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140화. 신을 속이려 하지 마라 (2)
효과가 있다.
힘을 과시하는 건 바보짓이라는 이들도 있지만, 쓸 데 안 쓰는 것보다 바보짓은 없다. 기존 단원들과 새로 유입된 이들이 어우러져 낄낄 웃었다.
개중에는 흥분해 날뛰는 이들도 있었다.
유입된 이들을 이끌고 왔던 전 약탈단장, 라우디가 대표적이었다.
“우아아아! 덤벼라, 덤벼!”
싸움이 다 끝났건만, 저게 무슨 꼴인지.
쯧쯧. 혀를 차고 크레네에게 부탁했다.
“저놈, 머리를 좀 식혀 줘.”
크레네는 킥킥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지팡이를 내밀어 라우디를 겨눴다. 지팡이가 잠깐 우웅- 하고 떨리더니, 쏴아!
“으헉!”
라우디가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비명을 내질렀다.
녀석은 대체 어디에서 물을 뿌렸나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피난민과 구분되지 않던 흙먼지 뒤집어쓴 몰골이 물벼락 덕에 깔끔해졌다.
녀석이 떨떠름하게 날 봤지만, 나는 놈을 무시했다.
“승리에 취해 있는 건 그만해라! 일단 돈 될 법한 걸 뒤져!”
오오! 약탈단원들이 모두 함성을 내지르고, 마을을 뒤졌다.
원래 주민들은 모조리 피난 갔다. 하지만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면 오히려 마을을 터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품고 있자니, 역시나.
“와, 확실히 그냥 마을 터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다니까.”
톨킬드가 혀를 내둘렀다. 이그나르도 두툼한 뱃살을 출렁이며 히죽거렸다. 이라호드가 한참을 들여다보다 내게 말했다.
“이전처럼 수익이 크지는 않겠지만, 꽤 괜찮아요. 인당 몇백만은 가져갈걸요?”
“뭐? 이전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었고, 이번에는 죄다 무기와 쇳덩인데……?”
이라호드가 쯧쯧 혀를 차고,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어째, 익숙한 모습인데? 크레네가 풋- 하고 웃었다.
이라호드가 얼굴을 붉히면서도 설명을 시작했다.
“첫째로, 하계에서 가치 있던 쇳덩어리들은 이쪽에서는 별로 가치가 없어요. 알죠? 오디슨이 다이스에서 사다 썼던, 그 창만 해도…….”
음, 그러고 보니……. 머리를 긁적였다.
신계에서는 강철이 넘쳐난다. 그야 드베르그들이 엄청난 양을 채굴하여 수출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드베르그는 금속 전반에 관해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게 제련이든 대장일이든, 채굴이든 간에.
이라호드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둘째로, 인원이 확 늘었어요. 이전과 비교하면 2배 넘게 늘었다는 거, 알죠? 그러다 보니까, 한 사람한테 돌아가는 금액이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그렇군.
그 말을 들으며 이그나르나 토르손, 톨킬드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라우디는 달랐다.
왼손잡이인 그는 입을 쩍 벌리고 우리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얼굴에 묻은 물기를 털어 내며 말했다.
“몇백만이… 줄어든 거라고?”
그의 얼떨떨한 얼굴이 확 밝아졌다.
새로 들어온 약탈단원들의 안색도 라우디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희색을 띤 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크으! 오디슨 약탈단, 오디슨 약탈단… 소문나는 이유가 있구만!”
“우리가 이제까지 한탕 해서 제일 많이 번 게 겨우 인당 50만 크로나 정도였는데…….”
수군덕대는 걸 보자니, 이번 일은 확실히 성공이었다.
나는 그들이 감히 반항하지 못할 힘을 보여 줌과 동시에, 내 말을 따르면 뒤따를 달콤한 과실의 맛까지 보여 줬다.
약간의 불만이 있어도, 감히 내 말을 어기지는 못하리라.
흐뭇하게 모인 이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건 나중에 받을 정산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몇 번 연달아 이어 갈 생각이다! 싫은 사람이 있다면 당장 말해라!”
내 계획에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싫다는 새끼가 있다면 내가 나설 것도 없이 정리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 * *
오디슨 약탈단은 다른 약탈단에 비하면 굉장히 엄격한 편이었다. 특히나 피난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다른 약탈단과 확실히 차이가 났다.
“너희들의 승산은 없다! 항복하라! 항복한다면…….”
승기가 섰다 싶으면 곧장 항복을 종용했다. 각자 한 자루 분량의 물건을 가지고 피난 갈 수 있게 해 준다니, 항복하는 이들이 많았다.
거인족 사내들은 물론 그러고 싶지 않았다.
“죽어도 싸우다 죽는다!”
“미친 소리 하지 말고, 당장 항복해욧! 당신이 죽으면 우리 애는 어쩌라는 거예욧? 애는 살려야지!”
“하지만,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게…….”
“허이고! 자존심은 개뿔! 당장 항복해욧!”
짜악!
등짝을 때리는 거인족 여인들의 매서운 손길 앞에 거인족 사내들은 치욕스러운 항복을 감수했다. 적과 싸우다 죽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아내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서운 고통은 참을 수가 없었다.
새로 유입된 이들은 오디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으으, 들고 가는 저것들 뺏으면 적어도 몇백만은 떨어질 텐데…….”
“제기랄. 비싼 거만 바리바리 챙기네, 망할… 피난 가면서 아무것도 안 먹을 거야?”
새로 들어온 이들은 불만스러웠지만, 그걸 크게 표 내지 않았다.
첫날 오디슨이 보여 준 신위가 그들의 불만을 찍어 눌렀다.
“저 새끼들 사고치는 거 아닐까?”
톨킬드가 약간은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오디슨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사고?”
“거 있잖냐. 도망치는 놈들한테 빼앗겠다고 이탈해서…….”
오디슨이 피식 웃었다.
“한번 해 보라지.”
으르렁거리는 말투로 중얼거리는 오디슨.
그 목소리는 작았지만, 약탈단원들은 모두 알아들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고,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디슨이 첫날 보여 준 그 힘을 떠올린 이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톨킬드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니, 한 놈이 사고 치고 도망가면 어쩔 거야?”
톨킬드뿐만 아니라, 이그나르와 토르손, 그리고 크레네와 이라호드도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그에 대한 대책은 쉬웠다.
오디슨이 심드렁하게 한 단어를 내뱉었다.
“연좌제.”
약탈단원들이 한층 더 긴장하며 주위를 살폈다.
‘먹을 것도 없는 씨, 발라 먹을 새끼들 때문에 나도 엿 되는 수가 있다!’
‘설쳐 봐! 내가 확 다 죽여 버릴라니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하는 끔찍한 제도.
야만적이기 그지없지만, 사실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었다. 게다가 오디슨이라는 놈이 어떤 놈이던가? 알려지기를, 야만스럽게 알려진 작자가 아니던가? 연좌제를 적용해도 이상하지 않은 야만인이었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모습을 보며 오디슨이 씩 웃었다.
‘모조리 학살할 것이 아니라면, 최대한 사정을 봐주는 게 좋다.’
야만인으로 알려졌지만, 오디슨은 전쟁의 전문가였다. 하계에서 겨우 17년을 살았지만, 어느 정도 힘쓸 수 있게 된 이후부터 그의 삶은 전쟁과 전쟁, 그리고 전쟁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렇기에 오디슨은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항복한 자들에게 베푸는 것 외에도, 가장 큰 불만을 야기하는 규칙 역시 그런 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
“저 엉덩이하고는…….”
“으으…….”
거인족에 대한 성적 희롱을 모조리 금지한 것이다.
약탈이라는 게 본래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를 범하는 것이지만… 오디슨을 그를 허용하지 않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괜히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 할까?
오디슨은 그런 지저분한 짓이 싫었다.
혹, 자발적으로 노예를 바치고 도망치려는 이들도 있었다.
“이 애는 제 딸입니다만… 마을의 촌장인 제가, 베푸신 자비에 대해 바치는 선물입니다.”
“데리고 가라.”
“어, 하지만…….”
“필요 없으니 데리고 가라.”
오디슨은 그런 것들을 모조리 거절했다.
바쳐진 거인족 여성이 매몰찬 태도에 엉엉 우는 일도 있었지만, 오디슨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히잉! 발할라 가서 살고 싶었는데!”
끌려가는 거인족 아가씨의 눈이 오디슨을 훑었다. 오디슨은 오한을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새로 유입된 이들은 이런 광경이 꽤 익숙해졌다.
“전에는 웬 유부녀가 남편을 버리고 따라오겠다 했었지?”
“크으! 이 빌어먹을 놈의 외모지상주의!”
이전 단원들과 새로 들어온 단원들이 하나같이 오디슨을 물고 뜯으며 낄낄거렸다. 이런 일이 오히려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을 수는 없었다.
약탈이라지만, 실상은 전쟁.
전쟁터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몇 번째인가 약탈을 끝마치고, 오디슨이 크레네와 이야기할 때였다.
“이 근방에 지하수가 흐르는 것 같아요. 물이 풍부하니까, 저렇게 곡식도 잘 자라구요. 만약에 땅을 고를 수 있다면 이쪽으로 하는 게 좋아요.”
“흐음, 그런가? 지도에서 보면…….”
“이쪽이에요.”
크레네가 지도에 겹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해 주었다.
지도에는 이미 몇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고, 오디슨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쪽이 좋다고는 해도, 거인족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이 땅은 너무 위험하다.’
거인족의 수도, 스륌헤임에 너무 가깝다. 가깝다고 해도 말을 타고 일주일가량 달려야 하는 곳이기야 하지만.
오디슨이 고심할 때, 라우디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피난민이 허튼짓하지 않고 도망치는지 보라, 명받은 라우디였다.
오디슨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피난민들이 무슨 짓을?”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더 큰일입니다!”
더 큰일?
오디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라우디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칼을 칼집에 넣고 후우- 숨을 골랐다. 황급히 달려오느라, 무기조차 수습하지 못한 꼴이었다.
그리고 안 좋은 소식을 알렸다.
“거인족, 거인족 군대가… 매복하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군대가?”
톨킬드가 꿀꺽 침을 삼켰다.
라우디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거인족 군대는 대충 200에 가까운 숫자. 하지만 이전에 만난 자들과 달리 좋은 갑옷과 좋은 무기로 무장하고 있으며, 말까지 충분히 있다고.
수뇌부는 미간을 와락 좁혔다.
“그럼 빨리 쳐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피해가…….”
“거참, 우리가 물러나면? 말도 있다며? 기마부대가 쫓아오기 시작하면 더 피해가 클걸?”
매복을 눈치챘다는 것 때문에 의견이 갈라졌다.
싸우자. 아니다, 후퇴하자.
오디슨은 입을 꾹 다물었고, 다른 이들은 라우디에게 물었다. 직접 본 사람 만큼 판단을 잘할 수 있는 이가 있겠는가?
라우디가 말했다.
“도주하는 건 뒤통수가 너무 가렵습니다. 매복하고 있으니 차라리 모른 척하다가 기습하는 게 더…….”
그럴듯한 의견이었다.
매복한 장소를 안다는 건 굉장한 이득이다.
모두가 싸우는 쪽으로 의견을 굳힐 때 오디슨이 지도를 펼쳤다.
“라우디, 놈들이 매복한 자리를 짚어 봐라.”
“…매복한 자리를요?”
라우디가 눈을 데구루루 굴리다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본 오디슨이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라우디가 눈을 끔뻑였다.
“이, 이쪽에 뭔가가 있습니까?”
“아니, 엄연히 따지자면, 이 손이 문제다.”
“손?”
라우디가 고개를 갸웃했고, 우뚝 굳었다.
푸욱!
오디슨의 창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가 덜덜 떨며 제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왜, 왜……?”
라우디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당황했다.
왜 갑자기 아군을 공격한단 말인가!
이그나르가 버럭 소리쳤다.
“야! 미쳤어? 왜 갑자기…….”
오디슨은 창을 회수하고, 그대로 휘둘렀다.
퍼억!
라우디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회의 중이던 천막을 붉게 물들였다.
오디슨은 창에 묻은 피를 털고 말했다.
“라우디는 왼손잡이다.”
목이 사라진 시체가 지도를 짚고 있는 손은?
오른손이었다. 그리고 그가 왔을 때도, 칼을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
왼손잡이가 왜 오른손을 더 편하게 쓴단 말인가.
오디슨은 거기까지 생각한 뒤,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왼손을 다쳤을 수도…….”
이그나르가 더듬거리며 말할 때, 기괴한 웃음소리가 천막을 가득 채웠다.
키키키키키키키!
그 웃음소리를 내는 것은 잘린 라우디의 목.
바닥에 떨어진 목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군! 대단해! 부하 하나하나의 습관을 기억하고, 의심하며, 망설이지 않아! 정말, 걸물이야! 과연, 오딘의 총애를 받을 만하구나!”
이그나르가 입을 쩍 벌렸다.
토르손과 톨킬드는 황급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크레네도 지팡이를 세웠고, 이라호드는 투구의 눈가리개를 내렸다.
오디슨이 물었다.
“넌 누구지?”
가만히 있던 몸이 뒤뚱뒤뚱 움직여, 떨어진 목을 주워 들었다.
머리를 겨드랑이에 낀 라우디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우트가르트의 마법대공, 우트가르다-로키!”
악명 높은 이름이 튀어 나왔다.
오디슨은 그 이름에 얽힌 연원을 떠올렸다.
토르와의 내기.
‘…거물이다.’
오디슨이 히죽 웃었다.
투쟁심이 들끓는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