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021. 파밍은 야비하게(1)
“이, 이 새끼. 당장 이거 안 풀어?! 이게 대체 뭔데 남 목에 거는데?!”
박동권은 나를 보자마자 목에 걸려 있는 은색 팔찌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거 진정 좀 해라. 그거 별거 아냐. 내가 살짝 조정하면 네 목을 동강내 버릴 수 있는 팔찌…… 아니 목에 걸렸으니 초크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런 거지.”
“뭐?”
박동권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다는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뭐, 이런 건 실제로 체험해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석을 조작했다.
“컥?!”
박동권의 몸이 크게 기울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꺽꺽 거리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이게 대략 200kg정도거든. 일반인이면 목숨이 위험했겠지만 그래도 플레이어니 견딜 만하지?”
“사, 살……!”
박동권이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로 바닥을 긁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무감정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보석을 조작하며 무게를 원래대로 돌렸다.
“크헉! 헉, 허억, 헉. 이, 이까짓 거!”
녀석은 목에 걸린 초크를 손가락으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지만 초크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거 네가 백날 그래봐야 안 부서져.”
왜냐면 캐쉬템이거든.
정확히는 DLC 전용 아이템이지만 편의상 캐쉬템으로 부르고 있다.
“이런 씨발!”
녀석은 대략 5분 정도 발버둥 치다 결국 포기했는지 욕설을 내뱉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 지랄을 하는 거냐!”
이 녀석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빤히 녀석을 바라보면 정말로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평범한 사람과 가치관이 다른 녀석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너 처음에도 사람들 강당에 몰아넣고 죽이려 했지.”
“……!!”
“그리고 이번에도 배신 때렸잖아. 내가 모를 거 갔냐? 민아가 네가 하는 짓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었는데.”
민아는 동권을 감시하는 남성으로 변신하여 며칠간 같이 있었다.
동권의 의견에 동조하여 녀석이 하는 대로 일이 흘러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맡았고.
“그, 그렇지만 전부 실패했잖아!”
“그래, 나 때문에 전부 실패했지. 아니었으면 다 성공했을 거야.”
이 녀석은 벌써 두 번이나 일을 저질렀다.
솔직히 죽여 버리는 게 마음은 편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죽이는 건 쉽다.
나는 이 녀석을 이용할 수 있는 한 이용해 먹고, 살아서 계속 고통 받기를 원했다.
“그건 1차적 구속이다. 단순한 물리적 구속이지. 그리고 또 하나.”
나는 품속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다.
이건 계약서다.
DLC 상점에서 구매한 특수한 계약서.
나는 이것으로 녀석을 아주 건전하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이건 정신적인 구속이다. 이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면 넌 이 계약서에 적힌 행동은 결코 하지 못하게 되지.”
“뭐……?”
동권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곤 계약서에 적힌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계약서의 내용은 상당히 길었지만 첫줄만 읽어도 이해가 가능했다.
「을은 앞으로 이타적이며 견실하고, 성실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을은 당연히 박동권이다.
녀석은 앞으로 사람을 해하거나 혹은 피해가 갈만한 짓을 하게 된다면 이 계약서를 어긴 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초크가 네 목을 조이는 건 물론, 이틀간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며. 끝내 머리가 터져 죽을 거다. 그렇게 쓰여 있지?”
“미……친.”
동권의 성향 상 손발이 다 묶이는 계약서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계약서 맨 아래를 보면 ‘갑이 허락해 주는 일에 한해서는 계약서를 어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남겨뒀다.
물론 갑은 나다.
“이딴 계약서에 사인을? 이 새끼가 누굴 호구로 알……!”
“그럼 죽일까요?”
쿵.
동권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지수가 피와 살점으로 젖은 메이스로 바닥을 두들기며 말했다.
메이스를 휙휙 휘두를 때마다 살점이 휙휙 날려서 솔직히 나도 질겁할 비주얼이다.
민아에 이르러선 이미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아니, 펜을 줘야 하지. 딸랑 종이만 내밀면 내가 사인을 어떻게 해?”
악을 쓰던 동권의 표정이 단번에 비굴해졌다. 지수에게는 시선도 마주치지 못했다.
‘나야 편하긴 한데, 찜찜하네.’
뭔가 내가 아니라 지수에게 굴복한 거 같은……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저…… 사인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응? 아, 이제 가도 좋아. 어차피 이제 네가 어디에 있는지는 언제든 알 수 있거든.”
“아, 예.”
동권의 태도가 단번에 공손해졌다.
계약서에서 ‘갑’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하라는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동권은 똥 씹은 얼굴로 탈의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그럼 이제 가도 되는 거죠?”
“가라니까. 나도 볼 일 끝났어.”
지금 당장 동권이 필요한 일은 없다.
어디에서 뭘 하든 난 언제든 알고 있고, 계약서를 통해 이번과 같은 헛짓거리는 아마 할 수 없을 것이다.
녀석의 선택은 아마 크게 두 개.
현균의 옆에 계속 붙어서 돌아다니거나 여기서부터 따로 행동하는 것.
만약 계약서만 아니었어도 후자를 선택했겠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현균과 함께 다니지 않을까 싶다.
눈치를 살피며 문을 열고 나가는 동권에게 나는 가볍게 외쳤다.
“야.”
“옙!”
“다음에 보자. 그때까지 건실하게 살고.”
“아, 알겠습니다.”
말투는 지극히 순종적이었지만 표정은 그야말로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가 어쩌겠는가.
덤비면 걍 뒈지는데.
“근데.”
동권이 사라지자 잠자코 있던 지수가 입을 열었다.
“정말 저대로 보내도 괜찮아요?”
“어. 상관없어.”
DLC상점에서 구매한 계약서는 절대적이다.
만약 뭔가 꼼수를 부리려고 해도 내가 물리적으로 언제든 저지할 수 있었다.
동권은 쓰레기지만 능력은 있는 놈이니 알아서 강해질 거다.
그럼 나중에 써먹으면 된다.
“좋아,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지. 지수 너는 이번에 무슨 등급으로 클리어 했어?”
“저는 금 등급이요.”
예상한대로 높은 등급이었다. 아마 ‘파티원’으로 취급되어 어느 정도는 내 공적이 지수에게도 적용된 덕이겠지.
더불어 내가 얻은 포인트가 많을수록 지수도 일부 받을 수 있기에 현재 모여 있는 포인트가 상당할 게 분명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 나는 이제 돌아다닐 곳이 좀 있어. 너는?”
“저는 잠시 가볼 곳이 있어요.”
“따로?”
“네.”
지수는 귀중한 전력이었기에 되도록 같이 갈까, 생각했지만 표정을 보고 그만두기로 했다.
아마 혼자서 따로 처리할 일이 있는 모양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넌 파티원이라 언제든 위치도 알 수 있고. 너도 내 위치 알 수 있지?”
“네. 파티원 관련 시스템은 이미 익혀뒀어요. 볼일이 끝나면 바로 돌아올 게요.”
“그래, 천천히 일보다 와.”
파티원끼리는 서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이민아.”
“응?”
시선을 돌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민아에게 말을 걸자,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약속한 대로 보상을 줄 테니 이리 와봐.”
“아, 진짜?”
민아가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달려왔다.
“우선 물건은 천천히 사고. 너에게 줄 게 있어.”
“뭔데? 별거 아니면 알지?”
“너야말로 보고 놀라지나 마라.”
나는 녀석에게 작은 반지를 내밀었다.
“바, 반지?”
“맞아.”
“……나 아직 미성년자인데. 아무리 내가 매력적이라도 그렇지 이건 초큼.”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 반지가 보상이라는 거다. 아이템이니까 제대로 확인해 봐.”
“아, 이게?”
민아는 반지를 받아들고는 조심스럽게 아이템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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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의 반지(B)
하루 두 번, 최대 1시간 동안 완벽히 모습을 감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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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는 극히 심플하다.
하지만 무려 B급 아이템이다. 심플한 만큼 우수한 장비였다. 생존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고, 민아의 능력을 생각하면 어떤 장소라도 침입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야 백금등급 보상이니 좋을 수밖에.’
나로서도 꽤 탐이 나는 장비였지만, 나보단 민아에게 어울리는 물건이기에 투자하는 기분으로 줬다.
애초에 바질리스크는 민아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못 잡았을 테니.
‘거기다 나는 추가로 스킬도 보상을 받았고.’
추가 보상인 스킬은 저 B급 장비보다도 훨씬 대단한 것이었다.
“우와, 우와! 이거 B급 장비잖아! 이거 진짜 받아도 돼? 혹시 밤길에 뒤통수치는 거 아니지?”
“이번 일 도와준 보상이라니까. 내가 그런 짓을 할 거 같이 보이냐?”
“……조금.”
“크흠.”
솔직히 전생에는 몇 번 그러긴 했다.
하지만 난 나쁜 놈이 아니면 그런 최저의 행동은 안 한다고.
“그럼 나 이거 가진다? 진짜 가질 거야?”
“가지라니까.”
희희낙락한 얼굴로 받아든 반지를 끼는 민아를 보고 있자니 옆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왜 그래?”
“아뇨, 별로.”
지수의 표정이 묘하게 뚱한 느낌이었다. 사실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는데도 말이지.
아, 혹시 똑같이 도와줬는데 민아에게만 보상을 줘서 그런가.
“지수는 다음에 만날 때 줄게. 그때면 괜찮은 걸 줄 수 있을 거 같거든.”
“네? 아, 괜찮은데…… 알겠어요.”
괜찮다는 것 치고는 굉장히 기대가 된다는 얼굴이다.
얘가 언제 이렇게 속물적인 성격이 된 거지.
“후, 이제 계산도 끝냈으니 슬슬 이동하자. 가만히 있어봐야 좋을 거 없잖아.”
아까부터 주위를 돌아다니는 옵저버들이 상당히 거슬렸다.
“참 근데 아까 따로 가실 곳이 있다고 했는데, 거기가 정확히 어디예요?”
“아, 그거? 그냥…….”
궁금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지수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파밍 좀 하려고.”
자고로 게임을 즐겁게 하려면 적절한 파밍이 필요한 법이다.
***
“근데 너는 왜 따라오냐?”
“응? 왜 안 돼?”
지수와 헤어진 나는 미리 생각해 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혼자가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민아가 내 옆에 찰싹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
“안 되는 건 아닌데…….”
솔직히 민아보단, 녀석을 쫒아다니는 옵저버가 거슬렸다.
‘됐다. 어차피 옵저버가 하나쯤 더 늘어난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
두 번째 퀘스트가 끝난 이후, 나를 따라다니는 옵저버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야 센티넬을 잡고, 그토록 눈에 띄는 활약을 했으니 당연할 수밖에.
거기에 아직 ‘아바타’도 아니니 옵저버가 이리 많을 수밖에 없다.
“근데 왜 따라온 거야?”
“오빠가 꽤 괜찮아 보였거든.”
“뭐가.”
“능력도 있어 보여서 말이야. 이번처럼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민아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과연 내가 아는 이민아답다. 이익에 민감한 녀석이니 내 옆에 있으면 이득이 된다는 걸 깨달은 거겠지.
지수랑 비슷한 이유지만, 이 녀석은 좀 더 속물적이다.
‘상관없겠지.’
민아는 귀중한 전력이다.
어쨌든 후원을 하는 신이 신이니 이 녀석만큼 포텐셜을 가진 플레이어는 몇 없다.
후일을 생각하면 좋은 관계를 쌓아서 나쁠 건 없었다. 그래서 B급 장비를 준거고.
“물론, 쫓아만 다니는 건 아니야.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제대로 도와줄게.”
“그건 당연한 거다.”
“뭐어?”
“잠깐.”
뭐라 민아가 입을 열기 전에 나는 녀석의 입을 막았다.
왜냐면 앞에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너희는 누구야? 여기는 우리가 공략 중인 던전이다. 저리 꺼져!”
한 남자가 날카로운 칼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던전이라는 말에 민아가 눈을 반짝였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돌아가죠.”
“말귀가 통하는 놈이군.”
내 답변이 만족스러웠던 듯, 남자는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특별히 헤코지를 하지 않았다.
“던전이 있다는데 그냥 돌아가는 거야?”
얌전히 뒤돌아온 게 마음에 안 들었던 듯 민아가 투덜거렸다.
“아니. 대충 위치는 알았으니 들어가야지.”
“아, 진짜? 역시 그래야지. 근데 보아하니 던전을 공략하는 게 한두 명이 아닌 거 같던데?”
“그야 그렇겠지. 슬슬 무리를 이룰 시점이니까.”
조금 있으면 ‘길드’도 생길 거다.
위기에 몰릴수록 사람들은 뭉치려하니까.
“그럼 어떻게 들어가게? 또 내가 뭔가 선동해야 되나?”
“그럴 필요 없어. 입구라는 게 거기에만 있으란 법은 없잖아?”
“앗, 그럼 혹시 다른 입구라도 찾아둔 거야?”
“아니.”
내가 단호히 대답하다 민아의 얼굴이 단번에 실망으로 물들었다.
“뭐야 그게. 그럼 이제 다른 입구 찾자고? 그건 저기에 점거중인 사람들이 이미 다 했을 거 같은데.”
민아의 말은 정론이었다.
이제와 새로운 던전의 입구를 찾아봐야 발견될 턱이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 않은가?
“입구가 없다면 만들면 되지.”
“??”
자고로 게임에서 캐쉬템으로 불가능한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