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8화 (18/332)

# 18

018. 격의 차이(2)

동권은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맨주먹으로 주원을 한방에 날려 버리다니.

“크으윽.”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주원의 오른팔은 부러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 녀석도 신의 아바타인가?’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녀석에게선 ‘신의 아바타’ 특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괘, 괜찮으십니까?”

“큭…….”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거는 동권에게 주원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언제 이런 굴욕을 당한 적이 있었던가.

세상이 바뀌기 전에도, 바뀐 후에도 이런 적은 없었다.

“당장…… 그 새끼를 잡아!”

아래로 내려가는 것보다 지금 위층으로 달려간 세한을 잡아 족치고 싶었다.

시뻘건 안광을 줄기줄기 뿌리며 소리치는 주원의 모습에 부하들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마, 맡겨주십시오. 형님!”

“그 건방진 놈을 당장…….”

파각!

새빨간 피가 흩날렸다.

“어?”

덜그럭, 쿵. 쿵. 쿵.

인간의 살점이 붙어있는 쇳덩이가 바닥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굴러갔다.

세한을 향해 달려가던 이들의 발이 우뚝 멈췄다.

“……시발.”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쓰러졌다. 머리가 사라진 시체가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렸다.

무언가가 날아와 사람의 머리를 부숴 버렸다.

“이건 또 뭐야.”

분노를 표출하며 소리치던 주원조차 얼굴을 굳히고 방금 전 날아온 쇳덩이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구르고 있는 쇳덩이는 다름아닌 철퇴였다. 그리고 그것을 한 여성이 천천히 집어 들고 있었다.

“저쪽이나.”

허공에서 한번 휘둘러, 철퇴에 묻어있던 살점과 피를 털어낸 지수는 별 감흥이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쪽이나. 어느 쪽이든 보낼 수 없어요.”

보통 때라면 당장에 미친년이라고 욕하며 덤벼들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저건 인간인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자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흉악한 범죄자들이다.

개중에는 살인을 저지른 자도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소녀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금 전 사람을 죽이고 ‘불쾌함’을 표한다는 것이.

‘저 눈이다.’

고요하고 불쾌함이 담긴 시선.

주원은 그 눈빛을 받는 순간 몸이 떨려오는 걸 느꼈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저런 계집년 따위에게……!”

주원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멀쩡한 왼팔로 사슬낫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저년을 죽여!”

“으, 으아아아!”

자신들에 비하면 작디작은 여성.

그러나 그 작은 몸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주원의 부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서른이 넘는 남자들이 일제히 덤벼드니 지수도 역시 조금 곤란해졌다.

“이러면 피가 많이 튈 텐데.”

지수는 자신의 옷을 힐끗 내려다봤다.

검은색 원피스라 다행이다.

콰지직!

“으아아아악!”

옆에서 달려드는 남성을 향해 지수가 철퇴를 휘둘렀다.

팔과 허리가 새우처럼 꺾이며 튕겨져 날아갔다.

“이년이!”

푸욱!

뒤에서 달려든 한 남성이 지수의 어깨에 칼을 쑤셨다.

‘그럼 그렇지. 역시 착각일 뿐이야.’

어깨에 쑤신 칼을 손으로 비틀었다.

이걸로 이 계집애도 무력화될 게 분명했다.

그래, 그것이 남성의 착각이었다.

지수가 칼을 맞은 건, 굳이 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관절 부위만 맞지 않는다면.’

콰앙!

지수의 어깨에 칼을 꽂았던 남성의 머리가 터졌다. 지수의 무기는 둔기이기에, 어느 방향이건 상관없이 휘두를 수 있었다.

‘좋아.’

푸슉.

어깨에 꽂힌 칼을 뽑자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칼에 상처 입은 자상은 몇 초가 지나기 전에 깔끔이 나았다.

‘상황은 나에게 유리해.’

불이 들어오지 않는 매장 안이라 지수의 움직임을 쫒기 힘들며, 천살성 스킬의 특성상 다수와 싸울수록 힘이 강해진다.

거기에 가장 좋은 건 지금과 같은 난전이다.

많은 이들의 피를 뒤집어쓸수록 재생력이 올라가고 능력치에 보너스를 얻으니까.

적을 최대한 피가 많이 튀도록 상처 입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사, 살려, 쿠엑!”

철퇴를 검으로 막고 쓰러진 남성의 허리를 밟아서 부러트렸다.

우드득!

“아악! 팔이, 팔이!”

달려드는 남자의 팔을 비틀고 그대로 뽑아버렸다.

전신이 새빨간 피로 물들자, 지수의 신체 능력이 한층 상승했다.

‘차라리 고블린 쪽이 어려울지도.’

오로지 악의만을 가진 체 덤벼드는 고블린과 달리, 인간은 너무나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공포나 두려움. 분노, 그리고 광기.

물론, 지수에겐 그다지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이건, 악몽인가?”

동권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서른이나 되던 사람들이 벌써 반절이나 죽었다.

그 정도면 지칠 만도 한데, 지수의 행동은 오히려 쌩쌩했다

.

그건 지수가 천살성이기 때문이지만 여기 있는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죽어어어!!”

자신의 부하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나가자 주원이 눈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달려들었다.

마치 미친놈처럼 달려든 것 같지만 주원의 머릿속은 냉정했다.

‘강하긴 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야.’

아까 자신을 주먹 한 방으로 날려 보낸 세한과 달리, 지수는 적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도리어 속도만 보자면 자신이 위였다.

‘젠장, 오른팔만 멀쩡했어도.’

이렇게 빙빙 돌며 싸울 필요는 없었는데.

부웅!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주원을 향해 지수는 반사적으로 철퇴를 휘둘렀다.

마치 조무래기를 상대하는 것 같은 행동이지만 주원이 노리던 바였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진 철퇴를 향해, 자신의 옆에서 달려들던 부하의 몸을 잡아끌었다.

“혀, 형님? 우아아악!”

퍼걱!

머리가 터져나가며 자욱한 피에 시선이 차단된 짧은 순간.

주원의 왼손은 허리에 메어둔 사슬낫을 붙잡았다.

“죽음의 선고.”

하데스로부터 받은 필사의 스킬.

이 스킬에 명중하게 되면 1분 안에 반드시 죽음이 찾아온다.

단지, 하루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으며, 자신보다 격이 높은 존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 플레이어를 상대로는 무적의 능력이나 마찬가지.

‘격의 차를 느끼며 죽어라.’

이 녀석은 신의 아바타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의 선고가 반드시 먹힐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신의 아바타인 자신에 비하면 그저 보잘 것 없는 존재다.

자신보다 분명히 격이 낮은 존재란 말이다.

그랬을 터인데.

우지직!

“?”

주원은 자신의 시야가 거꾸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런 병신 같은.’

깜박깜박 점멸하는 시선의 끝에 자신의 왼팔이 보였다. 사슬낫을 꽉 움켜쥐고 있는 자신의 왼팔.

지수의 공격은 부하의 머리를 부수는 것에 모자라, 사슬낫을 휘두르던 주원의 왼팔을 후려쳤다.

거기에 천살성의 스킬로 가중된 추가 데미지는 주원의 왼팔을 말 그대로 뜯어서 날려 버렸다.

주원의 신체 또한 그 충격으로 허공으로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응?”

지수의 시선이 그제야 주원에게로 향했다.

아마 자신을 급습한 존재가 주원인지도 몰랐다는 반응이다.

“언제 맞았지?”

지수는 그렇게 중얼거린 후,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쓰러진 주원을 다시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주원에 대한 감상은 고작 그뿐이었다.

‘나야말로 보잘 것 없는 존재였나.’

격의 차.

주원은 난생처음 그것을 느끼며, 그렇게 죽었다.

***

“정말 그대로 두고 와도 괜찮아?”

“아마.”

“아마라니, 그러면 안 되잖아!”

민아가 큰 소리로 소리쳤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지수와 나는 ‘파티’라는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뭣보다 한쪽 팔이 망가진 주원만으론 지수를 막을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처음에 ‘금’등급으로 얻은 포인트를 모조리 능력치에 투자한데다가 혈천수라공까지 익히고 있다.

혈천수라공은 천살성의 특성을 극대화시켜 주는 효능을 지녔으니, 많은 피를 뒤집어쓰게 되면 지수의 능력치는 사실상 카운터 스톱 상태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았다.

“애초에 주원이라는 놈은 대단한 놈이 아니다.”

“요 일주일간 보니까 엄청 쎄 보이던데?”

“지금은 별로야.”

주원이 정말 강해지는 건 몇 개의 스킬을 더 얻고 나서다.

지금쯤이면 딸랑 죽음의 선고나 하나 가지고 있을 텐데. 이건 스킬 사용하는 시간도 있어서 지수가 맞아줄 턱이 없었다.

괜히 사용하다간 뒤지지.

‘만약 주원이 죽게 되면 더 씬은 사라지게 되나.’

여태까지와 달리 꽤나 큰 변화다.

이걸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솔직히 나도 모른다.

“근데 정말로 옥상으로 가는 거야?”

민아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옥상에 있는 괴물들은 그 흉악한 아저씨들이 잔뜩 덤벼들고도 상처 하나 못 입혔는데?”

“그야 그렇겠지.”

“오빠가 생각보다 조금 쎈 건 알지만 무리 아냐?”

“혼자서라면.”

나는 그렇게 말한 후, 계단에서 뒤따라 올라오는 민아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너를 데려온 거잖아.”

“……나? 내가 무슨 도움이 되나? 싸움은 좀 할 줄 알지만 스킬은 변신뿐인데.”

현재는 변신뿐이지.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이 문을 열면 정상인가?”

“맞아.”

“우선 들어가기 전에 묻겠는데, 부탁한 건 제대로 했지?”

만약 하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는 없지만 좀 더 안정성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했어. 덕분에 얼마나 눈치 보면서 움직였는지 알아? 제대로 보상 안 주기만 해봐라.”

“걱정 마. 확실하게 해줄 테니. 최소 포인트만 2천 포인트치 물건을 사주지. 거기에 두 번째 퀘스트 보상에 따라 보너스까지 지급.”

“……2천? 거짓말 아니지.”

“그렇다니까.”

민아의 눈이 불신으로 물들었다.

백금등급 보상으로 받는 포인트가 고작 천 포인트인 걸 생각하면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됐다.

‘고작 2천 포인트 정도야 기별도 안 가지.’

옥상에 있는 ‘센티넬’을 잡는 것에 비하면 확실히 남는 장사다.

나는 정상으로 통하는 비상문을 열기 전, 민아에게 말했다.

“들어가기 전에 변신해.”

“변신? 뭐로?”

“족제비.”

꽤나 뜬금없는 말이었는지 민아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머리 다쳤어?”

“멀쩡하다.”

“근데 왜 족제비야?”

“저기 안에 있는 녀석의 기술을 피하려면 족제비가 좋아. 안에 있는 녀석은 바질리스크라며?”

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데 그게 족제비랑 무슨 상관이야?”

“전승상의 약점인 거지.”

정확히는 닭과 족제비.

바질리스크에는 여러 설화가 있지만 이 두 가지가 대표적인 약점이다.

“……별로 도움 안 될 거 같은데.”

“변해 보면 알아. 가자.”

이 세계는 게임인 만큼 ‘공략’이 중요하다. 바질리스크 역시 충분히 공략할 수 있도록 약점이 존재하는 보스다.

‘다만 지금은 그걸 알아도 결코 이길 수 없는 보스라는 거지.’

전체적인 능력치도 아마 최소 C랭크 정도는 될 거다.

F랭크 카운터 스톱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못 이기는 능력치.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의 센티넬은 사실상 존재할 수 없는 걸 꺼낸 거라 능력치에 제한이 걸렸지만 두 번째 메인 퀘스트부터는 그런 것도 없을 것이다.

“변신 끝났냐?”

“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어깨로 하얀 족제비가 타고 올라왔다.

“내가 신호를 주면 그때는 ‘닭’으로 변신해.”

“큐우.”

족제비의 작은 머리가 끄덕여졌다.

솔직히 조금 귀엽다.

“좋아, 그럼…….”

이번엔 나라도 실수하면 죽는다.

나는 긴장으로 마음을 다 잡으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끼익.

“……와우.”

사방이 아주 석상 투성이었다.

바질리스크의 능력인 ‘석화의 사안’에 당한 거겠지.

조금 먼 곳에는 쥐포가 되어 있는 시체도 보였다.

“킹…….”

하얀 족제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역시 괜히 따라온 건 아닌지 고민하는 얼굴이다.

‘바질리스크는 어딨지?’

천천히, 녀석이 눈을 뜨더라도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기며 움직였다.

“녀석의 위치가 어딘지 알려줘.”

“?!”

“괜찮아. 넌 석화의 사안에 닿아도 돌이 되지 않으니까.”

“…….”

족제비가 몸을 비틀며 고민하다,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리가 작은 족제비의 몸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컁.”

족제비 민아는 얼마 가지도 않아 황급히 돌아왔다.

그리곤 작은 앞발로 연신 대각선 앞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제야 내가 바보 같았음을 깨달았다.

‘하, 그런가. 하긴 몸을 숨길 필요도 없지.’

내가 몸을 숨기고 움직인 것에 무색하게, 녀석은 조금 떨어진 곳에 느긋하게 누워 있었다.

멋진 경치가 보이는 창밖을 보면서.

「또 어리석은 자가 왔구나.」

뱀이 쉭쉭 거리는 소리가 섞이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은 나도 처음 보는 거다.

전생에는 이곳에 바질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만 알고 지나쳤으니까.

역시, 이게 진짜 센티넬.

이름도 없던 미노타우르스와 달리 이 녀석은 진짜 센티넬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네임드 몬스터라는 것.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지, 인간이여.」

수 미터는 되는 거대한 도마뱀이 느릿하게 머리를 움직였다.

「나의 이름은 오르가. 이 땅을 지켜보는 자로다.」

바질리스크 오르가.

그것이 두 번째 스테이지를 지배하는 센티넬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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