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0화 (20/332)

# 20

020. 격의 차이(4)

쿠궁, 쿠구구궁.

내딛고 있는 지면이 흔들렸다.

연속되는 폭음으로 건물의 유리창이 깨어져 나갔다.

오르가가 흔들리는 바닥에서 균형을 잡으며 세한을 향해 소리쳤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냐!」

“폭탄이다. 각층마다 폭탄을 설치해 뒀거든.”

정확히는 플로어 중앙 바닥에.

세한의 부탁으로 민아가 지난 일주일간 설치한 폭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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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착 폭탄

원격으로 조종해 폭파시킬 수 있는 폭탄. 몬스터나 플레이어에겐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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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C 상점에서 구매한 물건.

간단한 장애물을 파괴할 때 쓰이는 폭탄이지만 건물의 바닥 정도는 폭파시킬 수 있다.

오르가가 내딛고 있는 바닥은 아직 폭발하지 않았지만, 곧 폭발하게 될 것이다.

점차 가까워지는 폭음을 들으며 오르가는 세한을 비웃었다.

「멍청한 놈! 폭탄 따위로 내가 죽으리라 생각하나? 아니면 바닥으로 떨어트릴 생각인가. 어느 쪽이든 소용없다!」

“알고 있어. 네놈들을 지구의 법칙으로 죽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말하자면 지구의 모든 건 게임 속 오브젝트다. 몬스터는 오브젝트로는 죽일 수 없다.

지구의 법칙을 따르는 주제에, 그것으론 죽일 수 없다.

참 어이가 없는 설정이다.

반드시 게임의 요소가 관여해야지, 몬스터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둔한 넌 몰랐겠지만, 내가 그냥 빙빙 돌면서 헛짓거리한 건 아니거든.”

「그게 무슨…… 잠깐, 이건 뭐냐?!」

“훈련용 팔찌다. 편리하게도 사이즈도 조절되지.”

오르가의 다리에는 은색 팔찌가 둘러져 있었다. 네 개의 다리에 각각 하나씩.

「이걸 왜?」

“왜냐고? 그냥 떨어트리면 아무래도 불안하거든. 위치가 변할 위험도 있고. 떨어지다가 도중에 힘이 부족할 수도 있고.”

그렇기에 세한은 오르가의 다리에 훈련용 팔찌를 채웠다.

혹여나 부족한 위력을 채울 수 있도록.

“그거, 최대 10톤까지 늘어난다.”

네 개니까 총합 40톤.

“직접 체험해 보는 편이 이해가 빠르겠지.”

세한이 주먹을 피자, 새빨간 보석이 반짝 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주황색으로 변하고, 이윽고 노란색으로 변했다.

「으, 으오오오?!」

쩌적, 쩌적.

오르가의 발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지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격의 차이는 개뿔.”

세한은 피식 웃으며 이젠 보라색으로 변한 보석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네노오오옴!」

오르가의 울음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녀석이 내딛고 있던 지면이 폭탄으로 파괴되며 오르가의 몸이 폭탄으로 파괴된 구멍으로 추락했다.

로메월드타워의 높이는 500미터가 넘는다.

폭탄을 지면에 설치한건 그중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높이에서 떨어진 바질리스크의 동체가 나머지 바닥을 사정없이 부수며 떨어져 내렸다.

쾅! 쾅! 쾅! 쾅!

콘크리트도, 대리석도, 철근도.

「우오오오오!」

40톤이 넘는 괴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작 이 정도로 죽을 거 같으냐!’

오르가는 떨어지며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무리였다.

훈련용 팔찌의 무게는 바질리스크의 근력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바닥에 떨어진다 해도 난 죽지 않는다. 하지만 팔찌는 부서지겠지.’

반드시 죽인다. 자신을 비웃던 건방진 인간 놈을 죽여 버릴 것이다.

팔찌의 무게 관여한 탓에 떨어지게 되면 분명 오르가도 피해를 입을 것이다.

죽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녀석을 죽이고 말리라.

「저건……?」

철골을 꺾고 폭탄으로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찢어발기며 떨어지던 오르가의 눈에 반짝이는 뭔가가 들어왔다.

금색으로 빛나는, 날카로운 창.

마치 자신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박혀있는 날카로운 창의 칼날이 보였다.

「어째서?」

의문이 들었다. 왜 저곳에 창이 거꾸로 박혀 있는가.

‘메인 퀘스트2까지 얻을 수 있는 무기 중에 내 비늘을 뚫을 수 있는 무기는 없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통 창이라면 오르가의 생각이 옳았다.

일반적으로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구할 수 있는 무기라고 해봐야 고블린을 잡고 얻을 수 있는 녹슨 무구나,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장비가 끝이다.

그런 무기로는 바질리스크의 비늘에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 꽂혀 있는 그런 평범한 창이 아니었다.

푸우욱!!

비늘이 종잇장처럼 찢기며 창의 칼날이 오르가의 몸을 꿰뚫었다.

「말도…… 안…돼…….」

오리하르콘으로 코팅된 창은 오르가의 몸을 꿰뚫었음에도 조금도 휘어지지 않았다.

콰콰쾅!!

대신 지면이 부서지고, 마침 옆에 있던 몬스터 하나가 천장을 부수며 떨어진 바질리스크에 깔려 짓뭉개졌다.

이 스테이지에 존재하던 모든 플레이어에게 팡파레가 울려 퍼진 건, 바로 그때였다.

***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창을 지하 6층, 플로어의 중앙에 설치하라고 하여 시키는 대로 했다.

‘이게 가능한가?’

그리고 연락이 오면 보스 몬스터를 꽂아둔 창의 근처로 유도하라고 하여 그렇게 했다.

지하 6층에서 현균이 이끄는 이들을 기다리던 건 다름 아닌 비홀더.

허공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눈알의 형상을 한 몬스터다.

현균 일행으로는 필사적으로 공격을 해도 치명타를 날릴 수 없는 몬스터였다.

그래서 세한이 말했던 것처럼 창의 근처로 유인했던 것인데……

.

“형, 도대체 무슨 일이야?”

옆에서 자신과 함께 싸우던 일행이 말을 걸었지만, 현균은 말없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구멍이 보였다.

그 구멍은 끝없이 이어져 타워의 정상까지 도달해 있었다.

“저 위에서 떨어트린 건가……?”

그렇게밖에 이해할 수 없다.

이 얇은 창에 정확히 떨어트리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이렇게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다.

“둘 다, 죽은 거 맞죠?”

“……그런 거 같다.”

현균의 앞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있었다.

천장을 부수며 떨어진 바질리스크가 창에 꿰뚫리며 처박힌 장소다.

현균과 그 일행이 사투를 벌이던 비홀더도 한줌의 핏덩이가 되어 바질리스크의 거대한 덩치에 깔려 있었다.

‘옵저버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모양인데.’

평소라면 허공을 정신 사납게 날아다녀야 할 옵저버들이 바질리스크의 사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하에 있던 몬스터가 이 스테이지에 보스 몬스터라면 이 바질리스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일까.

[메인 퀘스트 2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당신의 퀘스트 달성도는 ‘은’등급입니다.]

[잠시 후, 보상이 지급됩니다.]

팡파레가 울리며 알림창이 떠올랐다. 이걸로 두 번째 메인퀘스트가 완벽히 클리어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엔 은 등급인가.’

도움말을 읽어보면 퀘스트 달성도는 최대 백금까지이며, 그 아래로 금은동. 더 아래로 내려가면 숫자로 매겨져 1, 2, 3등급으로 매겨진다.

은 등급이면 충분히 높은 달성도지만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금’을 달성했던 현균으로선 아쉬운 수치였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은 등급에 걸맞은 보상이 지급되었다.

보상은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금 등급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평범했지만, 이어서 떠오른 알림창에 현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세 번째 메인 퀘스트부터는 일정 시간이 지나거나 조건을 만족하면 자동으로 활성화됩니다.]

“뭐?”

당연히 세 번째 메인 퀘스트가 시작될 거라 생각했던 플레이어들로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여태 명확한 목적이 있다가 사라지니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형, 이제 어떡하죠?”

“글쎄.”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되니 어찌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우선 지하철역으로 돌아가 사람들과 의논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응?’

그때, 바질리스크의 사체에 고정되어 있던 옵저버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옵저버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니, 이번 퀘스트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세한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바질리스크가 떨어져 생긴 커다란 구덩이를 보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대체 정체가 뭐야?’

이전부터 묘한 이질감을 느꼈지만 이번 일은 보통이 아니다.

얼마 전만해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두 무사하신 모양이네요.”

“……응, 그렇지. 네 덕분에 말이야.”

어떻게 잡긴 했지만 솔직히 얼떨떨한 기분이다.

“모두 형이 제 말대로 해주신 덕이죠.”

“솔직히 나도 반신반의하긴 했는데, 도저히 우리들 실력으로는 못 잡을 거 같아서 어쩔 수 없었어.”

만약 이런 식으로 죽이지 못했다면 자신들은 기간 내에 보스몬스터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자들이었으면 충분히 잡았겠지.’

주원이 이끄는 플레이어 무리라면 잡았을 것이다. 세한이 없었다면 경쟁에서 밀려나 죽은 건 자신들이었으리라 생각하니 몸이 오싹했다.

‘이대로는 안 돼.’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보면 세 번째 메인 퀘스트가 바로 시작하지 않은 건 천운이었다.

“헛차.”

세한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는 바질리스크의 시체에서 창을 뽑아내었다.

‘역시 오리하르콘이군.’

만약 자신의 능력치가 최소 D만 됐어도 이걸 직접 휘둘러 바질리스크를 죽였을 거다.

그게 안 돼서 이런 일을 벌인 거지만.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그런 세한을 조용히 응시하던 현균이 물었다.

“세 번째 퀘스트까지는 시간이 좀 있다고 했으니 좀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돌아다녀? 어디를?”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요.”

슬슬 필요한 스킬이나 장비를 얻을 필요가 있었고, 위험한 싹은 미리미리 제거해 둘 필요가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GM이 뭔가 일을 꾸밀지도 모를 일이지만.’

큰 틀은 다르지 않겠지만 소소한 면에서 전생과는 달라졌을 확률이 높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도와드릴 테니까.”

세한은 주머니의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곤 창을 어깨에 짊어진 후, 가볍게 등을 돌렸다.

혹시나 계속 같이 가지 않을까 생각했던 현균으로선 아쉬운 모습이다.

“그래, 너도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고.”

“예.”

세한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현균에게 작별의 인사를 전했다.

아마 다시 그와 재회하는 건 꽤나 후의 일일 것이다.

비장한 얼굴을 한 현균을 보며 세한은 피식 웃었다.

‘아마 이번 일로 느꼈겠지.’

자신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이번에는 세한이 도와주긴 했지만 당분간은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적어도 일곱 번째 메인 퀘스트까진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현균이라면 분명 할 수 있을 거라고 세한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현균을 아바타로 선택한 신은 누구지?’

생각해 보니 물어보는 걸 깜박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물어보지 뭐.’

어차피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올 거다.

세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상으로 향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하나 남아 있었으니까.

***

“생각보다 늦으셨네요.”

약속한 장소로 향하자, 지수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옷이 바뀌었다? 혹시 찢어졌어?”

“아뇨, 조금 더러워져서 다른 걸로 갈아입었어요.”

여전히 검은색 원피스이긴 했지만 묘하게 디자인이 달랐다.

그리고 그 위에는 내가 사준 방어구를 입고 있었지만, 방어구는 이미 제 기능을 못할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골백번은 죽었겠군.’

칼로 난자된 흔적이 남은 방어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뭐야, 왜 나한텐 아는 척도 안 해?”

“넌 계속 봤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만.”

민아는 새치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휙 돌렸다.

역시 감정이 풍부한 고등학생은 상대하기가 힘들다.

“그럼…….”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녀석은?”

“이쪽이에요. 혹시 몰라서 저기 가둬뒀어요.”

오른손을 들어 지수가 뒤를 가리키자, 탈의실 문이 보였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폐허가 되어버린 의류 매장이기 때문이다.

끼익.

“오, 그러네. 여기 있구만.”

삐걱거리는 문을 열자 전신에 새빨간 피가 말라붙어 있는 남성이 주저앉아 있었다.

“너, 너는…….”

녀석은 갑자기 문이 열리자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 박동권 씨.”

그동안 지수가 아주 잘 교육해 준 모양이다.

벌벌 떠는 녀석의 목에 걸려있는 은색 팔찌를 보며, 나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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