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013. 파티원을 육성하는 법(4)
“그런데 오빠랑 언니도 아바타야, 가 아니라…… 예요?”
지수에게 한바탕 깨진 이후 묵묵히 걸어가던 민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수에게 된통 당한 게 상당히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다.
“아니. 그리고 어색하니까 그냥 편하게 말해라.”
“아, 땡큐. 그럼 왜 그렇게 쎈 건데?”
“아바타는 분명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요건일지는 몰라도 반드시 플레이어보다 강한 것만은 아니야.”
아바타가 되어서 얻는 이득은 많지만, 일반적인 플레이어도 강해질 수 있는 방법만 안다면 얼마든지 더 강해질 수도 있었다.
‘같은 노력을 할 때 아바타가 더 유리한 건 분명히 맞지만.’
그렇다 해도 난 신의 아바타가 될 생각이 없었다.
아바타에는 크나큰 단점이 있었으니까.
“……그래?”
내 말이 납득하기 힘들었는지, 민아는 아리송한 얼굴로 힐끗 위를 보았다.
그 방향에는 옵저버 하나가 우리를 쫒아오고 있었다.
보나마나 어릿광대의 옵저버겠지.
‘대략 7일 남았나.’
아직도 시간이 꽤나 남아있었다.
바로 로메 타워에 가도 괜찮겠지만…….
“장비.”
“네?”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지수가 시선을 돌렸다.
“로메 타워에 가기 전에 장비도 구해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근방에서 장비라고 해봐야 고블린들이 들고 다니는 녹슨 철검이 전부가 아닌가요?”
“그래, 드랍템만 따지자면 그렇지.”
아직 거리에 나타나는 몬스터는 대다수가 하급 몬스터다.
그중 무기를 들고 다니는 몬스터는 고블린 정도.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질이 떨어져서 오래 쓸 것이 못 된다.
“그냥 슈퍼에서 식칼 같은 거라도 쓰면 되잖아?”
“도움말을 보면 나올 텐데? 몬스터들은 개체마다 마력장을 가지고 있어서 이쪽 세계의 물건으론 제대로 피하를 입히기 힘들어.”
“그, 그래? 식칼로도 잘만 죽던데…….”
“하급 몬스터들은 체내에 보유한 마력양이 극히 적기 때문이지. 조금만 강한 몬스터가 나와도 식칼이 아니라 총도 먹히지 않을 거다.”
민아는 내말에 입을 꾹 다물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무기를 어디서 구하면 되는데요?”
“그야 간단하지. 사면 돼.”
나는 손가락으로 길가의 편의점을 가리켰다.
“식칼 같은 건 안 된다며. 애초에 편의점에선 식칼도 팔지 않거든?”
뒤에서 민아가 종알거렸지만, 굳이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지수는 이런 내 행동이 익숙한 듯 조금 의아한 시선을 보내긴 했어도 묵묵히 따라왔다.
그리고 편의점에 발을 들이자, 예상한 것처럼 알림이 들려왔다.
[안전지대에 진입하셨습니다.]
“이런 곳에 안전지대가?”
민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돌아보았다.
“여기가 안전지대인지는 어떻게 안거야?”
“가게 상태를 보면 감이 오잖아.”
“아.”
내 말에 지수가 작게 감탄하며 편의점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냥 대충 보면 다른 가게처럼 엉망진창이었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몬스터가 침입한 흔적이 없어요.”
“이렇게 어질러져 있는데?”
“이건 사람들이 훔쳐간 거예요. 몬스터들은 이런 음식을 먹지 않으니까요.”
역시 지수는 이해하는 게 빨랐다.
‘이민아도 내 기억으론 분명 머리가 좋은 편이었던 것 같은데…….’
하기야 내가 이민아를 만난 건 한참 후이긴 하지.
적어도 5년 후인가.
그때는 좀 더 냉정하고 성격도 깊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근데 여기서 무기를 어떻게 사는데?”
“포인트 상점 오픈.”
쿠구궁!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면에서 거대한 자판기와도 같은 물건이 솟아났다.
“뭐, 뭐야 이게?”
“보고도 몰라? 포인트 상점이다.”
메인 퀘스트가 진행되는 주요 스테이지를 제외한 일반 스테이지에서 생성된 안전지대에서는 포인트 상점을 이용할 수 있다.
DLC 상점의 경우에는 주로 소모품이나 일반적으로 얻기 힘든 촉매나 재료를 구해할 수 있는데 반면.
포인트 상점의 경우엔 주로 무기나 기본적인 포션만 구매가 가능하다.
“이런 게 있었다니 전혀 몰랐어.”
멍하니 중얼거리는 민아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역시 신이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군.’
어릿광대의 성격을 생각하면 알고도 알려주지 않은 게 분명했다.
왜냐면 녀석이 사디스트이기 때문이다.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허탈해하는 저런 모습을 보는 걸 즐기는 거다.
‘최상위 신이라 능력만큼은 확실하지만, 성격 참 더러운 녀석이야.’
그런 신의 아바타가 된 민아에게 나는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나도 우연히 알게 된 거니, 너무 자책하지 마.”
“어떻게 우연히 알았는데요?”
“도움말에 ‘기타’란을 보면 있어.”
“안 보이는데요?”
“작은 글씨로 되어 있는 메모를 잘 살펴봐.”
참고로 무척 찾기 힘들게 되어 있어서 도움말을 정독한 지수가 못 찾은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플레이어들을 최대한 힘들 게 하려는 GM의 악의가 느껴지는 위치다.
‘역시 대부분은 기본 무기나 장비뿐이군.’
포션도 팔지 않는다.
아마 초기 스테이지에 포션을 팔면 생존 확률이 크게 상승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래도 현재는 장비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
조금만 지나면 물건을 만들 수 있는 플레이어들도 나올 것이며, 제대로 된 무기를 들고 다니는 네임드 몬스터도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사용할 무기가 필요했다.
나는 단검 세 자루와, 적당한 길이의 숏소드 한 자루. 그리고 적당한 방어구를 구매했다.
가격은…… 좀 나가긴 했지만 내가 보유한 포인트가 워낙 많아서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한지수.”
“네?”
“이거 방어구. 넌 포인트가 능력치 올리느라 빠듯할 테니 지금은 내가 사줄게. 나중에 갚아.”
“아, 네. 감사합니다. 꼭 갚을게요.”
원래 지수는 남에게 빚을 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꽤나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마 포인트를 다 쓴 거겠지.’
이곳에 오면서 몬스터를 잡던 모습을 생각하면 능력치에 포인트를 다수 투자한 것 같았다.
분명 장비를 살 포인트는 전혀 남아 있지 않을 거다.
“무기는 뭐로 할래? 역시 검?”
“종류가 어떤 게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무기 종류라면 그럭저럭 다양했다.
검과 창, 그리고 둔기와 활도 있었다.
“그럼 둔기로.”
설명을 들은 지수는 둔기를 요구했다. 솔직히 예상외였다. 보통은 처음에 검을 다루기 마련이니까.
‘초심자가 다루기엔 둔기 쪽이 낫긴 하다만.’
검을 다루는 게 서툰 초기에는 피가 엉겨 붙거나 경직된 근육을 제대로 베지 못해 검을 놓치기 일쑤다.
지수가 여태 그런 실수를 한 적은 없지만, 둔기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혈천수라공은 무기도 가리지 않고.
“자.”
“감사해요.”
나는 한 손으로 사용할 만한 둔기를 구매해 지수에게 쥐어줬다.
흔히 메이스라 불리는 무기다.
허공에 붕붕 돌리며 무게를 가늠하는 지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왜.”
“아니, 혹시 나도 사주나 해서.”
내가 지수에게 물건을 사주는 걸 지켜보고 있던 민아는 조금 들뜬 어조로 물었다.
이쪽은 사줄 생각도 없는데 아주 김칫국을 사발 째 들이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줄 생각 없는데? 애초에 포인트 준다고 할 때 거절한 건 네 쪽이었잖아?”
“……으으.”
민아가 원망 어린 눈으로 지수 쪽을 흘겼지만 메이스를 붕붕 휘두르는 지수의 모습에 금방 시선을 원위치 시켰다.
“어차피 장비 가격은 하나당 최소 200포인트야. 너 포인트도 없잖아.”
“2, 200포인트? 너…… 아니 오빠는 어디서 그런 포인트가 난 건데!”
“지성이면 감천이라. 너도 은행 같은 걸 터는 헛짓은 그만하고 포인트나 모아라.”
민아의 어깨가 툭 떨궈졌다.
조금 불쌍해 보이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다 본인의 업보인 것을.
***
현재 우리가 있는 곳에서 로메 타워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대략 네 시간 정도만 걸으면 되니까.
‘어디 보자…….’
그다지 좋은 물건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장비도 얻었겠다, 한 가지 실험해 볼 것이 있었다.
‘백금 등급 보상 중에 사용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지.’
보상으로 받았던 건 스킬과 포인트.
그리고 하나의 물건이었다.
[가변형 오리하르콘: 주인의 의사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다용도 장비. 원하는 장비에 오리하르콘 코팅을 할 수 있다. 코팅을 해제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흐음.”
나는 손에 들린 작은 병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금색으로 찰랑이는 액체가 존재했다.
오리하르콘은 본디 옅은 금빛을 내는 금속이다.
마법 저항은 없지만 강도만큼은 모든 금속 중에 가장 단단하며 무척 가볍다.
‘……1회용은 아니겠지?’
구분이 ‘장비’로 되어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병에 쓰여 있는 작은 글씨도 확실히 회수가 가능하다고 적혀 있으니까.
퐁.
병뚜껑을 열자 맑은 소리가 울렸다.
‘무기에 뿌리는 게 좋겠지?’
나는 숏소드를 꺼내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뿌렸다. 그러자 병에서 빠져나온 액체가 마치 슬라임처럼 검을 순식간에 감쌌다.
“오.”
방금 전까지 평범한 외형을 지니고 있던 숏소드가 칼날부분이 전체적으로 오리하르콘의 색깔인 금빛으로 변했다.
‘무게는 그대로지만.’
만약 설명 그대로 오리하르콘 코팅이 됐다면, 강도나 절삭력은 훨씬 상승했을 것이다.
“여기에 병을 가까이대면…….”
코팅이 벗겨지며 액체로 변해 병에 담겼다.
생각보다 굉장히 유용한 물건이었다.
오리하르콘 코팅이 되면 평범한 검도 몇 배는 우수한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
무기를 가리지 않는 내게는 최적의 장비였다.
“다 온 거 같아요.”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여러 장비에 실험하고 있자, 옆에서 걷던 지수가 손가락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로메월드 타워다.
“이제 와서 묻는 것도 웃기지만, 두 번째 퀘스트가 뭔데?”
“기간 안에 보스 몬스터를 잡는 거.”
“보스 몬스터? 그런 것도 있구나.”
“너희는 뭐였는데.”
“우리는 그냥 서바이벌.”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민아였지만 눈은 묘하게 풀려 있었다.
아마 좋은 기억은 아닌 모양이다.
‘두 번째 퀘스트가 빨리 끝난 것도 이해가 가는군.’
민아가 속해 있던 스테이지는 꽤나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서바이벌은 플레이어의 숫자가 일정 이하가 될 때까지 ‘죽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퀘스트다.
아마 수많은 사람이 죽었을 테고, 민아 역시 여러 사람을 죽였겠지.
그에 비하면 우리는 꽤나 평화롭게 넘어간 편이다.
‘내가 없었다면 센티넬에게 죄다 몰살당했겠지만.’
아니, 애초에 전생과 같이 센티넬이 나올 것도 없이 홉고블린이 이끄는 고블린 무리에 쓸렸을 것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GM 아카터스는 그런 놈이니까.
“호오…….”
로메 월드 타워에 다가가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전생에 내가 이곳에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저 사람들은…….”
살벌한 분위기를 내보이며 돌아다니는 사내들의 모습에 지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 저렇게 돌아다니고 있는 거죠?”
“경계를 서는 거지.”
“경계요? 이 근방에는 몬스터들이 없잖아요?”
“몬스터가 아니야. 사람들을 경계하는 거다.”
퀘스트라는 게 꼭 모든 플레이어가 클리어할 수 있도록 맞춰져 있는 건 아니다.
아까 민아의 서바이벌 퀘스트처럼 플레이어들끼리 경쟁을 부추기는 구도도 분명히 존재했다.
“물론 자세한 이유는 아는 사람에게 들어봐야겠지만.”
나는 민아에게 눈짓했다.
저 녀석들이 왜 경계를 서고 있는지는 대략 짐작이 갔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나쁠 건 없었다.
“나보고 저 녀석들에게서 왜 경계를 서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그 편이 빠르거든. 그래서 싫어?”
나는 싱긋 웃으며 옆을 보았다. 민아 역시 그런 내 시선을 따라 옆을 보았다.
지수가 메이스를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처리한 몬스터의 피다.
지수는 내 생각보다 메이스가 손이 맞았는지 이곳에오며 굳이 잡지 않아도 될 몬스터들의 머리를 깨고 다녔다.
나야 실전 감각은 익히면 익힐수록 좋다는 파였지만, 아무래도 민아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녀올게요.”
“그래.”
공손하게 머리를 숙인 민아에게 어깨를 두드려 줬다.
민아는 잠시 몸을 푼 뒤에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타탁!
“으헉?!”
잠깐 전봇대 뒤에 숨는다 싶더니, 지나가는 검은 옷의 남자를 습격해 단번에 기절시켰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이다.
‘역시 이민아는 이민아군.’
지수에게는 뱀 앞의 개구리마냥 떨지만 전생의 네임드 플레이어는 떡잎부터 다르다.
특히 민아의 경우 몬스터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익숙했다.
분명 두 번째 퀘스트의 영향이겠지.
민아는 기절시킨 남자를 어딘가에 치워둔 뒤, 그 남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곤 방금 전에 남자가 걷던 방향으로 태연히 걷기 시작했다.
그 걸음걸이는 방금 전 습격당한 남자와 꼭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