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39화 (139/208)

# 139

139화. 신을 속이려 하지 마라 (1)

기분이 이상하다.

신기한 마법의 판, 스마투포 때문에? 아니, 그 물건에 비치는 광경 때문이었다.

<오늘의 날씨입니다. 먼저 아스가르드와 발할라는 오늘도 맑고 상쾌한 날씨를 보이겠습니다. 그에 반해 니플헤임은 오늘도 찬바람이 쌩쌩 부네요. 니플헤임 가실 일 있으신 분, 두꺼운 옷 챙기는 것 잊지 마세요!>

저 선머슴 같은 녀석이 방실방실 웃으며 방송을 하고 있다니.

뭔가 목구멍이 간지러워 손톱으로 벅벅 긁고 싶은 느낌이었다.

크레네가 오- 하고 감탄했다.

“이제 확실히 어색하지가 않네요. 라드게리타 양 연결해 준 게 정답이었나 봐요.”

크레네의 말에 나는 괜히 투덜댔다.

“거… 그냥 가르쳐 주는 대로 읽기만 하면 되는 건데, 뭘…….”

“어색해요? 라드게리타 양이 방송인이 된 게?”

어색? 라드게리타가 뭔가 눈에 띄는 일을 하고 싶어 하길래 싸움의 법칙 PD를 연결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색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크흠! 그나저나, 맨날 똑같은 날씨를 뭐라고 방송까지 해 가며 알려 주는 거지?”

라드게리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자니, 어째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다.

크레네가 킥킥 웃으며 내 노골적인 말 돌리기에 호응했다.

“뭐, 늘 똑같으니까 이렇게 방송하는 게 중요한 거죠. 늘 똑같다고 방심하다가 갑작스러운 기상 이변이 일어나면 어떡해요?”

“으음… 그거야 그렇지만.”

내가 하계에서 울프헤딘을 이끌 때도 그랬다.

이기고 지고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연달아서 이기거나 연달아 지면 문제가 된다. 연달아서 지는 경우는 알기 쉬우리라. 주눅 든 탓에 본래 이길 상대에게도 지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늘 이기는 게 왜 문젠가? 어느 순간, 적을 얕잡아 보고 방심해 크게 문제가 터지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길 수는 없다. 때로는 패배하고 초라한 몰골로 도주할 때도 있는 법이다.

“…흐음, 늘 똑같은 것만큼, 경계해야 할 일도 없지.”

“그렇죠?”

크레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때, 이라호드가 샐쭉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근데, 이 님프는 대체 왜 데리고 온 거예요? 당신도 좀 그래요. 가자- 한다고 곧장 따라나서다니. 이건 소풍이 아니에요.”

이라호드는 크레네가 같이 온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은근히 질투를 부리는 게, 귀여운 수준에 그쳐서 다행이긴 하다.

크레네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이라호드의 표정이 멍해진다.

세 가지나 되는 이유가 있다는 게 놀라우리라.

왜냐면, 크레네에게 함께하자 제안한 나도 놀랐으니까.

“세 가지나 된다고……?”

내가 중얼거리자, 이라호드가 눈살을 좁히며 의심으로 가득한 눈길을 던졌다. 크레네는 큼큼- 목을 가다듬고 설명했다.

“첫째로, 치료의 목적이에요. 약탈단이 거친 일이다 보니, 다치는 일이 많을 거예요. 그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에요.”

“…그래서 두 번째는요?”

이라호드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크레네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꾸했다.

“둘째는 식수 공급의 목적이에요. 이번 출정은 유난히 길다면서요? 그런데 물을 가득 채워서 다닌다? 식수 무게를 생각하면 낭비죠. 게다가 오래된 물이 멀쩡한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그러니까 식음가능수자원관리기능사 1급이 있는 제가 필요한 거죠.”

시금… 뭐?

기괴하게 긴 자격의 이름을 말하는 크레네.

나는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들었음에도 여전히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어쨌거나,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확실히 그럴듯한 이유다.

이라호드도 차마 시비를 걸 수 없을 정도로 똑 부러지는 이유.

크레네는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접으며 말을 이었다.

“오디슨이 공을 세워 받으려는 게 부족이 들어설 땅이죠? 그게 바로 제가 따라온 세 번째 이유예요. 식음 가능한 물이 없는 곳에 부족이 들어선다? 그게 말이 될까요? 사전 탐사에 가깝다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제가 여기가 좋다~ 한마디 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따라온 이유가 넘치죠?”

“…으음.”

이라호드가 입술을 삐죽였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럴듯한 이유가 있으니 넘어가겠다는 표정이었다.

아! 하고 크레네가 탄식을 흘렸다.

“네 번째 이유도 있네요.”

“네 개나 된다구요?”

이라호드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입안에서 말을 굴렸다. 대충 입술을 읽어 보자면, ‘나는 싸우는 것밖에 없어서, 한 가지 이유뿐인데…’ 하고 중얼거리는 모양이었다.

신성이 커지니 감각이 날카로워져서 좋구만.

부드럽게 웃으며 크레네의 네 번째 이유를 들었다.

“마지막 이유는, 오디슨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요. 히히.”

크레네가 내가 폭 안겼다.

이라호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팔을 내밀었다.

“내 가슴은 넓다.”

안기라는 말에 이라호드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됐거든요!”

흥! 하고 그녀가 거리를 벌린다.

쯧쯧, 저리 뻔히 보이는 표정을 하고서 아닌 척하기는.

크레네가 내 귀에 속닥거린다.

“저런 부끄럼쟁이는 그냥 콱!”

“그냥 콱?”

“자빠뜨리라고요.”

크레네의 입김이 내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녀의 제안이 끌리기는 하나, 나도 자존심이 있다.

말로만 싫다고 한다 한들, 싫다는 여자를 억지로 취하는 건 영 아니다.

내 나름의 자존심이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누구냐!”

즐거운 휴식 시간은 톨킬드의 고함에 와장창 깨졌다.

적인가? 품에 안고 있던 크레네를 내 등 뒤로 숨기며 창을 꺼내 들었다.

모두가 그랬다.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지만, 언제든지 날카로운 면모를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일행이다.

그런 경계가 무색하게도, 다가온 이들은 거인이 아니었다.

“그 늑대와 나무가 그려진 깃발. 혹, 오디슨 약탈단이오?”

다른 약탈단이었다.

그들은 돈 잘 번다 소문난 약탈단이 아니라, 피난민에 가까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적이 아닌 모양이다.

내가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지?”

그에 초라한 꼴의 약탈단장이 움찔 떨며 말했다.

“그… 좀 도와줄 수 있겠소?”

* * *

거인족은 바보가 아니다.

분명 거인족 사내들은 바보 같은 면모가 있긴 하지만, 거인족 여성들은 깐깐한 살림꾼이다. 게다가 거인족 귀족들은 아스가르드의 신들에 비교해도 멍청하지 않다.

아스가르드 신계의 가장 뛰어난 꾀주머니, 오딘의 의형제 로키만 봐도 그렇다. 그는 거인족이다.

약탈단장이 왼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약탈단을 통해 우리가 그들의 세력을 장기적으로 약화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거요.”

거인족은 작은 마을을 모조리 소개(疏開)했다.

약탈의 대상이 되기 쉬운 작은 마을은 약탈을 당하기 전에 이미 도시로 편입되었다. 집과 터전을 잃는 걸 좋아하는 이들은 없지만, 목숨과 재산을 모두 잃는 것보다는 낫다 여겼다.

그 결과, 소규모 약탈단이 노릴 수 있는 작은 마을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혹여 작은 마을이 남아 있다고 해도…….

“마을인 척하던 군대였소. 마을 주민 중에 여자가 하나도 없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지.”

약탈단장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 단원들을 꽤 잃은 모양이었다.

오디슨은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오디슨도 모르는 일은 아니었다. 그의 눈이 크레네를 힐끗 살폈다.

크레네의 말처럼 다양한 의도는 없었다. 그저 단순한 생각으로 그녀를 데리고 온 것이다.

‘피해를 감수하기 위함이었지.’

오디슨은 흐음- 고심했다.

약탈단장은 오디슨의 침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오디슨이 말했다.

“그래서.”

“어……?”

담담한 말에 약탈단장이 입을 벙긋거렸다.

오디슨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을 재촉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뭘 바라는 거지? 복수해 달라고?”

오디슨에게 함정인 줄 알면서도 돌격하는 취미는 없다. 때로 함정을 힘으로 부숴야 하는 때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약탈단장이 꿀꺽 침을 삼키고 말했다.

“우리를 받아 주시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오디슨은 그 정도쯤이야, 고개를 끄덕이고 수락했다.

하지만 무너진 약탈단의 단장이라는 자는 야망이 있는 사내였다. 야망이 없다면 약탈단 같은 것을 꾸리지도 않았으리라.

그는 때를 기다렸다.

‘오디슨은 강하다. 하지만 어리지. 잘만 구슬린다면…….’

약탈단장은 오디슨 약탈단을 살폈다.

어린 오디슨을 대신해 힘쓰는 이들이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작은 권력이라도 잡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무너진 약탈단보다 차라리 신의 뒤를 조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의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다.

“새 동료를 받았으니… 그 동료들의 복수도 해 주는 게 좋겠지.”

약탈단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그 말은… 설마?”

“설마는 무슨. 자네들이 당했다던 그쪽으로 안내하게.”

오디슨이 씩 웃었다.

새로 유입된 이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도망쳐 나왔건만, 다시 그 지옥 같은 함정으로 뛰어들자고?

오디슨은 함정을 정면으로 박살 내야 할 때가 지금임을 알았다.

새로 들어온 이들이 딴마음을 못 먹게 압도적인 힘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유입된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다 합쳐도 50명이 될까 말까 한 인원으로……? 거기 있는 거인족은 적게 잡아도 100은 훌쩍 넘소!”

“100? 겨우 그뿐인가? 시기 놈의 약탈단과 싸우는 걸 보지 못했나?”

오디슨의 질문에도 유입된 단원들은 그를 말렸다.

“시기의 약탈단과는 질적으로 너무 다릅니다!”

“거인족 병사 하나가 보통 에인헤리 두셋을 상대하는 걸 생각하십쇼!”

그러나 오디슨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오디슨이 윽박질러 그 위치를 알아냈다.

유입된 이들은 전(前) 약탈단장을 원망스레 쳐다보았다. 어쩌자고 이런 미친놈에게 달라붙어 죽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다시 가느냐는 표정이었다. 전 약탈단장도 파랗게 질려 덜덜 떨었다.

‘미친!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도망갈 틈이 있을까? 주변의 약탈 단원을 보아하니, 은근히 새로 들어온 이들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전 약탈단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기랄! 죽어도 싸우다 죽는 거다!”

왼손에 칼을 뽑아 들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대로 돌격했다.

하지만 그가 할 일은 없었다.

달걀로 바위 치기? 달걀이라 생각한 게 알고 보니, 바위도 때려 부수는 강철이었다.

“크아아아악!”

“괴, 괴물이다! 괴물이 쳐들어왔다!”

전 약탈단장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악마 같던 거인족 군대가 단 한 사람에게 무너지고 있었다.

부르르, 그가 몸을 떨었다.

“날 막겠다고 함정을 쳤다고? 어디 막아 봐라!”

번쩍!

빛이 터질 때마다 거인족 병사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오디슨이 창을 휘두르며 터트리는 웃음에 거인족이 겁에 질려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전 약탈단장은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식은땀을 느낄 수 있었다.

‘…미친.’

강하지만 어리니까, 잘 구슬리면 비선실세가 될 수 있을 거다?

전 약탈단장은 자신이 아까 했던 생각을 그대로 폐기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고양이가 호랑이를 조종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는 차라리 잘됐다 여겼다. 만에 하나 오디슨을 구슬려 제 뜻대로 움직이려 했다면?

‘…으.’

전 약탈단장이 몸서리쳤다.

섬뜩한 미래를 떠올린 탓에 오한이 들었다.

감히 신을 속이려 하다니. 스스로를 불경하다고 생각한 전 약탈단장이 우와아아아- 고함을 내질렀다.

“우리는 오디슨 약탈단이다!”

버럭 소리치며 달려드는 그 모습은 광신도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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