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025. 시작되는 변화(2)
“그래서 이번 퀘스트는 결국 쉽다는 거야 어렵다는 거야?”
유원지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주변을 살피며 걸어가고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굳은 내 얼굴을 살피던 민아였지만, 역시 오래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민아는 남의 눈치를 보는 성격이 아니니 그럴 만도 하지.
“원래는 쉽지.”
“무슨 뜻이야? 원래는 쉽다니.”
“이곳엔 쉬워야 할 퀘스트를 어렵게 만드는 원흉이 있거든.”
가만히 서 있어도 오싹한 기분이 드는 건 그 탓이다.
본래 내가 이곳에 오려했던 이유 중 하나인 ‘녀석’이 이곳에 있었다.
바로 까마귀 자리의 카라스가.
“야. 너 혹시 롤러코스터 타이쿤이라는 게임 아냐?”
“갑자기 게임 이름은 왜 나와?”
“이곳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게임이니까.”
롤러코스터 타이쿤이라는 게임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유원지를 경영하는 게임이다.
새로운 놀이기구를 개장하거나, 손님들을 영업하여 매출을 올리는 게임.
참으로 건전한 게임 같지만, 비상적으로 플레이한다면 얼마든지 또라이 같은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출구를 만들지 않고, 지하세계로 보내 버린다든지.”
“뭐야 그게.”
“아니면 결함 놀이기구를 만들어 사람들을 죽이는 경우도 있어.”
“……진짜로?”
“그래. 그리고 이 놀이동산은 그런 마인드로 경영 중이라는 거야.”
매출은 아무래도 좋다.
그냥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마인드로 놀이공원을 운영 중인 녀석이 있다.
“헐, 누가? 혹시 그 두 번째 퀘스트의 센티넬인가 하는 녀석 같은 놈이야?”
“아니.”
“그럼…… 게임의 GM이라거나?”
“그것도 아니야.”
“그럼 뭔데?”
민아가 새치름한 눈매를 한층 위로 치켜 올리며 말했다.
“나도 몰라.”
“뭐?”
“나도 모른다고. 나라고 뭐든 다 아는 줄 아냐? 아마 어떤 또라이 같은 놈이겠지.”
“그, 그건 그렇지만…… 뭔 다 안다는 것처럼 말하고선 맥 빠지게.”
볼을 긁적이며 무안하다는 얼굴로 민아가 중얼거렸다.
“분명 어떤 놈이 지 마음대로 놀이공원을 운영하고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한 사람들이 이 상황에 알바를 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아마 그놈이 퀘스트 난이도를 높인 원흉일 게 분명해.”
“으음. 난 모르겠다. 하지만 D랭크 퀘스트니까 오빠 말도 일리가 있네.”
현재 우리 수준에서 D랭크 퀘스트면 보통 나올 수 없는 수치다.
분명 다른 뭔가가 관여하고 있다는 거니까.
‘실수로 다 말해 버릴 뻔했네.’
이곳에 카라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내가 그걸 아는 건 이상하다.
‘거기다 이 시기에 ‘별자리’에 대해 아는 플레이어가 있을 리도 없고.’
이 세계에는 강한 몬스터들은 수없이 많다.
센티넬은 그중에서 정점에 위치하는 계층이다.
그리고 별자리는 그 센티넬과도 격이 다르다.
강함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격이 다르다.
순수하게 강함만 따지면 센티넬이 별자리보다 강한 경우도 있다.
극히 드문 경우지만 말이야.
아무튼 이곳을 지배하는 녀석은 까마귀자리의 카라스.
격은 별자리 중에서도 낮은 편이지만 엄연히 신성을 가진 녀석이다.
‘아주 말이 많은 놈이지.’
신화를 보면 말을 못 해야 정상이지만, 입이 가벼운 수다쟁이 까마귀다.
‘본래라면 아직 별자리가 등장할 시기가 아니지만.’
이 녀석의 경우만 예외.
워낙 급이 낮아서 신성만 낮춘다면 얼마든지 현계할 수 있다는 꼼수를 부린 거다.
이 시기에는 자신을 해할 녀석이 없으니 신나게 놀다 가려는 속셈이겠지.
실제로 전생에서는 신나게 놀다가 돌아갔다.
그리고 후에 등장해서 인간들을 괴롭히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낮은 신성을 지닌 별자리지만 인간에게 끼친 피해는 상위 신성을 지닌 별자리 못지않았다.
“아무튼 뭔가 쎈 놈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이잖아? 조심하면 되겠지.”
“그렇지. 그런 생각으로 방심하지 마.”
“응.”
민아의 작은 머리가 끄덕여졌다.
“근데 오빠. 내가 예전에 왔던 로메월드랑은 구조가 좀 다른 것 같아.”
“그야, 이곳을 지배하는 놈이 지 맘대로 바꿨을 테니까.”
“그런 것도 가능하구나.”
이 세계의 구조 자체가 바뀌었으니 당연하다.
우리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자,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아까부터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사람 중 하나였다.
“저, 잠시 이곳은 어떠신가요? 아주 재밌습니다.”
그들은 로메월드에서 어트럭션을 관리하는 알바생 복장을 입고 있었는데, 억지로 웃고 있는 티가 역력했다.
웃고 있다기보단 공포에 젖어 있는 표정이었다.
“어떤 건데요?”
“그, 그게.”
그들의 얼굴에 인상을 찡그린 민아가 물었다.
“유령의 집인데요, 아주 재밌습니다! 한 번만 와서 해주세요!”
직원은 절실한 얼굴로 유령의 집의 입구를 가리켰다.
툼 오브 피어라고 적혀있는 유령의 집은 딱 보기에도 으스스한 기운이 풍겨왔다.
“윽, 유령의 집은 조금…….”
“뭐야, 너 저런 거 싫어하냐?”
“조금, 그러니까 아주 조금 꺼려진다는 거지, 무섭다는 건 아냐!”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소리친 민아는 휙 고개를 돌렸다.
“좋아요, 들어갈…….”
삑삑삑삑.
민아가 대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곳은 직원의 목이었다.
“헉.”
마치 은색 띠의 형태를 한 초크의 중앙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그것이 시뻘건 빛을 내며 연신 깜박이고 있었다.
“잠깐만. 아직 시간 남았잖아. 기다려. 기다리라고!”
“저기요, 왜 그러시는…….”
“우아아아아!”
퍼걱!
남자가 울부짖으며 초크를 잡아 뜯으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점차 보석이 깜박이는 속도는 빨라지며 이윽고.
퍼걱!
후두둑.
작은 폭발이 일어나며 초크를 잡고 있던 남자의 손과 머리가 터졌다.
머리가 사라진 사내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어?”
아연한 얼굴을 한 민아에게 다른 직원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계속 영업에 실패해서 시간이 다 된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민아는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바닥에 쓰러진 직원의 시체를 보았다.
도저히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이렇게 펑펑 사람을 죽이는 걸 보면, 그만큼 대체할 수 있는 이도 많다는 거다.
‘플레이어가 138명, 일반인이 725…… 아니, 724명.’
아까 받았던 메인 퀘스트를 살펴보면 일반인의 숫자가 한명 줄어 있었다.
난이도가 C랭크에서 짐작은 했지만, 진짜 거지같은 퀘스트다.
“오빠.”
“네 잘못 아냐. 애초에 이런 식으로 설계한 걸 거다.”
자신이 느리게 대답해서 직원이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민아의 눈가가 약간 촉촉했다.
강한 척하기는 해도 민아는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나는 민아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더러운 새끼.’
전생에 이곳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다.
일반인이나 플레이어나 구분 없이.
하지만 생존자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극히 소수의 생존자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플레이어들에게 전했다.
그 생존자가 내가 이곳에 온 목적 중 하나였다.
‘다만 다른 플레이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걸리는데.’
아직 놀이공원에 보이는 건 일반인들의 모습뿐이다.
다른 장소에서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평범한 사람들처럼 이용당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분명 그들이 운영하는 놀이기구를 이용하면 도장을 받을 수 있을 거다.
민아와 퀘스트가 다른 나는 굳이 놀이기구를 이용하고 도장을 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우선 간을 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모양세라도 도장을 얻어두는 편이 유리했다.
“갑시다.”
“정말 가실 건가요? 가시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겁니다.”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는 직원의 모습은 뭔가를 초탈한 기분이었다.
“포기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어차피 다 죽을 겁니다. 이곳에 들어왔던 플레이어 분들도 얼마가지 못해 대부분 죽거나 숨었거든요.”
“……그렇군요.”
카라스가 운영하는 놀이동산이니 일반적인 플레이어들로서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늘에 돌아다니는 옵저버도 없는 걸로 보아 신의 아바타도 없는 것 같았다.
“이곳은 말 그대로 유령의 집입니다. 클리어 방법은 간단, 끝까지 통과하시면 됩니다.”
“간단해서 좋군요.”
“간단한 만큼 무서운 법이죠.”
직원 남자의 짤막한 경고였다.
아마 진심이겠지. 이곳을 이용한 플레이어가 우리만 있을 리는 없으니까.
“예, 조심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부디 즐거운 관람되시길.”
직원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입구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연 것만으로 섬뜩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으.”
민아가 내 소매를 잡으며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너무 무서워하는 거 아냐? 겨우 입구다. 입구.”
“그, 그냥 어두우니까 잡았을 뿐이야. 혹시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
전에 암야의 사수가 있는 던전에서는 안 그런 것 같은데.
어둡기도 거기가 더 어둡다.
“알았으니까. 조심하면서 쫒아와.”
“응, 아, 알았어.”
목소리가 아주 달달 떨린다.
요즘 고등학생 중에 유령의 집을 이렇게 무서워하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솔직히 신선한 느낌이다.
우리 때는 ‘야, 이딴 게 뭐가 무섭냐.’라고 말하며 뛰어다니기 일쑤였는데.
‘음?’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기척이 느껴졌다.
“야, 숙여!”
“어, 엄마야!”
머리를 노리며 휘둘러지는 시퍼런 칼날.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다.
대략 서너 개의 칼날이 우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건 그냥 던전이잖아, 미친.”
하긴 당연한 결과긴 하다.
이곳이 평범한 유령의 집일 턱이 없으니.
“히, 히익. 딸꾹.”
얼마나 놀랐는지 민아에 이르러선 딸꾹질까지 시작했다.
“비주얼은 죽이네.”
“씨잉, 그런 말이 나와? 딸꾹!”
안에 있는 건 하급 스켈레톤과 구울과 같은 좀비류 괴물들이었다.
다만 일반적인 몬스터의 모습이라기보단 가뜩이나 흉측한 모습을 더더욱 공포스럽게 꾸민 얼굴이었다.
구울의 경우에는 손에 전기톱을 들고 있는 놈도 있었다.
몬스터는 오로지 마력이 담긴 장비만 통하지만 플레이어는 그렇지 않으니까!
“꺄아아아악!!”
“야, 시끄러.”
거기다 옆에 있는 녀석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몬스터들의 모습에 비주얼 쇼크를 받은 모양이다.
‘솔직히 지릴 만하네.’
전생에 온갖 몬스터를 잡아서 적응된 거지, 아니었다면 나도 민아랑 같은 꼴이었을지도 모른다.
‘씁, 어쩔 수 없지.’
이번만큼은 민아가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앗!”
“이번만 참아.”
혹시 모르니 손목을 꽉 붙잡고 몬스터들을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위이이잉!
“크아아아!!”
“적당히 해라, 침 튀긴다.”
전기톱을 휘두르며 덤벼드는 구울의 목을 잘랐다.
구울뿐이 아니다, 살점이 가닥가닥 붙어있는 스켈레톤들이 우리의 다리를 붙잡기 위해 기어오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영체형 몬스터가 없었다는 점이다.
서걱!
“그래도 그리 강한 놈들은 아니야. 야, 이민아 너도 그냥 잡을 수 있는 놈들이라니까?”
“싫어싫어! 어헝헝!”
“그아아아!”
“꺄아아아아!”
각종 소음을 서라운드로 들으며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기본적인 구조는 유령의 집과 같아.’
간간히 분기가 나오며, 함정이 튀어나오고. 몬스터가 덮쳐드는 형식.
문제라면 함정이나 몬스터들이 우리를 진짜 죽이려고 한다는 거지.
“윽.”
길을 걷다보면 비명횡사해서 시체가 되어버린 플레이어들이 얼핏 보였다.
“흐, 흐으. 엄마아아.”
울다가 딸꾹질하고 경기를 일으키느라 바쁜 민아는 내 한쪽 팔을 아주 꽉 잡고 기어가는 속도로 이동했다.
덕분에 유령의 집 난이도가 무척이나 높게 느껴졌다.
만약 내가 평범한 플레이어였으면 민아랑 사이좋게 이곳에서 시체가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기실 난이도는 내게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내 능력치와 스킬을 생각하면 하품을 하면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
‘뭐, 남을 지키면서 싸우는 연습이라고 생각하자.’
내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봤겠어.
언제나 독고다이였지.
새삼 느끼는 거지만 사람을 지키면서 싸우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느꼈다.
대략 15분쯤 지나, 우리는 유령의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빨리 빠져나오신 분은 처음입니다.”
입구를 나가자 아까 우리를 안내했던 직원이 놀란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근데 거기 아가씨는…….”
직원의 말에 내 팔에 코알라처럼 매달려 있던 민아가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다.
“저, 저도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그럭저럭 괜찮기는 개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으면서 말은 잘도 한다.
심지어 입에는 침 자국까지 있었다.
외투가 침 범벅이 되지는 않았을까 조금 걱정이 되는걸.
“괜찮았다니 다행입니다.”
상냥한 직원은 민아를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저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목에 걸려 있는 그거.”
“족쇄 말입니까?”
아무래도 저 목걸이를 족쇄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딱 어울리는 명칭이기는 하네.
“예, 그거 어디서 구할 수는 없습니까?”
그는 내 질문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목에 걸면 폭발할 뿐인 목걸이에 관심을 가지니 이상할 수밖에.
아마 이곳에 있는 일반인들을 관리하기 위한 아이템일 테니 일반적인 경로로는 없을 수 없을 거다.
“이건.”
직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신중해진 직원의 얼굴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인가?
“기념품 코너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아, 예.”
난 대체 뭘 고민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