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64화 (164/208)

# 164

164화. 하늘 위의 하늘 (2)

떠들썩한 밤.

이라호드는 자신의 집에 있었다. 언제나 자랑거리던 40평형 아파트가 오늘따라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더 넓고 좋은 집을 원하느냐? 아니다.

그저…….

“으, 나도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같이 갈 걸 그랬나…….”

용기가 부족한 탓이었다.

집은 좋지만, 골드미스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때와 지금은 달랐다. 이라호드는 제 감정을 눈치챘다.

오디슨을 좋아한다.

사랑은 잘 모른다. 하지만 계속 같이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여자가 셋이나 된다는 게 좀 껄끄럽긴 했지만, 나만 선택해! 할 정도로 무모하진 않았다.

셋 중 하나만 고르라면, 당연히 헬을 고르리라.

“…그건 안 될 일이지.”

차라리 정실에 가까운(오디슨은 딱히 정실, 측실 같은 개념을 생각조차 않았다) 위치에 있는 헬에 대항할 동료가 있는 지금이 나았다.

하지만.

“후우.”

아직 이라호드와 오디슨은 애매하기 그지없는 관계다.

오디슨은 마음을 은근히 표현하지만, 직접적이진 않았다. 이라호드는 그를 밀어내지만, 격렬하게 밀치진 않았다.

서로가 한 발짝을 다가서면 그만이건만…….

“…너무 고난이도야.”

이라호드가 고개를 저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연애라는 게 이토록 어려운 것일 줄이야! 대체 한 달에 두 번이나 애인을 갈아치우던 괴르 같은 녀석들은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거지?

이라호드가 혀를 내둘렀다.

이럴 때는 역시, 집단지성의 힘이 필요했다.

“그래, 물어보자.”

차마 괴르에게 물을 순 없었다.

이라호드가 스마트폰을 조작해 신계연맹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주 서식처라고 할 수 있는 프리키리 소모임에 접속했다.

하지만 글을 작성하진 않았다.

“…음.”

한번 둘러본 프리키리 소모임은 심각한 상태였다.

시즌 하나가 끝나고 쉬는 기간이라?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다.

<$$☆망명☆도와드립니다$$>+8

<※최저가※피난! 대출 상담도 OK!>+1

<다음 시즌이 나오긴 할까요……?>+68

<*아스가르드*곤륜*야마토*신국! 어디든 빠르게!>+2

소모임 성격에 맞지 않는 글들이 잔뜩이었다. 광고 글이지만, 소모임장은 그를 지우지 않았다. 아니, 게시글 중에서 소모임장을 찾는 글이 간간이 보였다.

<소모임장 어딨음? 소모임 상태 봐라;>+92

다른 것에 비해 꽤 많은 댓글이 달린 게시글이다.

이라호드가 그를 클릭하고 한숨 지었다.

“…좋은 사람이었는데.”

올림포스에 살고 있던 소모임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같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탓에 메신저에도 등록해 친밀하게 지내던 이의 사망 소식. 이라호드의 마음이 울적해졌다.

슬픔과 동시에 안도가 고개를 들었다.

‘싫다.’

안도를 느끼는 자신이 싫었다.

수르트를 처리한 아스가르드는 저렇게 멸망하지 않을 거라 안심하는 마음이 미웠다. 이라호드는 입을 꾹 다물고 소모임을 빠져나왔다.

신계 연맹 메인 커뮤니티도 사실 꽤 한적한 상황이었다.

연맹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데 그치지 않고, 연맹이 사실상 해체된 상황이다. 그 연맹 소속의 신계도 여럿 골치 아픈 일에 빠져들었다.

올림포스는 멸망이 확실시됐고, 다른 차원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신계- 헤이븐도 치열한 싸움이 한참이었다.

[아니엘: 최근에 복지 쪽이 거의 마비 상태예요. 그래서 죽을 맛…….]

[우리엘: 지금 남쪽 봉쇄선 뚫림. 복지 같은 소리 하네. 얼른 이쪽에 와서 좀 돕기나 해.]

다른 신계와 달리, 유일신을 섬기는 헤이븐은 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 천사들의 힘이 센 곳이었다. 다른 신계가 봉건제라면 헤이븐은 절대 군주정이라 할 수 있다. 힘이 한곳으로 모여 있는 만큼, 무슨 일을 함에 막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이렇게 난리가 났을 때는 머리가 하나인 것보다 머리가 좀 더 많은 게 나았다. 어쨌거나, 헤이븐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대부분이 헤이븐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으니까.

“…요즘은 다 난리네, 난리야.”

오디슨과 어떻게 잘될 수 있을까- 하던 자신의 고민이 하찮은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라호드에게 있어서는 하찮게 여길 수 없는 것이었다.

이라호드가 게시판을 좀 더 살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글을 하나 발견했다.

분명 목록에 있는데도, 이상하게 눈에 안 띄는 글이었다.

심지어 그게 굉장히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디슨, 나랑 붙자! 내가 하늘 위의 하늘을 보여 주겠다!>+1

“으응?”

눈을 끔뻑이고, 내용을 확인했다.

투기장에서 진짜 최고 리그의 힘을 보여 주겠다며 으스대는 글이었다. 작성자는 울르. 댓글은 무플방지위원회 하나뿐.

이라호드가 피식 웃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신명(神名)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발키리의 기본 요건 중에는 신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있다. 당연한 일이다. 상급자의 이름을 몰라서야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우니까.

이라호드는 그 과목에서 거의 최고점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울르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이라호드가 모를 정도라면 별 대단한 양반이 아니리라.

“그냥 오디슨이 인기 좋으니까 관심 모아 보려는 관종인가? T100? 개나 소나 T100이래.”

투기장에 등록된 수없이 많은 이들 중, T100에 이름 올릴 수 있는 것은 딱 100명. 그 정도에 랭크될 신을 모른다? 이라호드는 자신이 그리 무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슬슬 졸려 왔다.

“…자야지.”

크레네는 아마 오디슨의 품에서 잠들었으리라.

아니,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낼지도.

괜히 분했지만, 어쩔 수 없다. 용감한 남자가 미녀를 얻듯, 용감한 여자가 미남을 얻는 것이다.

‘내일은 좀 더 들이대 보자.’

이라호드가 굳게 마음먹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하아암!”

하품하며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이라호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시리얼을 붓고 우유를 붓고 막 먹으려던 찰나, 핸드폰을 확인한 직후였다.

“…그게 어그로가 아니었다고?”

오디슨에게 경기를 펼칠 것인지 물어보라는 투기장 관리인의 메시지.

이라호드가 눈을 끔뻑였다.

대체 울르가 누구야? 어쨌거나…….

“오디슨이 심심해할 일은 없겠네.”

잠들기 전에 굳게 먹은 마음이 아침이 되자 싹 사라졌다.

들이대기보다는 훈련을 도와주면서 좀 더 관계를 돈독하게 하다 보면…….

이라호드는 그리 생각했다.

참 안일한 생각이었다.

부르르!

“…본부?”

이라호드가 미간을 좁혔다. 아침부터 갑자기 전화라니.

하지만 본부에서 걸려 온 전화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네, 이라호드입니다. 네? 네. 으음… 알겠습니다. 그럼, 한 시간 뒤쯤에 갈게요. 방금 일어나서요. 네, 네. 네에~”

뚝, 전화가 끊어졌다.

이라호드가 한숨을 푹 쉬었다.

‘갑자기 호출이라니… 제우스 때문인가?’

위험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라호드는 시리얼을 잽싸게 해치웠다.

*

오래간만에 푹 쉰 거 같은 느낌이었다.

“전 아닌데요.”

크레네가 투덜거렸다.

정말로 그래서 투덜거리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애교와 앙탈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 그녀의 예쁜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벌써 점심때군.”

“밤새도록 그랬으니까요…….”

살짝 볼을 붉히며 말하는 크레네를 꼭 껴안았다.

맑은 물의 향기. 그녀를 껴안고 있으면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그 귓가에 속삭였다.

“난 아직도 쌩쌩한데…….”

“난 아니거든요? 흥! 변태!”

크레네가 고개를 휙 돌리고 내 품에서 벗어났다.

멍하니 누워 침대에서 일어나는 크레네를 보고 있자니, 오늘 하루쯤은 느긋하게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유피테르가 문제기는 하지만, 당장 유피테르가 쳐들어오는 것도 아니리라. 그 외에는…….

“…큐피드.”

비너스의 죽음을 전달해야 한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곧 도착하리라. 그에게 이 소식을 어찌 전해야 할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크레네가 날 걱정했다.

“배고파요? 밥할까요?”

“…그 소리를 들으니 배고프군.”

큐피드를 보기 두려워 그를 안 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그에 대한 생각을 미뤄 두고, 다른 일에 열중하는 게 나으리라.

아무래도 나는 느긋한 생활을 할 운명이 아닌 모양이다.

“흥흥흥.”

크레네가 콧노래를 부르며 부엌으로 향했다.

음… 그나저나 부엌에 뭔가 먹을 게 있긴 하던가?

고개를 갸웃할 때,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악!”

깜짝 놀라 크레네에게 가니, 그녀가 경악한 표정으로 냉장고를 가리켰다. 음식을 차게 보관해 주는 마법 물품을 가리키는 걸 보자니 머쓱했다.

“딱히 먹을 게 없을 거다. 지금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저게 뭐예요?”

“저거라니?”

뭘 말하는 거지?

크레네가 꽥 소리쳤다.

“비둘기 사체를 왜 냉장고에 넣어 뒀어요!”

아, 그건가?

어깨를 으쓱였다.

“피는 빼 뒀다. 깃털은 아직이지만…….”

“당장 내다 버려요!”

*

“이해할 수가 없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이 거리에 먹을 수 있는 새가 이토록 많은데, 다 손질된 고기를 따로 사야 하는가? 영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냉장고에 고이 보관해 뒀던 비둘기들을 내다 버리고, 고기를 샀다. 크레네가 아주 질색하며 건네준 쪽지에 적힌 대로 다 샀다.

소고기와 야채들.

야채는 별 필요 없건만.

“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라호드가 거실에 있었다.

“점심 먹으러 왔나?”

“아뇨, 점심은… 주면 먹겠지만, 딱히 그거 때문에 온 건 아니에요.”

“그럼… 그냥?”

“아, 그것도 아니에요.”

이라호드가 손사래를 쳤다.

조금 서운하다.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 했으면 기뻤을 텐데.

“본부에 들렀다가…….”

“본부에? 무슨 일이 있나?”

“아…….”

고개를 갸웃하자, 이라호드가 슬쩍 내 눈을 피했다. 그녀의 볼이 살짝 붉었다. 아무래도 부끄럼을 타는 모양이었다.

본부 이야기는 그냥 핑계였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라호드가 황급히 말을 꺼냈다.

“…혹시, 오디슨. 경기할 생각 있어요?”

경기?

“투기장?”

“네, 오디슨한테 도전한다는 사람이 나와서요.”

“그래? 음… N100에서는 딱히 상대가 없을 것 같은데.”

턱을 긁적이며 말하자, 이라호드가 떨떠름하게 웃었다.

내가 오만하다 생각하는 건가? 아니, 비너스의 신성을 손에 넣은 지금, 내 말은 오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요. T100이니까요.”

“…어떻게?”

T100에 가깝다지만, 나는 승급하진 못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T100에서 싸우라는 거지?

“수르트 토벌의 공로를 따져서, T100 승급 시험이 완수된 걸로 쳐주겠대요. 어차피 수르트를 토벌할 수 있는 건 T100 수준의 투사들이니까요.”

“그래? 그거참 잘됐군!”

안 그래도, 큐피드에 대한 걱정을 떨쳐 내기 위해 집중할 일이 필요했다.

정상화되고 있는 니플헤임으로 가서 찌꺼기 사냥이라도 도와줘야 하나- 생각하던 참인데, 경기라니.

반가운 일이다.

“그래서, 내 상대는 누구지?”

흥미가 생겼다.

T100은 오딘께서 하셨던 후계자 선언 이후, 온갖 신들이 날뛰는 장소였다. 오죽하면 이전 T100의 투사들이 대부분 강등되었을까?

강대한 상대와 겨룰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이라호드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울르라는 신이에요.”

“…누구?”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주술사 영감의 이야기를 아무리 되짚어 봐도, 그런 이름은 없었다.

당황하는 내게 이라호드가 설명했다. 설명은 짧았다.

눈을 끔뻑이다 대꾸했다.

“…토르의 양아들이라고?”

“네. 활과 스키를 관장하는…….”

“잠깐, 스카디의 영역 아니던가?”

“그게… 스카디 님이랑 겹치더라구요.”

영 마뜩잖다.

내가 모르는 토르의 아들이라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딘께서 회귀하시며 역사가 바뀌었고, 그 탓에 토르와 시프 사이가 좀 바뀐 걸까? 그래서 새로이 생긴 양아들인가?

이라호드가 내 의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게… 놀랍게도, 원 역사에서도 있던 신이래요.”

“허, 참……. 어떻게 그렇게까지 알려지지 않은 신이 있을 수 있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끓어오르던 흥분이 차게 식었다.

이라호드도 내 마음을 눈치챈 걸까? 그녀가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을 꺼내 쓰다듬고 움직이더니, 내게 내밀었다.

“이것 좀 봐요. 도전장까지 제대로 적어 놨어요.”

“…흐음.”

하늘 위의 하늘을 보여 주겠다?

건방진 소리다.

“내가 보여 줘야 할 것 같은데.”

피식 웃었다.

울르든 우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라호드와 크레네 앞에서 덤비는 놈에게는 매서운 철퇴를 휘두르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첫 번째 철퇴를 맞을 놈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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