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9화 (19/332)

# 19

019. 격의 차이(3)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의 미노타우르스와는 달리, 두 번째 메인 퀘스트의 센티넬인 바질리스크는 본인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이게 정상이다.

센티넬이라는 건 그 스테이지에 정점이며 메인 퀘스트를 받은 시점에는 절대 잡을 수 없게 설정된 몬스터다.

보통은 네임드가 되겠지.

센티넬이 된 미노타우르스는 어디까지나 갑자기 등장한데다 편법에 불과했기에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거다.

「물러선다면 목숨은 빼앗지 않으마.」

흔히 뱀의 왕이라 불리는 몬스터지만, 말투만 들으면 용 같다.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몬스터에게도 통하는 말인가?

“그럴 수야 없지. 내버려 두면 나중에 귀찮아질 것 같거든.”

「호오, 그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하는 말이다.”

각 스테이지를 지배하는 센티넬들은 일정 메인 퀘스트가 지나면 자동적으로 해방된다.

아무리 초기 메인 퀘스트에 나왔던 센티넬이라고 해도 최하 C급 네임드 이상의 몬스터다.

나중에 혼자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귀찮아진다.

‘물론 보상을 남김없이 먹으려는 게 본 목적이긴 하지만.’

우선 나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운신의 범위를 살폈다.

녀석이 눈을 뜨게 되면, 석화의 사안이 발동된다. 그렇게 되면 그 눈에 비친 모든 생물체는 돌이 되어버리지.

돌려 말해서 녀석의 시야에 닿지 않는 범위라면 무사할 수 있다.

‘말은 쉽다만…….’

도마뱀은 사실 눈이 굉장히 좋은 생물이다.

시야각도 굉장히 넓고, 종류에 따라선 눈동자가 제각각 360도로 회전하는 종류도 있다.

다행히 석화의 사안은 정면으로만 발동되니 큰 문제는 아니지만 성가신 건 변하지 않는다.

‘DLC상점에서 상태이상 면역의 비약만 팔았어도.’

안타깝게도 게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은 DLC상점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그래도 바질리스크 자체는 전생에 수도 없이 잡아봤으니…….’

오르가를 만난 건 처음이지만, ‘바질리스크’라는 족속은 전생에 수도 없이 죽였다.

분명 경험으로 어떻게든 될 거다.

“야.”

나는 족제비 민아의 작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우선 내가 눈을 뜨도록 유도할 테니 넌 그동안 녀석에게 최대한 접근해.”

“큐우?”

“그리고 석화의 사안이 발동되는 순간 눈알을 물어뜯어.”

“……!”

“그렇게 어려운 거 아냐. 상처만 내면 되. 그것만으로 석화의 사안의 발동을 막을 수 있거든.”

족제비의 눈동자가 큼지막하게 커졌다. 작은 머리는 좌우로 빠르게 흔들렸다.

절대로 못 한다는 표시다.

응, 안 돼. 해야 돼.

“아까 말했잖아. 바질리스크의 약점은 족제비라고. 석화의 사안이든 뭐든 안 통한다니까?”

“큐큐!”

도저히 못 믿겠다는 기색이다.

그럼 믿을 수 있게 도와줘야지.

“읏차.”

휙!

나는 족제비의 허리를 잡고 바질리스크가 있는 방향으로 휙 던졌다.

“키엥?!”

「음?」

괴상한 소리를 내며 족제비가 날아가 오르가의 눈이 번쩍 떠졌다.

파앗!

잿빛 섬광이 일어나며 족제비가 바닥을 굴렀다. 역시 돌이 된 기색은 없다.

그리고 나 역시 석화의 사안이 발동이 끝나자마자 반대쪽으로 달려 몸을 가렸다.

석화의 사안은 연속으로 사용이 불가능하니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

더불어 챙겨온 단검을 오르가의 눈으로 던졌다.

카앙!

「오. 눈을 맞추다니.」

녀석의 안구에 정확히 명중한 단검은, 조금의 상처도 주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역시 현재 내 능력치로는 석화의 사안을 파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 녀석을 데려온 거지.

“……큐.”

석화의 사안이 발동되고, 자신이 돌로 변했으리라 생각했던 족제비 민아는 자신이 멀쩡하다는 걸 인식하자마자 빠르게 움직였다.

「족제비인가? 그래봐야 소용없다. 전승상 약점인건 분명하나, 평범한 동물 따위가 상대가 될 리 없지.」

오르가가 앞발을 들어 올리며 족제비를 향해 내리찍었다.

콰앙

「오?」

평범한 족제비였다면 피하지도 못하고 압사 당했겠지만, 민아가 변한 족제비는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탓에 매서운 속도로 바질리스의 공격을 회피했다.

뭣보다 바질리스크 상대로는 족제비에게 기이한 버프가 걸린다.

그야, 게임이니까.

「오오, 오? 아니, 무슨?」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오르가가 재차 눈을 뜨며 석화의 사안을 발동했지만, 당연히 족제비인 민아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하아!”

그 틈을 노려 나 역시 엄폐물에서 빠져나와 오르가의 좌측으로 달려들었다.

탑의 정상은 그다지 넓지 않은 탓에 거대한 동체를 지닌 오르가가 재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콰창창!

녀석의 꼬리가 전망대의 유리를 죄다 박살 내며 나를 향해 휘둘러졌지만 나는 허리를 숙이며 회피했다.

“물어뜯어!”

동시에 나는 녀석의 다리에 손을 뻗었다. 공격을 하려는 건 아니다.

아무리 내가 현재 플레이어가 올릴 수 있는 능력치의 최대치까지 올려뒀다지만 오르가는 겨우 그 정도로는 백날 공격해 봐야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철컥.

‘좋아.’

녀석의 다리를 조이며 장착된 건 은빛의 링. 바로 훈련용 팔찌다.

「크오오!」

민아의 이빨이 오르가의 눈가를 스치자 오르가가 비명을 질렀다.

족제비의 이빨은 확실하게 석화의 사안을 찢었다.

“잘했어! 한쪽이면 충분해, 이쪽으로 와!”

“컁~!”

석화의 사안이 한쪽이 사라진 것으로 반경은 극히 축소됐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이제부터 해야 할 것은, 녀석의 공격을 버티며 지정된 위치로 이동시키는 것.

「보통 족제비가 아니었구나!」

“당연하지. 서울 한복판에서 족제비를 어디서 구해 와?”

콰가가각!

녀석의 앞발이 내 좌측을 긁었다.

힘도 속도도 녀석이 앞섰지만 바질리스크의 패턴을 익히 알고 있는 탓에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 위험한데.’

기본 능력 차이가 워낙 심해서 큰 공격을 해오면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두두두두!

「이놈!」

“이제야 본성이 나오는 구나. 도마뱀이면 도마뱀다워야지.”

「네놈은 결코 보내주지 않겠다!」

오르가의 움직임이 한층 격해졌다.

분명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으리라.

녀석 석화의 사안뿐이 아니라 녀석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었을 거다.

현재 능력치 한계가 고작 F에 그치는 플레이어에게 일격을 받다니, 누가 본다면 웃음거리지.

콰콰쾅!

나는 최대한 상처 입은 눈이 있는 방향에서 빙빙 돌았다.

그렇게 함으로서 석화의 사안과 시야 범위에서 벗어나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이잉.

‘이런.’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현균이 지하에서 준비를 끝냈다는 뜻이다.

‘그러면…… 좋아, 오르가도 점점 냉정을 되찾기 시작했으니.’

이제 방법을 바꿔야 될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좋아.’

나는 허공을 두드려 하나의 창을 열었다.

‘그것’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함이다.

“야.”

“컁?”

내 어깨에 매달려 있던 족제비가 또 뭐냐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까 내가 했던 말 기억하냐? 신호를 주면…… 이라고 했던 거.”

족제비의 머리가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다행히 잊지 않은 것 같다.

“그럼 가. 좀 떨어진 곳에서 내가 왼팔을 들어 올리면 최대한 크게 소리 질러.”

“컁.”

족제비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내 어깨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

부우웅!

“이크.”

방심하기 무섭게 머리 위로 오르가의 꼬리가 지나갔다.

「또 무슨 꾀를 부리려는 모양이구나.」

“잔꾀를 부리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으니까.”

「우습구나. 무슨 수를 쓰더라도 넌 나를 이길 수 없다.」

오르가는 쿵, 하고 크게 앞발을 내디뎠다. 녀석은 나를 천천히 몰아넣고 있었다.

「그런 족제비를 준비한 건 칭찬해 주지. 네놈이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능력치를 쌓았다는 것도 안다. 대체 어떻게 벌써 그 정도로 자신을 강화시켰는지 궁금하지……만!」

쿵, 쿵. 콰앙!!

녀석은 좌측으로 회전하는 나를 향해 고개를 꺾어 입을 쩍 벌리며 물어뜯으려 했지만 나는 급히 몸을 굴려 피했다.

「나는 가장 낮은 능력치가 D랭크다. 네놈이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이다.」

냉정을 되찾은 오르가가 보다 매섭고 빠르게 몸을 비틀며 양팔로 나를 향해 공격해 왔다.

지금까지 중 가장 빠르게.

「그게 ‘격의 차이’라는 거다.」

촤아악!

이건, 피할 수 없다.

아무리 경험으로 때운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녀석의 민첩은 아마 C랭크쯤 되겠지. F랭크인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내가 여태까지 도망칠 수 있었던 건, 정상의 플로어가 녀석이 움직이기 어려운 면이 있었기 때문이며, 한쪽 눈을 다쳐 시야가 제한되고 냉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로도 채울 수 없는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내가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다,

녀석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하지만.

“거 말 더럽게 많네.”

나는 왼팔을 들어 올렸다.

[───!!]

동물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바로, 닭의 울음소리다.

「컥?!」

족제비와 더불어 닭은 바질리스크의 전승상 약점 중 하나다.

약점인 이상, 녀석은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반응할 수밖에 없다.

「으오오오!」

콰콰쾅!!

그 울음소리를 듣자 오르가의 몸이 크게 비틀리며 내 옆을 굴렀다.

“이게 네가 말하는 그 격의 차이냐?”

「이놈…….」

오르가는 부서진 잔해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녀석의 시야가 닿지 않도록 빙빙 돌며 숏소드로 녀석의 비늘을 찔렀다.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오르가는 그런 나를 비웃듯이 말했다.

「내 약점을 안다 해도 내 비늘을 뚫고 공격할 정도로 넌 강하지 않다. 결국 이렇게 빙빙 돌아봐야 지쳐서 죽을 뿐이지.」

“알아, 인마.”

실제로 내 체력은 이제 한계다.

‘이제 슬슬 끝내야지.’

겨우 이 위치까지 유도할 수 있었다. 빙빙 돌면서 이동한 탓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이번엔 옵저버들도 꽤 있군.’

대략 다섯 개 정도.

이번 일이 퍼지면 더 늘어날 것이다. 물론, 바라던 바였다.

이젠 굳이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

내가 초반에 숨기려고 했던 건, 첫 퀘스트에서 지나친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퀘스트를 넘어가면 그런 걸로 문제를 삼기는 힘들어지리라.

“읏차.”

나는 몸을 날려 녀석에게서 최대한 떨어진 곳으로 피했다.

「이제 와서 도망칠 셈인가? 이렇게 거리가 다시 벌어져버리면 네놈에게 승산은 없다는 걸 알 텐데?」

“아니. 잠시 연락할 게 있어서.”

「음?」

녀석은 섣불리 덤비지 못했다.

그건 나를 경계해서라기 보단 건물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녀석 정도 되는 몬스터가 날뛰면 건물에 무리가 가는 게 정상이다.

괜히 무리해서 날뛰다가 바닥이 부서지면, 도리어 내가 도망갈 틈을 만들어 주리라 생각했을 거다.

삑.

“이걸로 됐나.”

나는 미리 적어두었던 문자를 현균에게 보냈다.

혹시 몰라 알림창을 통해 재차 위치를 확인했다.

아마 현균도 핸드폰의 진동을 느꼈을 거다. 만약, 듣지 못했다 해도 아까 ‘기초’는 마련되어 있으니 이 녀석을 죽이는 건 문제될 게 없다.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이쪽을 경계하는 오르가를 흘깃 보았다.

조금만 더 앞으로 오면 될 것 같았다.

“확실히 나는 너를 죽일 수 없지.”

「이제야 깨달았나? 그렇다 해도 늦었다.」

“아니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그래서 널 죽일 방법을 고민했다.”

내겐 익숙한 일이다.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상대를 꺾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건.

게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뭔가.

압도적인 능력치인가?

아니면 강력한 스킬인가.

물론 두 개 다 중요하다. 하지만 전생의 난 그 두 가지가 다른 이들보다 미흡했다.

최강이라 불리던 남자도 있었다.

최고의 천재라 찬사 받던 이도 있었다.

하지만 최후의 인류는 나였다.

“난 경험이 많거든, 그리고 인내심도. 그 두 가지면 뭐든 가능하지.”

어떤 영화에서 나왔던 대사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헛소리를. 네놈은 이미 독안에 든 쥐다.」

쿵. 쿵. 쿵.

오르가는 이미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느긋하게 앞발을 내디디며 앞으로 걸었다.

그걸 기다렸다.

콰콰콰쾅!!

플로어의 중앙. 녀석이 그곳에 도달한 순간.

로메 타워가 폭발에 휩싸였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