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28/33)

“가고 싶은 곳 없어?”

결혼이 확정되고, 한건이 가장 먼저 물었던 말이다. 낮잠 자는 찬하의 머리칼을 쓸어주던 예하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눈썹을 들썩였다.

“어딜 가?”

“신혼여행.”

그 말에 예하의 얼굴이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신혼여행이라. 남세스러울 정도로 낯선 단어였다.

“신혼여행을 가겠다고? 굳이? 왜?”

“⋯⋯.”

예하의 질문에 한건이 눈을 부릅떴다. 결혼식을 했으면, 응당 신혼여행을 가야지. 제가 사랑에도, 연애에도 무지했으나 그 정도는 알았다. 그런데 예하가 이리 나올 줄이야. 꽃이 만개한 여행을 생각하던 제가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한건을 빤히 보던 예하가 짧게 혀를 찼다.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보지 말고. 너 바쁘잖아. 가뜩이나 결혼식 때문에 네가 일을 안 해서 성 실장님 얼굴 터지기 직전이던데.”

“⋯⋯.”

“그리고 신혼여행으로 갈 곳이 있어? 어딜 가도 네 집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또 찬하는 어떡해?”

예하가 자못 논리적으로 반론했다. 신혼여행이라는 걸 한 번도 가늠해보지 않은지라 반감이 먼저 들었다. 한건과 함께하는 여행. 그것도 신혼여행. 잠시 상상한 것만으로도 볼 위로 우수수 소름이 돋아났다.

한건이 뚜벅뚜벅 다가와 예하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뒤틀린 입매에 짜증이 가득했다.

“내가 일주일 자리 비운다고 회사가 망하진 않아. 성 실장 밑으로 딸린 직원이 몇 명인데. 성 실장이랑 언제부터 친했다고 걱정까지 하고 있어?”

“⋯⋯누가 성 실장을 걱정했다고,”

“그리고 갈 곳이 없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섬이랑 별장이 몇 갠데. 산, 바다, 바닷속, 하물며 우주도 네가 원하면 갈 수 있어.”

우주를 말하던 한건이 문득 미간을 좁혔다. 그 찰나, 무중력에서 예하와 섹스하면 어떤 기분일까. 엄한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예하가 턱을 아래로 당기고 한건을 올려다봤다. 바다. 그 단어가 명치를 세게 후려쳤다. 그래, 그런 곳으로는 여행을 갈 만할 것이다. 제가 본 바다는 첫 임신 후, 한건이 데리고 간 레스토랑에서 본 밤바다뿐이니.

한건이 가지고 있는 섬이면 엄청나겠지. 화창한 날씨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바다, 호화로운 별장, 맛있는 음식, 여유로운 시간. 퍽 당기는 유혹들이었다.

“그럼 찬하는?”

예하가 마지막으로 남은 걱정을 내놓았다. 한건이 두 손으로 예하의 볼을 감싸 쥐고 눈을 맞췄다.

“찬하도 괜찮을 거야. 이틀에서 사흘 정도만 우리 둘이 있고, 그 후에 데리고 오면 돼.”

“⋯⋯그런가.”

예하의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러가 찬하에게서 멈췄다. 이미 한건의 말에 넘어갔다. 예하에게 바다는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곳이었으니까. 먼 과거, 상필과 함께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사는 꿈도 꿨었다.

“갈 거지?”

한건이 예하의 볼에 입술을 비비며 물었다. 예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뿜어냈다. 그리고 한건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래, 가자. 결혼도 하는 마당에 신혼여행쯤이야.”

예하의 허락에 한건이 곧장 입을 맞춰왔다. 예하가 킥킥거리며 그의 입술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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