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62화 (162/208)

# 162

162화. 천재지변 (4)

-크륵?

재앙은 제 팔에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눈을 끔뻑였다.

나는 코를 슥 훑고서 피식 웃었다.

“이 녀석을 상대할 때는 이게 훨씬 낫겠군.”

창을 등에 메려다, 인상을 구겼다.

예전과는 영 상황이 달랐다. 예전의 나는 등에 투창용 창을 잔뜩 짊어진 채 장창으로 싸웠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자세와 동작이 굳어진 이유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발할라로 와서, 이라호드에게 많이 배웠다. 자잘한 근육의 움직임이 어떻게 창술을 변화시키는지. 특히나 등 근육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

-등 근육은 커다란 근육이에요. 몸에서 가장 힘센 근육 중 하나죠. 그런 근육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 그게 모든 종류의 정교한 창술이 가지는 핵심이에요.

그걸 등에 창을 짊어져 망쳐야 하나?

뭐… 배부른 소리다. 창을 짊어지지 않을 방법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의문일 따름이다.

“작아져라.”

내 키만 하던 창이 줄었다. 팔 길이만큼, 그리고 손바닥 길이만큼.

그렇게 작아진 창을 허리춤에 끼워 넣을 때, 재앙이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아!

“둔한 놈이군!”

마구 날뛰는 재앙에게 콧방귀를 날린 뒤, 벽을 박찼다.

내가 있던 자리가 쾅! 굉음과 함께 박살 났다.

“무식하기까지.”

그럴 법도 하다. 힘만 가지고 밀어붙여도 죄다 쓰러졌을 테니.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크아아아아악! 크아앗!

“배우지 못해 무식한 걸 어쩌겠느냐?”

나는 레바테인을 꽉 쥐었다. 길쭉한 나뭇가지. 그 물건을 창처럼 잡았다.

약간 길다. 2미터가량 되는 레바테인은 내 손에 익숙하지 않다. 이제까지 익혀 온 기술들을 쓰기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가르쳐 주지.”

기술의 중요함을.

-크아앙!

부우웅!

대중없이 휘두르는 팔을 피해 낸다. 그저 마구 휘두르는 것이기에 쉽사리 피할 수 있었다. 평범하게 휘둘러 치는 무식한 동작이다.

하지만 덩치가 큰 만큼, 평범한 속도도 깜짝 놀랄 정도로 빨랐다.

반대로 덩치가 큰 만큼, 공격을 준비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피와 살로 된 몸을 벗고도, 그런 동작밖에 하지 못하다니.”

재앙이 되기 전의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남은 탓일까?

놈은 분명 부정형의 용암이다. 그런데 수르트가 처음 변했던 그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심지어 팔이 하나 날아간 뒤에도!

-크르륵……!

재앙이 벽을 박살 낸 팔을 들어 올린다. 휘두르기 위한 기본이다.

그 팔이 머리 위로 들리고 가슴께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게 똑똑히 보인다. 저 팔의 각도를 생각하면…….

-크아아앙!

부우우웅! 철퍽!

재앙의 팔이 나에게 닿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의 용암을 후려쳤다.

용암이 풀쩍 튀어 지독한 열기가 느껴졌다.

“오디슨……!”

“안 돼요! 그 용암은!”

이라호드와 크레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토르손이 용암에 맞고 온몸이 익은 걸 떠올리는 걸까?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용암은 나한테 잘 데운 진흙팩 정도밖에 안 된다.”

크레네가 언젠가 곱게 간 진흙을 얼굴에 치덕치덕 발라 준 적이 있다. 피부에 좋다던가? 뜨겁기야 하지만, 내 피부가 비명 지를 정도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재앙은 용암에 처박힌 제 팔을 낑낑거리며 빼내고 있었다.

어이없는 일이다.

“수르트의 영혼이 남아 있을 때, 너는 전사였다.”

괴물이지만, 전사다운 면모가 비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짐승.”

짐승은 전사가 아닌 사냥꾼이라도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전사들은? 짐승보다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움직임을 하는 전사들을 상대한다.

쉬운 일이다.

“죽어라, 재앙.”

레바테인을 찔러 넣었다.

푸욱!

-크억……?

재앙의 팔꿈치에 찔러 넣은 레바테인은 재앙을 빨아먹었다.

꾸드드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의 팔꿈치가 단단하게 굳어 간다. 용암이 아닌 그저 돌덩이가 된 팔꿈치를 박찼다.

-크어, 크어어어어어어!

절규인가, 비명인가? 그저 야성만이 남은 포효리라.

허공에서 창을 내질렀다.

-컥!

푸욱- 화르륵 주변을 불살라 먹는 재앙의 소음을 뒤로한 채 섬찟하고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팍에 찔러 넣은 레바테인이 끼기긱- 웃음소리를 내며 재앙의 불길을 먹어 치웠다.

이제 재앙은 덜덜 떤다.

“끝이구나.”

씁쓸함을 느끼며, 다시 박차고 뛰어올랐다.

분노와 함께 당황이 선명하게 서린 재앙의 머리로.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쉬어라.”

짧은 인사와 함께 재앙의 머리통에 창을 찔러 넣었다.

눈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깊숙하게.

푸욱!

끼기기기기긱!

레바테인이 부들부들 떨린다. 쩌저적- 레바테인에 금이 가고, 재앙을 삼킨 나뭇가지가 파사삭- 천천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재앙도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탐나는 물건이었는데…….”

어쩔 수 없다.

재앙의 굳은 머리를 걷어차고 분화구 벽으로 날았다. 분화구 벽 역시 걷어차고 위로 튀어 올랐다.

몇 번을 반복하고 난 뒤, 나는 분화구를 빠져나왔다.

멍한 표정의 일행이 보였다.

씩 웃었다.

“끝났다.”

재앙을 토벌했다.

환호성은 없었다. 그저 멍한 표정의 일행 아래에서 콰드득- 재앙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

“…이번에도 어긋났군.”

오딘은 작게 말했다. 그 말에는 약간의 못마땅함이 있었다.

원래 알던 미래가 바뀌는 것. 그건 ‘회귀’라는 신비한 일에 있어서 목표이면서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미래, 멸망하는 것을 막고자 회귀한 오딘 역시 그랬다.

미래가 바뀌는 것은 좋지만, 오딘이 모르는 미래로 바뀌는 것은 불안감을 안겨 줬다. 숱한 미래를 바꿔 왔지만,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수르트가 패배한 것은 처음이었다.

“제우스가 올 텐데.”

몇 번이고 바꿔 온 역사에서 오딘은 큰 줄기의 모양을 이름 지었다.

첫 번째 줄기는 ‘원 역사’다.

그 역사에서 오딘은 펜리르에게 죽으며, 아스가르드는 로키의 아이들과 망자의 군세, 그리고 거인족에게 만신창이가 된다.

숱한 신들이 죽어 나가고, 최후의 최후에는 발두르가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된다. 오딘도 본 적은 없는 미래다. 그에게 의미가 없는 미래이기도 하다.

빛의 신, 발두르가 이끄는 아스가르드는 분명 찬란하리라.

하지만 그곳에는 오딘이 없다.

그가 원하는 그림은 아니었다.

“…제우스.”

두 번째 줄기의 이름은 ‘불의 세상’이다.

그 역사는 오딘이 로키를 포용하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라그나로크의 큰 적, 셋을 아군으로 돌리는 일이다.

오딘을 물어 죽일 펜리르는 오딘의 군단장이 되었고, 토르와 동귀어진할 요르문간드는 바닷속 깊은 곳에서 느긋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헬 역시 니플헤임의 관리자로서 아스가르드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영혼을 불리는 데 전념한다.

하지만 거인족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몇 번이나 실패한 뒤, 오딘은 원인을 찾아냈다.

우트가르다-로키가 문제였다. 그를 막아 내기 위해, 본래는 다른 사람이었던 우트가르다-로키를 미리 제거하고, 그 자리에 로키를 꽂아 넣었다.

아스가르드의 스파이가 된 우트가르다-로키는 거인족을 안쪽에서 박살 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세 번째 줄기가 만들어졌다.

“재앙.”

수르트가 재앙이 되고, 제우스가 타락하는 끔찍한 줄기다.

이 줄기를 막아 내고자 얼마나 애를 썼던가? 수르트를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어떤 역사에서는 오딘을 비롯한 싸울 줄 안다는 신 모두가 수르트를 즉각 잡아 죽인 바 있다. 수르트는 재앙이 되지 못하고 죽었지만…….

신마라가 살아남아 지독한 재앙을 일으켰다. 무려 레바테인을 제물로 바쳐서.

“그건 끔찍했지.”

남편을 잃은 신마라는 괴물이었다.

수르트보다도 더 오래 살아온 그 늙은 괴물은, 온갖 주술에 통달하여 레바테인으로 만들어진 재앙을 마구 휘둘렀다.

차라리 수르트가 재앙이 되는 것이 더 낫다 싶을 정도였다.

재앙이 된 수르트를 겨우겨우 막아 내면, 제우스가 타락한다.

예정된 대로.

“…희망을 가로챘다. 재앙도 막아냈다. 그런데 왜……?”

오딘은 제 가슴속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을 차마 떨칠 수 없었다.

타락한 제우스라 할지라도 ‘희망’ 없이는 그저 날뛰다 제압될 따름이리라. 어마어마한 피해를 줄 ‘예정’이던 재앙, 수르트는? 이미 죽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한가.

“…아프로디테.”

오딘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오디슨에게 목줄을 달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오디슨이 날뛰며 아프로디테를 구하고자 했다. 그녀를 구하는 데는 실패했으나, 그녀의 신성을 얻어 냈다.

너무 강해졌다.

“으음.”

오딘은 제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감정을 무시했다.

그 감정을 직시하는 순간, 가지고 있던 모든 명분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저 입술을 짓씹었다.

“좋게 흘러가고 있다.”

오딘이 작게 중얼거렸다. 스스로를 달래듯.

그는 옥좌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흘렸다. 무심하게 후긴과 무닌, 두 까마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을 감자, 흘리드스캴프가 힘을 발휘했다.

오딘은 수르트가 머물던 화산 분화구가 볼 수 있었다. 오디슨이 일행들의 대화가 들렸다.

그 말을 천천히 듣던 오딘이 갑자기 미간을 구겼다.

“…후우.”

오딘은 제 가슴속에 응어리진 감정을 직시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모든 일이 망가질 테니까.

오딘이 이를 악물었다.

“내가, 아스가르드의 왕인 내가…….”

부르르, 오딘이 몸을 떨었다.

“키우는 개에게 물릴까 무서워하고 있단 말인가?”

툭, 입으로 내뱉은 말은 감정을 토해 내지 못했다.

오히려 입으로 나간 감정이 귀로 다시 들어오며 가슴속에 있던 불안에게 힘을 보탰다.

오딘의 얼굴이 굳었다.

“목줄을 매는 일을 서둘러야겠군.”

그 정도로, 오디슨의 성장세는 가팔랐다.

오딘이 피해야 하는 멸망이 오디슨이 될지도 모른다.

오딘이 막고자 하는 멸망은 아스가르드의 멸망이 아니니까.

“오디슨, 너는 나의 멸망이 될 것이냐.”

제우스와 마찬가지다.

오딘은 자신의 멸망을 견딜 수 없었다.

*

“대체…….”

이라호드가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힘든 싸움을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눈앞에 머쓱하니 머리를 긁적이는 이 남자가 홀로 와장창- 다 때려 부쉈다. 펜리르가 이끌던 군단을 모조리 삼켜 버린 끔찍한 재앙이 한 남자의 손에 박살 났다.

이라호드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대장, 대체 얼마나 세진 거야?”

“끄으…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덤빌 걸 그랬어, 젠장할.”

토르손이 감탄했고, 이그나르가 투덜댔다.

레바테인에 한 방에 뻗어 버린 그는 크레네의 힘이 없었더라면 흉측한 몰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도 머리카락과 눈썹이 몽땅 타 버려, 안 그래도 험악한 외모가 훨씬 더 험악해졌다.

오디슨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뭐, 세지면 좋은 거 아닌가?”

툭 내뱉은 말에 토르손과 이그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라호드와 크레네의 표정은 복잡했다.

오디슨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지?”

크레네가 입술을 삐죽였다.

“오디슨이 이 정도로 강하다는 게 알려지면, 온갖 여신들이 추파를 던질 거 같아서요.”

크레네가 투덜거렸다.

오디슨은 그 모습이 귀여워 고개를 저었다.

“난 전사장처럼 살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 셋만 해도 힘겨운걸.”

“셋이 넷이 되고, 다섯이 되는 게 아니라요?”

크레네가 입술을 삐죽였다.

오디슨은 볼을 긁적였다.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디슨이 한 말도 확실히 사실이었다.

무심해 보이는 오디슨이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셋을 대하는 중이었다. 그 최선이 남이 보기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문제였지만.

오디슨은 슬그머니 크레네를 껴안았다.

“걱정하지 마라.”

“…걱정은 안 했어요.”

크레네가 작게 중얼거렸다.

속에 담긴 걱정은 넘쳐흐를 정도였지만, 오디슨에게 괜히 그를 알리고 싶진 않았다.

오디슨도 그 마음을 알아채곤 쓰게 웃었다.

크레네를 안고서 등을 토닥이다, 이라호드를 슬쩍 보고 팔을 벌렸다.

이라호드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오디슨이 가진 힘 때문에 여신들이 달라붙는다?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요.”

꽤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었다.

오디슨은 그녀의 걱정을 이해했다. 힘이 있는 자는 언제나 질투 받는다. 그게 돈이든 권력이든 그저 단순한 힘이든 간에.

그를 얻기 위한 노력은 폄하되며, 그저 가진 것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오디슨은 하계에서부터 그런 일을 자주 겪어 왔다. 그리고 경험이 있는 만큼, 그는 멍청하게 굴지 않았다.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탐낼 정도의 힘이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압도적이라면? 차마 질투를 해도 그를 표현할 수 없다.

우악스러운 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라호드가 피식 웃으며 오디슨의 품 한편을 차지했다.

“더 강해져야 해요. 누구도 ‘감히’ 오디슨을 노리지 못하게.”

“…그래야지.”

“그러니까 창술 수련 시간도 좀 늘리는 게 어때요? 제가 그간 생각한 새로운 수련법이…….”

크흠- 헛기침 소리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남녀 사이로 끼어들었다.

오디슨이 슬쩍 이그나르를 쳐다봤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얼른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오지 그랬나?”

“거, 뭐… 사건 사고가 많았으니까……. 그보다! 내가 부러워서 끼어든 게 아니라고!”

부러워서 그런 게 아니다?

오디슨이 고개를 갸웃했다. 허세인가? 씩- 입꼬리를 올리는 모습이 얄밉다. 이그나르가 울컥했지만, 정말 중요한 일 때문에 끼어든 것이다.

“이 망할 자식이 정말… 후우! 그보다 저거 말이야, 저거.”

“저거?”

이그나르가 분화구 안쪽을 가리켰다.

오디슨이 고개를 갸웃할 때, 이그나르가 민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부글부글 끓는 게, 아무래도 불안한데… 괜찮은 거야?”

일행이 모두 우뚝 굳었다.

가장 그럴듯하게 상황을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은…….

“어… 원래, 수르트가 화산의 기운을 깨우고 그걸 받아서 힘을 키웠죠?”

이라호드였다.

그녀는 머리로 몇 가지 상황을 그렸다.

눈을 몇 번 깜빡이는 사이에 나온 결론은?

“화산이 폭발할 거예요!”

약간은 늦었다.

쿠르르르릉- 심연의 악마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와 함께, 땅이 덜덜 떨렸다. 일행이 모두 침을 꼴깍 삼켰다.

이그나르가 멍청하게 말했다.

“어… 도망쳐야 하나?”

“당연한 소릴! 뜨겁지 않다고 끝이더냐?”

“뜨겁지 않으면…….”

“용암은 녹은 바위다, 이그나르.”

오디슨이 쯧- 혀를 차고, 크레네를 번쩍 들었다. 크레네가 꺅, 하고 비명 질렀지만, 놓아줄 수는 없다.

“꽉 잡아라. 용암이 굳어, 바위 한가운데 끼여 버린 건 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

오디슨이 크레네를 옆구리에 꼈다.

그와 동시에 이라호드가 꽥 소리쳤다.

“터, 터져욧!”

콰과광!

분화구에서 시뻘건 용암이 치솟았다.

“꺄아아아악!”

“으아, 으아악! 오디슨, 달려요! 달려!”

이라호드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올랐고, 크레네가 기겁하며 오디슨의 등짝을 마구 때렸다.

오디슨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마구 달렸다.

토르손과 이그나르는?

“어, 어어어어!”

“저, 저… 망할 자식! 나도 데리고 가!”

고함을 꽥 지르며 후다닥 쫓아갈 수밖에.

수르트가 장악하고 있던 화산의 기운이 모두 터졌다.

쾅쾅쾅! 시뻘건 용암이 하늘로 치솟았다.

오디슨 일행은 모두 숨을 헐떡일 정도로 마구 뛰었다.

“젠장맞을! 이게, 헉헉! 무슨 등신 같은, 헉! 꼴이야?”

“으어, 나, 나도 나, 날개……!”

이그나르와 토르손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고, 청동 날개로 날아오른 이라호드는 꽤 여유로웠다. 오디슨 역시 커다란 매로 변해 여유롭게 날았다.

오디슨의 발톱에 잡힌 크레네는 뭔가, 사냥당한 토끼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재밌다는 듯 깔깔 웃었다.

“더 높이 날면 안 돼요?”

“안 될 것 없지.”

뀌이익- 오디슨이 울부짖으며 높게 날아올랐다.

크레네는 높다고 호들갑을 떨어 가며 깔깔 웃었다. 그러다 무심코 오디슨의 창을 보았다.

“어? 오디슨, 원래 이 창이 이랬나요?”

오디슨이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이랬냐니, 뭐가 달라졌단 말인가?

크레네가 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창 자루에 뭔가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요. 나무 같기도 하고, 불꽃 같기도 한…….”

오디슨은 불과 나무를 동시에 연상케 하는 걸 하나 알고 있었다.

방금 부서져 사라진 레바테인이다.

“…허.”

잿가루가 되어 사라진 줄 알았더니, 남아있었던가?

온몸이 번개로 이뤄진 제우스를 상대할 무기가 생겼다.

수르트가 재앙이었다면, 타락한 제우스 역시 재앙이리라.

‘재앙을 삼키는 가지’는 그에게 굉장한 효과를 보이지 않을까?

오디슨은 웃고 싶었다. 하지만 단단한 매의 부리는 웃음 지을 수 없었다.

얻은 게 참 많은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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