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6화 (16/332)

# 16

016. 양보의 미덕(3)

“어, 그럼 그쪽은 부탁한다.”

삑.

전화를 끊고 등을 돌리자 지수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하세요?”

“잠깐 통화할 곳이 좀 있어서.”

태연하게 답하긴 했지만 솔직히 깜짝 놀랐다.

‘얘는 가끔가다 이렇게 뒤에 조용히 서 있어서 놀라게 한단 말이야.’

설마 일부로 그러는 건가?

“왜요?”

“……아무것도 아니다.”

어차피 말해봤자 고쳐지진 않겠지.

“근데 이건 뭐에요?”

지수는 내 앞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보며 고개를 살며시 기울였다.

길쭉한 창 한 자루와, 둥근 링 다섯 개가 바닥에 늘어져있었다.

“이번 공략에서 쓸 물건들.”

“창이나 다른 장비들은 그렇다 쳐도 이거랑 이건 뭐예요?”

“아, 이거?”

나는 은색으로 빛나는 링을 들어올렸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악세사리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건 훈련용 팔찌야.”

“훈련용?”

능력치는 포인트만이 아니라, 훈련과 같은 행동을 통해서도 오른다.

단지 포인트에 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뿐.

“어. 이 보석으로 팔찌의 무게를 조절할 수 있거든.”

나는 손바닥을 펼쳐 새빨간 보석을 보여주었다. 이 보석의 색깔은 무지개처럼 일곱 단계로 변하는데, 보라색으로 바꾸면 힘 A는 되어야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로 변한다.

이게 어디서 났냐면 답은 간단하다.

‘캐쉬템은 언제나 옳지.’

DLC 상점 패키지란 가장 위쪽에 있던 성장 부스트 패키지에 들어있던 물건이다.

가격은 단돈 500포인트.

성장 부스트 패키지 하나에 팔찌는 하나만 들어있으니 총 2500포인트가 나간 셈이다.

“이걸 팔이나 다리에 착용하고 생활하면 자연스럽게 능력치가 올라가.”

“아하.”

지수는 그것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건 왜요? 훈련하시려고요?”

“아니.”

“그럼?”

“내가 아니라 다른 녀석에게 사용하려고.”

지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입을 오물거렸다.

“다섯 개나요?”

“아니 하나는 따로.”

다른 팔찌를 조종하는 보석은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너는 준비 다 끝냈어?”

“애초에 전 기본적인 방어구랑 이 무기뿐이니까요.”

싱긋 웃으며 말한 지수는 양팔을 들어 한 바퀴 돌았다.

이미 다 준비를 끝낸 모양이다.

“그럼 슬슬 가보자.”

“회장에게요?”

“그래.”

현균에게 전해줄 물건도 있었다.

나는 금색으로 빛나는 창을 들어올렸다.

‘코팅도 잘 된 것 같고.’

숏소드에 사용했던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회수한 뒤, 이 창에다 코팅했다.

현균과 일행이 준비하는 동안, 나 역시 다양한 장비를 공수해 왔다.

이 창도 그중 하나고.

“창도 쓸 줄 아시나 보네요.”

“쓸 수 있긴 하지.”

“흐음.”

지수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무기들을 다루는 법을 내가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할 법하기도 했다.

‘알려줄 수는 없지만.’

전생에 배웠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지금 뭐하고 계시려나.’

어련히 잘 살아계시긴 하겠지만, 조금 그리운 기분도 들었다.

“그럼 제일 잘 쓰는 무기는 뭐에요? 역시 검?”

“오늘은 왜 그리 질문이 많아?”

“그냥 생각난 김에 묻는 거예요.”

지수는 뻔뻔하게 말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예전의 지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없어.”

“네?”

“이거다 싶은 무기가 없더라.”

이것저것 익혀보긴 했지만 내 재능은 뭘 익히든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 재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점이 다행이라고 할까.

‘별로 상관없지만.’

이기는 것과 살아남는데 재능은 필수 요소가 아니다.

더 유리한 조건일 뿐이지.

전생에도 난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만났다.

하지만 결국 최후에 살아남은 건 나였다.

인류 최강의 플레이어도 아니고.

인류 최고의 재능을 가진 천재도 아닌.

바로 내가.

‘거기다 이번에는 그래도 전생과는 다르니.’

재능은 그대로지만, 내면이 다르다.

과거와 달리 나는 강해지는 법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최강’의 타이틀을 손에 쥐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지만 말이야.

“아, 여기 있었네.”

만반의 준비를 갖춘 현균이 해맑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장비도 다 맞추셨군요.”

“어쩌다보니 모인 포인트가 꽤 되거든.”

그야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금 등급으로 클리어했을 테니 포인트가 꽤 되겠지.

‘응?’

그렇게 말하는 현균의 뒤에 옵저버 하나가 빙빙 돌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다른 옵저버들과 이질적인 움직임이었다.

아마 GM이 아닌 신이 직접 조종하는 옵저버일 것이다.

‘이쪽도 아바타가 된 모양이군.’

어떤 신을 선택했으려나.

현균의 성격상 악한 신은 아닐 거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어떤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지만 알면 어떤 신의 아바타인지 아는 건 간단하니까.

“그럼 다른 사람들도 준비가 다 끝난 건가요?”

“응, 그래서 슬슬 출발하자고 이야기하러 왔지.”

씩 웃으며 말하는 현균은 겉은 태연해도 눈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저랑 지수는 아마 도중에 따로 움직일 수도 있어요.”

“따로 움직인다고?”

“네, 할 일이 있거든요.”

“으음.”

현균은 조금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내게 의지하는 감이 없잖아 있는 그에게는 반가운 상황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거.”

그런 현균에게 옆에 놓아두었던 오리하르콘이 코팅된 창을 내밀었다.

“이건 왜?”

“보스와 만나게 되시면 이걸 건물 중앙에 꽂아주세요. 아마 바닥에 찍으면 쑥 들어갈 겁니다. 날은 위로 향하게 해주시고요.”

오리하르콘으로 된 창인데다, 포인트로 능력치를 올렸을 현균이라면 대리석이나 콘크리트로 된 바닥이라도 충분히 창을 박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래.”

“그리고 만약 보스를 잡기 힘드시면, 제가 신호를 보낼 때 꽂아둔 창 근처로 유인해 주세요.”

현균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받은 창을 보았다.

“그럼 신호가 있어야…….”

“그건 폰으로 연락드리죠.”

이런 사태가 일어났지만 웃기게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은 이용이 가능했다.

GM이 그렇게 유도한데다, 아직은 스테이지로 변하지 않은 구역도 꽤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으음, 그래. 근데 하나만 묻자,”

“예.”

“근데, 이걸 왜 해야 되는데?”

현균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이다.

‘단지, 설명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지.’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꽂아보면 알겁니다.”

***

“후우. 이제 시작인가.”

동권은 방금 전 핸드폰을 통해 현균에게 연락을 받았다.

이제 막 준비를 끝내고 지하로 내려간다는 소식이었다.

‘좋아,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대체 이 말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무슨 준비를 일주일이나 해?”

그동안 이쪽은 세 번이나 도전했다.

문제는 세 번 다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했다는 것.

‘역시 녀석의 말대로일 확률이 높아.’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자신을 방해했던 망할 녀석, 김세한.

미노타우르스를 상대로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뭔가 있는 놈이라는 건 분명했다.

자신의 신도 녀석을 주의하라고 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번이라면 녀석도 어찌할 수 없을 테지.’

김주원의 실력은 진짜다.

만약 동권 자신이 신의 아바타가 아니었다면 그의 부하가 되는 걸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에 보인 행동이 조금 걸리는데…….’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물러서던 모습이 걸리지만 아마 자신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는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다.

“저기.”

동권은 자신이 있는 방을 지키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뭐야?”

“그쪽 대장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쪽에선 주원을 ‘대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전달하고 싶은 말이라니?”

“이번 퀘스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뭔데, 이야기해 봐.”

“여기서 이야기할 것이 아닙니다. 그쪽 대장과 만나게 해주시죠.”

요 며칠 살펴본 결과 이 녀석은 귀가 무척이나 얇은 놈이다.

굳이 자신의 ‘스킬’을 쓸 필요도 없이 몇 마디만 하면 금방 넘어올 것이다.

“어차피 지금 공략은 무척이나 더디게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으음.”

“적어도 이쪽에 해가 될 일은 아닙니다. 도리어 이쪽의 퀘스트에 큰 도움이 될 일이죠.”

남자는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만약 별것 아닌 말이라면 각오해야 할 거다.”

“알겠습니다.”

“대장은 곧 돌아올 테니, 그때 말을 해보도록 하지.”

“예.”

동권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주원과 말할 기회만 얻는다면 설득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주원은 머리가 좋았고, 만약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고 해도 ‘스킬’을 사용하면 분명 설득할 수 있으리라.

‘이번에야말로…….’

보상을 독점하여 다른 어중이떠중이들과 다르게 앞서나갈 것이다.

‘나는 선택받은 자니까.’

자신은 첫 번째 메인 퀘스트부터 신의 아바타가 된 존재였다.

다른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랐다.

“…….”

하지만 동권은 몰랐으리라.

그런 자신을 지켜보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

로메월드 타워의 지하는 마치 던전과 같은 구성이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매장. 그리고 어지러이 널려 있는 잡기들 틈에서 습격하는 몬스터들.

단순히 거리에서 습격하는 몬스터들만 봐왔던 사람들로선 쉽게 대응하기 힘들었다.

“역시 적당히 인원을 추려오길 잘했어.”

현균은 손전등으로 주변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현재 일행의 숫자는 나와 지수를 제외하고 열 명 정도.

다른 인원들은 지하철역에서 대기 중이다.

“끼익!”

손전등에 비친 몬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굳었다.

거대한 쥐의 모습을 한 몬스터였다.

“어딜!”

현균은 그 틈을 노려 검으로 몬스터의 등을 쑤셨다.

“끼에엑!”

“저쪽에도 있다!”

몬스터는 저마다 사방에서 급습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손전등의 불빛에 몸을 굳히고 무방비하게 공격을 얻어맞아야 했다.

“네 말대로 사람들마다 손전등을 챙겨 오길 잘했네.”

“이런 어두운 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빛에 취약한 법이죠.”

나는 발로 죽은 몬스터를 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이 거대한 쥐의 모습을 몬스터의 이름은 ‘검은 시궁쥐’로, 그 이름처럼 검은 털색을 가진 몬스터다.

고블린처럼 약해 빠진 몬스터였지만, 털이 검은데다 보통 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나타나다 보니 우습게 보면 큰 상처를 입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 몬스터의 약점은 바로 불빛.

빛을 직접적으로 눈에 쐬면 순간적으로 몸이 굳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흡.”

촤악!

나는 좌우에서 달려드는 검은 들쥐를 향해 가볍게 검을 휘둘러 아랫배를 긁어냈다.

나는 굳이 손전등을 비추는 편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어서, 그냥 대충 죄다 검으로 찔러 죽이고 있었다.

‘쓸데없이 쪽수만 많아가지곤…… 응?’

두더지 잡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족족 죽이고 있자니 묘하게 주변이 조용했다.

어쩐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라,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근처에 있는 현균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아니, 무슨 몬스터를 그렇게 쥐 잡듯이 죽여?”

“그럼 이게 쥐지 고양이입니까?”

“아니, 그냥 쥐가 아니잖아.”

현균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잘 보면 보통 쥐랑 별다를 것도 없습니다. 조금 크고 털이 시커먼 것만 빼면.”

“끙. 내가 말을 말지.”

어깨를 으쓱거리는 그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얼마쯤 왔죠?”

“아마 대충 절반쯤 왔을 거다. 지하가 총 6층인데 지금 3층까지 왔으니까.”

그럼 이제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나는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혹시 내가 받지 못한 연락이 있나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우우웅.

“오우.”

이런 완벽한 타이밍이 있을 수가.

설마 핸드폰을 꺼내기 무섭게 핸드폰이 울리다니.

‘어디 보자…….’

화면을 확인하자 문자 한통이 와 있었다.

발신자는 이민아.

문자의 내용은 무척이나 간략했다.

[우리 내려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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