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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발할라-206화 (206/208)

# 206

206화. 짐승의 법 (4)

토르의 망치, 묠니르(Mjöllnir). 단순하기 짝이 없는 무기다. 다른 신들의 휘황찬란한 무기와는 다르다. 그저 부서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는 것, 그리고 던지면 되돌아온다는 것. 그게 기능의 전부다.

그 이름의 의미도 단순히 ‘파괴하는 것’이지 않던가?

하지만 때로는 단순한 것이 최고다. 토르의 손에 들린 묠니르가 그렇듯.

바람을 가르고 나아간 묠니르는 수많은 거인의 두개골을 깨부순 것처럼, 오딘의 머리를 노렸다.

오딘이 황급히 신성을 일으켰다.

“큭!”

콰드드득! 묵직한 소리가 들렸지만, 실상은 바람과 망치의 대결이었다.

혀를 내둘렀다. 폭풍을 일으켜 묠니르를 막아 내는 오딘의 술수에 놀랐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폭풍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묠니르에 놀랐다.

하지만 힘겨루기의 승자는 오딘이었다.

“감히!”

“흥! 내가 할 말이오!”

쿵- 묠니르가 바닥에 떨어졌다.

토르가 손을 뻗어 묠니르를 회수하려 했지만, 오딘이 더 빨랐다.

“간반테인(Ganbantein)!”

오딘이 허공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마법을 무효화하는 지팡이로 유명한 물건이다. 하지만 실제로 보자니, 그건 단순히 마법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 뛰어난 물건이다.

“…법칙을 고정하는 못.”

마법과 권능은 법칙을 뒤튼다는 점에서 똑같다.

간반테인은 그를 막아 낸다.

“묠니르가……!”

토르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간반테인을 꺼낸 건 실수였다.

“이보시오, 오딘. 마법도 권능도 못 쓴다면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오?”

피식 웃으며 오딘에게 다가섰다.

내 손에는 궁니르가 들린 채다. 필중의 룬문자는 내게 파훼되었지만, 그래도 궁니르를 날카로운 창이다.

게다가 토르 역시 맨손으로 못 싸우는 샌님이 아니다.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르겠군.”

토르가 피식 웃었다.

육체적으로 부딪힌다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전사 중의 전사가 여기에 둘이나 있다. 나와 토르. 이미 노쇠한 오딘이 우리 둘과 겨뤄서 이길 수 있을까?

오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궁지에 몰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오딘은 궁지에 몰렸다.

토르와 오디슨. 전사로서 최고에 달한 그들을 상대로 마법도 권능도 쓰지 않는 건 무리였다.

그 둘이 끝이 아니었다.

“…오딘.”

복잡한 표정을 한 티르가 토르가 만든 구멍을 통해 지하로 내려왔다.

오딘이 신음을 흘렸다.

“나 하나 잡고자 모조리 몰려왔군. 하계의 제국군은 어쩌고 여기에서 이러고 있나?”

“글쎄, 그걸 걱정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오디슨이 빈정거렸다.

오딘도 그들의 주의를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당당한 오디슨을 보자니…….

‘…뭔가 더 있군.’

초조해졌다.

그 생각이 틀리진 않았다. 지금도 하계에서는 제국군과 부족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고, 신들이 끼어 있었다.

하지만 아스가르드에서 그 자리로 향한 신은 없었다.

막무가내로 밀리지 않느냐? 아니다.

오디슨이 준비해 온 것들이 빛을 발했다.

-가자, 신을 죽여라!

“찌꺼기? 찌꺼기들이 왜……! 설마, 아스가르드 놈들, 타락한 건가!”

-본질을 보지 못하는 멍청이들! 우리는 타락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타락한 것이다!

찌꺼기들이 하계의 전쟁에 참여했다. 부족민들은 독특한 모습을 지닌 찌꺼기에 거부감을 보였지만, 흑묘백묘다.

겉모습이 어떻든 자신들을 도와주는 이들.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는 사치를 부리기엔 너무 절박한 상황이었다.

“…으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오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 갇힌 곳에서 오딘이 달아날 곳이 어디에 있을까?

티르가 스스릉- 검을 꺼내 들었다. 토르가 건틀릿, 야릉그레이프(Járngreipr)를 낀 채 손을 풀었다. 깡깡- 주먹이 서로 닿을 때마다 쇳소리가 울렸다.

마지막으로 오디슨.

‘…저놈이 모든 걸 망쳤다.’

그는 오딘의 분노를 정면에서 받으면서도 궁니르를 여유롭게 휘두르고 있었다. 오딘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피할 수 없는 파멸. 그토록 피하고자 달아난 결과가 여기란 말인가?

차라리 개운했다.

“이제까지 내가 미몽에 잠겨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자기반성으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시오, 오딘.”

티르가 으득- 이를 갈고 나섰다.

오딘이 피식 웃었다.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다 한들, 티르, 너는 내 아래에서 내 권한을 휘두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개소리!”

티르가 검을 휘둘렀다.

수많은 에인헤랴르가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하는 궤적을 그리는 검이다. 이상적인 궤적, 검사의 꿈이나 다름없는 일격이 오딘을 덮쳤다.

오딘이 눈을 번뜩였다.

“티르, 언제나 말했지만…….”

쐐애애액! 검이 오딘을 노리고 날아든다.

“네겐 주위를 넓게 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콰아아앙!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검은 덩어리가 천장에서 떨어지며 오딘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에 티르는 검을 멈춰야 했다.

“오디이이인!”

“젠장! 펜리르!”

손발이 안 맞았다.

티르의 검격과 펜리르의 강습. 차라리 둘 중 하나만 이뤄졌다면? 더 나은 결과가 있었으리라.

티르는 달려드는 펜리르를 베지 않기 위해 검을 멈췄다. 펜리르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날아드는 검을 보고 놀라 움찔 몸을 떨었다.

그 짧은 틈. 하지만 전장을 굽이 살피던 오딘이 기다린 틈이었다.

“끌끌끌! 젊은것들은 서두르기 마련이지.”

칼날과 이빨 사이, 미묘하기 짝이 없는 거리.

오딘은 그 거리를 이용해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쳤다.

“오딘!”

뒤늦게 토르가 오딘의 의도를 알아챘지만, 늦었다.

히이이잉! 말 울음소리와 함께 슬레이프니르가 오딘을 태웠다.

오디슨이 버럭 외쳤다.

“쫓아!”

말과 함께 싸구려 창을 투척했다. 투창 공격은 멋들어진 선을 이뤘지만, 슬레이프니르는 신마(神馬)라는 이름에 걸맞게 피해 냈다.

“어딜 도망치느냐!”

“잡아!”

펜리르와 티르가 오딘을 쫓았다.

멸망의 늑대도, 결투의 신도 슬레이프니르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미끄러지듯 달리는 다리 여덟 달린 말은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하늘이여!”

토르가 권능을 사용했다.

꽈릉! 벼락이 내리꽂혔지만, 간반테인의 힘에 무효화될 따름.

오딘은 껄껄 웃었다.

“모조리 잃었지만, 나는 끝나지 않았다! 기다리거라, 반역자들이여! 내가 돌아오는 날, 그날이 너희들의 마지막 날이 되리라!”

오딘은 허공을 날았고, 그 뒤를 신들이 따라붙어 공격을 퍼부었다.

물리적인 공격은 슬레이프니르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권능이나 마법은 간반테인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저렇게 세상을 농락하다니.

과연, 오딘은 오딘이었다.

“음?”

오딘이 흠칫 놀랐다.

제가 갈 길을 막고 있는 이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것은…….

“오디슨… 어떻게?”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달아날 곳이라곤 뻔하지. 여기, 긴눙가가프.”

“허, 내 행동을 읽었다 이건가?”

오디슨이 피식 웃었다.

“방식은 다르지만, 나 역시 회귀했다.”

“…그런가.”

오딘이 최후의 최후에 어디로 갈지 대충 예상했단 말.

오딘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실수했구나.”

오딘의 손에서 신성이 뿜어졌다. 그 신성은 특정한 권능을 이루지 않았다. 그저 뻗어져 나가, 오딘의 곁에 있는 이에게 닿았을 뿐.

그 단순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권능이 되살아났다.

“어, 어어? 대, 대장! 이게 무슨……!”

토르손이 당황했다.

광기를 다스리는 신, 오딘. 광기란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오딘의 축복은 받은 토르손은 그 광기를 한껏 머금고 있었다.

“크, 크으으……!”

토르손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눈이 회까닥 뒤집히고, 전신에 핏줄이 불룩 튀어나왔으며, 입가에 거품이 일었다.

오딘의 외눈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네가 믿을 만한 부하기에 여기에 데리고 왔겠지? 하지만 틀렸다, 오디슨. 믿음이라는 것은 이토록 쉽게 깨지는 것이니.”

“크아아악!”

토르손이 몸서리쳤다.

오디슨은 토르손에게 시선조차 던지지 않고 오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오디슨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 기회였다.”

“그 기회를 날려 먹은 게 아쉽겠구나!”

오딘이 낄낄 웃었다.

오디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게 주는 기회였지. 그리고 난 알았다.”

오디슨이 궁니르를 오딘에게 겨눴다.

“신도를 함부로 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다는 걸.”

“흥! 날 믿는 이라면, 날 위해 기쁘게 목숨을 바칠 터! 자, 토르손!”

오딘이 양팔을 쫙 펼치며 우렁차게 외쳤다.

“오디슨에게 ‘자만’의 대가를 치르게 하라!”

‘자만’은 오딘이 생각하는 ‘희망’의 진짜 이름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자만. 그건 때로 정해진 절망을 일그러뜨린다.

저 자신을 갉아먹는 끔찍한 힘의 폭주. 오딘은 그를 기대했다.

하지만…….

“안됐군. 자만의 대가를 치를 이는 내가 아닌 모양이니.”

“…뭐? 어째서……?”

오딘이 눈을 부릅떴다.

희망을 써서 오디슨을 공격해야 할 토르손이었건만, 희망을 쓸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오디슨이 피식 웃었다.

“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델로스섬에서 ‘희망’을 회수하는 건 본래 내게 내려진 시련이었다.”

“…델로스섬이 붕괴한 것은…….”

오디슨이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그 죄악의 섬을 무너뜨렸지.”

“…크윽!”

올림포스에서 델로스섬 건으로 걸고넘어질 때 자세한 조사를 했다면 오디슨의 짓이었다는 게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그 기회를 오딘은 놓쳤다.

올림포스와 협력하여 반역자를 삭초제근할 기회.

오딘은 그 기회를 놓친 게 너무나 아쉬웠다.

사실, 올림포스와 협력해서 조사하더라도 오디슨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딘은 오디슨이 마법을 능숙하게 다룬다는 걸 몰랐으니까.

“끝이다, 오딘.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반복을 이제 끊어 내자.”

“어째서냐, 어째서 날 이토록 소멸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더냐! 나는 아스가르드의 왕이다! 내가 바로, 인간을 만들어 냈단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디슨의 민족을 만들어 낸 것이 오딘이다.

오디슨은 오딘의 과업을 망칠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늑대다. 그리고 늑대는 늙은 우두머리를 쫓아내지. 그리하여 무리의 힘을 계속해서 키워 가는 것이다.”

“신인 주제에 짐승이 되고 싶은 것이더냐!”

쯧, 오디슨이 혀를 찼다.

“때로는 짐승이 더 현명할 때도 있는 법.”

이성은 축복이지만 때로는 저주스러웠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들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디슨은 짐승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성을 앞세우는 말만 하는 철학자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짐승의 법도, 인간의 법도, 신의 법도.

그 모든 법을 받아들여 가장 좋은 걸 가려내는 것이야말로, 무리의 우두머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

“끝이다.”

오디슨은 궁니르를 내질렀다.

오딘의 표정에 가득하던 절망이 사라졌다.

푸욱!

“…뭐?”

오디슨이 뒷걸음질 쳤다.

오딘은 웃고 있었다.

“내 것을 그리 쉽게 가져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오딘이 낄낄 웃었다.

오디슨은 심장을 찌른 궁니르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오딘이 궁니르를 회수했다.

궁니르를 반가운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오딘의 손아귀에서 파르르 떨었다. 오디슨이 입을 벙긋거릴 때 오딘이 흥- 콧방귀를 뀌었다.

“네놈을 완전히 끝장내고 싶지만…….”

저기다! 고함이 들려왔다.

오딘은 자신을 쫓아온 이들이 긴눙가가프로 향하는 터미널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힐끗 뒤를 본 오딘이 긴눙가가프로 발을 들였다.

오디슨이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이겼다.”

그와 함께 오딘이 긴눙가가프에서 튕겨 나왔다.

그 얼굴에 서린 것은 경악이었다.

“어째서……?”

그에 오디슨이 답했다.

“네 마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게…….”

쿨럭, 심장을 찔린 탓에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오디슨은 고통 속에서도 킥킥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뿐이라 생각했더냐?”

오딘이 주저앉은 채 멍하니 긴눙가가프로 향하는 터미널을 보았다. 제대로 두들겨 맞았는지, 코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우끼끼- 터미널에서 원숭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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