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001. 프롤로그-1회차 배드 엔딩
[게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곧 엔딩이 시작됩니다.]
붉은 하늘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검은 구멍을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끝났다.”
10년 전.
이 세계는 게임이 되었다.
현실이 게임이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플레이어’가 되었고.
게임 마스터, 통칭 GM이라 불리는 자들에게 퀘스트를 받아 이야기를 진행했다.
당연히 그것을 즐기는 건 우리가 아니다.
저 하늘 위에 있는 아득한 존재.
‘신’이라 불리는 이들을 위해 우리는 이 게임을 강제적으로 플레이해야 했다.
그들은 수많은 GM이 운영하는 게임판 중 마음에 드는 장소에 참가하여 게임을 즐겼다.
그저 지켜보는 이도 있었고, 혹은 마음에 드는 플레이어를 자신의 아바타로 삼아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인류는 멸망했다.
‘개쓰레기 같은 게임 같으니라고.’
나는 여태 수많은 게임을 플레이했지만, 이것보다 쓰레기인 게임을 해본 적이 없었다.
힘겹게 도달한 엔딩이 인류의 멸망이라니.
‘적어도 마지막에라도 그 새끼들을 엿 먹이고 싶었는데.’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검은 구멍을 바라보았다.
만약 내가 신격을 얻었다면 저 구멍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나는 누군가의 아바타가 된 몸이었다.
당연히 누군가의 아바타가 되어서야 신격을 얻을 수 없었다.
즉, 나는 이 버려진 세계에서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거지.
‘녀석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아바타로 삼았던 신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비웃을까?
아니면 연민의 시선을 보낼까.
아니, 녀석이라면 이런 결과를 만든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배드 엔딩 ‘고독한 세계’를 달성하셨습니다.]
마침 들려온 건 녀석의 비난이 아닌 익숙한 시스템의 음성이었다.
‘배드 엔딩이라니.’
하기야 지금 이 꼴이 배드 엔딩이 아니면 뭐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이런 결말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미 도달한 결말을 바꿀 수는 없었다.
[홀로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한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모든 플레이가 곧 종료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역시 이렇게 끝나는구나.
나는 귓가에 아련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손에 쥔 검을 치켜들었다.
‘수고했다’라는 말이 들려왔으니 이제 더 이상 내게 남은 역할이란 없는 거겠지.
서비스가 종료된 게임의 캐릭터가 어찌 될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역시 이제 남은 답은 하나뿐인가.’
나는 이 혼자뿐인 세계에서 살아갈 생각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검으로 가슴팍에 찌르려는 순간.
허공에 뜻밖의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싱글 모드를 모두 클리어하여 DLC상점이 오픈됩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지?
DLC상점?
한때 콘솔 게임을 즐겼던 내게는 익숙한 명칭이다.
DownLoadable Contents의 약자로, 게임에서 추가적으로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갑자기 왜?’
나는 황급히 DLC상점에 관한 설명창을 열었다.
DLC 상점에 관한 설명은 극히 간단했다.
[습득한 포인트로 게임에 도움이 되는 DLC를 구매할 수 있다.]
현재 내가 구매할 수 있는 DLC는 고작 하나였다.
그래, 고작 하나.
난 그것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
2회차 패키지: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여럿의 특전이 해금된다.
가격 1,000,000포인트
==
[다른 DLC는 현재 이용이 불가능합니다. 2회차 시 해금됩니다.]
[현재 보유 포인트: 1,700,000]
“2회차, 패키지?”
말하자면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콘솔 게임 같은 부류에선 꽤 흔한 이야기다.
1회차에 얻지 못했던 걸 2회차에 얻는다거나, 혹은 여럿의 특전을 들고 플레이할 수 있는 기능.
‘신들은 이걸 알고 있나?’
설마, 알았으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뒀을 리가 없지.
인류 최후의 생존자가 아닌, 인류 멸망에 도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왜 내게 이런 기능이 생긴 거지?
‘설마.’
난 이 ‘게임’이 시작됐을 때, 한 가지 특성, ‘싱글 플레이어’를 부여받았다.
여태까지 나는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왜냐면 특성에 어떠한 설명도 없었고, 특별한 효과가 나타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 싱글 플레이가 이걸 뜻하는 거였어?”
설마, 모든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서야 발동하는 조커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혹시 미쳐 버린 내가 보는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는 게 환상이 아니라 진짜라면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이 게임판을 엎어버릴 수 있다는 것.’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곤 DLC상점에 있는 2회차 패키지를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구매에 필요한 포인트는 100만 포인트.
내가 엔딩까지 클리어하며 모은 포인트는 170만.
후반에는 그다지 쓸 일이 없었던 터라 잔뜩 쌓여 있었다.
[2회차 패키지를 구매하셨습니다]
[2회차 특전이 적용됩니다.]
[2회차 시작부터 DLC 상점에서 다양한 상품의 구매가 가능해집니다.]
메시지가 주르륵 떠오르며, 점차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제발.’
설명이 거짓이 아니기를.
만약 정말로 다시 시작하게 된다면, 내가 저질렀던 잘못된 판단들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쓰레기 같은 엔딩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아.’
몸이 붕 뜨는 감각이 느껴지며, 의식이 점차 멀어졌다.
[2회차에서는 새로운 엔딩에 도전해 보세요.]
[그럼 즐거운 게임 되시기를.]
그 말을 끝으로.
내 1회차는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