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003. 롤플레잉 게임(2)
지수는 내 말에 생각을 정리하는 듯, 조용히 서 있었다.
나는 그런 지수를 바라보다가 주변을 살폈다. 왜냐면 슬슬 그것이 나타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왔군.’
포로롱.
파란 하늘 아래로 작은 눈알이 허공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무척이나 기괴한 모습이지만 내게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옵저버.’
저 눈알들의 명칭이다.
GM과 신들의 눈.
저 눈을 통해 게임에 참여하는 신들은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직접 참여할지, 혹은 계속 지켜볼지 판단하게 된다.
옵저버는 GM이 직접 조종하는 옵저버와, 신들이 직접 포인트를 사용해서 움직일 수 있는 공용 옵저버. 그리고 ‘아바타’를 선택한 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개인 옵저버로 나뉜다.
현재 이곳에 있는 옵저버들은 모두 GM이 조종하는 옵저버였다.
‘한국 지역 GM은 아카터스였나?’
GM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은 위치에 있던 GM이다.
‘옵저버가 왔으니 서버에 녀석들이 곧 들어오겠군.’
생각하기 무섭게, 허공에 알림창이 나타났다.
[GM 아카터스가 관리하는 한국 서버가 오픈하였습니다.]
[현재 53명의 유저가 참여 중입니다.]
[이제부터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53명.
내 기억과 동일한 숫자였다.
참고로 ‘유저’란 게임에 참여하는 ‘신’을 뜻한다.
우리, 플레이어들을 선택하고 게임을 즐기는 이들.
그들은 옵저버를 통해 게임을 지켜보며, 마음에 드는 플레이어를 발견하게 되면 자신의 ‘아바타’로 삼는다.
아바타가 된 플레이어는 유저, 즉 신의 특성을 계승할 수 있게 되며, 신으로부터 포인트를 후원받을 수 있게 된다.
포인트는 능력치나, 각종 아이템. 그리고 스킬 강화에 필요한 중요한 자원이니 그걸 신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아바타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큰 차이가 났다.
‘더군다나 아바타가 되지 못한 플레이어는 NPC로 취급되니 다들 신들의 아바타가 되기 위해 필사적이었지.’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시작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나는 더욱 필사적으로 강해지는 것에 집착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 신의 아바타가 될 수 있었지만, 그게 올바르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근데.’
나는 허공에 떠 있던 알림을 지우고 맨 아래에 남아 있는 알림을 유심히 보았다.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있다는 말은 뭐야?’
아까 고블린과 싸우기 직전 들렸던 메시지 중에 커뮤니티 접속 권한을 얻었다고 했었지.
‘사용법은 간단하네.’
알림창 귀퉁이에 있는 도움말을 확인하자, 대략적인 접속 방법이 나왔다.
‘커뮤니티 접속이라 말하거나, 상태창에 있는 아이콘을 클릭하면 되는 건가.’
상태창을 확인해 보면 ‘커뮤니티 접속’이라는 아이콘이 보였다.
“세한 오빠.”
커뮤니티 접속 스킬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읽고 있으니, 어느덧 생각을 정리한 지수가 말을 걸어 왔다.
“왜?”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저런 괴물들이 갑자기 현실에 나타날 일은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이런 알림창도…….”
지수는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훑었다.
아마 알림창을 지우는 행동이리라.
“그리고 머릿속에 들리는 이상한 소리도 그 탓이죠?”
“아마 그렇겠지. 현실에서 이런 알림창이 보이고, 메시지가 들릴 리가 없잖아?”
“그렇죠.”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더 이상 내게 묻지 않았다.
아마 그녀 나름대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침착하네.’
그저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패닉에 빠지지 않는 것만으로 대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블린들에게 도망치기 바빴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칠 뿐이었으니까.
참고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고블린은 없었다.
아마 내가 처음에 고블린 한 마리를 순식간에 죽인 탓일 거다.
가만히 있는 나를 굳이 건드리기보다는 도망치는 사냥감들에 집중하려는 거겠지.
지수 역시 그 사실을 아는지 내게 한층 바싹 붙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라는데, 메인 퀘스트는 뭘까요?”
“곧 알려주지 않을까?”
유저들이 들어왔으니 싫다고 해도 곧 알림창이 뜰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생각하기 무섭게 허공에 커다란 알림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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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퀘스트 1: 대학교 캠퍼스를 탈출해라!
지금부터 당신을 노리는 수많은 고블린들이 습격해 올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피하거나, 처치하여 성공적으로 대학에서 탈출해야 한다.
난이도 E 제한시간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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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퀘스트가 시작하였습니다, 플레이어마다 달성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포로롱,
알림창이 뜸과 동시에, 여러 개의 옵저버가 나타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신들이 좋아할 만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세한 오빠 저, 저건?”
지수도 그제야 옵저버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설명은 나중에 해줄게, 우선 움직이자.”
“움직인다고요? 어디로요?”
당황한 지수가 내게 물었지만, 그런 지수의 질문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깔끔히 묻혔다.
“꺄아아악! 살려줘!”
“뭐야, 시발!”
퀘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 들려오는 동시에, 풀숲에서 숨어있던 고블린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여태까지는 몇 마리가 뛰어다녔다면, 단번에 그 숫자가 수십 마리로 불어났다.
“키에엑!”
고블린들은 저마다 뭉툭한 칼을 들고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촤악!
“아아악!”
새빨간 피가 바닥을 적셨다.
“달려!”
“네, 네!”
숫자가 불어나자 우리에게도 고블린이 무리 지어 달려왔다.
나와 지수는 고블린들을 피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다른 사람들은 끼리끼리 뭉치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최대한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뒤에선 우리를 뒤쫓아 오는 고블린 몇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다른 사람들은…….”
지수가 불안한 얼굴로 내 손을 꽉 쥐었다.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에게, 나는 천천히 발을 멈추며 말했다.
“괜찮아.”
“네?”
“아직은 그다지 사상자가 나오지 않을 거야. 고블린은 성인 남성과 비슷한 근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더불어 지금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 무차별적으로 공격할 뿐이지, 사람들이 뭉치기 시작하면 잠시 소강상태에 이를 것이다.
‘홉 고블린이 등장하기 전까지.’
홉 고블린은 이 고블린들을 이끄는 대장격 몬스터다.
스테이지 보스라고 할 수 있다.
몬스터 웨이브가 몇 번 반복되면 홉 고블린이 등장하게 되고, 그가 이끄는 고블린들이 뭉쳐 있는 사람들을 단번에 쓸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나는 재차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전지대에 진입했습니다.]
“어?”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지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전지대?”
“이게 게임이라면 몬스터가 들어올 수 없는 구역도 존재하겠지. 아마 이곳이 그 안전 구역인 모양이야.”
“아……. 그렇군요.”
사실 전생에 눈물을 질질 짜며 도망치다가 우연히 들어왔던 장소였다.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우선은 잠시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다.
“키에엑?”
“키엑?”
쫒아온 고블린 무리가 안전지대에 들어온 우리를 향해 불쾌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살았다…….”
안전지대를 둘러싸고 있던 고블린 무리에 바싹 얼어 있던 지수는 그제야 긴장감이 풀린 듯 풀썩 주저앉았다.
“우선 여기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 움직이자.”
“아, 네.”
지수는 힘없이 웃으며 답했다.
사실 그녀와 달리 나는 전혀 지치지 않았지만, 우선 제대로 준비를 하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거기다.
‘아직은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까.’
나는 풀숲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작은 눈동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 우리가 달릴 때부터 따라온 옵저버다.
아마 사람들과 별개로 움직이는 우리를 보고 뭔가 싶어 쫓아온 거겠지.
‘좀 꺼져라, 꺼져.’
옵저버가 우리를 관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옵저버를 통해 우리 플레이어들을 지켜보는 신들의 재미를 위해서다.
즉, 재미가 없으면 보지 않는다.
게임을 켜두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굳이 볼 가치가 없겠지.
쉬익.
30분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옵저버는 부르르 떨리더니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예상보다도 빠른 시간이다.
‘참을성 없긴.’
저래서 아카터스는 탑티어 GM이 되지 못하는 거다.
인내심이라는 게 더럽게도 없었다.
‘나야 좋지만.’
옵저버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우선 DLC 상점부터 확인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커뮤니티에 접속해 볼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커뮤니티 접속 스킬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커뮤니티’라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접속.”
시동키를 중얼거리자, 갑자기 허공이 번쩍였다.
파아앗!
“헉?!”
순간 놀라서 헛바람을 들이켰지만, 옆에 조용히 있는 지수의 반응을 보면 아마 내게만 보인 모양이다.
‘아씨, 놀래라.’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자, 눈앞에 커다란 알림창이 보였다.
아니, 알림창이라기 보단 이거…….
‘웹 브라우저?’
마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같은 형식이다.
[새롭게 오픈한 롤플레잉 게임 장소로 ‘지구’가 선택되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그거다.
마치 새로운 게임이 오픈해서 광고하는 것처럼 커다란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 봐라?’
커뮤니티가 무엇인지 대략 짐작되기 시작했다.
배너를 열고 들어가자, 한 웹사이트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새롭게 오픈한 온라인 게임 ‘지구’의 사이트였다.
‘자유게시판, 공략 게시판…… 거기다 채팅방까지.’
평범한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 같은 구성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이용자가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는 점일까.
자유게시판을 훑어보면 ‘신’들이 올린 글 몇 개를 볼 수 있었다.
뭐, 아직은 게임이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대부분은 ‘오픈을 축하합니다.’와 같은 의례적인 글뿐이었다.
‘그렇다면 채팅방은 어떻지?’
자유 게시판이나 공략 게시판에는 현재 올라온 글이 없었기에 내 관심이 향한 건 채팅방이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채팅방을 클릭했다.
[익명48번 손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채팅방에 들어가자 익숙한 문구가 나타났다.
‘역시 사용 방법은 보통의 인터넷 채팅과 다를 게 없어.’
대략적인 UI나 사용 방법도 같았다.
허공에 나타난 좌판을 누르면 글자가 입력되는 방식이었다.
그리스대장: 방금 들어온 익명은 누구냐. 인사도 없네.
순간, 딱 봐도 나를 저격하는 글에 순간 가슴이 철렁였다.
혹시 들어오면 신원을 밝혀야 되는 건가?
한쪽눈미아: 어휴, 저 꼰대새끼 또 저런다. 막 오픈한 게임에 바로 아이디 만드는 폐인이 몇이나 된다고.
그리스대장: 자기소개하냐?
나는 그들의 대화에 흘러나올 뻔한 욕을 간신히 삼켰다.
‘아씨, 놀라게 할래?’
이어서 올라온 채팅은 그저 실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순간 놀랐던 게 억울해져서 뭐라고 한마디 적을까 했지만 우선은 조용히 있기로 했다.
애초에 익명의 수가 워낙 많았기에 내게 관심을 가지는 신은 없었다.
익명22: 다들 어디 서버에 참여 중이세여? 전 지금 미국 서버인데.
번개보다빠름: 나돈데.
익명62: 난 중국.
그리스대장: 뭐야, 한국 서버 없음?
갑자기 언급된 한국서버라는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채팅방에 참여한 신들 중에서 한국 서버를 관람하던 자는 없는지 반응은 지극히 차가웠다.
한쪽눈미아: 거기 GM 아카터스 아니냐? 걔 퀘스트 졸라 평범하게 내자너.
그리스대장: 근데 얘가 은근 괜찮은 플레이어들이 걸리더라고. 아까도 귀여운 여자애 있던데.
한쪽눈미아: 너는 아바타를 외모로 고르냐?
그리스대장: 난 남캐는 절대 안 키운다.
한쪽눈미아: 하이고, 첫 번째 메인 퀘스트 끝나기도 전에 아바타 고르게?
그리스대장: 그럴까 했는데 어떤 남자새끼가 옆에 있더라. 여자애 끌고 한참 도망치더니 안전지대에 들어갔음.
게임은템빨: 벌써 안전지대에? 그걸 어떻게 발견했데?
그리스대장: 아마 얻어걸린 거 같다. 근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서 옵저버가 이동해 버림, 시벌……. 간만에 땡겼는데.
나는 거기까지 채팅을 읽다가 이내 창을 닫았다.
더 이상 얻을 정보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방금 그건 아마 우리 이야기겠지.’
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는 게 게임에 참여하는 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략적인 여론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옵저버는 완전히 우리에 대해 관심을 떨어트린 것 같고.’
만약 근처에 옵저버가 있다면 저 그리스대장이라는 신이 언급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나쁘지 않은데?’
나중에 게임이 좀 진행되면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바타’를 선택하는 시점이 오면 더더욱 그렇겠지.
‘정기적으로 확인을 해야겠어.’
더욱 중요한 점은 내가 거기다 글을 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건 굉장한 메리트였다.
신들 사이에 흐르는 정보를 조작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커뮤니티는 우선 이정도만 확인해두고, 다음은…….’
커뮤니티를 확인하느라 잠시 뒤로 미뤄뒀던 DLC 상점을 열었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판매 목록을 살폈다.
커뮤니티도 중요하긴 했지만, 사실 정말 중요한 건 이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