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143화. 신을 잡으려 하지 마라 (2)
<곤륜에는 대단한 무기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개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무기가 뭘까요?>
<제천대성, 손오공의 애병, 여의봉입니다.>
<여의봉 혹은 금고봉이라고 불리는 이 무기는 본래 여의금고봉이라는 이름이 있으며, 그 이름이 붙기 전에는 천하정저신진철(天河定底神珍鐵)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곤륜의 태초신, 반고가 땅을 다질 때 쓴 물건입니다. 반고 이후에는 그 어마어마한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이가 없었기에, 동해 용궁에서 바다의 추로 사용됐지요.>
<하지만 반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대단한 신력을 지닌 이가 탄생했습니다. 이후, 그 물건은 손오공의 손에 들어가 수많은 요괴의 피를 묻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쓰던 도중, 손오공은 무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도술을 이용해 신진철의 특성인 부피를 조절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직접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고대부터 이어진 무기가 더 강력한 힘을 얻게 된 것이지요.>
<과연, 곤륜 최고의 무기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발할라 방송 창사 30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세계의 무기들 中.
* * *
“…국경이라 했던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말에 수르트가 눈을 부릅떴다.
“그 창은 대체……!”
아까는 소리친다고 늘어나니, 아니니- 껄껄 날 비웃던 놈이 이제는 당황한 표정이다. 통쾌하다.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바이킹에게 국경은 의미가 없다!”
버럭 소리치며 다시 창을 휘둘렀다.
늘어난 창은 묵직했지만, 이제껏 발할라에서 쌓아 온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 피땀 흘리던 훈련, 밍밍하기 짝이 없는 무알코올 헤이드룬 미드, 그리고 숱한 전투로 쌓은 신성까지.
모두가 힘이 되어 내 팔에 깃들었다.
부우우웅!
“크윽!”
드드득!
레바테인으로 내 공격을 막아 내는 수르트.
하지만 단순한 힘 대 힘의 싸움에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팔 하나를 잃은 것 이상의 문제가 있다.
“하하하! 휘청거리는 꼴이 우습구나!”
“이 망할 자식!”
휘청이던 수르트가 자세를 바로 하고 레바테인을 내리찍는다.
길이의 차이, 그리고 크기의 차이 때문에 막아 내다 휘청일 공격이 날아든다. 하지만 내가 손에 든 것이 정말로 여의봉이라면?
“늘- 어- 나- 라!”
우두둑!
창두가 비명을 내질렀다.
길이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길이에 비례해 두께도 두꺼워졌으니까. 크레네의 손목 정도 되던 두께의 봉이 순식간에 내 팔뚝 정도로 두꺼워졌다.
하지만 창두 역시 보통 물건은 아니다.
끼기기긱!
무려 아누비스라는 개대가리 신이 쓰던 낫을 녹여 만든 것이다. 차원을 잘라 내던 바로 그 낫이다. 차원을 자르는 건 내 권능이 아닌지, 무리가 가서 쉽게 쓸 수가 없지만…….
그래도 신이 쓰던 무기란 소리.
“흐아아앗!”
“크하아앗!”
부우우웅!
굉음이 겹친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이중주로 울리고, 마침내 내 창대와 레바테인이 부딪쳤다. 쇠와 나무.
상식적으로 나무가 부서져야 하지만…….
쿠웅!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주변 먼지들이 휘날렸다.
손아귀가 저리고, 손목이 삐거덕거린다.
“크윽!”
“으윽, 버러지 같은 놈이……!”
뒤로 쭉 밀렸다.
수르트 역시 뒷걸음질을 몇 번이나 쳤다.
누가 봐도 내가 밀린 꼴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쨍그랑!
깨졌다! <국경선>이 붕괴했다.
무력을 동반한 선전포고가 이뤄진 만큼, 국경은 의미가 없다.
땀을 닦으며 히죽 웃었다.
“크흐흐… <국경선>이라고 했던가? 별것 아니군.”
우트가르다-로키가 알려 준 덕에 깰 수 있었다.
신성이 다시 움직인다.
“…하찮은 놈! 겨우 <국경선>을 통과했다고 전쟁에 이겼다고 생각하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더군.”
“허! 개소리!”
수르트가 으르렁거렸다.
“<국경선>이 내 전부라 생각하지 마라!”
거인이 콧김을 내뿜으며 덤벼들었다.
쾅쾅쾅! 거대한 레바테인이 마치 화산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전력을 다해 그를 막고 피했지만, 역시나…….
퍼억!
“크헉!”
무리였다.
거대한 망치 머리에 얻어맞아 허공을 날았다.
수르트가 이를 까득 깨물었다.
“레바테인의 불길이 통하지 않아?”
“크흐…….”
퉤, 입가의 피를 닦고 일어났다.
수르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자랑하던 레바테인이 내게 별 효용이 없어서 그런가? 흐흐- 웃음이 나왔다.
“흐흐흐, 나는 지옥 불 앞에서도 변치 않는 자. 재앙의 가지에 붙은 불꽃도 별것 아니군!”
“이, 이… 벌레 같은 놈! 내 불이 태우지 못하는 것은 없다!”
“여기 있지 않소?”
수르트가 제대로 열 받았는지, 레바테인을 번쩍 들어 올렸다.
화르륵! 레바테인에 달린 망치 머리, 그 지독한 용암 덩어리가 울룩불룩 커지기 시작했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얼굴을 덮친다.
땀이 주르륵 흘렀다. 권능을 얻고 난 뒤, 처음 느끼는 뜨거움이다.
온기가 아니라, 뜨거움을 느끼는 건 처음인데…….
꿀꺽!
역시, 보통 놈이 아니다.
“벌레 같은 놈! 불의 세례를 받아라!”
버럭 고함을 내지르는 수르트.
나는 창을 치켜들고 이를 악물었다. 이제까지 열심히 막아 온 부작용이 이제야 내 팔을 뒤흔든다.
아프다. 저리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내 팔뚝만큼 두꺼운 창을 차마 들 수가 없다.
“후우, 줄어들어라.”
창이 줄어들었고, 끼긱- 소리를 내던 창두가 그제야 조용해졌다. 창두 역시 보통이 아니긴 하다. 그렇게 늘어났음에도 원래 두께가 된 뒤, 딱딱하게 박혀 있다니.
고무줄보다 더한 신축성이다.
여전히 팔은 아프다. 원래 쓰던 것처럼 여자 손목 두께가 되었지만, 손아귀가 찢어질 듯해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부르르, 손이 떨린다. 하지만…….
“…나라고 당하고만 있을 줄 아는가?”
이제까지 숱하게 당해 왔다.
…더는 싫다.
신성을 끌어올렸다.
* * *
수르트는 침을 삼켰다.
‘보통 놈이 아니다.’
레바테인과 정면으로 부딪쳐 멀쩡한 창대는 길이를 자유자재로 늘일 수 있는 것 같았다. 엄청난 기물이다.
게다가 수르트의 힘을 어느 정도 견뎌 낸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신성이 생각보다 크군…….’
분명, 신이 된 지 얼마 안 됐다 들었건만.
어떻게 저렇게 커다란 신성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수르트는 이를 악물었다.
“…숨겨 둔 한 수는 있었나 보군.”
레바테인은 여전히 덩치를 키워 가고 있다.
레바테인에 달린 망치 머리는 본래, 수르트의 머리와 비슷한 크기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 크기는 수르트보다도 커 보일 지경.
내뿜는 열기는 어떤가? 수르트가 불의 거인이 아니었더라면, 레바테인을 잡은 손바닥이 웰던으로 익어 버렸으리라.
오디슨이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누구나, 숨겨진 한 수는 있지.”
“흐흐흐, 전사라면 말이야.”
오디슨과 수르트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알아챘다.
바로 지금이다.
“새까맣게 태워 주마!”
“오딘의 승리를 위하여!”
화르르르륵!
레바테인이 오디슨을 향해 날아든다. 그 모습은 마치 태양이 그를 덮치는 듯했다.
우트가르다-로키가 입술을 짓씹었다.
“쯧! 저런 무식한…….”
저런 거대한 열기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리라. 우트가르다-로키는 혀를 차고 마력을 끌어 올렸다.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가 마법을 부리는 것보다 오디슨이 빨랐다.
솟구치던 신성이 기묘하게 움직였다.
“흐아아앗!”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창을 움켜쥔 채, 오디슨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수르트는 그 광경에 흠칫 떨었다.
‘저놈의 주특기는…….’
마치 번개를 닮은 일격.
‘검은 번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쾌속 공격. 민첩함이 약간 떨어지는 거인족으로서는 껄끄러운 공격이 아닐 수 없었다.
수르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허! 번개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게 제일 강하긴 하지만……!”
날개도 없는 놈이 허공에서 움직일 수 있을 리 만무.
수르트가 휘두르던 레바테인이 횡으로 원을 그리고 다시금 머리 위로 치솟았다. 이제 내려치기만 하면 오디슨은 숯덩이가 될 터.
수르트의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서렸다.
“끝이다!”
화르르륵!
뜨거운 태양을 내리꽂는 듯한 공격.
콰드드드드득! 퍼엉!
애꿎은 바닥을 때렸다.
지독한 열기가 모래를 유리로 바꿔 버리고 흙먼지가 위로 솟구쳤다. 커다란 구덩이가 생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열기가 한참이나 떨어진 수르트의 부하들을 덮쳤다.
“으, 으아악!”
“타, 탄다! 타! 내가 탄다!”
불의 거인이라 해도, 경지가 낮은 이들은 견뎌 낼 수 없는 열기가 치이익- 수르트의 부하들을 익혔다.
너무 늦기 전에, 우트가르다-로키가 마법을 펼쳤다.
쩌저저적!
“후우.”
얼음벽이 치솟았고, 그 얼음벽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얼음벽을 녹이고도 주변의 온도는 후끈후끈한 수준. 어마어마한 열기다.
우트가르다-로키가 혀를 내둘렀다.
“지독하군!”
화상을 입은 수르트의 부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대했다. 저런 거대한 충격이라면 오디슨은 결코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이어진 고성은 그들의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으아아아악!”
굵은 목소리.
마치 야수의 포효처럼 들리는 그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수르트가 고래고래 고함쳤다.
“궁수! 궁수!”
수르트의 부하들은 눈을 끔벅이며 황급히 움직였다.
수르트가 삿대질했다.
“쏴라! 쏴! 저 비열한 도망자를 쏴 죽여!”
“무, 무슨…….”
“저기 날아가는 매가 바로 오디슨, 그놈이다! 결투에서 도망치다니! 비겁한 놈!”
방방 뛰며 분노하는 수르트.
오디슨이 뛰어올라 한 짓은 도주였다. 당연히 떨어지지 않았으니, 수르트의 일격이 그의 깃털 하나도 스치지 못했다.
궁수들이 황급히 시위를 당겼다.
“잠깐!”
우트가르다-로키가 그들을 말렸다. 하지만 그들의 소속은 우트가르트가 아닌 국경수비대. 수르트의 부하들이다.
수르트가 외쳤다.
“쏴라!”
핑핑핑-!
인간의 발리스타 탄환 정도 되는 크기의 살벌한 화살들이 바람을 가르고 오디슨에게 쇄도했다.
우트가르다-로키가 버럭 소리쳤다.
“쏘지 말라니까!”
“어째서지?”
수르트가 우트가르다-로키를 째려보며 말했다.
우트가르다-로키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입을 우물거렸다. 하지만 그가 그에 답변할 필요는 없었다.
번쩍!
붉은 신성이 터져 나왔다.
팅팅팅! 무언가 잘못된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르트가 눈을 끔뻑일 때, 복수가 날아들었다.
쐐애애애액!
“어, 어어어? 크아악!”
“뭐, 뭐야! 어억!”
푹푹푹푹!
오디슨을 향해 쏜 화살들이 되돌아와 궁수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수르트는 그 광경에 부들부들 떨었다.
“으아아아아악! 오디슨! 이 비겁한 자식!”
수르트가 분노를 터트렸다.
그에 우트가르다-로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가 봐도 제 말을 안 들어줘서 이 사달이 났다- 여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다행이군. 이 나이가 돼서, 딸한테 욕먹을 일은… 없겠지?’
후우- 한숨을 내쉰, 우트가르다-로키.
그의 딸은 오디슨의 광팬이었다.
그것도 결혼까지 생각하는.
‘그나저나 눈이 너무 좋은 것 같던데……. 쯧, 괜한 소리를 하지는 않을지…….’
우트가르다-로키가 잠깐 걱정스러운 눈으로 무스펠헤임과 니플헤임 사이에 있는 안개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