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5화 (15/332)

# 15

015. 양보의 미덕(2)

사람의 심리란 간사하다.

아래보다는 위를 보게 되며, 어려운 길은 피하려 한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는 그런 사람의 심리를 파고든 조잡한 함정이다.

“만약 지하 5층에 보스 몬스터가 있다고 해도 거기까지 가는 게 문제입니다. 다수의 몬스터들이 매 층마다 포진해 있으니까요.”

“혹시 엘리베이터는 작동해?”

“전기가 끊겨 있어 무리일 것 같습니다.”

회의가 시작된 지도 대략 몇 시간이 흘렀다.

타워 정상의 몬스터를 그들에게 내어주고 그 틈에 이쪽은 지하를 공략하자고 현균이 말했지만, 아무래도 쉽사리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찬성파와 반대파는 대략 반반정도,

의외인 점이라면 찬성파에 박동권이 있다는 점이다.

“설마 살아 있었을 줄이야…….”

나를 본 녀석은 인상을 와락 찡그리며 그런 말을 내뱉었다.

“이번에는 내 말을 믿나 보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렇다.”

이젠 존댓말도 아니라 아예 반말이다. 더 이상 얌전한 부회장 연기를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동권은 팔짱을 낀 채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설령 타워 정상에 있는 게 진짜라고 해도 그들과 싸워 우리가 이길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상황에서 보스 몬스터를 잡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겠지.”

“호오.”

“거기다 타워 지하라면 지하철역에 있는 연결 통로를 통해 이동할 수 있지. 녀석들은 1층, 지하에서 올라오는 통로만 지키고 있을 테니 내려가는 걸 들킬 일은 없다.”

역시 마인드는 쓰레기지만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니다.

분명 이해력도 빠르고 어떤 것이 중요한지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이 녀석 말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는 거지만.

‘대충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가네.’

전생에는 몰랐지만 가까이서 보면 참 알기 쉬운 놈이다.

“……뭐냐?”

‘널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었다.’

이놈은 가만히 둬서 갱생할 놈이 아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타락한 놈도 아니며 내버려 두면 분명 전생과 같은 짓을 몇 번이든 벌일 거다.

‘이번 기회에 처리해야겠어.’

몰래 보내 버리는 건 간단하지만, 그건 너무 자비롭다.

나름 능력도 있는 놈이니 굴릴 수 있다면 굴리는 게 좋겠지.

“후우, 죽겠다.”

막 회의가 끝난 듯,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현균이 다가왔다.

“세한아, 어찌어찌 된 것 같다.”

현균은 한결 친근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왜냐면 내가 편하게 말을 놓아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묘하게 어색한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이젠 어색하지 않은 모양이네.’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의 일 때문인지, 현균은 무척이나 나를 어려워했다.

잠깐 만나고 말 인연이라면 전혀 상관없었지만, 나는 현균과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싶었다.

‘이런 인재는 쉽게 찾을 수 없거든.’

물론, 편하게 말하라고 해도 현균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리어 완강히 반대했지만 내 설득에 결국 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반대가 있긴 했지만, 지하를 내려가는 쪽으로 결정했어.”

“그렇다면 남은 건, 로메 타워를 점거하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의사를 밝히는 일만 남았군요.”

“대충 그렇지. 걱정 마, 그건 내가 따로 전하도록 할 테니까.”

현균의 얼굴은 제법 비장했다. 그야 만날 녀석들을 생각하면 저렇게 될 수밖에.

“괜찮다면 제가 같이 가드릴까요?”

“아, 정말?! 아니…… 흠흠.”

반색하며 활짝 웃던 현균은 자신이 너무 노골적으로 반응했다고 생각했는지 작게 헛기침을 했다.

“네가 같이 온다면야 나야 고맙지.”

“그럼 저도 딱히 할 일이 없으니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나는 힐끗 동권을 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별 관심 없다는 얼굴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관심이 없긴 개뿔.’

쳐다만 안 보고 있다 뿐이지 온 신경을 이쪽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저게 그냥 대놓고 엿듣는 거랑 뭐가 달라?

나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슬슬 민아를 만나봐야겠군.’

전생에도 느꼈지만,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

전생에 한국에는 한 길드가 있었다.

범죄자 집단이 모여서 만든 최악의 길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벌레처럼 죽이고, 무엇이든 하는 집단.

더 씬.

그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지칭했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게 뭐지?”

반백발에 날카로운 눈을 지닌 남자가 말했다.

“왜? 한판 붙자고?”

“카악! 퉤! 해봐, 언제든 상대해 줄 테니.”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대다수는 우리를 비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닌 거 같네요.”

지수가 눈을 살며시 찡그리며 말했다. 우리는 현재 로메 타워의 입구에 서 있었다.

상대 파벌을 이끄는 리더와 대화를 하기 위함이다.

우리 일행은 현균을 비롯한 열 명의 인원과 나와 지수.

상대는 족히 서른은 넘은 인원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나같이 흉악한 인상이다.

“그거야 이 사람들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이니까.”

“……구치소요?”

“어.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풀려난 거겠지.”

구치소 부근도 스테이지가 되었다면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이 이런 놈들뿐이니, 그 구역은 어느 곳보다 치열하고 잔인한 놈들만 살아남았으리라.

괜히 현균과 그 무리들이 지하철역에서 몸을 사리고 있던 게 아니다.

“아닙니다. 오늘은 저희의 의견을 전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현균은 제법 의연한 얼굴로 리더로 보이는 남자에게 말했다.

‘김주원’

날카로운 눈매에 탄탄한 근육질 몸.

후에 길드 ‘더 씬’을 만들게 되는 남자.

“호오, 의견이라.”

주원은 피식 웃었다.

“이미 협력은 물 건너간 것 아니었나?”

“저희도 협력을 제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면?”

“로메 타워 정상에 있는 보스를 양보하겠다는 의견을 전달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음?”

이 말은 예상외였는지 주원의 입가가 삐뚜름하게 비틀렸다.

“그렇다면 그냥 죽겠다고?”

“아닙니다. 다른 방법을 찾을 생각입니다. 어차피 저희가 당신들을 이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차라리 그쪽이 먼저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일정 시간이 지나 새로운 보스 몬스터가 나올지도 있지 않습니까. 저희는 그걸 노려볼 생각입니다.”

말 잘하네.

정직한 사람의 표본 같은 얼굴을 하곤 거짓말을 태연하게 내뱉다니.

오히려 박동권보다 사기꾼 기질이 있는지도 몰라.

“진심인가?”

“그렇다면 저희에게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만약 허튼 생각을 하고 있다면 너희는 모두 죽는다.”

“예 진심으로 당신들이 로메 타워 정상에 있는 몬스터를 잡을 때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주원의 눈에 새빨갛게 변하며 번들거렸다.

여태 여유로운 안색을 내비치긴 했지만 저자는 근본적으로 살인마다.

“헉!”

“히, 히익.”

날카로운 살기가 스멀스멀 주변으로 퍼져나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언제 느껴도 정말 불쾌한 살기야.’

주원도 신의 아바타다.

주원을 플레이하는 신은 하데스.

최상위 신 중 하나다.

그렇기에 그는 수많은 쓰레기들의 왕이 될 수 있었고, 훗날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길드의 지배자가 된다.

“큭큭, 좋다.”

창백해진 안색의 현균을 본 주원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자신의 뒤에 서있던 이들에게 묻자, 무리가 술렁였다.

“나쁘지 않다고 보는뎁쇼? 제까짓 놈들이 어쩌겠습니까? 오면 다 뒤지는 거지.”

“그래, 그래! 허튼 생각하면 다 죽이는 겨.”

“하지만 그래도 혹시…….”

“뭐여, 너 혹시 쫄았냐?”

“무, 무슨 소리야 시발. 그냥 말해본 거지!”

어차피 이들은 현균과 그 무리가 자신들에게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흘러갔다.

“좋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현균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듯, 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도 무작정 그쪽 말을 들어줄 수는 없다는 걸 알겠지?”

“예, 그렇다면 제가 공략하는 동안 이곳에 남아…….”

“회장.”

그때, 동권이 끼어들며 말했다.

“회장은 저희들의 리더이니 그래선 안 됩니다. 차라리 제가 남겠습니다.”

‘얼씨구.’

겉만 보면 현균을 대신해 희생을 하는 모습이지만, 절대 그럴 리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동권이?

“너…….”

현균은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알겠다. 혹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말하고.”

“예.”

대충 결정이 되자, 현균은 주원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려는 순간, 주원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고작 한 명으로?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 전원은 남아라.”

“예?”

“특히…….”

가늘게 휘어진 주원의 눈이 천천히 움직여, 이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내 뒤에 서 있는 지수에게.

“옆에 있는 놈이 거슬리는군.”

카앙!!

주원이 말을 끝냄과 동시에 불꽃이 튀며 쇠가 마찰하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허공에 은빛 사슬이 출렁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음?”

설마 막힐 줄은 몰랐는지, 주원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내 앞에는 방금 전 날아온 주원의 사슬낫이 지면에 박혀 있었다.

이 녀석은 방금 나를 죽이려고 했다.

거기에 별 의미는 없겠지.

그냥 지수를 보는데 내가 앞에 서 있어서 치우려고 했을 뿐이다.

“이게, 지금 무슨 짓입니까?!”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현균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윽박질렀다.

물론, 그런 현균의 말 따위는 주원의 귀에 들어가지 못했다.

“제법 한 가닥 하는 모양이구나.”

“어.”

적어도 널 한 가닥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정도는 하지.

마음만 먹는다면 이 녀석을 여기서 죽일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거기다 내가 죽일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곧 죽을 놈이니까.

“이 새끼가 지금 형님 앞에서 뭐하는 짓거리야?!”

“그만.”

주원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부하들을 진정시키며 나를 보았다.

붉게 물드는 적색 눈동자.

아까보다 명백히 붉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적색 눈동자에 담긴 살기에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게는 가소로울 뿐이다.

“……보통 놈이 아니군.”

주원은 그렇게 말한 후, 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래, 그러니까 한판 붙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타협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옆으로 몸을 옮겼다.

지수와 제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

“어때? 이래도 우리가 남기를 바라나?”

“…….”

“형님?”

묘하게 굳어버린 주원의 모습에 녀석의 부하들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대충 이유를 알았기에 녀석들에게서 신경을 끄고, 지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만.”

“아……. 죄송해요, 순간 욱해서.”

지수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것만 봐선 그저 귀엽기만 했지만, 주원의 눈에는 마치 식인꽃처럼 보였으리라.

‘그래, 천살성치고는 너무 얌전했지.’

주원은 분명 잔혹한 살인마이며 사이코 같은 놈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천살성이라는 존재는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니까.

“헉, 허억.”

주원은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떠듬떠듬 말했다.

“그, 그래. 좋다. 의견을 받아들이지. 남는 놈은 그 녀석 하나로 좋다.”

녀석의 시선은 이미 우리 쪽에 닿지 않았다.

명백히 지수를 피하는 눈치였다.

“그럼 그런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래, 이제 가라. 당장 꺼져!”

녀석은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주원은 손짓을 하며 소리쳤다.

현균은 그런 모습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하아, 마지막에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그래도 무사히 끝났네. 혼자 남아 있을 동권이가 걱정이야.”

“녀석은…… 걱정할 것 없을 겁니다.”

애초에 남고 싶어서 남은 놈을 뭐하러 걱정해?

“그보다 저희도 바로 준비하죠.”

“다들 포인트로 무기를 구매하러 갔으니, 준비되는 대로 바로 가자.”

안전지대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자 사람들은 저마다 안전지대로 향했다.

그들이 돌아오고 지하로 내려갈 준비를 끝내려면 족히 이틀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녀석들이 얌전히 보스 몬스터만 잡을 거 같아?”

“아뇨.”

”역시 그렇지?

“예, 근데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가볍게 답하는 내 말에 현균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런 게 있거든요.”

애초에 현균이 그들을 만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왜냐면, 그들에게 다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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