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201화. 신의 자격 (2)
비다르와의 결투 이후, 오디슨의 급이 달라졌다.
이전까지 오디슨은 굉장히 잘 싸우는 투사였다. 결투의 직전에는 잘 싸우다가 마침내 신이 되었구나~ 하는 신기한 대상이었다.
하지만 비다르와의 결투에서 오디슨은 진정 신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타락한 신을 홀로 이겨 낸 전사들의 신, 오디슨.>
<새로이 신좌에 오르신 오디슨 님의 행보에 대해 알아보자!>
<나비르(13세), “오디슨 님처럼 강한 전사가 되고 싶어.”>
특히나 비다르와의 대결에서 보인 압도적인 힘이 문제였다.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이다- 자랑했다면 ‘웬 헛소리야?’ 하는 반응이 나왔으리라. 하지만 오디슨은 자랑하지 않았다.
보여 줬다.
<신계 연맹 발할라 리그 소모임, “오디슨 승격시켜야.”>
압도적인 힘을 본 M300R 투사들은 누구도 오디슨과 경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디슨이 경기도 없이 200Steps로 승격된다 발표했음에도 투사들의 반발은 없었다.
오히려 일반 관중들이 그 투사들에게 야유했다.
-질 게 뻔하다고 해도, 싸우지도 않고 승격에 전원 동의가 말이 되냐? ㅉㅉㅉ, 저런 놈들이니까 오디슨처럼 신이 못 되는 거임.
-오디슨은 신이 되자마자 자기보다 신성이 훨 큰 상대랑 싸워 이겼는데…….
-미친 놈들ㅋㅋㅋㅋㅋ 싸우면 뒤질 게 뻔한데 왜 싸움??
-패기가 없다 이 말이지 ㅡㅡ
그 문제는 사실 200S로 승급한 뒤에도 이어졌다.
<오디슨 님의 상대, ‘여전히’ 없어.>
<“차라리 바로 T100으로 보내라!” 답답해하는 발할라 리그 팬들.>
200S는 201~ 300위의 투사들이 경기를 펼치는 리그다. 오딘의 후계자 발언 이후 T100에 새로이 진입한 신들이라면 모를까, 그들을 뺀다면 투기장에서 오디슨을 상대할 적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로 인해 가장 답답한 것은 오디슨이 아니다.
오딘이었다.
“…허.”
오딘의 주름진 이마에 골이 파였다.
오디슨과 비다르의 결투. 그에 나타나 후계자 건을 외친 것은 오디슨을 겨냥한 소리가 아니었다.
왕좌를 노리는 늑대들에게 던져 주는 미끼였다.
왕좌를 직접 노리기보다 더 쉽고 달콤한 게 저기 있다! 그런 외침이었다. 그 고깃덩이를 차지한 이에게 정말로 왕좌를 물려줄 거냐고?
아니다.
‘진정,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되는가?’
왕좌를 노리던 늑대들이 후계자를 노리고 서로 치고받게 된다면? 왕좌를 직접적으로 노리는 위협이 사라지리라.
게다가 서로 싸우며 발톱과 이빨을 날카롭게 갈아 둬야 이제껏 오딘이 넘어서지 못한 역사의 갈래, ‘제우스의 침공’을 막아 내지 않겠는가?
그 와중에 제우스와 후계자가 동시에 죽으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런 요행을 바라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면 후계자 후보들이 제우스와 동귀어진한다면?
오딘이 바라는 가장 현실적이면서 가장 그럴듯한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오디슨의 성장세가 너무 가파르군.”
오딘은 마른세수를 했다.
비다르와의 싸움을 오디슨이 일방적으로 이길 거라 생각한 적이 있던가? 타락한 비다르를 그리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이 있던가?
무언가 자잘한 게 바뀌어서 등장한 천재는, 나비 효과라 생각한 것에 걸맞게 태풍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가만히 두면 후계자 자리를 떡하니 차지해 버릴지도 모르는 태풍이.
오딘이 쯧- 혀를 찼다.
“견제가 필요하겠어.”
오딘의 회색 외눈이 열쇠가 폭주하지 않도록 막아 줄 자물쇠를 찾았다.
*
“견제가 들어오겠군.”
툭 내뱉은 말에 이라호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무슨 말이에요?”
“아, 너무 빨리 승급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해서 말이야. 이쯤 해서 날 견제하려고 이상한 짓 하는 놈이 하나쯤 나오는 게 정상 아닐까?”
“아… 그건 그렇죠.”
이라호드가 입술을 모으며 고민에 잠겼다.
꽤 진지한 표정을 짓는 걸로 봐서,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맞춰 보는 모양이다.
나 역시 흠- 침음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오딘이 나를 견제하기 위해 뭘 할 수 있나.
…고작 몇 달 전에 내게 기대를 건 오딘이 견제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내가 어색하다. 기억을 얻기 전이었다면, 누가 이런 소리를 해도 오히려 화를 냈겠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오딘이 쓸 수 있는 견제는…….
<1. 내 주변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 무언가 한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실제로 다른 세계의 기억 중에서 이라호드를 인질로 잡은 적이 있다. 발키리 규칙이니 뭐니, 이상한 걸로 처벌을 내렸다.
내가 아직 이라호드와 크레네에게 전생의 기억을 안 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녀들은 차라리 모르는 게 안전하다.
“후우.”
한숨과 함께 쓴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금 그녀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긴 한 걸까? 그저 그녀들을 갖고 싶어 그녀들이 ‘모르는 그녀들’의 기억을 이용하는 게 아닐까?
마음이 소란스럽다.
…생각을 접자. 일단 지금 고민할 건 그게 아니니까.
혹여 나중에 기억을 모두 되찾고 난 뒤, 내게 실망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 나와 비견할 만한 상대를 집어 투자한다.>
이 역시 그럴듯한 이야기다.
오딘이 내 주변 사람을 인질로 대뜸 잡는 건 그가 궁지에 몰렸다는 소리밖엔 안 된다. 오딘은 날 쳐내기보다는 어떻게든 쓰고 싶어 할 테니까.
내가 알아챈 ‘덮어쓰기’의 문제를 오딘이 모르고 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덮어쓰기’를 하면 할수록 찌꺼기가 강해진다는 걸 알고 있으리라. 그걸 안 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종말을 막고자 한다면야…….
“이쪽이 더 그럴듯한가.”
“네? 뭐가요?”
이라호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봤다.
“아, 혼잣말. 그냥 견제가 어떤 식으로 들어올까- 생각했지.”
“아하, 그거 말인데요. 아무래도 언론을 움직이지 않을까요?”
언론을?
고개를 갸웃하며 이라호드를 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오디슨이 튀는 걸 싫어해서 견제하는 거라면, 기존 기득권일 거 아니에요? 그러면 당연히 언론 쪽이랑 연줄이 있다 생각해야죠.”
그것도 그렇다.
뭐, 이라호드에게 거짓말로 둘러댄 데에 대한 답변이라 별 신경을…….
으음? 언론이라.
“그렇군.”
“확실히 그럴듯한 이야기죠?”
“그래, 언론을 움직이는 게 좋겠군.”
“네? 그게 무슨…….”
아, 내가 견제 받을 것에 관한 이야기였지, 참.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라호드 덕에 오딘을 찌른 뒤가 든든해졌다.
“아, 그러니까… 언론이랑 괜히 척을 안 지는 게 좋겠다 싶어서.”
“그야 그렇죠. 혹시 광고나 예능… 생각하시는 거예요? 안 그래도 그 님프가 오디슨한테 들어오는 제안이 많다고 푸념하던데.”
뭐, 이미지 관리가 나쁜 건 아니지.
그나저나, 대체 오딘은 어떻게 움직일 셈이지?
흐음- 침음을 흘릴 때, 훈련장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배달 왔습니다~”
익숙한 목소리.
토르손이다. 내가 홀로 찌꺼기를 상대하러 간다고 하면, 가장 껄끄러운 게 토르손 이 녀석이다. 괜히 따라오겠다는 놈을 떼어 놓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냥 데리고 왔다. 이놈만 데리고 오면 이상해 보일까 봐, 아슬라 아줌마와 라드게리타도 데리고 왔다. 두 사람은 전생에서도 발할라에 금방 적응했으니, 이번도 비슷하겠지.
“일은 할 만하고?”
“뭐, 이그나르 형님이 잘해 줘서 할 만하지. 대장은? 싸울 상대가 없다고 TV나 신문에서 떠들던데.”
“뭐, 그렇지.”
어깨를 으쓱이자, 토르손이 피식 웃었다. 그러다 잠깐 표정을 바꿨다.
저 표정은… 뭔가 중요한 싸움이 있기 전에 짓던 표정인데……?
“그, 혹시 델로스섬이라는 데가 어딨는지 알아?”
흠칫, 몸을 떨었다.
이라호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델로스섬이라니. 올림포스 영역이잖아요. 거긴 갑자기 왜요?”
아, 그게… 그냥 책을 읽다가 나와서…….“
거짓말이다.
저 곰탱이 같은 놈이 책을 읽다니.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라호드는 그 말에 “그래요?” 하고 되물을 뿐. 의심을 않는 모습이다. 그야, 이라호드가 토르손이 어떤 놈인지 아직 잘 모를 테니까.
“책에서 봤다면야 알 수 있는 이름이죠. 워낙 유명한 섬이니까.”
“…어, 그래요?”
“네, 아폴로와 아르테미스의 고향인걸요.”
토르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허… 이거 봐라? 절로 입꼬리가 씰룩인다.
“일단, 이라호드. 밥부터 먹자.”
“네, 뭐. 오늘의 메뉴는… 와! 돈가스네요? 오디슨 친구는 생긴 거만 보면 생고기를 뜯어 먹게 생겨서 요리를 참 잘한단 말이죠.”
“그렇지? 아, 그리고 토르손…….”
“응?”
녀석이 눈을 끔뻑인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순간, 마법을 펼쳐 회색 외눈을 가렸다.
내 주변인이면서, 오딘이 생각하기에 나와 비견될 법한 가능성을 가진 녀석. 오딘이 견제로 내놓은 게 바로 이 녀석이다.
토르손이 강해질 수 있다는 건 안다. 확실히 오딘은 괜찮은 패를 뽑았다.
하지만 내가 델로스섬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
성공이었다.
과연 토르손이라는 놈은 적당한 지원이 있으면 쑥쑥 자랄 놈이었다. 혼자서 너무 빨리 커 버리는 오디슨과 달리, 적당한 지원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놈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딱 좋지. 게다가…….”
오디슨이라는 놈이 니플헤임에서 건져 올 정도로 총애하는 부하.
견제 수단으로서는 만점이다.
오딘이 끌끌 웃었다.
그는 흘리드스캴프에 앉은 채 토르손의 행보를 바라보았다.
비밀로 하라는 말을 잘 들은 덕에 몰래몰래 움직이고 있었다. 이그나르라는 전사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휴가를 내고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르손은 엉성한 조각배를 타고 배 위에서 기도를 올렸다.
-오딘이시여! 이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갈 힘을 주소서!
주고말고.
오딘은 에기르에게 연락하여 토르손의 배를 보호하라 일렀다. 토르손은 에기르의 보호를 받으며 올림포스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거친 항해였지만, 그는 단단히 준비를 했는지 형형한 눈빛을 뽐냈다.
그리고 올림포스의 영역, 그중에서도 감시의 눈길로 가득한 곳에 접어들자 흘리드스캴프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오딘이 쯧, 혀를 찼다.
“썩어도 준치라 이건가? 마법결계를 쳐놨군. 하지만…….”
오딘이 웃었다.
흐릿한 시야로 본 마지막 장면은 토르손이 타른카페를 뒤집어쓴 채 델로스섬에 오르는 모습이었다.
“제우스, 언제나처럼 회귀자를 얕봤구나.”
끌끌끌, 오딘이 웃었다.
한편, 델로스섬에 닿은 토르손은…….
“…대장,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오딘께서 내게 비밀리에 내린 명령인데…….”
“쯧쯧, 토르손. 이 대장을 못 믿는 게냐? 에기르를 이용하는 법, 그리고 타른카페. 누가 구해 준 것인지 모르더냐? 게다가 오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하는 걸 몰랐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 그러네?”
오디슨이 씩 웃었다.
“만일 오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하는 게 안 된다 생각하셨으면, 진작 우리를 막으셨을 게다.”
“그렇네. 대장 말이 맞아.”
토르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딘이 비밀리에 움직이라 말했지만, 오디슨은 진작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오딘께서 미리 귀띔하신 것이리라.
토르손은 그리 생각했다.
그는 오디슨이 마법을 쓸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오딘도 모르고 있겠지.’
오디슨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얕보지 마라.”
자신만이 회귀했을 거라 생각하는 오딘에게 날리는 조소였다.
“그래! 얕보면 안 되지!”
토르손은 오디슨의 말을 다르게 해석하고 긴장의 끈을 꽉 죄었다.
오디슨은 그저 머쓱하게 웃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