존재는 시스템이 자율적으로 배치하는 히든 몬스터이니까.

아마 내가 계속해서 센티넬을 죽인 탓에, 이변을 느끼고 이 구역에 새로운 센티넬을 배치했으리라.

‘짜증나는 일이군.’

언제 한번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 짜증이 치밀었다.

눈앞의 창우의 눈이 다친 일이나, 송시우가 그렇게 변한 것도 그 탓일 거다.

‘아마 원인은…… 대략 알겠어.’

전생의 송시우는 가족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아까 봤던 송시우의 근처에 가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그 철웅이라는 놈에게 죽었던 거겠지.

조금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찌 보면 일이 이렇게 된 건 내 탓이기도 하니까.

‘우선은 녀석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는 게 먼저겠어.’

나는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내일로 미뤄야할 것 같았다.

***

‘일어나면 우선 형석에게 가봐야겠어.’

그나마 우리를 호의적으로 대해줬던 그라면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나저나…….’

얘는 어디서나 잘 자네. 간이 크다고 할지, 대범하다고 할지.

나는 옆에 누워 있는 민아를 빤히 응시했다.

녀석은 코까지 골며 깊은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후우.’

나 역시 눕기는 했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당장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 바빴으니까.

‘앞으로는 좀 더 신경을 써야겠어.’

이런저런 생각하다 보니 대략 두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스윽.

‘응?’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 갑자기 멀리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송창우인가?’

지금 우리가 누워 있는 곳에서 좀 떨어진 장소였지만, 나는 또렷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창우는 지팡이라고 말했던 검을 손에 쥐고는 매끄럽게 움직였다.

분명 눈이 보이지 않을 텐데, 그 동작은 마치 눈이 보이는 것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뭔가, 느낌이 묘한데.’

오늘 처음 본 순간부터 묘하게 신경 쓰였었지.

좀 더 유심히 보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창우는 길쭉한 검을 지팡이 삼아, 앞을 두드리며 입구까지 걸어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경계를 서던 플레이어가 돌아보았다.

“뭐야?”

“저, 잠시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눈도 안 보이는 새끼가 어떻게 가려고? 혹시 따라와 달라는 거냐?”

“괘, 괜찮습니다. 이 주변은 길을 알아서 혼자서 괜찮습니다.”

“그래, 다녀와라, 혹여 안 돌아와도 찾지 않을 거다.”

“예, 예.”

어리숙한 모습으로 창우는 연신 고개를 숙인 후 입구를 나갔다.

‘정말로 돌아올 수 있나?’

그보다 화장실에 간다는 건 진짜일까.

‘그럴 리가.’

절대로 그럴 리 없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왜냐면 창우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 몇 개의 옵저버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보통 옵저버들은 플레이어들의 사각에서 움직이기에 눈치채기 힘들었지만, 전생에 질리도록 시달린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쫓아가 봐?’

창우는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몸을 움찔거리며 밖으로 나갈지 말지 고민하다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아니다. 그보다 간편한 방법이 있지.’

나는 허공에 손가락을 두드렸다.

익숙한 창이 눈앞에 나타나자,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접속.”

순간 눈앞이 밝게 빛난 터라, 눈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다행인 점은 이 빛은 내게만 보이는 것이라는 거다.

[익명 48번 손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익숙한 문구가 채팅창에 뜬 걸 확인하자, 나는 재빨리 지금 접속해 있을 한 신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익명 48: 어릿광대님, 잠시 괜찮으세요??

민아가 이곳에 있는 만큼, 분명 어릿광대도 이곳에 있을 거다.

멀리서 민아를 관찰하고 있는 옵저버가 바로 그 증거였다.

어릿광대: 응? 나 바쁜데. 너 누구야?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익명 48: 기억 안 나세요? 저번에 같이 아바타 구경했잖아요

어릿광대: 아~ 너구나. 그러고 보니 최근 채팅방에서도 본 기분이네. 정보 자주 공유하지?

익명 48: 네. 맞아요.

어릿광대: 난 관심 없지만 너 꽤 쓸 만한 정보를 자주 말하는 것 같더라? 불금이가 저번에 네가 말한 던전 가서 꽤 쏠쏠했나 봐.

불금이라면 저번에 욕설을 내뱉던 그 신인가? 나한테 던전을 가로채기 당했던…… 뭐 상관없지만.

익명 48: 아, 그런데 괜찮으시면 잠시 옵저버 좀 움직여 줄 수 있으세요?

어릿광대: 응? 왜?

익명 48: 신경 쓰이는 플레이어가 하나 있거든요.

어릿광대: 네 옵저버 쓰면 되잖아.

익명 48: 아바타를 선택하지 않으면 개인 옵저버 지급이 안 되잖아요. 개인적으로 노리고 있는 플레이어가 하나 있는데, 요청을 해도 거절하더라고요.

어릿광대: 헐 대박이네. 아바타를 거절해? 너 좀 듣보잡 신인가 보다.

익명 48: 아니에요. 그 어릿광대님 아바타와 함께 다니는 플레이어인데, 아바타가 될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어릿광대: 아, 걔. 맞아. 최근에 걔 노리고 있는 신이 많은데 한 명도 아바타로 만들지 못했다고 하더라. 내 아바타가 같이 다녀서 쭉 지켜봤는데, 지금 아바타인 민아만 아니었어도 나도 한번 요청해 봤을걸?

뜻하지 않게 최근 내 평판을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크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익명 48: 그보다 옵저버는 빌려주실 수 있나요?

어릿광대: 나야 상관없지. 대신 나중에 좋은 정보 있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알려주기다?

익명 48: 물론이죠.

어릿광대: 그럼 네가 노리고 있다는 플레이어 비추면 돼? 걔 지금 자기 상태창 보고 있는 것 같던데?

상태창이나, 개인정보와 같은 인터페이스는 신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나도 이렇게 태연히 채팅을 할 수 있는 거다.

익명 48: 아뇨, 그 플레이어 말고 방금 나간 장님 플레이어요. 뭔가 느낌이 쎄하더라고요.

어릿광대: 흐음. 좋아.

[어릿광대 님이 자신의 옵저버에 당신을 초대했습니다.]

전처럼 온 초대메시지에 나는 당연히 승낙했다.

어릿광대: 이쪽으로 갔나?

채팅창 구석에 떠오른 옵저버 화면을 보며 창우의 뒤를 쫒았다.

‘역시 단순히 볼일을 보러 간 건 아닌 모양이군.’

만약 단순히 볼일을 보러갔다면 이 근처에 있어야 할 텐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응?’

그런데 바로 그때.

은색으로 빛나는 새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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