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50화 (150/208)

# 150

150화. 파괴 (3)

콰아앙!

레바테인이 우뚝 멈췄다. 그 레바테인을 멈춘 것은 뛰어난 방패가 아니며, 어마어마한 무기도 아니다.

맨손.

장갑 하나 끼지 않은 맨손이 레바테인을 잡아냈다.

수르트가 흠칫 놀랐다.

“…우트가르다-로키? 이게 무슨 짓이지?”

으르릉, 이를 드러내며 분노했다.

하지만 수르트의 분노를 정면에서 받아 내는 우트가르다-로키는 피식 웃을 뿐.

“말하지 않았나? 내 아들을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니냐고.”

“…아들? 펜리르는 분명…….”

수르트의 눈동자가 부르르 떨렸다.

멸망의 늑대, 늪의 괴물. 다양한 별명을 가지고 있는 펜리르는 유명인사다. 그런 만큼, 그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니플헤임의 주인인 헬과 무한의 뱀, 요르문간드의 형제. 그 3남매의 아버지는…….

“…로키?”

수르트는 저 스스로 한 말에 흠칫 놀랐다.

그래서는 안 된다. 오딘의 의형제이자, 오딘의 참모인 로키가 우트가르다-로키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수르트는 현실을 부정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트가르다-로키, 장난은 그만하고 꺼져라! 이 늑대를 죽여야 하니까!”

“장난이라니, 말이 심하군. 내가 고심해서 짠 책략이라고.”

우트가르다-로키가 낄낄 웃었다. 그 웃음과 동시에 우트가르다-로키의 모습이 일렁였다. 푸른 머리카락과 길게 늘어뜨린 푸른 수염이 일그러지며, 붉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수르트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헛소리! 우트가르다-로키가 너에게 당했다고? 그의 부하들조차 너보다 세다, 로키! 우트가르다-로키의 부하인 로기조차 이기지 못한 자가 어떻게……!”

“오! 로기라면, ‘불’ 말이지?”

수르트가 그렇다- 하고 소리치려는 찰나, 로키의 손에서 화르륵 불길이 일었다. 로키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이거?”

수르트는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운 의문이었다.

어버버- 수르트가 입을 벙긋거리다 말했다.

“…우, 우트가르다-로키가 지, 진짜로 너에게 당했다고……?”

“멍청한 건지, 아니면 믿기 싫은 건지.”

로키가 쯧쯧 혀를 찼다.

그리고 히죽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마치 초보 마술사가 제 트릭을 기쁘게 해설하듯 들뜬 표정이었다.

“길었다, 길었어! 처음 토르를 골릴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걸 알고 당장 이용할 수 있겠다 싶었지. 너희들은 그저 같은 거인족이라고, 그저 갑자기 요새가 튀어나왔다고 날 의심하지도 않았지. 게다가 뭐… 이해는 해.”

로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토르와 로키를 동시에 엿 먹인, 의문의 요새를 가진 마법사! 얼마나 바라던 인재겠어? 머리 좋은 거인족들은 모조리 아스가르드의 편을 들었으니까 말이야. 지혜로운 자, 미미르. 그리고 바로 나, 로키.”

툭툭, 로키가 제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머리가 있는 자들은 딱 봐도 이길 쪽이 어디인지 알 수 있거든. 당연히 거인족 중에서 힘 있고 지혜로운 자들은 모두 아스가르드로 소속을 바꾸는 거지. 안 그래?”

“…우트가르다-로키를 어떻게 했나!”

까드득, 수르트의 말에 로키가 한숨 쉬었다.

“그러니까 생각을 해, 멍청한 놈들! 이름이 같다? 그럴 수도 있지. 이 로키 님을 대단하다 생각하는 거인족이야 널렸으니까. 그렇지만 남 골리기 좋아하는 성격이 비슷하다? 그 정도 되면 이상하다 여겨야지. 안 그래? 게다가…….”

딱- 로키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제까지 열심히 싸우던 거인족 병력, 절반이 그대로 사라졌다.

우트가르다-로키의 모습으로 이제껏 수르트를 따라다니며, 로키가 그냥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쓰는 마법까지 같으면 의심이 아니라, 확신해도 될 정도 아닌가?”

“…처, 처음부터… 같은 사람이었다고……?”

수르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아니, 귀신에 홀린 것보다 질이 나쁘다. 제 병력의 절반이 사라질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니.

수르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쯧, 우트가르트 요새의 주인인 내가 공세에 가담했을 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어야지. 요새를 맡은 놈이 공세에 가담해? 웃긴 소리.”

수르트는 이제야 이해했다.

처음부터 우트가르다-로키라는 자는 없었다. 모두가 로키의 장난질에 놀아난 결과였다. 그 장난이 얼마나 꼼꼼했던지, 펜리르마저 눈을 끔벅일 정도였다.

“어… 그러니까, 아버지가 우트가르다-로키라고?”

멍청한 소리를 내뱉는 펜리르. 로키는 쯧쯧 혀를 찼다.

그제야 수르트는 생각했다.

우트가르다-로키가 가짜라면, 우트가르트 요새는?

“토, 토르는……?”

우트가르다-로키가 말하기를,

-이핑그 강은 대군이 건널 수 없는 곳이야. 특공대쯤이야, 우트가르트 요새 정도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자신의 공격 가담을 두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정체가 로키라면?

로키가 낄낄 웃었다.

“이제 머리를 좀 굴리는군. 토르, 토르라.”

로키가 히죽 웃었다.

“녀석에게는 좋은 선물을 하나 남겨 뒀지.”

불길한 웃음이었다.

수르트는 황급히 고개를 틀어 스륌헤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인 왕국의 중심부, 거인 왕 스륌손이 머무는 곳이 있는 쪽이다.

* * *

토르의 특공대.

아스가르드 최강의 무력인 토르에게는 군대가 필요 없었다. 오히려 군대가 그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토르는 자신의 시종인 티알피를 대동하고 이핑그 강을 넘었다. 언제나처럼.

“예전에는 이쪽도 꽤 자주 왔었는데 말이야.”

추억을 그리듯 아련하게 하는 말에 티알피가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그립다는 투로 말을 해 봐야, 그리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티알피에게 남은 이 근방의 기억은…….

-죽어라, 흐룽그니르!

-죽어라, 스륌!

-죽어라, 죽어!

모조리 토르가 묠니르를 마구 휘두른 것뿐이다.

황금 갈기, 굴팍시를 타고 달려와 시프와 프레이야를 내놓으라 으름장 놓던 거인, 흐룽그니르. 토르의 아내인 시프를 탐낸 그는 묠니르에 머리가 깨져 죽었다.

거인 왕국의 선왕, 스륌은 토르의 묠니르를 훔쳐 달아났다. 그 망치를 돌려받고 싶다면 프레이야를 아내로 내놓으라는 둥, 헛소리하며 말이다. 그 사건에서 토르가 한 일은?

여장하고 스륌을 찾아가 묠니르로 머리를 깨트린 것이다.

티알피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조심조심 움직여야 합니다, 토르 님.”

“허! 티알피, 내가 어린앤 줄 아느냐! 그것도 모를까?”

토르는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투로 투덜댔다.

티알피는 걱정이 들었다.

‘…어린애였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토르는 어린애처럼 단순 무식하지만, 어린애와 달리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신이다. 그게 문제다.

어쨌든 잔소리는 효과가 있었다.

이핑그 강을 넘고 우트가르트에 닿을 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티알피는 긴장했다.

눈앞에 있는 요새, 우트가르트.

티알피는 자신보다 빠른 ‘후기’라는 놈이 떠올랐다.

‘…조심조심 가면 아무도 모르겠지?’

티알피는 침을 꿀꺽 삼켰다.

토르는 으드득- 이를 갈았다.

“우트가르다-로키 놈에게 속았던 걸 생각하면 당장 무너뜨리고 싶건만…….”

“안 됩니다!”

“칫, 나도 안다. 이 요새와 정면으로 들이박는 건 바보짓이지. 하지만…….”

토르는 스크리미르를 떠올렸다. 우트가르다-로키가 환상으로 만들어 낸 거대한 거인. 환상이라는 걸 알고 있는 지금도, 그 거대한 거인을 생각하면 화딱지가 난다.

세상 그 누가 감히 토르를 무시하겠는가?

스크리미르 외에는…….

‘아버지.’

오딘뿐이었다.

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흐룽그니르의 말, 굴팍시를 탐내던 오딘. 슬레이프니르가 있지 않느냐- 말하며, 토르는 그 말을 아들인 마그니에게 줬다.

그 이후 정체를 숨긴 오딘이 토르를 놀려먹은 적이 있다.

정말이지 욕심 많은 신이다. 제 손자한테도 빼앗기기 싫어하다니…….

“하지만 달라졌지.”

오딘은 달라졌다. 회귀하고 난 오딘은 예전처럼 욕심 많고 정신 이상한 늙은이가 아니다. 욕심은 여전히 많지만, 또 여전히 정신이 이상하지만… 예전과는 약간 다르다.

재화에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세상을 구하는데 욕심을 부렸고, 정신병자의 발작이 아닌 고뇌에 빠진 철학자의 푸념 같은 정신 이상을 보였다.

“어쨌거나, 조심해서 가자고.”

“…제가 할 말입니다만…….”

티알피가 퉁명스레 답했다. 토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토르 특공대의 임무는 단순하다.

몰래 스륌헤임으로 숨어 들어가, 거인 왕국의 수뇌부를 모조리 처치하는 것이다. 죽이든 살려서 납치하든. 별문제 아니다.

한시라도 빠르게, 그 임무를 완수하는 것. 그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어?”

“어?”

눈이 마주쳤다.

토르와 거인 사이에 눈빛이 오갔다.

티알피는 눈을 비비적거렸다. 어떻게? 몰래몰래, 구석진 자리로 이동했건만, 어떻게 여기 거인이 있지? 게다가, 저 거인은…….

“스- 크- 리- 미- 르!”

스크리미르.

우트가르다-로키가 불러 냈던 환상이다.

티알피는 당황했다. 당장 망치를 꺼내 드는 토르를 말려야 했다.

“토르 님! 저건, 환상입니다! 환상이라고요!”

“이런! 제길! 마, 맞아! 환상이야! 난 환상이라고!”

티알피는 어이가 없었다.

환상이 환상이라고 소리치다니? 게다가 뭔가 당황한 듯한 표정이 환상답지 않은 게 아닌가?

티알피는 이게 지금 환상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토르는 제 나름 구분을 지어냈다.

“허! 그때도 거짓말이었군!”

“어, 어어?”

“거인족 최고의 전사를 들키지 않기 위해, 환상이라 거짓말하다니! 우트가르다-로키, 과연 거인족 최고의 마법사다운 지혜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스크리미르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황급히 물러섰다. 어마어마한 덩치를 지닌 스크리미르답게, 뒷걸음 몇 번으로 엄청난 거리가 벌어졌다.

티알피는 당황했다.

“토, 토르 님! 소란을 일으키면……!”

“허! 지금 당장 이 괴물 놈부터 죽이는 게 낫다! 이런 놈이 여기에 왜 있었겠나? 아스가르드를 치기 위한 특공대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거다!”

어, 그런가?

토르의 말에는 이상한 설득력이 가득했다.

스크리미르는 실존하고, 그 비밀병기를 숨기기 위해 우트가르다-로키가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렇다면 전쟁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똑같다.’

군단이 방해가 되는 최강 단일 전력.

그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역시나 특공대다. 마왕을 잡으러 가는 용사처럼, 암살을 시도하는 것이다.

티알피가 긴장했다.

“내 망치 맛을 봐라!”

토르가 버럭 고함쳤다.

“젠장할, 갑자기 왜 지랄이야?”

“도망치지 마라! 거기 서!”

“미친놈! 누가 그러면 설 줄 알고?”

스크리미르가 황급히 달아났다. 토르는 곧장 그 뒤를 쫓았다.

티알피는 어쩔 줄 몰라 눈을 끔벅였다. 하지만 홀로 남아 뭘 어쩌겠는가? 그도 토르와 스크리미르의 뒤를 쫓았다.

며칠이나 이어진 추격전.

스크리미르는 헉헉- 숨을 찼다.

“더, 더는 쫓아오지 마라!”

“지랄! 힘이 빠졌구나!”

확실히, 스크리미르의 발이 느려졌다.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하게 먹을 필요가 있다. 괜히 요르문간드가 바다에서 살겠는가? 질보다 양을 추구하며 먹기 위함이다.

요르문간드처럼 큰놈은 입을 쩍 벌리고 바닷물과 물고기, 그리고 바닷물에 있는 플랑크톤을 끝없이 먹어야 했다. 안 그러면 아사할지도 모른다.

스크리미르 역시 그렇다.

산만큼이나 큰 녀석이 며칠이나 못 먹고 달아났다면?

이제 픽 쓰러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끄어헉!”

“으하압! 망치 나가신다!”

토르가 묠니르를 던졌다.

날아오는 망치에는 믿을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스크리미르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 낸 공격에 자존심이 상했던 토르. 그 토르가 그간 절치부심하며 마련한 최강의 일격이었다.

“죽어라, 스크리미르!”

묠니르가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쇄도했다.

마치 대륙이라도 부러뜨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공격이다.

그 공격을 앞둔 스크리미르는…….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히죽, 웃으며 사라졌다.

티알피가 흠칫 놀랐고, 토르가 입을 쩍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망치는 쭉쭉 뻗었다.

“어, 어어……?”

운석처럼 내리꽂히는 묠니르.

소리는 없었다. 소리마저도 망치 앞에 부러져 으깨진 탓이다.

묠니르가 꽂힌 자리는 바로…….

“…스륌의 성?”

거인왕, 스륌손이 머무르는 곳이다. 스크리미르는 토르를 거인 왕국의 심장으로 끌고 온 셈이다. 거인 왕국 경계 병력의 약점을 파고들며 말이다.

거인 왕국의 왕성이 묠니르를 맞이했다.

* * *

……!

소리가 아니다. 공간 자체가 소멸하며 온 세상이 눈물 흘리는 광경이나 다름없었다.

번갯불이 번쩍하더니, 스륌헤임이 있는 방향에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말로 달려 일주일이 훨씬 넘는 거리에 있는 무스펠헤임, 그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 충격이었다.

쿠르릉. 땅이 울었다.

와르르. 하늘의 구름이 절규했다.

스륌헤임 방향을 보던 수르트가 아, 하고 탄식을 뱉었다.

“수도가…….”

무너졌다. 느낄 수 있다.

수르트는 멍하니 그쪽을 쳐다보기만 했다.

로키가 히죽거렸다.

“내가 토르에게 최신형 네비게이션을 선물했거든. 아마 목적지까지 정신없이 달려갔을걸?”

“하, 하하… 하하하하!”

수르트가 껄껄 웃었다.

로키는 눈을 끔뻑였다. 왜 웃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전쟁은 패배했다. 군단이 돌아갈 곳이 없는데, 전쟁을 이어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충격으로 미친 건가? 로키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수르트는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댔는데…….’

로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항복하지 그래? 아스가르드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항복? 항복이라 했나?”

수르트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로키를 노려보았다.

로키가 움찔 몸을 떨고, 로키의 뒤에 있던 펜리르가 이빨을 드러냈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수르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로키가 그를 설득했다.

“이 전쟁은 우리 승리야. 괜한 피를 흘리지는 말자고, 응?”

그 말에 수르트가 큭큭- 웃었다.

“맞다. 네 말이 맞아. 이 전쟁은 패배했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그냥… 항복하라니까!”

로키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수르트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레바테인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로키가 손을 휘휘 저었다.

“괜한 짓 하지 마! 어차피 끝났다고!”

“괜한 짓? 글쎄, 재앙은 이유가 없다.”

콰아아앙!

수르트가 레바테인을 바닥에 박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레바테인을 통해 바닥으로 전달되었다.

쿠르릉! 다시 땅이 울부짖었다.

“전쟁은 패배다.”

“그렇지? 그러니까…….”

“하지만 재앙은 지지 않는다! 비열한 신들이여, 진정한 재앙을 맞이하라!”

쾅쾅쾅!

시뻘건 용암이 터져 나왔다.

“후, 후퇴다! 후퇴! 후퇴해!”

펜리르가 미친 듯 소리쳤다. 하지만 늦었다.

“아, 아아악!”

“뜨, 뜨거워! 살려 줘!”

“어머니……!”

땅이 분노했다. 무스펠헤임의 용암이 치솟았고, 신계가 마구 흔들렸다. 니플헤임의 망자들은 온 세상을 태울 듯한 열기에 비명을 질렀다.

그뿐인가? 하계 역시 멀쩡하지 못했다.

쾅쾅쾅!

“아, 아아…….”

시그니료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산이 터졌다. 산이 시뻘건 피를 쏟으며, 검은 한숨을 토해냈다.

넓어진 아스가르드의 영역인 만큼, 무수한 화산이 동시에 분화했다.

재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재앙은 잊혀진 자들을 깨웠다.

“…땅이?”

“우리를 둘러싼 감옥이… 깨진다.”

“자유, 자유인가!”

“타르타로스가 붕괴한다!”

제국 땅이 올림포스의 영역일 때 봉인된 괴물들. 티탄들이 영원한 지하 감옥, 타르타로스에서 빠져나왔다.

아스가르드와 거인 왕국의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세상의 균형이 흔들렸다.

“…이렇게까지 해도, 이 일은 막지 못한단 말인가.”

오딘이 한숨지었다.

수르트는 무수한 역사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처럼 다시 폭발했다.

차근차근, 멸망으로 향하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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