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80화 (180/208)

# 180

180화. 내부 균열 (2)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승부. 연이어 역전에 역전이 벌어지는 전장의 상황이지만, 그게 정말로 ‘원점’은 아니다.

신도 지친다. 영웅도 지친다. 그리고 찌꺼기들 역시 지친다.

아무리 거센 불길이라도 태울 재료가 없다면 사그라들기 마련. 무기를 휘두르는 데 들어가는 체력이 떨어진 상황.

전쟁을 시작할 때와 달리, 거친 숨소리가 전장에 짙게 깔렸다.

-크으으, 죽어라, 죽어!

“커흑… 내, 내가 그냥… 당할 것 같으냐아아아!”

-큭! 놔, 놔라! 놔!

최후를 직감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치는 발버둥.

체력이 가득한 상황이었다면 쉽게 떨쳐 냈을 우악스러운 움직임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몸에 매달린 게 그저 죽음을 앞둔 자 하나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로마저 손발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크아아악!

그 결과는 동귀어진이다.

깔끔하게 이어지던 전쟁이 어느덧 끈적한 늪을 닮게 되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예외는 있다.

“가라! 가! 오디슨을 죽여라!”

버럭 소리치는 회드르.

그의 손짓에 최소 대전사급을 넘는 찌꺼기들이 오디슨에게 달려들었다. 오디슨이 보통 에인헤리였다면 저항조차 제대로 못 했으리라.

하지만 오디슨은 보통이 아니었다.

-죽어라!

새를 닮은 찌꺼기가 재주를 앞세워 허공을 가로지르며 돌진했다.

비행이라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재주가 아니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십 가지 방식이 더 추가되니까.

예를 들자면? 공격이 날아들 때에 피할 수 있는 방향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게다가 공격을 할 때도 공격의 방향이 하나 더 늘어난다.

가위바위보로 따지자면 상대가 낼 수 있는 게 3개뿐인데 비해 이쪽은 4번째 패를 낼 수 있다는 것.

그 유리함은 딱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짚었다.

“어디로 치고 들어올지 뻔히 보인다는 건, 상대가 쉽게 받아칠 수 있다는 소리다. 잘 들어 둬라, 새 대가리.”

-무슨 개소리냐!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네 생의 마지막 수업이다.”

푸욱!

-컥!

오디슨은 말만 그럴듯한 인물이 아니었다. 툭 내뱉는 말이 끝난 직후, 제 말을 스스로 실천했다.

위치를 앞세워 찍어 누르는 공격.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공격은 분명 위협적이다. 하지만 오디슨은 모든 공격의 약점을 안다.

“닿지 않으면 쓸모도 없다.”

싸움을 잘하는 비법이나 마찬가지다.

다 피하고 다 때리면 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짓이지만, 오디슨은 할 수 있었다. 아니, 오디슨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찌꺼기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이었다.

-마, 말도…….

말도 안 된다 소리치고 싶었지만, 찌꺼기의 가슴을 찌른 창이 그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게 더 빨랐다.

찌꺼기가 허공에서 날아들며 수없이 많은 변화를 주었지만, 그것도 엇비슷한 상대에게나 통하는 것.

오디슨은 창을 뽑아 피를 털어 냈다.

“흥.”

촤악!

창에 묻은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오디슨이 눈살을 좁히며 회드르를 바라보았다.

회드르가 꿀꺽 침을 삼켰다.

“뭐, 뭣들 하나! 어서 저놈을 죽여!”

바락바락 소리치지만, 찌꺼기들은 함부로 달려들 수가 없었다.

조금 전 광경을 비롯해 이제까지 본 게 너무 많았다.

오디슨을 상대하려 하며 무작정 달려든다? 자살이다.

-크윽…….

-저런 괴물 같은 자식……!

-도, 동시에 가자!

찌꺼기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하는 말.

오디슨이 피식 웃었다.

“전쟁 한복판에서 차라도 마실 셈인가? 안 오겠다면, 내가 가지.”

오디슨이 먼저 달려들었다.

그가 향하는 곳 끝에 있는 것은 물컹물컹해 보이는 몸을 가진 찌꺼기. 맷집으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다 자랑하던 놈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오디슨이 찔러 죽인 상대 중 제각기 강점을 지니지 못한 이는 없었다.

-제, 젠장!

물컹물컹한 찌꺼기가 화들짝 놀라며 무기를 치켜들었다.

뭐가 어찌 됐든 일단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다른 찌꺼기들은 오디슨이 공격하는 그 짧은 빈틈을 노리기로 마음먹었다. 무기를 꼬나 쥐고 오디슨의 공격을 기다렸다.

오디슨도 잘 안다.

가시 함정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신기했다.

‘대체 왜 내가 저기로 뛰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속으로 혀를 찬 오디슨은 물컹물컹한 찌꺼기의 바로 앞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온 힘을 다해 바닥을 박찬 덕인지, 오디슨의 몸은 아무런 제지 없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어……?

물컹물컹한 찌꺼기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목표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 그리고…….

-피, 피해!

방어할 준비가 안 된 동료가 죽겠구나- 하는 당혹.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약간 늦었을 뿐이다.

그 약간이 생사를 갈랐다.

“흐읍!”

푹푹푹!

하늘에서 창이 떨어져 내렸다. 오디슨이 창을 찔러 넣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적들은 당황했다. 오디슨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으니까.

그 당황은 길지 못했다.

-켁……!

빠르게 휘몰아친 연속 공격에 우르르 쓰러졌다.

찌꺼기들 중에서도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마저도 오디슨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아……!

물컹물컹한 찌꺼기는 동료들이 쓰러지는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커억……!

콰드득! 목덜미를 꿰뚫고 창이 입으로 튀어나왔다.

물컹물컹해서 어지간한 날붙이나 둔기로는 충격을 받지 않던 찌꺼기다. 다만, 그것도 어느 정도일 뿐.

척추를 제대로 꿰뚫는 공격에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형체를 잃고 흐물흐물한 찌꺼기였다면 또 모르리라. 아니, 사실 그렇다 해도 오디슨의 창은 그 찌꺼기를 확실히 죽였을 것이다.

재앙을 잡아먹는 가지, 레바테인의 힘이 있으니까.

“아…….”

회드르는 갑자기 사라지는 인기척에 탄식을 흘렸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한들 회드르는 신성을 가진 신.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지금 한순간에 대전사급 찌꺼기가 넷이나 쓰러졌다.

전체 찌꺼기 중에서 상위 5% 안에 드는 전사들이 한 명의 창을 막아 내지 못하고 그야말로 몇 초 사이에 소멸한 것이다.

“아, 아으……!”

회드르의 마음속 공포가 덩치를 키웠다.

회드르는 당황했다. 오디슨이라는 놈이 왜 이렇게 센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는 두 번째 문제다. 지금 당장 코앞에 오디슨이 있다는 게 문제다.

“막아! 막아아아!”

소리 질렀다.

회드르의 외침에 찌꺼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회드르가 말했다.

“놈도 무한하지는 않다! 아무리 신이라 해도 싸움을 계속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막아라, 막아!”

회드르는 찌꺼기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자 마구 말을 던졌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그건 꽤 효과가 있었다. 이제까지 싸워오던 오디슨이니까. 상식적으로 지칠 때가 되었다.

찌꺼기들과 회드르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친다고? 내가?”

오디슨이 피식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디슨이 지친다는 것은 신성이 회복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밖에 없다.

신성을 쓰지도 않고 잡을 수 있는 찌꺼기를 상대한다? 온종일 창을 휘둘러도 상관없다.

오디슨은 <변치 않는 자>.

가벼운 피로 따위가 그의 팔다리를 묶을 수는 없었다.

“어디 한번 해 보자!”

크하하- 오디슨이 웃으며 찌꺼기들을 상대했다.

찌르고 휘두르고 때린다. 가벼운 몸짓이지만,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오디슨의 창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찌꺼기의 목숨이 끊어졌다.

회드르는 그 모습이 오싹했다.

‘괴물, 괴물이다.’

수백 년 이상 신으로 지낸 회드르다. 하지만 고작 신이 된 지 몇 년. 젊다 못해 어린 오디슨에게 공포를 느꼈다.

공포가 자라는 텃밭이라는 어둠이 공포를 느끼다니?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드르는 어둠으로서 오디슨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아, 아……! 마, 막아라! 시, 시간을 벌어!”

외침과 동시에 권능을 발현했다.

어둠이 몰려든다.

어둠 속에서는 시간을 파악할 수 없다. 누구나 있는 경험이리라. 밤에 자고 일어났더니 밖이 어두워 아침인지 새벽인지 구분할 수 없던 경험. 짙게 낀 먹구름 탓인지, 아니면 정말 해 뜰 시간이 안 된 건지. 덜컥 당황하기도 한다. 혹시 너무 오래 자서, 종일 잔 거 아냐?

어둠 속에서는 공간을 파악할 수 없다. 깜깜한 밤에 수도 없이 지나다닌 화장실로 가는 길. 전등을 켜자니 낭비 같고, 정말 많이 지나다닌 짧은 길인데도 더듬더듬 어색하기 짝이 없다.

회드르가 지닌 권능은 그것이었다.

남의 눈을 가리고, 남의 감각을 가리는 것. 가리는 데서 지나지 않고 지워 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권능이다.

오디슨이 인상을 구겼다.

“어딜 도망가려고!”

맹렬히 달렸다. 하지만 찌꺼기들도 거세게 저항했다.

오디슨이 회드르를 잡아 버린다? 여러 가지로 손해가 크다. 찌꺼기들이 가진 신에 대한 반감. 신을 엿 먹이는 그 꿈에서 멀어지고 만다.

그렇기에 찌꺼기들은 제 목숨을 바쳤다.

-크아아악!

-막아! 어떻게든 막아!

마구 엉겨 붙으니 오디슨이라도 무작정 회드르를 쫓을 수 없었다.

동료들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여의치 않다. 오디슨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바쁘다. 이라호드는 헉헉- 거친 숨을 내뱉으며 창을 마구 던지고 있었고, 그 대단한 헤라클레스마저도 찌꺼기를 쓰러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오디슨의 마음이 급해졌다.

“회드르! 회드르! 이 배신자야! 혼자서 도망치려느냐!”

노호성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회드르는 그 고함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집중 또 집중했다. 한시라도 빨리 신성을 엮어 권능을 발동해야 한다.

공포가 회드르를 뒤쫓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크윽!”

급하다 보니 오히려 제대로 권능이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

하지만 오디슨이 쫓아오는 것보다 권능을 발현하는 게 빠르리라.

회드르의 얼굴에 안도가 옅게 깔렸다.

“크흐, 크흐흐……! 돼, 됐다! 살았다……!”

적어도 자신은 살았다.

그 안도에 회드르가 웃음을 지었다.

오디슨은 이를 바락바락 갈며 찌꺼기들을 마구 떨쳐 내는 중.

모든 게 회드르의 생각대로 되는 것만 같았다.

-아우우우우우우!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 * *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예사롭지 않은 등장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적인가?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곧 그 힘이 풀어지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회드르, 더러운 배신자!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으르렁.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거친 목소리.

펜리르가 누런 안광을 줄줄 흘리며 회드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라, 오디슨! 저 배신자의 목을 꺾어 놓아라!

“고맙소, 펜리르!”

고개를 꾸벅이고 앞으로 치달렸다.

회드르의 머리통에 창을 쑤셔 박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찌꺼기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막아라! 몸으로라도 막아!

-신이 없는 세계를 위하여!

찌꺼기들은 제 목숨을 불살라서라도 내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

그러나 멸망의 늑대는 그걸 두고 볼 양반이 아니다.

-버러지 같은 것들!

부우웅!

펜리르의 앞발이 거센 돌풍을 감싼 채 허공을 갈랐다.

가벼운 앞발 치기였지만, 그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꺼져라!

콰드드득!

-크아아아악!

-아, 안 돼! 막아! 막으라고오오!

단순한 앞발 치기 한 번에 찌꺼기들이 모조리 나동그라졌다. 그 손톱에 닿은 이들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운 좋게도 손톱을 피해 낸 이들도 멀쩡하진 못했다.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할퀴기에는 거센 돌풍이 뒤따랐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정말 칼바람이군!”

닿지 않았음에도 뒤따르는 바람이 그들을 할퀴고 떠밀었다.

그 결과, 내 앞을 막는 이들은 사라졌다.

회드르가 있는 곳까지 뻥 뚫린 길이 날 재촉했다.

눈이 마주쳤다.

“아, 안 돼!”

그와 동시에 회드르가 이제까지 만들어 내려던 권능을 포기했다.

어둠을 이용해 도주하기보다는 어둠을 감싸 제 몸을 보호할 생각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게 덜 복잡하다.

‘백발백중 일발 필살’을 노리는 것보다 어떤 지점에 대한 ‘탄막’을 펼치는 게 더 쉽다. 완벽한 한 발은 경제적이고 확실하지만, 드는 시간과 집중이 보통이 아니니까.

회드르가 펼친 방어막, 커다란 어둠이 나를 가로막았다.

이전에도 겪어 본 어둠이었다. 아마 날 아레스에게 보낸 것과 비슷한 종류의 권능이리라. 마구 시공간을 뒤엉키게 한 짓거리.

“발악을 하는군.”

짜증이 치솟았다. 하지만 망설이진 않았다.

이 어둠을 뚫고 가야 회드르를 잡을 수 있다.

나는 거침없이 발을 놀렸다.

“오디슨! 안 돼요!”

이라호드가 고함질렀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잊고 있는 것 같다.

“퀴에네.”

플루토에게 얻어 낸 투구.

잠입에 가장 좋은 투구지만, 이렇게 넓게 펼친 권능을 피하기에도 최고다.

천천히 내 몸이 흐려지고, 주변이 회색빛으로 바뀐다.

그와 동시에 회색 어둠에 닿았다.

본래라면 회드르의 권능에 의해 마구 일그러진 어둠이 날 덮쳐야겠지만…….

“괜찮군.”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내게는 의미 없는 권능이었다.

나도 본래 차원에 관여할 수 없지만, 동시에 그 무엇도 내게 관여할 수 없다. 차원을 넘나드는 데에 시간이 약간 걸리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쓰기 좋은 시점도 없었다.

회드르의 주변에 짙게 깔린 어둠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투구에 쏟았던 신성을 거둬들였다.

천천히 세상이 색채를 되찾았다.

“어떻게……?”

“유피테르가 이건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지?”

그가 비너스를 죽인 탓에 얻게 된 물건이건만.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곧장 창을 내질렀다.

쨍그랑!

회드르의 심장 안쪽, 신성이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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