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009. 탈출(3)
현균은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기분이었다.
설마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퀘스트 난이도가 상승? 그리고 저 괴물은 대체.’
갑자기 난이도가 상승한 이유도 모르겠고, 저 미노타우르스를 닮은 괴물에게서 도망칠 방법도 생각이 안 났다.
방금 도망치던 사람들을 단숨에 갈아버리던 모습을 보면 도저히 인간의 달리기 속도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읍, 읍읍!”
옆에서 동권이 계속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발버둥치지 않았다면 아마 현균은 계속 넋을 잃고 있었을 거다.
“회장님.”
“아, 예, 예.”
그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세한이다.
그의 얼굴을 보니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도 침착하다니.’
자신도 나름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부류라고 생각했지만, 눈앞의 세한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그는 묘하게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갑자기 괴물들에게 습격당하고, 세상의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바뀐 상황에서도 그는 태연했다.
세한은 어째서인지 하늘을 슬쩍 본 뒤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예? 미끼라니요?”
“이대로 있다간 미노타우르스에게 전멸입니다. 누구 한 명은 시선을 끌어야 합니다.”
그건 그렇다.
방금 미노타우르스의 돌진은 사람들이 힘을 합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꼭 세한 씨가 하지 않아도…….”
“그럼 따로 할 사람이 있습니까?”
없다.
굳이 주변을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죄다 패닉에 빠져 미노타우르스를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자조차 없었다.
“세한 오빠.”
동권을 붙잡고 있는 지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세한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속상했다.
마음 같아선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남는다고 말해도 도저히 세한이 들어줄 것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이 아는 세한은 남들을 위해 희생할 성격도, 무모한 짓을 할 사람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하아.”
지수는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렸다.
답답한 마음에 돌린 시선이었지만, 붙잡고 있던 동권과 시선이 마주치자 기분이 팍 상했다.
‘짜증나게.’
세한이 직접 미끼가 된다고 하자 동권의 발버둥이 거짓말처럼 멎은 탓에 조금 인상이 찡그려졌다.
‘마치 꿩 대신 닭이라는 것처럼.’
눈치가 빠른 지수는 동권의 의도를 어느 정도 눈치챈 상태였다.
세한이 이 세계가 게임으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려준 덕이었다.
보나마나 이자는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이 보상을 독점하려고 했던 거겠지.
하지만 상황이 자신의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으니 이런 상황을 만든 세한이라도 죽이고 싶을 거다.
그리고 그런 지수의 생각은 아주 정확했다.
‘보상을 독점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동권은 지그시 세한을 보았다.
쓸데없는 행동을 해서 자신의 계획을 망친 놈.
‘미노타우르스를 이용하는 건 나도 위험할 가능성이 있으니 우선 물러나자.’
어차피 메인 퀘스트가 한 번만 있는 것도 아니다.
초반 스타트가 애매하긴 했지만 자신은 신에게 선택받은 자.
분명 언제든 앞서나갈 수 있으리라.
“후우. 그럼 어쩔 수 없군요.”
현균은 진심으로 미안한 얼굴이었다.
미끼가 된다는 세한을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누구 한 명이 희생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솔직히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방금 전에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벌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수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 당당한 세한의 모습을 보면 어쩐지 신뢰가 갔다.
이래죽나 저래죽나 마찬가지다.
현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세한 씨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세한은 어째서인지 시선을 피했다.
그리곤 작게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제가 신호하면 사람들을 이끌고 달리세요.”
“알겠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언제 미노타우르스가 달려들지 모를 노릇이었으니까.
세한은 상의를 벗고 손에 들었다.
그리곤 천천히 무리에서 이탈했다.
하나, 둘.
현균은 그렇게 심호흡하며 세한과 시선이 마주쳤다.
“와라.”
세한이 상의를 크게 흔들었다.
마치 깃발을 흔드는 마타도르처럼.
“음머어어!”
갑자기 무리에서 이탈한 세한이 깃발을 흔들자, 미노타우르스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쿵! 쿵쿵!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뛰세요!”
세한의 외침과 동시에 미노타우르스의 신형이 쏘아졌다.
현균 역시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입구까지 달려요!!”
“히, 히익!”
얼어 있던 사람들이 그 소리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몇몇은 다른 사람들이 부축하거나 엎고 달렸다.
“빨리, 빨리 빨리!”
현균 역시 쓰러진 사람들을 부축했다.
낙오한 사람들이 없도록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스킬 지휘의 외침을 습득하셨습니다.]
알 수 없는 알람이 추가로 들려왔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세한 씨는?’
사람들이 도망치는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못했다. 초조함을 느끼며 세한을 바라보자, 현균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지?’
미노타우르스는 무시무시한 몬스터였다.
한 번 돌진할 때마다 반대편에 있는 건물을 사정없이 부서트렸다.
마치 덤프트럭이 건물을 뚫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살벌한 상황에서도 세한은 무사했다.
“어떻게 저렇게 피할 수 있는 거야?”
말도 안 된다.
세한의 움직임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미노타우르스는 그런 세한을 전혀 공격하지 못했다.
‘응?’
문득 현균은 하늘 위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시선을 들어올렸다.
동그란 뭔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강당에서도 저런 게 있었지.
그것들은 언제나 현균의 머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세한을 주시하고 있었다.
“회장님!”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지금 저것에 정신을 팔 때가 아니다.
현균은 달렸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멈추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메인 퀘스트 1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당신의 퀘스트 달성도는 ‘금’등급입니다.]
[잠시 후, 보상이 지급됩니다.]
“허억, 허억…….”
성공했다.
대학을 벗어나는 순간, 커다란 폭죽소리가 들리며 여럿의 알림창이 나타났다.
‘살았다.’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 아직 미노타우르스와 싸우고 있을 세한이 생각났다.
자신이 무리 중, 가장 마지막으로 남았으니 현재 이 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세한 혼자일 터.
쿵!
“윽?!”
그렇게 생각하며 급히 등을 돌리는 순간, 무언가에 부딪쳤다.
“이건 뭐지?”
대학을 벗어난 순간, 대학의 입구에 투명한 막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처럼.
사람들을 모두 인도한 뒤, 세한을 돕기 위해 돌아갈 생각이었던 현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세한 씨! 저희 모두 빠져나왔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푸른 막을 손으로 만지며 현균은 소리쳤다.
그런 현균의 외침을 들은 듯, 미노타우르스의 공격을 회피하던 세한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딱 보기에도 한계에 몰린 모습이었다.
“세한 씨!”
퍼억!
거친 타격음이 들리며 세한의 신형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날아갔다.
미노타우르의 주먹에 맞은 탓이다.
“아아…….”
현균은 망연한 얼굴로 그 광경을 보았다.
그가 날아간 방향으로 미노타우르스가 돌진하는 모습까지 지켜본 그는, 더는 지켜볼 수 없었기에 시선을 돌렸다.
우우웅.
거기다 장막의 색도 더욱 진해져 더 이상 대학 안의 상황을 살필 수 없었다.
“…….”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가슴에 맴돌았다.
막막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올리니 지수가 현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수는 세한과 함께 있었었지. 남자를 꺼려하는 지수가 세한과 같이 있었던 것을 보면 특별한 사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현균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 하다.”
물론, 지수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전생의 나는 딱히 정의로운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비열한 인간에 가까웠다.
그건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균의 감사를 들었을 때는 조금 오글거렸기에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지.’
전생에 나는 힘이 없었다.
재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보다 재능이 넘치는 플레이어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살아남기 위해 비정해지고 비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난 살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끝이 어땠지?
‘혼자 살아남아봐야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난 그 사실을 깨닫고 회귀했다.
“조금 아프긴 하네.”
나는 천천히 돌무더기를 헤치고 몸을 일으켰다.
지켜보는 옵저버의 숫자가 워낙 많아, 일부로 조금 연기를 했다.
맞는 순간 체력에 무려 94포인트를 투자했기에 약간의 타격외는 큰 상처도 없었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역시.’
옵저버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마음 편히 미노타우르스를 상대해도 될 것 같았다.
“므우?”
그 광경을 본 미노타우르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주먹에 얻어맞고 날아가, 돌진에 치여 콘크리트에 파묻혔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수십 번은 죽었을 타격이었지만, 나는 약간의 통증을 제외하면 무사했다.
“역시 현재 네 능력치는 모두 카운터 스톱 상태군.”
현재 메인 퀘스트의 한계 능력치는 F(100).
미노타우르스의 능력치는 딱 그 정도였다.
‘전생의 내가 이런 상대를 정면에서 싸운 적이 있었나?’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절대 잡을 수 없게 설정된 센티넬.
전생의 나는 그것과 싸우게 되는 일을 최대한 피했고, 싸워야 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웠다.
누가 희생되더라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자신이 싫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러고 싶지는 않거든.”
쿵, 쿵쿵쿵!
미노타우르스가 연신 발을 굴렀다.
돌진의 전조다.
“음머어어어!”
녀석은 내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눈앞의 상대를 죽이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이곳에 나타난 것이니까.
투쾅!
미노타우르스가 크게 발을 구르자, 지면의 보도블록이 단번에 부서져 날아갔다.
마치 전차의 포탄처럼 날아드는 그것을 보며 무모하게 양손을 뻗었다.
[포인트를 사용하여, 힘이 83포인트 상승합니다!]
[힘 능력치가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콰콰쾅!!
달려드는 녀석의 뿔을 잡자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부서진 잔해를 날려버리며 지면의 보도블록을 깎아냈다.
하지만 난 날아가지 않았다.
녀석의 힘과 내 힘은 동일한 F(100).
동등한 상황이지만 달려든 미노타우르스 쪽이 유리했다.
그러나 난 이길 자신이 있었다.
==
홉고블린의 요대
힘이 10포인트 강해진다. 이 수치는 메인 퀘스트 한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
나의 힘은 F(100)이 아닌, F(110)이었으니까.
고작 10의 차이였지만, 그 차이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드득, 드드드득.
돌진이 멈췄다.
“음머?”
방금 전까지 붉게 빛나는 미노타우르스의 눈이 순수한 소의 눈망울이 되었다.
그 눈은 나를 바라보며 명백히 당황하고 있었다.
작은 인간인 내가 정면으로 자신을 멈춰 세웠다는 것을
“내가 이겼다.”
내가 나직이 말하자 미노타우르스의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뿌득 뿌드득!
“으, 음머어어!”
녀석의 뿔을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미노타우르스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왜냐면 내가 더 힘이 세니까.
우지직! 콰직!
“음머어?!”
두 개의 뿔이 꺾였다.
두터운 양손으로 뿔이 부러진 자신의 머리를 누르는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나는 전력으로 발로 후려 찼다.
콰아앙!!
녀석의 거대한 몸뚱이가 수 미터를 날아가 건물을 부쉈다.
전생의 나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비정하고 오로지 이득만 생각하는 싱글 플레이어.
비범함과 평범함의 경계에 있는, 그런 어리숙한 범인(凡人).
그런 나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이번엔 다르지.”
지금의 나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부족한 재능을 매울 힘이 분명하게 있었다.
“그러니.”
나는, 영웅이 되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