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014. 양보의 미덕(1)
“뭐래?”
민아가 정보를 얻어오는데 걸린 시간은 체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변신을 풀며 옅은 한숨을 내쉰 그녀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차분히 꺼냈다.
“아무래도 다른 세력과 퀘스트가 겹친 모양이야. 로메 타워 정상에 보스 몬스터가 있는데, 다른 세력이 잡지 못하도록 경하는 것 같아.”
역시 예상과 다르지 않은 이유였다.
“다른 세력이라면…….”
“아마 우리 대학에서 온 사람들을 말하는 거겠지.”
참고로 이건 전생과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전생에서는 이렇게 경계를 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대학 스테이지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니까.
“로메월드 타워는 그럼 저들이 점거하고 있다는 거군요.”
“그래, 대학에서 온 사람들도 아마 저들을 피해 따로 모여 있을 확률이 높아.”
“근데 이 근처에는 큰 건물이 워낙 많아서 찾으려면 힘들겠네요.”
지수의 말처럼 근처에는 백화점도 있고, 큼지막한 빌딩들이 많았다.
일일이 찾는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리라.
하지만 나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아. 아마 저기에 있을 테니까.”
“저기라면, 지하철?”
내가 가리킨 곳은 지하철역의 입구였다.
“지하철이라니 왜죠?”
“만약의 사태 때 지하철도로 도망갈 수도 있고, 습격에 대비하기 쉬우니까.”
“맞아, 지하에 있는 지하철역은 입구가 한정되어 있어서 그곳만 지키면 습격당할 위험이 적어.”
내 말에 민아 역시 말을 덧붙였다.
건물에 숨으면 굳이 정문이 아니더라도 창문을 깨고 들어올 수도 있고, 포위당하면 고립당해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하철역은 들어올 수 있는 입구가 정해져 있다 보니 섣불리 습격할 수도 없고, 만약의 사태에는 지하철이 다니던 길로 도망칠 수 있었다.
“확실히 그렇겠네요. 도움이 됐어요.”
학생회장인 현균은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으니 분명 지하철역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역의 입구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몇몇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
“헉?!”
덤으로 그중 한명은 내게도 익숙한 인물이었다.
녀석은 우리를 발견하자 경악하며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너, 너 죽은 거 아니었냐?”
“너도 용케 아직까지 살았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종현.
뺀질거리게 생겨가지곤 묘하게 굳은 일이라곤 다하는 이상한 놈이다.
“그, 그렇지 뭐. 어쩌다보니 운이 좋았다.”
종현은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묘하게 태도가 고분고분했다.
뭐야, 왜 그래?
“세한 오빠가 미노타우르스와 싸우는 걸 봤으니 그럴 수밖에요.”
심드렁하게 말하는 지수의 말에 종현의 몸이 움찔했다.
아, 과연. 나야 별생각이 없었지만, 아마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싸우던 용맹한 용자로 보였을 것이다.
“마침 잘됐네. 학생회장을 좀 만나게 해주라.”
“현균 형을?”
“어.”
종현이라면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녀석은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흘깃 눈빛을 보낸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이쪽이야.”
잠시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민아에게 시선이 머물렀지만, 별 의심 없이 등을 돌렸다.
아무래도 고등학생인 민아는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 녀석이 우리 중에 가장 경계할 녀석인데 말이야.’
이 세계는 겉모습으로 상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허나 아직 그런 가치관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어? 저 사람은 혹시…….”
“미노타우르스랑 싸우던 그 사람 아냐?”
지하철역으로 내려가자 나를 발견한 몇몇 사람들이 수근 거렸다.
‘이런.’
관심을 가진 건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역 내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던 옵저버들도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뿐이 아니다.
내 옆에 있는 지수에게도 많은 옵저버들이 따라붙었다.
“…….”
그래서인지 지수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옵저버가 계속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 이런 상황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따라붙는 시선과 옵저버들을 애써 외면하며 걸어가던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발을 멈췄다.
“여기서 기다려. 현균 형은 불렀으니까 곧 여기로 올 거야.”
“너는?”
“아직 교대 시간이 아니라서 가봐야지.”
종현은 그렇게 말한 후, 지수를 흘깃 본 후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전에 봤을 때랑은 좀 다른데?”
“그러게요.”
그때는 좀 더 투덜거리고 신경질적이지 않았던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이전 스테이지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인 거지?”
종현이 나가자 여태 잠자코 있었던 민아가 궁금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전 스테이지에서 뭔가 했어? 분위기가 왜 이래?”
“별거 없었다. 그냥 사람들이 도망치는 동안 몬스터랑 좀 싸웠을 뿐이지.”
“어떤 몬스터인데?”
“미노타우르스.”
민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런 게 벌써 나왔다고?”
“나왔더라.”
“에이, 무슨 뻥을 쳐도…….”
처음에는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픽 웃었지만, 주변에 몰려든 옵저버들의 모습에 입가의 미소가 사라졌다.
이렇게 옵저버들이 내게 몰려들었다는 것 자체가 내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무슨 수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내가 적당히 대답하자 민아의 입이 대번에 삐쭉 나왔다.
“아니, 좀 제대로 설명을…….”
“세한 씨!”
그리곤 재차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쪽으로 누군가의 외침에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목소리의 주인은 종현이 방금 연락했던 현균이었다.
나로선 딱 좋은 등장이었다.
“허억, 헉.”
“일주일 만이네요.”
“아, 예. 예.”
종현에게 듣자마자 달려왔는지, 숨을 연신 거칠게 내쉬었다.
“그보다 살아계셨군요!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예. 전 괜찮습니다.”
얼굴을 확 들이밀며 말하는 탓에 순간 움찔했다. 내가 어지간히도 반가웠던 모양인지 현균은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뜨거운 시선에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습니까?”
“예. 이게 전부 세한 씨가 그때 미노타우르스를 막아주신 덕이죠.”
현균의 눈에는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담겨있었다.
아니, 내가 대체 뭘 했다고.
그런 내 심정을 눈치챘는지 지수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사람의 시선에는 세한 오빠가 자기를 희생하며 사람들을 도망치게 한 것 같을 테니까요.”
아니, 그게 그렇게 되나?
전생과 달리 남을 도울 수 있는 건 돕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고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계속 이런 대화를 해봐야 부담스럽기도 했기에 나는 말을 돌렸다.
“예. 어떤 거죠?”
“오면서 보아하니 로메 타워를 점거한 이들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그렇습니다. 저희보다 먼저 도착해서 로메 타워에 있더군요.”
현균은 어두워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덕분에 지금 난감한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저희와 같은 퀘스트를 받은 모양이더군요. 세한 씨도 같죠?”
“네, 아무래도 같은 스테이지 출신은 대부분 같은 퀘스트를 공유하는 것 같으니까요.”
일정 구간이 넘어가면 제각각 퀘스트가 달라지지만, 적어도 아직은 그런 시기가 아니었다.
“처음에 저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퀘스트 내용이 같다면 같이 힘을 합쳐서 클리어하면 되니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현균은 상대가 든든한 아군으로 보였을 것이다.
만약 그들의 정체를 알았다면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더군다나 그쪽은 보스 몬스터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었으니 금방 클리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모양이군요.”
“예.”
현균의 머리가 느릿하게 끄덕여졌다.
“로메 월드 타워는 따로 스테이지가 구분되어 있더군요. 그곳에 입장할 수 있는 건,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같은 스테이지에 있었던 이들만 가능했습니다.”
그 후는 어찌됐을지 듣지 않아도 뻔했다.
동시에 들어갈 수 없다면 누가 먼저 보스 스테이지에 도전할 건지 정해야 되겠지.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만약 먼저 들어간 자가 보스 몬스터를 잡게 되면 같은 퀘스트를 공유하던 다른 파벌은 어찌 될 것인가.
“한쪽이 보스 몬스터를 죽이게 되면 어찌 될지 미지수니까요. 다시 새로운 보스몬스터가 나타나면 다행입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퀘스트를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며 GM의 벌칙을 받게 될 것이다.
초기 GM의 벌칙은 매우 간단하다.
모두 죽는 것.
아마 현균도 알겠지.
학교 강당에 남은 이들이 많지는 않아도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니까.
특히 교수들이나 직원들은 대부분 남아 구조를 기다리자는 파였다.
현균은 그들에게 연락을 지속적으로 보냈을 테니 그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도 짐작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상대도 저희가 습격해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섣불리 보스 몬스터에 도전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더군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무리하게 싸움을 거는 방법도 있었지만, 현균은 아마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글쎄요, 우선은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현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눠봐야 시간낭비다. 서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먼저 보스를 잡겠다고 할 테니 이야기는 평행선을 이룰 테니까.
현균도 아마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혹시 몰라 묻겠는데, 그들은 보스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했죠.”
“예, 처음에 소수의 정찰인원을 보내 확인했다고 들었습니다. 전부 죽은 모양이지만요.”
“그렇다면 묻겠는데, 보스 몬스터의 위치는 타워의 정상이었습니까?”
“아,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 먼저 잡으라고 하세요.”
“예?”
현균은 대번에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농담하시는 건, 아니죠?”
“예, 진심입니다. 옥상에 있는 몬스터라면 얼마든지 먼저 잡으라고 하세요.”
물론, 잡을 수 있다면.
“그럼 저희 퀘스트는 어쩌고요? 보스 몬스터를 잡지 못하면 저희는 끝입니다!”
“그건 옥상에 있는 게 보스 몬스터일 때죠.”
격앙된 얼굴로 소리치던 현균이 그대로 석상처럼 굳었다.
“……그럼 그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이야기인가요?”
“오히려 제가 묻고 싶네요. 어째서 옥상에 있는 몬스터를 보스 몬스터라고 판단한 거죠?”
“일반 몬스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강대한 몬스터 하나가 옥상에 있었습니다. 처음 만나서 의견을 교환할 때 영상으로 확인했으니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현균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말했다.
“로메월드 타워에 들어가면 보스 스테이지에 입장했다고 알림창이 뜨니까요.”
그래, 그렇겠지.
그게 GM의 트릭이니까.
사실 트릭이라기도 뭐하다. 그냥 GM의 ‘가벼운’ 장난일 뿐이다.
“강한 몬스터라고 모두 보스 몬스터는 아니죠.”
“하지만 다른 층에는 다른 몬스터가 없다는 걸 이미 확인했습니다.”
“다른 층? 전부요?”
“예. 그들과 대립하기 전, 잠시 타워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죠. 그때 확인했습니다.”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왜냐면 절대 그럴 리가 없으니까.
“지하도 확인했다는 말이죠.”
“……지하요?”
“예, 로메월드 타워 지하.”
현균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건 내 말에 긍정하는 눈빛이 결코 아니었다.
분명 확인하지 않았을 거다.
왜냐면 섣불리 확인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테니까.
“한 가지 정보를 드리자면.”
나는 씩 웃으며 검지를 피며 현균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보스 몬스터는 다른 몬스터와 다른 점이 하나있습니다.”
딱 보기만 해도 저것이 보스 몬스터라는 걸 알 수 있는 특징이.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해, 주변에 둔다는 거죠.”
바로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의 홉고블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