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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발할라-168화 (168/208)

# 168

168화. 땅 아래의 땅 (3)

눈살을 찌푸린 채 헬을 바라보고 있었다.

헬은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반쯤 식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홱, 머리를 쓸어넘긴 헬이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이 나갔어. 완전히 돌아 버린 게 틀림없어.”

“…잘 안 된 건가?”

내 물음에 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짜증이 풀리지 않았는지, 눈살을 와락 구긴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던 모양.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지?”

“그게…….”

헬이 얼굴을 구겼다.

천천히 플루토의 제안에 대해 말했다.

첫 번째 조건은 크게 신경 쓸 것이 아니었다.

“…흐음, 본인과 아내를 망명시켜 달라? 못 해 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물론, 행정 쪽은 내가 전혀 모르니 아닐 수도 있다.

이라호드의 표정을 힐끗 살피자니, 그녀 역시 의문이 가득했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신 건 아니죠?”

“당연하지. 내가 미친년도 아니고…….”

“그럼…….”

“두 번째가 문제야.”

뭐가 문제지?

헬을 바라보고 있자니, 헬이 헛숨을 내뱉고 말했다.

“니플헤임의 절반을 내놓으라더군.”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덜컥 굳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지나친 조건이었다. 맹목적으로 비너스의 부활을 꿈꾸는 큐피드와 프시케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라호드는?

“…정신이 나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말이야. 아무것도 없이 망명해 와서, 니플헤임의 절반? 개소리지.”

기분이 좋지 않다.

머리를 벅벅 긁고 눈썹을 구겼다.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게 잘못인가?”

내 중얼거림에 헬과 이라호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쉬운 길이라니?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

어깨를 으쓱였다.

내게는 쉬운 길이다. 하지만 플루토에게는 끔찍한 길일 게 틀림없다. 그야.

“주먹이 있는데, 머리를 굴려 말로 하려던 게 문제다.”

팔다리가 멀쩡한데, 머리를 쓸 이유가 어딨겠나?

그냥 플루토의 땅으로 쳐들어가 놈을 쥐어 패면 비너스의 영혼을 내주지 않고 못 배길 터.

그쪽이 나도 편하다.

히죽, 웃음 지었다.

“싸우고 싶다면, 받아 주는 수밖에.”

가자, 플루토에게.

죽음의 주인에게 죽음의 공포를 알려 줄 시간이다.

* * *

올림포스의 영혼이 모이는 곳은 올림포스의 지하다. 어두컴컴한 지하는 한때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치덕치덕 꾸며져 있었으나, 지금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길 뿐.

하데스는 본래 음울한 신이다.

올림포스의 가장 강대한 삼형제 신 중 맏이였으나,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게 삼켜졌다. 이후 막내인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죽이고 삼킨 신들을 토해 내게 하면서, 마지막으로 토해졌다.

제우스는 그를 두고, 자신이 맏이라 주장했다.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의 안쪽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

하데스는 그 점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는 아니었다. 막내 덕에 목숨을 구했으니, 맏이 자리 정도쯤이야.

다만 이후에 제비뽑기로 영역을 정할 때, 하필이면 지하 세계를 영역으로 받았다. 축축하고 어둡던 크로노스의 뱃속을 연상케 하는 지하 세계.

하데스는 이곳이 싫었다. 그래서 지상에서 사는 이들에게 온갖 심술을 부렸다. 그 덕에 하데스와 친한 신은 없다고 할 정도.

그렇게 뒤틀린 성격의 하데스가 유쾌해진 데에는 사랑하는 부인 덕이 컸다.

페르세포네. 봄의 여신.

싸늘한 하데스의 가슴 속에도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봄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

“…페르세포네, 기다리거라. 곧… 곧이다.”

다시 찾아올 봄.

하데스는 그에 매달렸다. 페르세포네가 투덜거리던 것들 때문에 꾸며졌던 지하의 화려함도 이제는 없다.

처음 하데스가 지하 세계를 맡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음울하고 싸늘하며 어두운 곳일 뿐.

하데스는 침대에 누운 페르세포네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비너스를 되살리겠다? 그래, 좋다.”

봄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이 죽어 버려서야 페르세포네가 깨어날 수 없지 않던가? 하데스도 비너스를 되살리는 데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은 봄을 위하여.”

그보다 더 큰 목적이 있을 뿐.

죽어 버린 봄이 다시 싹을 틔우길.

하데스는 바라고 또 바랐다. 어리석은 자들이 대뜸 쳐들어오기를.

차가운 지하에서 하데스는 봄을 꿈꿨다.

* * *

“…하데스의 땅으로 가겠다? 으음… 아스가르드의 승인이 필요할 텐데.”

헬은 오디슨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올림포스가 무너진 지금, 하데스가 쓸 수 있는 힘은 아주 제한적이리라. 올림포스의 붕괴와 동시에 영혼들이 모조리 흩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중요한 영혼들을 어떻게든 잡아 뒀겠지.’

중요한 영혼을 최대한 잡아 뒀다 한들, 1천 정도. 영혼 1천은 쓰기에 따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영혼이 아닌 산 자의 신앙을 바탕으로 신성을 이룬 이에게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과연 승인이 떨어질까……?”

헬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오디슨을 보았다.

오디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 승인이 안 나면 또 어떤가? 몇 번이나 승인 없이… 윽!”

이라호드가 오디슨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승인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닌 게 자랑할 이야기는 아니다. 잘못하면 처벌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오디슨의 입을 막은 이라호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요청은 넣어 볼게요. 그래도…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슬쩍 에로스와 프시케에게 눈빛을 보냈다.

미안하다는 눈빛이었지만, 둘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좀 걸린들 어떻습니까? 어머니가 되살아나실 수만 있다면…….”

“맞아요. 신세 지는 입장에서 이런저런 불만을 터트릴 정도로 염치없진 않거든요.”

이라호드는 쓰게 웃었다.

‘…시간이 ‘조금’만 걸릴까?’

본부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라호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일단, 스마트폰으로 본부에 요청을 넣었다. 이러이러하니 올림포스의 명계에 다녀와야겠다.

그에 대한 답변은 아마 오늘 중에는 받기 힘들 테지. 정상적으로 처리가 된다고 해도 말이다.

“일단 요청은 했고… 어?”

부르르.

스마트폰이 떨렸다. 이게 뭐지? 발키리 학교 동기들이 얼굴이나 보자며 한 전화? 아니면 대출을 종용하는 스팸 문자?

이라호드가 눈살을 구기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어… 어어……?”

오디슨이 물었다.

“뭐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그게… 승인이 떨어졌어요.”

이라호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디슨이 방긋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말했다.

“역시 오딘이시군!”

그 말에 에로스와 프시케가 감탄을 터트렸지만, 이라호드는 웃을 수 없었다. 복잡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건 헬도 마찬가지였다.

두 여자는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을 정리했다.

왜? 왜 이렇게 빨리 승인이 떨어졌지? 무슨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는 무는 생각의 끝에는 두 여자가 모두 같은 지점에 도달했다.

‘…아프로디테가 살아나는 게, 오디슨이 그 신성을 삼키는 것보다 낫다?’

‘오디슨의 힘이 커지는 것보다 조력자가 더 낫다고 여기시는 건가?’

복잡한 표정의 두 여자는 그렇게까지 생각한 뒤에야,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헬과 이라호드. 두 여자가 눈을 마주쳤다.

오디슨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지?”

이라호드가 떫게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게… 너무 놀라서요. 역시, 오딘이시네요, 역시.”

“…그래, 역시는 역시다. 오딘…….”

헬은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라호드는? 오디슨 모르게 헬에게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불안을 떨쳐 냈다.

[이라호드][걱정 마세요]

[이라호드][언제나 그랬으니까요.]

헬은 부르르- 떨리는 폰을 확인하고 미간을 좁혔다.

‘언제나 그랬다? 오디슨에 대한 이야긴가? 이 발키리도 예언을 들은 건가? 그 예언을 들었다면 차마, 이렇게 담담하게는… 아!’

예언을 들은 게 아니다.

뭔가 오딘으로부터 의심스러운 명령을 받았으리라.

헬이 물었다.

[헬][알고 있었나?]

[이라호드][네, 뭔가 명령이 좀…….]

대뜸 이상한 명령이었다- 말하기엔 오딘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헬은 가슴 한쪽을 짓누르는 짐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럼 바로 가면 되는 건가?”

오디슨이 질문했다.

헬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마차를 빌려 주지.”

소리 없는 마차.

그거라면 제우스의 눈을 피해 지하세계로 갈 수 있으리라.

오디슨은 오- 하고 기꺼워했다.

* * *

어두컴컴한 죽음의 궁전.

그곳에 들어선 프시케가 흠칫 놀랐다.

“…여기가 어쩌다 이렇게…….”

이곳에 와 본 것은 그녀뿐이니,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뿐.

큐피드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어?”

“예. 어둡긴 했지만, 화려한 조명들과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가득해 어둡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왜…….”

무언가 불안한 모양인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프시케.

큐피드가 그녀를 안아 달랬다.

이라호드가 말했다.

“올림포스가 붕괴했으니까요. 각 신계의 명계는 분명 독립적인 곳이지만, 동시에 신계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에요. 아마 전기고 수도고 대부분 끊어졌을 거예요. 심지어 영혼을 보호하는 기능조차도 사라졌을지 모르죠.”

“…그럼 어머니는…….”

큐피드가 입술을 짓씹었다.

이라호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하데스가 생각이 있다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영혼까지 놓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다른 신계로 망명한다 생각하면 영혼 한 줌 없이 어떻게 가겠어요?”

다행이다.

만일 비너스의 영혼이 이곳에 없다면? 부활은 아예 물 건너간 셈이다.

명계를 떠나고도 존재하는 영혼은 그리 많지 않다.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영혼이거나, 혹은…….

“찌꺼기.”

그래, 찌꺼기거나.

내가 툭 뱉은 단어에 움찔 일행이 몸을 떨었다.

볼을 긁적였다.

“찌꺼기가 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겨라. 만일 그랬다면… 어떻게든 부활할 방법은 없으니까.”

비다르 역시 그렇지 않았던가?

티르가 괜히 그를 소멸시켰겠나? 아니다. 되살아날 방법이 아예 없으니 그를 소멸시킨 게 틀림없다. 티르가 언제나 말하던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생각하면 확실한 사실이다.

얻을 수 있는 이득을 포기하고 소멸시키진 않았을 테니.

“어쨌든, 플루토를 만나 보는 게 좋겠군.”

내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을씨년스러운 이 궁전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우리는 황량한 로비를 지나, 어둠에 잠긴 대전으로 들어섰다. 그곳의 짙은 어둠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지경.

“이라호드.”

“네, 두 사람을 지킬게요.”

척하면 척이다.

이라호드가 창을 빼 들고, 나 역시 창을 꺼내 들었다.

이 어둠 속에서 기습을 받는다면 꽤 골치 아파지니까.

특히나 큐피드와 프시케는 딱 봐도 약해 빠졌다. 이 두 사람이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비너스의 신성을 가지고 있으며, 비너스의 뜻을 말할 자격이 있는 건 그녀의 아들인 큐피드뿐이다.

꿀꺽- 큐피드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 겁먹을 것 없다. 긴장을 너무 푸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긴장한 것도 문제지.”

내 말에 큐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좋은 말이구나.”

툭,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라 전투 자세를 취할 때, 어둠으로 가득한 대전에 빛이 생겨났다.

불길한 녹색의 빛. 선명한 안광이었다.

“…플루토?”

“그래, 내가 명왕, 하데스다. 멀리서 온 이들이여.”

음울한 목소리.

신성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오랜 세월 죽은 자들의 왕으로 군림한 탓일까?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

플루토가 스윽- 우리 일행을 바라보았다.

“…조금 부족하군.”

부족하다? 거슬리는 말이었다.

인상을 와락 구기고, 플루토에게 말했다.

“뭐가 그리 부족한진 모르겠으나, 댁을 쥐어 패고 비너스의 영혼을 빼앗아 가기에는 넘쳐나는 전력이지. 나 혼자만 해도 충분하니까.”

“클클클, 오만하구나, 오만해! 젊은 치기가 넘쳐흐르는구나! 하지만… 나쁘지 않다. 비너스의 부활? 역시 나쁘지 않다. 하지만…….”

플루토가 눈을 번뜩였다.

산발이 된 머리와 퀭한 얼굴, 모든 것을 놓아 버린 폐인의 몰골을 한 플루토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공짜로 내어 줄 수는 없지.”

큐피드가 외쳤다.

“어떤 대가를 바라십니까? 디스 파테르(Dis Pater, 부유한 아버지)시여. 모든 이들의 영혼을 가진 올림포스 최고의 부자가 당신 아니십니까? 베푸십시오, 디스 파테르. 당신의 베풂을 잊지 않겠습니다."

“디스 파테르, 디스 파테르. 오랜만에 듣는 말이구나. 죽음을 부르기 두려워한 자들이 날 부르는 소리……. 그래, 네 말이 맞다. 올림포스 모든 영혼의 주인인 나는 부족할 게 없지. 단 하나만이 필요할 따름이다.”

“단 하나?”

큐피드가 물었다.

플루토가 클클 웃으며 낫을 꺼내 들었다.

“오오, 아주 공평한 거래지. 아프로디테를 살리고 싶다 했던가? 그렇다면 나 역시 한 사람을 살리고 싶을 따름이다. 너희들이 하나를 살리고, 나 역시 하나를 살린다. 얼마나 공평한가?”

“…한 사람이라면……?”

“내 영원한 반려, 페르세포네. 나는 그녀를 살리길 원한다.”

프시케가 깜짝 놀랐다.

“페, 페르세포네 언니가 돌아가셨다고요?”

“…그래, 그녀가 죽었지. 그리고 그녀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 있다.”

“방법이라면…….”

프시케가 물었다.

플루토의 부인과 친분이 있었다고 했으니, 그리 껄끄러운 부탁은 아니었다. 문제는…….

“넘쳐흐르는 봄의 생명력을 메꾸는 것……. 모든 영혼을 그녀에게 바쳐도, 부족하구나, 부족해……. 그러니…….”

플루토가 눈을 번뜩였다.

“내놓아라, 너희의 영혼을.”

“…영혼을?”

“그래, 신의 영혼이라면 부족하지 않을 터!”

채앵!

“꺄아아악!”

프시케가 비명 질렀고, 플루토가 칫- 하고 혀를 찼다.

그의 낫이 프시케의 목 언저리까지 다가온 채다. 내가 창을 내뻗어 막지 않았더라면? 프시케의 목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으리라.

큐피드가 꽥 소리쳤다.

“이게 무슨……!”

“부족하다, 부족해……. 영혼을 내놓아라!”

플루토가 괴성을 내지르며 다시 덤벼들었다.

하지만 엉성한 낫질이다.

“되도록 좋은 말로 할 참이었건만…….”

“무식한 놈! 네 영혼을 내놓아라!”

끼에에에엑-! 귀곡성이 대전을 가득 메웠다.

희뿌연 영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내게 덤벼들었다.

이라호드가 비명 질렀다.

“오, 오디슨! 조심해요! 영혼의 힘은 보통이 아니에요!”

나도 잘 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던가? 억울한 영혼은 법칙을 무시하고 현상을 일으킨다.

아니, 그저 영혼의 힘이라는 게 그렇다.

내가 쓰는 희망 역시 법칙을 무시한다. 그런 영혼들이 떼거리로 덤빈다?

보통이라면 밀리는 게 당연하다.

-산 자… 산 자다!

-그 몸, 그 생명을 내게 줘!

영혼들이 마구 밀려들었다.

플루토가 미친 듯 웃어젖혔다.

“크하하하! 네 영혼, 영혼을 바쳐라! 신의 영혼이 이 정도나 있다면, 분명… 페르세포네도 다시 눈을 뜰 것이다!”

큐피드가 고함쳤다.

“명왕이 명계의 지엄한 법도를 저버리다니!”

“명계의 법도? 그까짓 게 무어더냐! 나는 그저 페르세포네를 다시 보고 싶을 뿐이다!”

니플헤임의 절반을 내놓으라던 것도 결국 프로세르피나를 되살리기 위함이었던가? 어이없는 일이다.

신의 부활에 필요한 것은 세 가지뿐.

되살릴 신의 영혼과 되살릴 신의 신성, 그리고 그 신에 대한 믿음. 영혼을 마구 끌어모은다고 부활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 플루토도 알고 있으리라.

“영혼도, 신성도, 믿음도 없이 되살아나는 신?”

작게 읊조리고 창을 집어넣었다.

내 행동에 깜짝 놀란 이라호드가 뭐라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영혼들의 아우성에 묻혀 들리지는 않았다.

-산 자의 몸!

-살아날 수 있어! 되살아날 거야! 기다려, 여보!

-나, 나는 이대로 죽을 수 없어!

온갖 헛소리다.

그 영혼들의 뒤에 플루토가 있었다. 영혼들이 날 죽이길 바라는 눈이다. 기대가 선명한 눈.

나는 언제나 저런 눈을 한 적을 반겨 왔다.

“그리하여 되살아난 것이 진정 죽기 전의 신이 맞는가!”

그 기대를 박살 내는 게 즐거웠으니까.

오딘께서 내리신 축복, <프레키>가 발동했다.

영혼을 먹는 늑대.

-어, 어어어?

-으아아아악! 아, 안 돼!

콰드득!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망설일 이유는 없다.

플루토의 기대가 와장창, 깨졌다.

“아, 안 돼! 페르세포네를 위한 영혼들이! 그녀를 되살릴 영혼들이이이!”

절규하는 꼴을 보자니 우습다.

불을 끈답시고 잘 마른 장작을 던진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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