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2화 (12/332)

# 12

012. 파티원을 육성하는 법(3)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로메월드 타워는 이쪽 방향이 아니잖아요.”

준비를 끝내고 자취방으로 나온 우리는, 로메 타워가 있는 방향이 아닌 정 반대쪽으로 향했다.

당연히 지수는 갑작스러운 노선 변경에 꽤나 의아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아직 시간이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봐야 일주일 정도예요. 저희가 가기 전에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어쩌려고요?”

“아니, 절대로 그럴 리는 없어.”

“……왜요?”

왜냐고 물으면 마땅히 답해줄 말이 없다. 그냥 알고 있는 거니까.

“다 아는 법이 있지.”

“그러니까 어떻게요.”

“비밀이야.”

“…….”

지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눈이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리기로 했다.

“흠, 흠흠. 아무튼 이것도 다 두 번째 퀘스트와 관련된 일이야.”

“네.”

계속 물어도 어차피 알려주지 않을 거라는 걸 인식했는지, 지수는 적당히 긍정했다.

‘그나저나.’

나는 하늘을 응시했다.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옵저버가 거의 보이지 않아.’

그 이야기는 이 근방의 스테이지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수가 극히 적다는 이야기다.

‘이게 정상이긴 하지.’

오히려 우리 쪽 스테이지는 너무 많이 살았다.

아마 그 소문을 들은 옵저버들도 지금 로메월드 타워 쪽으로 몰려갔으리라.

“거리가 엉망진창이에요. 몬스터의 짓일까요?”

거리는 쓰레기의 온상이었다.

방치된 체 썩어가는 시체들도 몇 구나 보였고, 가게들은 약탈이라도 당한 듯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아니, 이건 인간의 짓이지. 몬스터였으면 쓸데없이 돈을 훔치지 않아.”

“그렇겠죠. 이미 법은 제 구실을 못하는 것 같고. 경찰도 거의 보이지 않으니.”

툭.

지수는 자신의 앞을 가로 막는 몬스터의 시체를 건드리며 말했다.

고블린이다.

세계가 게임으로 변한 이후, 몬스터는 온갖 스테이지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그건 플레이어로 선정되지 않은, 말하자면 평범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스테이지도 포함되었다.

“아직 완전히는 아니지, 주로 스테이지가 생성된 구역 위주. 아닌 곳도 있으니까.”

“하긴, TV도 멀쩡히 나오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다만, 정부와 같은 조직은 사실상 와해됐겠지. GM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현 지구를 통제하려고 하는 이들을 내버려 둘 리가 없으니까.”

“하긴, 그러고 보니 정부의 발표는 전혀 나오지 않았었죠.”

TV방송은 계속해서 뉴스를 쏟아내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정부와 관련된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GM이 통제하고 있다는 거겠지.

“옆.”

“아, 네.”

내가 손가락을 가리키기 무섭게 지수의 오른팔이 번뜩였다.

촤악!

“캬아악!”

쓰레기 더미에 숨어 있던 고블린이 단말마를 지르며 절명했다.

단 한 방에 죽였지만, 지수는 손에 들린 녹슨 칼을 응시하며 투덜거렸다.

“무기를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날이 다 나가버려서 곧 부러질 것 같거든요.”

“그런 것치고는 한 방에 죽이던데.”

“아무래도 전 인간형 적에겐 추가 피해가 들어가니까요.”

하긴 고블린도 인간형이지. 내가 30퍼센트 추가 데미지이니, 지수는 100퍼센트 추가 데미지인가.

오지게 쎄겠군.

‘전생에 내가 이때 어땠더라.’

고블린 정도는 분명 잡긴 했지만, 저렇게 피라미 잡듯 죽이지는 못했다.

“어차피 지금 가는 곳 들렀다가 무기도 구할 거야.”

“얼마나 남았는데요.”

“거의 다 왔어. 저기야.”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대략 5층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은행?”

“어.”

“은행은 왜요? 돈 찾게요?”

“설마. 이 근방은 다 스테이지라 돈이 있어도 물건을 구매할 수 없을걸. 포인트로 거래한다면 모를까.”

그리 말하자 지수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그럼?”

“찾는 사람이 거기 있거든.”

어릿광대와 대화하며 위치와 현재 외모를 보기는 했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게 분명했다.

내가 서둘러 이곳에 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제가 막고 있을 동안 어서 도망치세요!”

“아, 아저씨는 어쩌고요!”

“전 이 녀석들을 막을 테니, 어서 가세요!”

건물에 가까이 비명 소리와 고함이 들렸다.

상황을 보니 경찰관 한 명이 강도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틈에 도망가고 있는 양상이었다.

“시발! 대체 이 새끼는 뭐야?!”

“뭐가 이렇게 쎄?!”

날카로운 식칼을 들고 경찰관과 대치하는 남성들은 경찰관을 경계하며 둘러싸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은행 강도인가요?”

“뭐, 그렇지.”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몬스터가 나타나고 치안이 개판이 됐으니 그 틈을 노리는 쓰레기들이 없을 수가 없지.

“혹시 도와주실 거예요?”

“아니. 내가 나서지 않아도 해결할 녀석이 있거든.”

그걸 보고서 이곳으로 온 거니까.

“커억!”

“이런 씨, 뭐가 이렇게 쎄? 난 플레이어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치는 강도의 주변엔 족히 열이 넘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단 한 명에게 당했다기엔 상당한 숫자였다.

경찰관의 실력이 강도들보다 아득히 강하다는 증거였다.

“이제 사람들도 모두 도망쳤으니, 너희들에게 볼일은 없다.”

“뭐?”

경찰관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강도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녀석들을 모두 기절시키는 데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대단하네요……. 저 강도들도 다 플레이어죠?”

“맞아.”

“그런데 저렇게 압도할 수 있다니 특수한 스킬이라도 가진 걸까요?”

“그런 것도 있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스킬이야 당연히 좋은 걸 가지고 있을 거다.

허나, 저 녀석이 강도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스킬 때문이 아니라 녀석이 신의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후우. 이제야 끝났네.”

한숨을 내쉰 녀석은 주변을 살피며 사람이 없나 확인하다 우리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어?”

순간 당황한 얼굴을 하던 그는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은행이다 보니 계속 강도들이 몰려오거든요. 빨리 다른 곳으로 피하시길 바랍니다.”

매우 믿음직한 어조이며 얼굴이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경찰관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뇨, 죄송하지만 전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온 게 아니거든요.”

“예? 아, 하긴 그렇죠. 하긴 상황이 이러니 은행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죠. 그럼 몸을 피하러 온 건가요?”

“아뇨,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의아한 얼굴로 되묻는 그에게 나는 씩 웃었다.

“뭐긴 널 만나러 왔지. 이민아.”

“……?!”

경찰관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아까와 같은 믿음직한 경찰관의 미소를 지었다.

“이민아라니,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제 이름은 남경철입니다.”

당당히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지수가 갑자기 경찰관의 손목을 잡아챘다.

“헉?!”

갑작스러운 행동에 얼어붙은 경찰관을 유심히 바라보던 지수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맥박이 빨라졌네요. 뭔가 당황스러운 모양이에요.”

“응?”

“거기다 동공이 확장된 걸보면 방금 오빠의 말에 크게 놀란 게 분명해요. 별말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반응하는 걸보니 수상하네요.”

“……그래?”

“네. 세한 오빠도 알고 있었죠?”

아니, 몰랐는데.

뭐야, 그거 무서워.

“너, 너희는 누구야?”

경찰관도 당황했는지 얼굴이 창백했다.

솔직히 나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가장했다. 기왕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이용하도록 하자.

“네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너 말투 달라졌다?”

“큭?!”

역시 아직 연기가 완전하지는 못하군.

나는 아랫입술을 깨무는 그를 보며 주변을 살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관찰하는 옵저버가 하나 보였다.

아마 저것이 ‘어릿광대’의 옵저버겠지.

저 녀석은 걱정할 필요 없다.

재밌는 상황을 독점하려는 경향이 강하니까.

거기다 은행만 털러 다니는 자신의 아바타에게 지루함을 느끼고 있을 테니 이런 상황 자체가 흥미진진하겠지.

“……어떻게 안 거야?”

“그런 걸 너 같으면 알려주겠냐?”

“이런 씨.”

더 이상 정의로운 인상의 경찰관은 없었다. 옅은 빛이 난다고 생각한 순간, 단발머리에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새치름한 인상의 소녀가 서 있었다.

신장은 지수보다 작아서, 나와 비교하면 머리 두 개쯤 작았다.

“그래, 나를 왜 찾아왔는데? 나 바쁘거든?”

“은행 터느라?”

“그, 그런 거 아니야!”

아마 이민아의 나이는 이때 19살이었을 거다. 외모만 보면 그보다 두세 살은 어려보이지만, 분명 19살이 맞다.

“세한 오빠, 이건?”

“아마 이 녀석의 스킬이겠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

물론,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몬스터도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알면 수상하게 생각하겠지.

이미 수상하고 생각하고 있긴 하겠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은행을 턴다는 건 무슨 소리예요? 아까 보기론 사람들을 돕는 것 같던데.”

“맞아, 나는 사람들을 도왔던 거라고. 경찰관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말하면 신뢰감도 있으니까.”

뻔뻔하게 말하는 민아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애초에 강도를 몰고 온 건 너잖아?”

“……뭐?”

“아마 사람들이 은행에서 몸을 사리고 있으니, 금고를 털기 좀 그랬겠지. 그래서 강도들을 선동해서 몰고 온 거 아냐?”

“아, 아니야! 그럼 내가 왜 강도들을 쓰러트려!”

“그야 돈을 독차지하기 위해서잖아? 강도들을 이용해서 이곳으로 몇 번 몰고 오면, 사람들이 이곳은 위험하다 생각하고 도망치겠지. 아까 우리가 본 모습처럼.”

“윽.”

아무래도 정곡이었던 모양인지, 민아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전생에 네가 자주 이용했던 수법이니 모를 리가 있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건 서울에선 박동권과 이 녀석을 따라올 자가 없다.

아마 지속적으로 강도들을 선동해서 은행으로 몰고 왔으리라.

‘어릿광대의 말을 생각하면 몇 번이나 같은 짓을 반복했던 모양이고.’

강도가 습격해 와도 결국 본인이 다 처리해 버리니 다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거다.

그렇다 해도 도둑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지만.

“그래서 뭐야? 경찰에라도 넘기겠다고?”

“아니. 어차피 지금 상황이면 제대로 된 경찰이나 교도소도 없겠지. 거기다 너라면 금방 빠져나올 테고.”

“……그럼?”

“잠시 동행 좀 해줘야겠어.”

“얼마나?”

“우리가 두 번째 퀘스트를 완벽히 클리어할 때까지.”

그 말에 민아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고작 두 번째? 나는 벌써 세 번째 퀘스트인데. 어디 스테이지 출신이야?”

“그건 안 궁금하고. 그래서 따라올 건지 말 건지 결정해.”

“바보야? 내가 왜 가?”

절대로 안 따라간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는 민아에게 나 역시 비웃음으로 화답했다.

“동행해 주면 포인트를 주지.”

“하! 아직 두 번째 퀘스트도 못깬 플레이어 주제에 포인트가 얼마나 있다고. 주제에 허세는.”

말투가 아주 사람의 신경을 건드는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전생에 워낙 험한 말을 많이 들어서 이 정도는 별 신경도 안 쓰이긴 하지만.’

후일을 생각하면 조금 교육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빡!

“악!”

손가락으로 이마를 후려치자 녀석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뭐, 뭐야? 대체 뭐가 내 머리를 때린 건데?”

단순한 딱밤이었지만, 현재 내 힘은 메인 퀘스트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딱밤이라도 주먹으로 두들겨 맞은 충격이겠지.

더군다나 민첩도 상당히 투자한 터라 이제 막 세 번째 메인 퀘스트를 진행 중인 민아로선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네가 때렸지? 내가 맞고서 네 말대로 할 줄 알아?”

민아는 그렇게 말하곤 내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 했다.

“저기, 놔주지 않을래?”

“싫어요.”

민아의 손목은 아까부터 계속 지수에게 붙잡혀 있는 상태였다.

녀석은 떨쳐내기 위해 팔을 흔들어보려 했지만, 지수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그런다고 내가 못 빠져나갈 거 같아?”

민아의 몸에서 옅은 빛이 흘렀다.

변신의 징조다.

우직!

“꺄아악?! 부러져! 내 팔 부러진다고!”

하지만 그것도 지수가 손목을 꽉 움켜쥐자 비명과 함께 풀렸다.

“통증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변신이 안 되는 모양이네요.”

“으윽.”

무미건조한 지수의 말에 민아가 어깨를 움츠렸다.

민아가 아파서 몸부림치건 말건 전혀 관심 없다는 태도라 평범한 사람이라면 공포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사람의 팔 같은 건 과자 부수듯 으깨 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나이도 어리신 거 같은데 조금 더 예의를 차려줬으면 좋겠네요. 그쵸? 사람은 짐승이 아니잖아요?”

“아, 알았어. 알겠다니까.”

민아는 지수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슬그머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서 지수를 좀 떨어트려달라는 듯 애처로운 시선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 시선에 싱긋, 부드럽게 웃으며 화답했다.

“동행하면 풀어주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포인트 준다고 할 때 얌전히 따라왔으면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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