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004. 롤플레잉 게임(3)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2회차를 편하게 보낼 수 있는 패키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성장 부스트 패키지. 행운의 채집 패키지…….’
아직 전부 해금된 건 아니었는데, 아마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차차 해금되는 모양이었다.
‘이게 중요한데 아직 해금이 되지 않았네.’
눈에 들어온 건 ‘1회차 계승 패키지’였다.
아직 해금이 되지 않았지만 명칭만으로 대략 어떤 패키지인지 알 것 같았다.
‘단지 전부 계승이 가능한지 일부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사실 전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부만 계승할 수 있어도 어마어마한 이점인 건 변하지 않았다.
‘쩝.’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다른 품목을 쭉 훑었다.
‘그 외에 특별한 품목이라고 한다면…….’
해금되지 않은 건 어차피 구매할 수 없으니, 구매할 수 있는 목록을 우선적으로 훑어보았다.
‘응?’
그중 눈에 띄는 패키지가 하나있었다.
‘멀티 플레이 패키지?’
[1회차에는 싱글 플레이를 했던 당신! 2회차에선 동료들과 즐겁게 플레이하세요!]
……뭔 소리야.
막연한 설명에 순간 이해하지 못했지만, 뒤이어 적혀 있는 패키지 구성에 나는 신중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파티’를 하는 건가. 멀티 플레이란 그런 말이군.’
파티를 하게 되면 파티장인 나와 계약관계가 되며 서로 배신할 수 없게 된다.
정해진 상한은 최대 다섯 명까지.
파티장은 파티원을 강퇴할 수 있지만, 파티원은 불가.
‘스킬 숙련 보너스에, 스킬 공유 등 다양한 혜택 제공이라.’
확실히 눈에 띄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무려 가격이 2만 포인트.’
내가 70만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보통은 구매하기 힘든 가격이다.
“모두 이리 오세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뭉치면 괜찮을 겁니다!”
“이 괴물새끼들을 모두 조지죠!”
내가 DLC 상점을 훑어보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둘 뭉치기 시작했다.
워낙 사람들과 떨어진 장소로 이동한 탓에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개새끼들 죽어!”
“어디 무기, 무기 좀! 아악!”
고블린들이 들고 있던 무기를 탈취해 싸우는 이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이들을 독려하는 사람들.
첫 번째 메인 퀘스트답게 등장하는 몬스터는 오로지 고블린뿐이었기에 가능한 대응이었다.
그 광경을 보던 지수가 물었다.
“우리는 계속 이곳에 있을 거예요?”
“아니.”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때다.
대부분의 옵저버는 사람들이 뭉쳐 있는 저 곳을 주시하고 있겠지.
아니면 빠져나가기 위해 고블린들과 싸우는 이들이나.
“그럼 다시 이동할 테니까. 잘 따라와.”
“네.”
지수는 내게 이러쿵저러쿵 묻지 않고 묵묵히 따라왔다.
‘나야 편하긴 한데…….’
덕분에 설명할 말도 준비해 뒀지만, 필요가 없어졌다.
사실 이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건 지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래도 계속 물어보는 것보단 이쪽이 낫지.’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지수를 데리고 다니는 건 아니다.
이번 첫 스테이지 클리어에서는 지수에게도 부탁할 것이 있었다.
‘우선 이걸 사고.’
나는 DLC상점에서 하나의 패키지와 아이템 두 개를 구매하고 상점을 닫았다.
그리곤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지수에게 손에 들고 있던 녹슨 검을 내밀었다.
“자.”
“이건 아까 세한 오빠가 고블린에게서 빼앗은 무기잖아요? 이걸 저한테 주면 어떡해요!”
“나는 또 뺐으면 되거든.”
태연한 내 말에 지수가 벙쪘다.
“정말 세한 오빠 맞아요? 원래 좀 이상한 곳이 있긴 했지만…….”
“이상한 곳이 있다니?”
“아,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평소에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 조금 궁금했다.
지수는 내가 더 묻기 전에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무튼 알겠어요. 잘 사용할게요.”
“녹슨 검이라 내구는 그리 좋지 않을 거야. 되도록 호신용으로 사용해.”
“네.”
손에 무기를 쥐자, 조금 긴장되기 시작하는 듯 지수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이것도 받아.”
“이건 또 뭔가요?”
나는 지수에게 녹색 브로치를 내밀었다.
지수는 그걸 잠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아이템 같은 거예요? 어디서 찾았어요?”
“고블린을 잡고 얻었어. 근데 아이템이라는 건 어떻게 안 거야?
“게임이면 역시 아이템 같은 게 있잖아요. 게임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세한 오빠에게 들은 지식이 나름 있다고요.”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쭉 폈다.
꽤나 의기양양한 얼굴이다.
‘사실 고블린을 잡고 나온 게 아니지만.’
방금 DLC 상점에서 1만 포인트를 주고 구매한 브로치다.
두 개를 샀으니 2만 포인트.
상당한 지출이었지만 아이템의 효과를 생각하면 값싼 지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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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브로치: 상처의 회복속도가 빨라진다. 포인트 습득 량이 20퍼센트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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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별거 없는 설명이다.
하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상처의 회복만으로 2만 포인트의 가치가 있지.’
현실이 게임이 되었다지만, 죽으면 끝이다.
그만큼 지속적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VIP브로치는 가치가 있었다.
덤으로 포인트 습득량이 20퍼센트 상승하는 것도 꿀이지.
‘이런 아이템을 전생에 쓸 수 있었다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이용하는 포인트 상점이 존재하긴 했지만, DLC상점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물건만 판매했다.
사실상 온라인 게임을 하면 마을 장비 상점에서 판매하는 상점표 아이템 정도가 끝이었으니까.
“착용했어요.”
“좋아, 이쪽이야.”
나는 지수가 VIP 브로치를 착용한 걸 확인한 다음, 오른편으로 손짓하며 이동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고블린들을 피해 우리는 조용히 이동했다.
‘포인트로 능력치를 전부 찍으면 고블린을 모조리 죽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가는 옵저버를 떨쳐냈다고 해도 금방 눈에 띌 게 분명했다.
이제 막 오픈한 게임의 플레이어가 그런 일을 벌인다면 분명 의심과 경계를 살 것이다.
‘최소한의 포인트 투자로 클리어해야 해.’
초반만 조심하면 된다.
난 그렇게 다짐하며 길을 나아갔다.
“저기 괴물이 있어요.”
지수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힘을 10포인트 구매.’
아직 초기라 능력치 1포인트를 구매하는데 드는 포인트는 10포인트에 불과했다.
내게는 껌값이나 마찬가지.
휙!
나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돌맹이를 주워 고블린의 경추를 노렸다.
녀석이 우리를 발견하기 전에 즉사시킬 생각이었다.
빠각!
“칵!”
뼈가 부러져나가는 둔탁한 소리가 나며 고블린이 그대로 쓰러졌다.
“와.”
설마 돌을 던져 고블린을 즉사시킬 줄은 몰랐는지, 지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세한 오빠, 어떻게 하면 돌을 그렇게 던져요? 전생에 다윗이었어요?”
“너도 연습하면 금방 해.”
“진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던지기를 반복하다보면 투척스킬이 생길 테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대학을 빠져나가려면 이쪽 방향이 아니지 않아요?”
“맞아.”
“그럼?”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을 테니까.”
지수가 고개를 기울이며 잠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곤 설마, 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세한 오빠.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는 거예요?”
마치 내 행동이 예상외라는 발언이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그런 지수의 말이 의외였다.
아까 도망칠 때만해도 사람들을 안쓰럽게 보더니, 생각이 정리된 지금은 그저 냉정하기만 했다.
‘지수가 나를 제외한 타인과 벽을 두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지수는 나름 친구도 있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근데 이렇게 냉정하게 구해야 할 사람,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뭣보다 전생에서 지수는 나를 구하기 위해 대신 희생했던 인물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지수가 어떻게 사람들을 나누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나는 지수의 의문을 간단히 해소시켜 주기로 했다.
“맞아. 난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죽게 하지 않을 생각이야.”
“왜요? 세한 오빠는 특별히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성격이 아니잖아요.”
뭐, 그렇긴 했다.
예전의 나는 그랬지.
‘이득이 될 것만 취하고, 누가 죽든지 말든지 오로지 살아남는 것만 생각했었다.’
그때 내 행동이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사는 게 신물이 나거든.
거기다 지금 하려는 행동이 그저 자원봉사에 불과하냐면 그건 아니다.
난 지수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해. 이건 게임이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까 메인 퀘스트 알림창이 떴을 때 나와 있었잖아. 플레이어마다 달성도에 따라 보상도가 달라질 거라고.”
“아, 그랬던 것 같아요.”
지수는 머리가 좋은 만큼 한번 들은 이야기는 쉽게 잊지 않는다.
덕분에 내 설명도 무척 편했다.
“그렇다면 달성도라는 건 어떻게 올리는 걸까?”
“그건…….”
지수는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런 지수에게 나는 가볍게 답했다.
“간단해. 업적을 달성하는 거야.”
“업적이요?”
“그래, 간단히 설명하자면 퀘스트마다 기여도라는 게 있어. 최종 목표는 하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식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지.”
“도달하는 방식…….”
“그래,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다른 이들을 탈출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야. 다른 이들은 하지 못한 일. 그리고 그들이 했어야 할 일을 우리가 하게 돼. 그러면 ‘게임’인 이상 우리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보상이 돌아올 수밖에 없어.”
이건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니다.
신들의 게임판의 위에 있는 이상, 철저하게 세상은 게임의 룰에 따른다.
지수는 내 말을 완전히 납득하진 못한 것 같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했는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해했어요.”
덤으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최대한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 안심이 되었다.
홀로 살아남아봤자 그저 고독할 뿐이라는 걸 전생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시 걱정이네요.”
나는 수심이 깃든 지수에게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걱정 마.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예전의 나였다면 무리였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기왕 2회차이니.’
올 클리어를 노리는 것도 나쁠 건 없었다.
저벅, 저벅.
우리는 고블린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간혹 마주치게 되면 싸우기도 했지만 되도록 조용히 처리했다.
그러기를 30분.
우리는 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 고블린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지수가 긴장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럼 그냥 안전지대에 있지 그랬어?”
“그러게요…….”
힘없이 중얼거리는 지수의 모습이 내심 이해가 갔다.
왜냐면 엄청난 숫자의 고블린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키에에엑!”
“키엑!”
고블린들은 인간들이 모여 있는 대학 캠퍼스 안을 바라보며 시끄럽게 소리쳤다.
‘대략 2차, 3차 웨이브의 양이구나.’
홉 고블린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녀석들은 잠자코 대기하고 있었다.
“설마 저 녀석들과 싸울 생각은 아니죠?”
“그럴 생각인데.”
“…….”
“농담이야.”
“노, 농담하지 마요. 진짜같이 들리니까.”
지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그런 지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 고블린 속에 들어 가야 해. 정확히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하지.”
“하지만 여기서는 샛길도 없는데요?”
“맞아. 그러니까 그대로 뚫고 들어가야 하는 거야.”
내 말에 지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결국 싸워야 하잖아요!”
“아니, 싸우는 건 나만 하면 돼.”
“……어떻게요?”
나는 나뭇가지를 들어 대략적인 지도를 그렸다.
“저렇게 고블린들이 뭉쳐 있다는 건, 저들을 통솔하는 녀석이 있다는 거야. 풀어져 있는 녀석들은 지금 광장에서 사람들과 싸우고 있고.”
“네, 확실히 그런 거 같아요.”
“그치? 특히 고블린들은 리더가 있고 없고 차이가 커. 무리 생물이니까, 우두머리가 죽으면 당황해서 날뛰지. 그럼 상대하기도 쉽거든.”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내 말에 지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뻔뻔하게 답했다.
“RPG가 다 그게 그거지 뭐.”
“그, 그런 가……?”
지수는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아무튼 작전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난 저 깊은 곳에 있는 고블린 대장을 죽이러 간다는 거지.”
“하지만 저 고블린들을 뚫고 가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요.”
“간단해.”
나는 나뭇가지로 쭉 그어 고블린 무리를 이동시켰다.
“네가 저 고블린들을 유인해서 쭉 끌고 가는 거야.”
“제, 제가요?”
“걱정 마. 아까 얻은 아이템들을 줄 테니까.”
“무슨 고블린 한 마리에서 아이템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죠?”
“아마 보물 고블린이었던 모양이지.”
“보물 고블린이라니…….”
내가 주머니에서 슥슥 아이템을 꺼내며 말하자 지수는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애초에 지금 상황에서 ‘아이템’이라고 부를만한 걸 내가 얻을 방법은 없었으니 지수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