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6화 (26/332)

# 26

026. 시작되는 변화(3)

“정말로 구매하실 건가요?”

“네. 하나 주세요.”

직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목걸이를 건넸다.

가격도 비싸다.

무려 500포인트나 한다.

내게는 껌값이지만 조금의 포인트라도 소중한 플레이어에겐 상당한 가격이었다.

“이걸 왜 사? 누구 목에 채우게?”

“잠시 실험하고 싶어서.”

기념품 코너에서 목걸이를 구매해서 나온 나는, 적당히 벤치에 앉아 목걸이를 훑었다.

직원의 설명대로라면 목걸이의 원격으로 조작하여 폭파시키거나, 특정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고 한다.

“어디…….”

목걸이를 대충 설정한 뒤, 인벤토리에서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꺼냈다.

내가 가진 물품 중에 가장 열일을 하는 건 아마 이게 아닐까 싶다.

스르륵.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목걸이에 가져다대자 병에서 흘러나온 오리하르콘이 목걸이를 감쌌다.

“코팅하면 위력이 쎄진데?”

“그럴 리가 있냐. 너 문과지.”

“이게 문과나 이과가 무슨 상관인데!”

시끄럽게 떠드는 민아를 무시하며 목걸이를 훑었다. 오리하르콘이 감싼 건, 목걸이의 중앙뿐이다. 둥근 금속 덩어리가 있는 부분.

아까 목걸이가 터져 죽은 남성을 생각하면 폭발하는 부분은 여길 거다.

“그럼 이제.”

나는 목걸이를 조작했다.

그리곤 목걸이를 바닥에 두고 조금 떨어졌다.

“뭐하는 거야?”

“보면 알아.”

하나, 둘, 셋.

속으로 숫자를 세는 순간 목걸이가 크게 튀었다. 하지만 겉은 변화가 없었다.

“저거 왜 저래?”

“폭발시켰거든.”

“멀쩡한데?”

“당연히 오리하르콘으로 감쌌으니까.”

가변형 오리하르콘은 물건 내부에 침투하는 게 아닌, 외부에 막을 만드는 식이다.

굳이 말하자면 껍데기를 얇게 두른다고 할 수 있다.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로는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껍데기를 부술 수 없었다는 거야.”

“아하.”

그래도 혹여나 함께 부서지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다행히 오리하르콘에는 변화가 없었다.

고작 사람 머리를 날려 버릴 정도의 위력으로는 오리하르콘에 기스도 내지 못한다.

“정말 산산조각 났네.”

오리하르콘을 해제하자 목걸이의 부서진 파편이 눈에 들어왔다.

민아는 잘게 부서진 파편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물었다.

“근데 이런 걸 실험했다는 건 사람들을 돕겠다는 거?”

“그러려나.”

“난 오빠가 그렇게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민아가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에 차마 부정할 수는 없어서 난 그저 피식 웃었다.

‘한 번 외면했던 이들은 두 번 외면하기도 쉽다.’

전생에 내게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었던 사람이 했던 말이다.

그래서 그는 눈에 보이는 이라면 무조건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코 무시하는 법이 없었다.

나 역시 그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전생의 난, 그 사람처럼 될 수 없었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우와, 오글거려.”

괴상한 제스쳐를 취한 민아는 아까 전 우리가 들어갔던 유령의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이제 다시 저기로 돌아갈 거야?”

“아니.”

“사람들을 돕는다며? 아까 그 아저씨 도와줄 거 아니었어?”

“무작정 돕는다고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당장 목걸이를 해제한다고 쳐도 그 직원이 어디를 갈 수 있겠는가.

입구로 나갈 수도 없을뿐더러, 출구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플레이어도 아닌 그가 혼자서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우리가 계속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섣불리 구해선 안 됐다.

‘우선은 정보를 모아야겠어.’

도장을 모으면서 돌아다니면 되겠지.

지수의 퀘스트도 깨고, 유원지의 내부도 둘러보고.

“다음은…… 어디 보자. 너 롤러코스터는 좀 타냐?”

“그런 건 완전 잘 타지. 유령의 집만 아니면 나 놀이공원 고수야!”

“그렇다면 거기로 가자.”

“좋아!”

놀이공원에 울려 퍼지는 경쾌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이제 싫어.”

팔에 찍힌 네 번째 도장을 보고 있자, 민아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유령의 집만 아니면 괜찮다며?”

“그건 평범한 놀이공원일 때 이야기지. 뭐 이런 게 놀이공원이야? 미쳤어?”

“하긴 너, 나 아니었으면 네 번쯤 죽었을 것 같더라.”

“어트렉션을 네 번 이용했는데 네 번 죽었으면 전부 죽을 뻔했다는 거네……. 나 완전 파리목숨.”

이렇게 투덜거리는 것도 이해는 갔다.

롤러코스터를 탔는데 안전 바가 없었다. 그뿐이랴, 주행하는 내내 비행형 몬스터가 달려들어서 이중으로 고통을 받았다.

다른 놀이기구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후룸라이드의 경우에는 떨어지는 순간 몬스터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자이로드롭은 브레이크 없이 지면에 처박아 우리를 산산조각 내려고 했다.

솔직히 처음 유령의 집은 귀여운 수준이지.

이건 죄다 플레이어를 찢어 죽이겠다는 악의만 느껴졌다.

“그래도 이제 하나 남았네. 빨리 끝내고 이런 놀이공원은 나가자, 오빠.”

도장 다섯 개를 받으면 퀘스트는 클리어된다.

민아는 조금이라도 빨리 마지막 도장을 받고 나가고 싶은 눈치였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야 없지.’

내 퀘스트는 아직 제대로 진행조차 하지 못했다.

도장을 아무리 받아봐야 내게는 그저 특이한 모양의 타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차피, 다음 거는 못 탈 것 같다.”

“왜?”

“운영 시간이 끝났거든.”

거기다 몇몇 어트렉션은 대놓고 직원이 사라졌다.

이용할 수 없다는 의미이리라.

난이도가 가장 어려운 것들로만 남겨둔 거겠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섯 번째는 절대 클리어할 수 없는 것만 남을 거다.

빰빠밤~!

“깜짝아.”

갑자기 울리는 커다란 소음에 민아가 화들짝 놀랐다. 시선을 돌리자 반짝이는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저게.”

“밤에 열리는 축제행사 같은 거겠지. 우선 숨어.”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얼핏 보면 족히 백은 넘어 보이는 숫자의 무리.

플레이어는 아니다. 그렇다고 평범한 인간이라기엔 너무나 흉흉한 분위기가 풍겼다.

우리는 근처 건물에 숨어 상황을 관찰했다.

“퍼레이드 같은데?”

“그래, 저거. 전부 몬스터들이다.”

인형탈을 쓰고, 마치 할로윈처럼 꾸미고 있지만 전부 몬스터들이다.

거기다 등급도 강한 건 D급까지 있었다.

“아.”

나는 퍼레이드를 보다가 눈을 찡그렸다. 그리곤 민아의 눈을 황급히 가렸다.

“뭐, 뭐야? 왜 그래?”

“미성년자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광경이라.”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행진하는 퍼레이드에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귀여운 곰의 탈을 쓴 몬스터가 들고 있는 작은 기둥에는 분해된 고기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미친 새끼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매달려 있는 ‘고기조각’들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본래 인간이었을 존재가 사지가 찢기고 몬스터의 놀잇감이 되어 매달려 있었다.

“아씨, 나도 볼래!”

“봐서 좋을 거 없다.”

저건 플레이어들이다. 어찌된 건지는 몰라도 저 몬스터들은 플레이어들을 사냥하고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계속 이곳에 있어봐야 좋을 게 없겠어.”

“아니, 나도 좀 보여…….”

“아까 유령의 집에서 봤던 좀비도 있어.”

“그럼 됐어. 다른 데나 가자.”

민아가 흔쾌히 등을 돌렸다.

퍼레이드를 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 모양이다.

“근데 이제 어트렉션도 거의 안 하는 것 같은데 어디로 갈 거야?”

“지금 무작정 돌아다니는 건 위험해. 아까 그 퍼레이드에서 죽은 플레이어를 봤거든.”

“어, 진짜?”

“그럼 내가 네 눈을 왜 가렸겠냐.”

“……뭐 야한 거라도 있나 했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제야 민아는 내가 왜 자신을 눈을 가렸는지 이해한 모양인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튼 플레이어들을 찾아야겠어.”

내 중얼거림에 민아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말했다.

“어디 있는 줄 알고?”

“대략 짐작 가는 곳은 있어.”

놀이공원 내부는 몬스터가 활보하고, 건물이나 어트렉션에는 직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이 숨어 있을 장소는 극히 한정된다.

거기다 나는 전생에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여기에는 아주 큰 사파리가 있다고 하더라고.”

***

전생에 들었던 정보에 의하면 이 지역의 사람들은 첫 번째 메인 퀘스트부터 세 번째 메인 퀘스트까지 줄곧 갇혀 있었다.

보통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까마귀자리’의 카라스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마 카라스는 신들이 플레이하는 이 게임에 관심이 있었던 거겠지,

별자리는 ‘신성’을 지니지만 아무리 격이 높은 별자리라도 ‘신’이 아니라면 플레이할 수 없다.

그래서 카라스는 자신의 격을 낮추고, 신성을 억제했으며.

이 구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던 거다.

GM이랑 무슨 뒷거래를 했던지, 아니면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 건지는 자세히 모른다.

“우와, 오빠 말대로 여기 사람이 엄청 많은데?”

“말했잖아.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다고.”

우리는 곧바로 지도에 사파리가 있는 구역으로 이동했다.

입구에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지키고 있었지만, 도장 네 개가 찍힌 걸 보이자 곧바로 문을 열어주고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우리를 안내하던 남성 플레이어가 손짓했다. 이름이 아마 형석이라고 했던가.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성이었다.

“그나저나 대단하시네요. 도장을 네 개나 받으시다니! 대장도 세 개밖에 받지 못했는데……. 두 분 모두 도장을 네 개나 받으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형석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이럴 때는 그냥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게 편했다.

“운이 좋았죠.”

“뭣보다 이쪽 여성분은 아직 나이도 어리신 것 같은데 아주 대단하시네요.”

“그치? 내가 좀 능력이 있다니까.”

형석의 말에 잠자코 걸어가던 민아가 어깨를 크게 으쓱였다.

얘는 놀이기구 타는 내내 비명만 지르고 한 것도 없으면서 얼굴에 아주 철판을 깔았다.

“여기서 머무시면 될 겁니다. 대장에게는 제가 말씀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본래 동물들이 있었을 장소에는 저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플레이어도 있었고, 일반인도 있었다.

‘어디 보자…….’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분명 이 안에 내가 찾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형석의 말로는 이 사파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플레이어와 일반인을 합쳐 이백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상당한 숫자이긴 했지만, 메인 퀘스트에 표시된 숫자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분명 다른 구역에서 몬스터들에게 사로잡혀 있을 테지.

‘찾았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있는 장소에서 동떨어진 곳.

그곳에 두 명의 남성이 있었다.

한 명은 대략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소년과,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

그중 내가 찾는 사람은 10대 초반의 소년이었다.

‘반드시 이곳에서 연을 만들어 둬야 할 인물.’

바로 최상위 신으로 분류되는 올림포스 12신.

헤파이스토스의 유일한 아바타인 송시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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