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8화 (8/332)

# 8

008. 탈출(2)

‘오랜만에 보는구나, 박쥐새끼.’

박쥐 박동권. 전생에서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다양한 단체에 숨어 들어가 그곳을 파멸시키는 것을 즐기는 사이코.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의 탈을 쓴 괴물.

“운 좋게 괴물을 죽여? 우리가 어떻게 저 괴물, 아니 고블린들을 죽였는지 아나요?”

그때, 가만히 있던 지수가 입을 열었다.

“고블린?”

“네. 몬스터를 죽이니 녀석들의 머리 위에 이름이 표시되더군요.”

차갑게 이야기하는 지수의 말에 동권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 말은 당신도 괴물을 죽였다는 겁니까?”

“예. 제가 죽이는 걸 본 목격자도 있어요.”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종현을 가리켰다.

“예, 뭐…… 그렇습니다.”

종현은 갑자기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봤죠? 저 고블린들을 두려워하며 무작정 대기하는 건 바보짓이에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요! 어차피 군인이나 경찰은 지금 움직이지도 못하잖아요?”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스마트폰에는 지금 전세계적으로 난리가 난 현재 상황에 대한 뉴스가 가득했다.

‘그래도 아직은 뉴스가 올라오는군.’

어차피 조금 지나면 인터넷은 먹통이 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기사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윽.”

스마트폰에 표시된 뉴스들에 동권은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그렇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돼. 퀘스트창을 보더라도 이곳에서 빠져나가라는 말이었으니.”

동권의 말에 잠시 흔들렸던 그였으나 지수의 말을 듣고는 아무래도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아마 여성인 지수가 괴물을 직접 죽였다고 하니 위험도가 대폭 내려간 듯 했다.

실제로 지수는 몸도 여리고 신장도 작아서 연약해 보이는 스타일이긴 하다.

하지만 지수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생각하면 적어도 이곳에서 지수를 죽일 수 있는 인간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천살성은 다른 것보다 인간의 형태를 한 존재들을 죽이는데 특화된 스킬이거든.

그건 단순히 인간형 마물뿐이 아니라 그냥 인간도 포함된다.

‘그래서 혈마도 더럽게 까다로웠지.’

정말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놈이다.

하지만 다시 만나게 되겠지. 그래도 이번엔 전보다 수월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일 것 같습니까?!”

그러나 동권은 여전히 극렬히 반대했다.

겉만 보자면 강당의 사람들을 위해 외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서 묘한 초조감을 느꼈다.

‘이것 봐라?’

녀석은 다른 이들을 이렇게 걱정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도리어 이용하고 이용해서 그들의 시체위에 올라서는 타입이었다.

그러니 나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남으시던가요.”

“예?”

“애초에 모두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에 남으신다고 해도 저야 상관없죠.”

전생과는 달리 이번 생에선 사람들을 돕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다.

굳이 죽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갈 생각은 없다.

나는 할 만큼 했고.

‘하지만 이 녀석은 절대 이곳에 남지 않겠지.’

만약 내 생각대로라면.

“크윽!”

동권의 이가 빠득 갈렸다.

아마 내 말이 자신의 계획을 어긋나게 했기 때문일 거다.

‘아마 녀석의 목적은.’

강당에 있는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죽인 숫자만큼 가중되는 보상을 받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을 살려 추가보상을 얻으려는 나와는 완전히 상반된 방식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모든 사람을 설득하여 탈출할 수는 없겠지만, 현균의 리더십으로 보아 상당수가 따라올 확률이 높았다.

그럼 동권의 계획은 자연스럽게 실패.

이곳에서 굳이 남는다고 말해봐야 좋을 게 없었다.

소량의 사람을 죽이고 받는 보상보다, 후에 살아남아 받는 의심 쪽이 더 리스크가 클 테니까.

“정말로 여기 남으실 생각입니까?”

내가 한 번 더 운을 띄우자 동권의 시선이 현균에게 향했다.

현균은 이미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은 얼굴이었다.

“……회장이 정말로 간다면 따라가겠습니다. 회장 혼자 보내는 건 걱정되니까요.”

내 예상대로 동권은 말을 바꿨다.

마치 현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라간다는 말 같았지만, 본심이 그게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았다.

‘역시.’

이걸로 확실해졌다.

박동권, 너 이미 신의 아바타구나.

***

“저, 정말로 괜찮은 게냐? 아직 괴물들이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정찰하고 온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우두머리가 죽은 뒤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어차피 이곳에 구조를 기다려봐야 소용없다는 걸 아실 텐데요? 이미 하루가 지났습니다. 구조를 하러왔으면 벌써 왔어요.”

“끄응.”

현균의 말에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 고개를 숙였다. 아마 학교의 교수겠지.

현균의 말처럼 게임이 시작된 지도 하루가 흘렀다.

그런데도 뭔가 조치가 되지 않았다는 건 밖에서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거다.

“윤현균! 네놈 멋대로 사람을 이끌고 나가려고 하다니! 멋대로 행동하면 다음 학기의 학점은 없을 줄 알아!”

또 어떤 교수는 이런 말을 하는 자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점이라니.’

그저 실소만 나왔다.

세상이 뒤집힌 지금 학점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괜찮겠지?”

“아, 아마 그렇지 않을까?”

강당에서 밖으로 나가는 걸 선택한 사람의 숫자는 상당히 많았다.

강당에 남는 건 극히 소수만 선택한 걸 보면 현균이 얼마나 인망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모두 주위를 살피며 오세요!”

현균의 외침에 사람들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학교 밖이다.

“이제 이대로 가면 되는 건가요?”

무리에 섞여 걸어가던 지수가 내게 물었다.

“그래, 특별한 일이 없다면 금방 나갈 수 있겠지.”

“특별한 일이라면…… 고블린이요?”

“아니, 우두머리가 없는 고블린은 보통 무리의 사람들에겐 덤벼들지 않거든.”

“그럼요?”

또 다른 뭔가가 있냐는 질문에 나는 입을 다물고 하늘 위에 돌아다니는 옵저버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현균의 옆에서 걸어가는 동권을 보았다.

‘당장 처리한다면 처리할 수 있지만.’

미래에 살인마가 될 동권을 죽이는 건 간단했지만, 나는 그리 하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은 건 별개로 녀석을 어떻게 이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알림창을 열고 DLC상점에 있는 상품 목록을 훑었다.

마침 딱 좋은 물건이 하나 있었다.

“주변의 고블린들을 경계해 주세요!”

현균은 앞장서 걸어가며 소리쳤다.

주위에는 흩어졌던 고블린 몇몇이 우리를 경계하고 있었지만 덤벼들지 않았다.

“저거 덤비는 거 아냐?”

“에이,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덤벼들던 고블린들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겁을 먹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녀석들은 무리에서 빠져나와 있는 인간이 아니면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현균은 내가 설명해 줬던 말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힘내세요!”

퀘스트의 내용은 학교 부지를 벗어나는 것.

이제 시야에 들어온 학교 정문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학교 정문이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이야.”

“빨리 나가자. 지금 전화도 안 돼서 부모님이 걱정이야.”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진 것 같았다.

고블린들은 덤빌 기색이 없어보였고, 곧 이 지옥 같은 장소를 벗어난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하지만, 이걸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지.

[지금부터 퀘스트 난이도가 상상합니다.]

[난이도 E->D]

“어?”

갑자기 맑은 알림이 들려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스테이지에 센티넬에 등장합니다.]

쿵!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펴졌다.

그건 결코 고블린들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수 미터는 되는 거대한 괴물이 아니면 낼 수 없는 소리였다.

“……저거 뭐야.”

누군가가 아연히 중얼거렸다.

얼마 남지 않은 학교 정문 앞.

거대한 소의 머리를 한 괴물이 서 있었다.

“미노타우르스, 아냐?”

누가 중얼거린 말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큼 눈앞의 괴물을 나타내는 단어는 없었다.

족히 5미터는 되는 거대한 체구.

소의 머리를 가졌으며 울둥불퉁한 근육을 꿈틀거리는 괴물.

특별히 무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괴물에게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

평범한 사람 따위는 맨손으로 찢어발길 수 있는 괴물이니까.

‘첫 번째 메인 퀘스트부터 미노타우르스라니.’

아예 작정하고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노타우르스를 상대로 싸우려면 최소 열다섯 번째 메인 퀘스트까지 진행해야 가능하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결코 이길 수 없는 몬스터였다.

‘본래라면 절대 등장도 시킬 수 없는 몬스터지.’

게임을 관리하는 GM이지만 뭐든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에도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그러니 센티넬이라는 편법을 쓴 거겠지.’

보스나 히든 보스같이 단순히 스테이지에 배치된 역할이 아니다.

녀석들은 분명 강하지만 힘을 합치면 어떻게 극복이 가능한 놈들이다.

하지만 센티넬은 아니다.

센티넬은 현재의 플레이어로서는 이길 수 없는, 이길 수 없는 적으로서 등장한다.

‘싱글 게임에서 흔히 있지.’

예를 들면 시작 스테이지에서 만나는 최종보스 같은 것.

반드시 패배하고 넘어가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어느 정도 한계는 있지만.’

센티넬인 미노타우르스는 이곳에 있는 인간들을 모조리 도륙할 수 있을 만큼 강한 몬스터지만,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메인 퀘스트 능력치 한계 F(100).

미노타우르스는 본디 C급 능력을 지닌 만큼 모든 능력치가 F(100)으로 맞춰져 있을 것이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는 감을 잡기 힘들겠지만, 내가 근력에 20포인트를 투자한 것만으로 돌을 던져 고블린의 머리를 부술 정도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능력치는 기껏해야 5~10사이.

순수 숫자로만 계산에도 10배에 가까운 차이이며, 실제로 변환하면 더 큰 차이가 존재했다.

흔히 고릴라가 인간의 20배의 근력이라고 하지만, 지금 눈앞의 미노타우르스는 족히 100배에 가까운 근력을 가지고 있으리라.

후욱, 후욱.

미노타우르스의 거친 숨소리가 이곳까지 들렸다.

모두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현균의 옆에 서있던 동권이 천천히 등을 돌렸다.

“모두 도망…… 읍?!”

뭔가를 말하려던 동권은 갑자기 뒤에서 입을 막은 누군가의 행동에 말을 잊지 못했다.

“미쳤어요? 조용히 해요.”

입을 막은 건 지수다.

내가 동권이 무슨 행동을 하려고 하면 막으라고 지시해 뒀기 때문이다.

‘잘했어.’

미노타우르스가 나타난 건 조금 의외긴 했지만, GM 아카터스 성격상 뭔가를 저지르리라 생각하긴 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동권이라면 분명 무슨 행동을 하려하겠지.

이 또한 예상 범위였다.

미노타우르스는 기본적으로 소의 습성을 따른다.

만약 이곳에서 사람들이 동권의 말에 놀라 우르르 도망쳤다면, 한창 흥분해 있는 미노타우르스는 바로 돌진을 했을 것이다.

“읍, 읍읍!”

동권은 지수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고블린을 학살하며 능력치가 올라간 지수의 손을 벗어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발버둥치는 동권의 모습에 정신을 차린 몇몇이 작은 비명을 지르며 무리를 이탈했다.

“도, 도망쳐!”

“저런 괴물에게서 어떻게 도망간다는 거야?!”

무리에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미노타우르스의 시선이 무리를 이탈해 도망치는 사람들에게로 향했기 때문이다.

“음머어어어!!”

“히익!”

뒤따라 도망치려던 사람들은 스테이지를 가득 울리는 미노타우르스의 울음소리에 발을 멈췄다.

기본적으로 거대 몬스터는 울음소리에 피어(fear) 효과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다.

만약 공포에 발을 멈추지 않았다면 지금 도망치던 사람들처럼 됐을 테니까.

두두두두두!!

“아아…….”

다가오는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도망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공허해졌다.

저건 피할 수 없다.

그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리라.

푸아악!!

마치 전차가 지나간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도망치던 사람들은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육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으, 으으으.”

그 광경에 다리가 풀린 몇몇 사람들은 넋을 잃고 주저앉았다.

혼절한 여성도 있었다.

콰드득!

도망친 사람들을 단숨에 갈아버린 미노타우르스의 발이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미노타우르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물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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