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83화 (183/208)

# 183

183화. 번개 (2)

“시원하다고?”

이그나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토르손이 두툼한 점퍼 앞섶을 여미며 혀를 내둘렀다.

“대장은 원래도 추위를 별로 안 타긴 했지만… 좀…….”

“저놈 저거, 신이 되고 인간미가 없어졌어.”

오디슨이 쯧쯧 혀를 찼다.

바보 둘이 헛소리를 뱉는 게 영 못마땅했다.

그때, 헤라클레스가 볼을 긁적였다.

“뭐… 그리 춥진 않은데……?”

“허, 영웅 형씨도 영 인간미가 없구만?”

“크흐흐. 그야 난 날 때부터 반신이었으니까.”

“퉤, 재수 없는 놈들!”

이그나르가 투덜댔다.

헤라클레스는 어느새 이그나르, 토르손과 친해져 낄낄거리기 바빴다.

오디슨은 그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휘휘 저었다. 번잡스러운 게 영 취향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우, 추워.”

찰싹 매달린 크레네가 애교를 부리자, 오디슨이 푸근한 미소를 띠었다. 언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나- 싶을 정도로 확 바뀐 표정이다.

이그나르가 그 꼴을 보고 쯧쯧 혀를 찼다.

“나도 얼른 안사람을 데리고 올라가든가 해야지… 에잉, 쯧!”

“흐, 그것참… 부럽군.”

헤라클레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어떻게든 탈출했지만, 헤라클레스의 아내인 헤베는 그렇지 못했다. 헤라클레스와 헤베의 쌍둥이 아들인 알렉시아레스와 아니케토스 역시, 올림포스 붕괴에 휩쓸렸다.

헤라클레스가 자신보다 더 급이 낮은 오디슨의 휘하에 들어오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복수.

‘…아버지, 기다리시오. 당신의 아들이 가족의 복수를 하고자 하니.’

으드득, 헤라클레스가 이를 악물었다.

이라호드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녀가 잽싸게 입을 열었다.

“자자! 둘 다 그쯤 해 둬요. 우리 놀러 온 거 아니잖아요?”

짝짝- 박수로 시선을 끈 발키리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일단은 엘류드니르로 가서 헬을 뵙고, 허락을 받아야죠.”

오디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온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뇨르드에게서 배신자들의 정보를 캐내는 것. 두 번째는 헬의 지원을 받는 용병단, 할랴헤랴르를 별동대에 배속해도 되겠느냐- 허락을 받는 것.

무슨 일을 하든 간에 헬을 만나야 했다.

그리고 마중이 나왔다.

“오디슨 님!”

망자군단의 군단장, 강글라티.

오디슨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강글라티. 어찌 직접 나오셨소?”

“하하하! 그야, 오디슨 님이 오시는 거 아니십니까? 차후 헬의 반려가 될 분! 어떻게 부하를 보내 모셔오라 할 수 있겠습니까?”

너스레를 떠는 강글라티.

오디슨은 새삼 자신을 사랑하는 여신의 위상을 느꼈다.

위그드라실의 9세계 중 하나를 다스리는 헬. 그녀의 남편이 된다는 것은 9세계 그 어디에서도 오디슨을 무시할 수 있는 자가 없어진다는 소리였다.

오디슨은 과한 대접에 떨떠름했지만, 금세 받아들였다.

헬의 반려가 되려면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여겨야 한다는 걸 알았다.

오디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부탁하오.”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강글라티가 빙그레 웃으며 일행을 안내했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망자군단의 호위를 받으며 엘류드니르로 곧장 향했다. 니플헤임에 있는 망자들과 외부인들이 모두 그 광경에 움츠러들 정도로 장엄한 마중이었다.

그리고 엘류드니르.

적막하지만 동시에 화려한 궁전에 닿았을 때.

“오디슨!”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헬이 직접 문 앞까지 나와 오디슨을 맞이한 것이다.

오디슨이 빙그레 웃으며 달려드는 헬을 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그래. 그보다 얼굴이 반쪽이 되었군.”

오디슨이 안타깝다는 듯 헬의 볼을 쓰다듬자,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 볼을 붉혔다. 평소의 차가운 헬을 알던 이들은 모두 눈을 비볐다.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는 건가?”

“어, 어어… 여왕 폐하가… 어, 음…….”

망자군단에 소속된 이들이 떨떠름해 하든 말든, 오디슨과 헬은 그간 떨어져 지낸 기간을 지우려는 듯 딱 달라붙어 있었다.

이라호드가 입술을 삐죽였다.

“치.”

“오랜만이잖아요. 너무 그러지 말아요.”

크레네가 쓴웃음을 흘리며 이라호드를 달랬다.

여자가 셋이나 되다 보니, 질투가 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크레네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서로 반목하면 오디슨은 셋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모두 버리고 떠날 사람이야.’

게다가 셋 중 하나를 고른다고 할지라도, 3분의 1이라는 확률에 운명을 맡기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불쾌해도 참는 수밖에.

헬 역시 그런 마음을 잘 알았다.

“아, 일단 들어가자.”

헬이 오디슨과 떨어져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그들을 안으로 이끌었다.

궁전 앞에 세워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이라호드와 크레네를 배려하면서도, 헬은 싱글벙글이었다.

‘적어도 오늘은 오디슨을 독점할 수 있을 거야.’

헬의 마음에 귀여운 욕심이 자리 잡았다.

별일이 없다면, 그녀가 바라는 대로 되었으리라.

그래, 별일이 없다면.

“으음?”

강글로티가 눈살을 구겼다.

헬과 함께 오디슨 일행을 기다리던 강글로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보? 왜 그래요?”

“아니, 땅이 떨린 것 같아서…….”

“땅이요? 아무렇… 응?”

드드드- 묘한 진동이 있었다.

강글로트도 알아챌 정도의 진동. 갑작스러운 지진이라니?

수르트가 폭주하여 날뛸 때야 지진이 잦았다지만, 그 외에는 지진이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무슨 일이지?’

강글로트가 미간을 좁혔다.

“여보, 이게…….”

“일단 진동이 전해지는 곳이 어디인지 파악해야…….”

콰아아앙!

“어, 어엇?”

갑작스레 터져 나온 굉음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도시 저편에서 굵은 물줄기가 치솟았다.

오디슨이 눈썹을 찌푸렸다.

“저건……?”

헬이 입술을 씹었다.

“나스트론드 방향! 강글라티!”

“옛!”

“당장, 무슨 일인지 살펴봐!”

“알겠습니다!”

강글라티가 명을 받들었다. 하지만 헬의 명령이 수행되는 일은 없었다.

콰과과과과- 어마어마한 물이 니플헤임을 뒤덮었다.

“아아악!”

“뭐, 뭐야! 기계가! 기계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

“어푸, 어푸!”

무려 엘류드니르 입구까지 물이 밀려왔다.

그리고 오디슨은 그 물에서 낯선 느낌을 받았다.

짠내가 나는 물.

“…뭐야, 바닷물이잖아? 바닷물이 왜……?”

이그나르가 중얼거렸다.

물푸레나무 부족과 달리 해안가를 끼고 있던 얼음 땅 부족 출신. 바닷물 냄새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단란하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뇨르드가 무슨 짓을 한 모양이군. 헬, 미안하지만 저쪽으로 가 봐야겠다.”

오디슨은 그 말을 남긴 채 나스트론드 방향으로 달렸다. 그 뒤를 헤라클레스와 이그나르, 토르손이 뒤따랐다.

이라호드와 크레네는 잠깐 머뭇거렸다. 헬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깐이었다.

“…가 볼게요.”

“으음, 그, 금방 정리될 거예요!”

이라호드가 청동 날개를 펼쳤고, 크레네가 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오디슨의 뒤를 따르는 건 금방이리라.

강글로트가 머뭇거리며 헬을 살폈다.

“그, 여왕님?”

부들부들.

헬의 몸에서 검고 찬 기운이 스멀스멀 뿜어졌다.

강글로트가 침을 꼴깍 삼켰다.

“뇨르드, 뇨르드…….”

중얼거리는 헬은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을 지경.

헬의 눈가에는 서늘한 원망이 가득했다.

그리던 님을 만났건만! 그 달콤한 시간을 방해하다니!

헬이 싸늘하게 외쳤다.

“강글라티!”

“옛!”

“나를 따라와라!”

헬이 천천히 걸었다. 그때마다 출렁이며 바닥을 적시던 바닷물이 쩌적- 얼어붙었다.

강글라티는 식은땀을 흘렸다.

‘…여왕께서 이토록 분노하신 적이 있었나?’

강글라티는 긴장감을 숨길 수 없었다.

망자군단이 헬의 뒤를 따랐다. 모두가 입을 꾹 다문 채 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자 했다.

저벅저벅- 발소리만이 적막하게 울렸다.

* * *

허, 참.

“…나한테 귀신이라도 붙었나?”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 뒤 뇨르드를 심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헬과 만나자마자 뇨르드로 추정되는 이가 난동을 피우다니.

-끼이이…….

건틀렛이 가늘게 떨렸다.

아, 귀신이 붙긴 했군.

머쓱하게 웃으며 건틀렛을 쓰다듬었다.

“네게 한 말은 아니었다.”

툭 내뱉었다.

건틀렛 속 악령은 여전히 낑낑 울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한참. 소동의 원인을 볼 수 있었다.

“…빌어먹을.”

짜증이 터져 나왔다.

온몸이 물로 이뤄진 괴물이 괴성을 내뱉으며 팔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크어어어! 크아아악! 오딘! 오- 딘!

저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화산에 잠들어 있던 수르트와 닮은 괴물. 수르트가 불로 된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 괴물은 물로 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수르트보다 까다로워 보인다는 걸까?

나를 따라온 일행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수르트는 뭔가… 그래도 찌르면 죽을 것처럼 생겼었는데… 저건…….”

“물로 된 놈이 찌른다고 죽을까요, 형님?”

“안 죽을 거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이그나르와 토르손이 인상을 와락 구긴 채 이런저런 말을 나눴다.

헤라클레스 역시 끙- 앓는 소리를 냈다.

“물로 된 놈이라면, 목을 졸라 죽일 수도 없잖아.”

네메아의 사자던가? 창칼이 통하지 않는 괴물을 목 졸라 죽였다던 허큘리스의 영웅담을 들어본 바 있다.

뭐, 어찌 됐든…….

“일단은 찔러 봐야지.”

혹시 모르지. 물로 된 괴물이라도 창이 통할지.

내 창이 보통 물건도 아니고, 재앙을 삼키는 레바테인이 스며든 창이다.

창을 꽉 쥐고 다리에 힘을 빡 넣었다.

“흐읍!”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마구잡이로 주변을 박살 내던 뇨르드가 날 바라보았다.

-으어어어! 으어어! 오디이인……!

“완전히 맛이 갔군!”

제대로 된 생각을 아예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신이라는 작자가 고문에 굴복하여 저딴 타락을 하다니.

부끄러울 지경이다.

-으어어어어!

부우우우웅!

물로 이뤄진 팔이 날아들었다.

거대한 파도와 같은 불길함이 들었다.

“흐앗!”

잠깐 매로 변해 그 궤적을 피해 냈다.

쉬이이잉-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콰드득! 내 아래쪽에 있던 건물이 으깨졌다.

물은 부드럽지만, 그 양이 많아지면 부드럽지 않다.

그 무엇도 박살 낼 수 있는 힘이 서린다. 해일이 무서운 이유가 무엇이던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물이 일시에 덮치며 해안가를 완전히 부숴 놓기 때문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지금 내게는 별거 아니다.

“안 맞는 주먹질만큼 의미 없는 것도 없으니.”

부우웅!

재차 날아드는 주먹을 쏜살같이 피했다.

순식간에 매로 변신하는 건 어색하지만, 못할 일은 아니었다. 두 번에 걸쳐 그리 변신하자 이제는 요령이 좀 생기기도 했다.

-으어어어!

뇨르드는 짜증이 나는지 괴성을 토했다.

끌끌, 웃음을 흘리며 다시 사람으로 변해 창을 휘둘렀다.

됐다. 이놈이 수르트와 같은 ‘재앙’이라면 이 창을 경시할 수 없을 터! 이대로…….

“응?”

찰방!

손에 닿는 느낌은 그저 물웅덩이를 찌른 듯한 감각뿐.

뇨르드가 나를 바라본다.

-오디이인…….

젠장할! 정말로 아무런 효과가 없을 줄이야!

전력을 다해 찌른 탓일까?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다.

“…허.”

내 눈앞에 커다란 주먹이 보인다.

뇨르드가 휘두른 주먹이다. 매로 변해 날아간다 해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제대로 날아온 주먹. 이를 어째?

어쩌긴 뭘 어쩌겠나?

“칫!”

이를 악물고 팔을 교차해 얼굴과 가슴을 보호했다.

팔다리가 부러진다 해도 죽지는 않겠지.

충격에 대비했다.

그때.

“얼어붙어라!”

쩌저적!

서늘한 한기가 날 스쳐 날 노리는 주먹을 비켜 나갔다. 주먹이 얼어붙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었으리라.

등골을 따라 소름이 쭉 돋았다.

다행스럽게도, 헬은 그리 어리석지 않았다.

아니, 헬은 똑똑한 여자였다.

-으어어어어!

첨벙!

날 노리던 주먹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래쪽이 물난리가 나긴 했지만, 나는 솜털 하나 젖지 않았다.

헬이 얼린 것은 뇨르드의 어깨. 주먹을 휘두르려면 허리와 어깨가 필수다. 허리야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지만, 어깨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찌 주먹질을 하겠나?

“후우!”

매로 변신해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라호드가 내게 잔소리를 해 댔다.

“아니! 통하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냥 냅다 달리면 어떡해요!”

쓰게 웃으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누가 안 통할 줄 알았겠는가? 나름 레바테인을 흡수한 내 창을 믿은 거지.

하지만 하계에서 들은 전사장의 조언을 떠올렸다.

-잔소리하잖아? 그럼 일단 들어. 괜히 입 열면 골치 아프다.

그 이야기를 하던 전사장의 얼굴에는 할퀸 상처가 가득했었지. 아마, 전사장이 잔소리에 뭐라 한마디 했던 모양이다.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저걸 어떻게 없애지?”

이그나르의 말.

토르손과 허큘리스, 크레네.

모두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크레네가 물의 님프였던가?

“크레네, 어떻게 할 수 없겠나?”

“…저는 님프예요, 오디슨. 지금 오디슨은 님프한테 포세이돈과 맞붙으라는 것과 똑같은 말을 하는 거라구요.”

…아무래도 님프가 바다의 신과 맞붙을 수는 없겠지.

쓰게 웃을 때 뇨르드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끄어어어, 끄어어어!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

설마? 황급히 고개를 틀어 헬을 바라보았다.

검고 찬 사기(死氣)를 휘감은 채 싸늘한 표정을 한 헬이 보였다.

-끄으으……!

콰득, 콰드드득!

얼어붙었던 어깨가 천천히 녹았고, 떨어져 나갔던 팔이 재생되었다.

지독한 놈이다. 헬도 그 점을 알아챘는지 칫- 혀를 찼다.

“헬!”

“…응?”

“놈을 죄다 얼릴 수 있겠나?”

“으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헬이 고개를 끄덕였다.

히죽 웃으며 말했다.

“놈은 얼어붙으면 힘을 못 쓴다! 얼고 난 뒤에 어찌 그 몸을 녹이는지 보지 않았나?”

“아! 더 많은 물로…….”

“그래, 그러니… 일단 얼리고 내가 때려 부수면 되겠지!”

“좋아! 그러면…….”

헬의 몸에서 가공할 신성이 뿜어져 나왔다.

비너스의 신성을 얻은 나로서도 짐작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양의 신성이었다. 혀를 내둘렀다.

“과연, 니플헤임의 지배자…….”

명계를 다스리는 신의 위치는 절대 낮지 않다. 플루토 역시 영혼이 아닌 신성을 바탕으로 나와 싸웠다면? 내가 패배했을지도 모른다.

헬의 신성이 권능을 이룬다.

니플헤임의 찬 공기가 차갑다- 수준을 벗어났다. 얼어붙는다.

공기가 얼어붙어 서리가 끼고, 공기가 얼어붙어 습기가 눈발이 된다.

하늘에서부터 내리는 눈이 아니라 헬에게서 시작되는 눈.

“오디슨!”

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창을 움켜쥐었다.

-끄어어, 오디이인……! 오딘! 으어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바다의 신을 죽일 때가 되었다.

헬이 뭉쳐진 권능을 내뻗으려는 순간, 청명한 목소리가 그녀를 막아섰다.

“안 돼!”

프레이야였다.

헬이 눈살을 찌푸렸다.

“프레이야? 언제 니플헤임으로 온 거지? 보고를 받진 못했는데?”

“그건… 아니, 잠깐! 아버지를 죽일 셈이지?”

프레이야의 말에 헬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야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안 돼! 아버지를 죽이지 마!”

“그게 무슨 개소리지? 이 난장판이 안 보이는 건가? 게다가 이미 타락했다. 그런데도 그냥 놔두라고?”

“아, 아냐… 저건 아버지가 한 게 아니야!”

“프레이야. 개소리는 그만해라.”

헬이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네 아비가 죽기 전, 네가 죽는 수가 있다.”

“으윽……!”

프레이야가 움찔 몸을 떨었다.

미의 여신이란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는 권능을 이용해 싸움을 멈출 수 있지만… 싸움이 시작되고 난 뒤에 멈추기란 힘들다. 게다가 프레이야보다 더 신성이 큰 헬이라면? 프레이야가 절대 멈출 수 없다.

프레이야가 눈물을 글썽이다 나를 보았다.

“오디슨, 오디슨… 제발……!”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뇨르드가 이대로 죽는 것도 사실 골치 아픈 일이다. 그에게서 배신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야만 하니까.

“너도 배신자라고 의심하고 있다.”

“뭐……?”

프레이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뇨르드의 곁에 붙어 있던 호위들은 모두 세스룸니르의 투사들. 게다가 프레이야는 뇨르드의 딸이다. 뇨르드 다음으로 의심 가는 건 분명 프레이야다. 당연한 일 아닌가?

프레이야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난, 배신자가 아니야.”

“모든 배신자가 그리 말하지.”

싸늘한 어조에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절대 아니야. 분명 그런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제안을 받았다?”

프레이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아버지를 막을 테니, 헬을 멈춰 줘. 아버지를 막고 난 뒤 제대로 이야기를 해 줄 테니까.”

그저 뇨르드를 막겠다는 말에 알겠다- 대꾸할 순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주지. 오랜 시간을 주진 못한다. 그걸 알아 둬라.”

“오디슨!”

헬이 내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어쩌겠나?

배신자들의 꼬리를 잡을 기회를 날릴 수도 없는 노릇.

이대로 뇨르드를 죽인다면 프레이야 역시 우리와 싸우려 할 터. 미의 여신이 적으로 돌아서게 된다면? 배신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날지도 모른다.

나는 미안하다는 눈빛을 헬에게 보낸 뒤, 프레이야에게 말했다.

“10분.”

프레이야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뇨르드를 정상으로 되돌리고자, 그를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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