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136화. 늑대의 시대 (1)
늑대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영리하고 가족을 보살필 줄 아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조심하라.
늑대는 불길한 흉물이다. 어둠 속에서 요요히 빛나는 눈동자는 빈틈을 노린다.
무리를 아끼지만, 동시에 무리를 탐낸다.
언제고 따르던 이를 물 수 있는 것이 늑대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아끼던 것도 버리기에 늑대는 무섭다.
그러니 조심하라.
사람이 늑대를 닮아 가는 시대이니.
* * *
시그니료드는 꿈을 꿨다.
태양을 물어뜯는 늑대의 꿈을. 해를 삼키는 스콜의 꿈인가? 하지만 스콜이 아니었다.
이제껏 몇 번이나 보아 온 낯익은 늑대. 붉은 늑대는 태양의 목을 문 채 황금빛 눈으로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깨어난 시그니료드는 빛에 눈물 흘렸다.
“오빠.”
나지막이 중얼거린 시그니료드와 달리, 왕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어둠이 마침내 물러났노라- 모두가 기쁨에 노래를 불렀다. 수확을 바라기엔 이미 늦은 시기지만, 그래도 빛이 있다.
겨울은 가깝고, 먹거리는 별로 없다.
하지만 왕국의 백성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시그니료드는 감상에 잠기기보다는 일어나 외쳤다.
“우리는 적의 것을 빼앗았다. 하지만 그 와중, 우리가 뺏지 못한 것이 있다. 이제는 그것을 빼앗을 때다.”
왕관을 쓴 자로서 그녀는 명했다.
“적의 마음을 빼앗아라.”
유화책이 펼쳐졌다.
약탈로 허덕이던 이들이 천천히 왕국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려 미쳐 날뛰던 덕에 빈 땅은 넘쳐났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제국의 후손을 자처하며 제국을 삼키려던 잔당들이었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거듭했다.
쾅!
“미친놈들은 가만히 두면 자멸할 거라 하지 않았소!”
테이블을 세게 때린 2황자가 버럭 소리쳤다.
그에 그의 군사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야만 왕국보다 어둠의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던 이들이 갑자기 빛을 되찾다니? 신의 저주로 태양을 빼앗긴 게 아니었던가?
누가 갑자기 이렇게 상황이 반전될 거라 예상했을까.
“후우, 상황을 다시 정리해 보지.”
2황자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가진 것을 되돌아보는 것은 때로 시련을 넘길 힘이 되기도 한다. 언제나 자신을 잘 알아야 적을 상대할 수 있다. 그는 어릴 적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곧 군사들이 현 상황을 정리했다.
“제길.”
상황이 생각보다 더 안 좋았다.
본래 제국의 패권을 두고 싸우는 이들은 셋이었다. 군소세력들(3황자 등)이 있기야 했으나, 대세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이들이었다.
2황자, 4황자, 그리고 군단장.
셋은 때로 손을 잡고, 때로는 배신하며 싸워왔다.
그 상황이 갑작스레 바뀐 것은 4황자와 군단장 간의 혼인 동맹. 군단장의 딸과 4황자가 결혼을 하면서이다.
2황자는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힘을 합친 둘과 싸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 야만 왕국.
“그때 기뻐했던 내가 바보 같군.”
2황자가 자조했다.
반가워한 외부 세력이 꼬리에 불붙은 소처럼 날뛰었다. 그 탓에 4황자와 군단장의 세력이 많이도 줄었다.
하지만 잠깐 설치다 스스로 자멸할 거라 생각한 이들이 대뜸 꼬리에 붙은 불을 껐다. 이제는 정말 골치 아픈 상황이 되었다.
“우리 군을 1이라 한다면, 4황자와 군단장이 대략 0.8 정도 됩니다. 그리고…….”
군사가 눈치를 살폈다.
불편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2황자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입술을 짓씹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라 손짓했다.
군사가 크흠-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야만 왕국의 세력이 대략 1.5 정도……. 하지만 지금 그들이 차지한 땅을 살피자면, 당장 이번 겨울만 넘기더라도 3, 혹은 5까지 성장할 거라 생각합니다.”
막막한 수치다.
당장 제국 출신들이 손을 잡고 싸운다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제국의 패권을 두고 싸우던 이들이다.
“4황자 측에 동맹을…….”
“허튼소리! 그놈들과 손을 잡을 순 없소!”
“놈들 탓에 내 아들이 죽었어!”
2황자는 두통을 느꼈다.
악연이 쌓이고 쌓여, 야만인보다 4황자를 더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2황자가 한숨을 푹 쉬었다.
어찌해야 할까. 고민이 그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그때, 한 가지 제안이 나왔다.
“폐하, 우리의 최종 목표는 제국의 재건 아닙니까?”
2황자는 자신의 세력 내에서 이미 황제를 자처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에 2황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한 걸 왜 묻는 걸까? 2황자는 짜증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런데 지금 왜, 그 이야기를……?”
“제국은 언제나 야만인을 흡수하고자 했습니다. 정복이든, 유화책이든 말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가 제국의 재건이라면… 야만인들에게 동맹을 제의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군사들이 제각기 목청을 높였다. 그럴듯한 의견이긴 했으나, 가장 중요한 ‘신뢰’의 부재가 문제였다.
의견을 낸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야만인들은 분명 야만적이지만, 그들은 동시에 가족을 굉장히 아낍니다. 아마 부족 사회기에 그렇겠지요.”
“가족을 아낀다? 그럼, 설마…….”
2황자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야만 왕국은 여왕이 다스리는 곳이라 하지 않습니까? 혼인을 제안하십시오. 그리하신다면…….”
소란이 일었다.
제국의 황자, 아니 이제는 황제를 자처한 이가 야만인을 아내로 맞이한다? 제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하지만 2황자는 그럴듯하다 여겼다.
‘…혼인이라.’
2황자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도 아내가 있지만, 4황자도 아내가 있었다. 4황자는 아내를 내치고, 군단장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했다.
‘내 동생이지만, 늑대 같은 놈이다.’
그에 대해 비난을 하자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수단을 써야 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도덕이나 윤리보다는 군주의 결단이 필요한 시절이다.
2황자는 쾅! 테이블을 때렸다.
“조용! 조용! 조용히 좀 하시오!”
좌중을 모두 입 다물게 한 뒤, 2황자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피곤한 얼굴에 마른세수한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그래, 군주는 때로 흙탕물을 뒤집어쓸 필요도 있겠지.”
결정이 떨어졌다.
신하들은 그의 결정에 억지 눈물을 짜내며 목 놓아 소리쳤다. 자신들이 부족하여 그런 오욕을 뒤집어쓰게 했노라고.
2황자의 세력에서 야만 왕국으로 사절을 보냈다.
시그니료드가 그 사절을 맞이했다.
“…흐음.”
사절의 이야기를 들은 시그니료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전사들은 사절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감히!”
“시그니료드님! 당장 저 개자식들을 쓸어버립시다!”
판도라 역시 분기를 참지 못했다. 그녀가 사절을 노려보다 시그니료드에게 이 모욕을 갚아 주자 외치려 고개를 돌렸을 때,
“…시그니?”
판도라는 흠칫 몸을 떨었다.
시그니료드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혼인 동맹이라.”
“잠깐! 시그니, 설마…….”
판도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벙긋거릴 때, 시그니료드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판도라에게 말했다.
“왕관이라는 건 그런 건가 봐요, 언니.”
“…무슨!”
판도라가 입술을 짓씹었다.
전사들 역시 이 대화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일단 시그니료드는 사절을 물리고, 이에 대한 답변을 곧 해 주겠노라 말했다.
대전에서 사절들이 돌아간 뒤, 온갖 고성이 오갔다.
시그니료드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말했다.
“날 믿어라.”
딱 한마디.
그 말에 고성이 잦아들었다.
판도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전사들은 여전히 분하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시그니료드를 불신하지는 않았다.
이제까지 시그니료드가 왕국에 해가 되는 결정을 한 적이 있던가? 그녀는 왕국의 여왕이며, 동시에 신과 소통하는 볼바다.
모두가 그녀의 현명함을 믿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왕국 전체에 우울한 혼인이 결정되었다.
“초라한 곳이군.”
“주변 야만인들 꼴 좀 보십시오.”
수군덕대는 2황자의 군세가 왕국으로 들어섰다.
2황자는 야만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군대 역시 주변을 깔보는 기세를 숨기지 않았다.
백성들은 모두 그들을 미워했다.
하지만 어쩌랴? 시그니료드가 직접 결정하고, 믿으라 한 것을.
왕국의 수도, 옛 누릅나무 부족의 땅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최대한 화려하게 꾸민 결혼식장이었으나, 분위기는 여전히 싸늘했다.
마침내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그 식의 진행을 맡은 것은, 시그니료드를 제외하면 가장 명망 높은 볼바인 판도라였다. 그녀는 2황자의 눈빛이 불쾌했다.
2황자는 예복을 입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지 같은 곳이군. 하지만…….’
그의 눈길이 판도라에게 닿았다. 제국에서도 보기 드문 미녀였다.
시그니료드 역시 미인이었지만, 판도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판도라는 무려 아프로디테에게 아름다움을 선물 받은 여자 아니던가?
2황자는 판도라에게 끈적한 눈길을 보냈다.
‘이곳이 내 것이 된다면, 이 여자도 내 것이겠지.’
2황자가 음침한 웃음을 흘릴 때, 시그니료드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자리에 참석한 전사들은 모두 침울한 표정으로 예복을 갖춰 입은 시그니료드를 바라보았다. 평소 검소한 모습과 달리 한껏 꾸민 시그니료드는 아름다웠다.
2황자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판도라는 아스가르드 신들의 축복을 빌고, 정해진 주례사를 읊었다. 그녀의 축복 탓이었을까? 태양 빛이 시그니료드를 내리쬐었다.
판도라는 그 광경에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 순서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신랑 신부의 맹세를 듣겠습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께 맹세한 것을 어긴다면, 토르의 묠니르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2황자가 피식 비웃었다.
토르의 묠니르라니? 말도 안 되는 협박이다. 하지만 일단은 맞춰 주는 게 좋으리라.
2황자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나는 이 땅의 여왕인 시그니료드의 부군으로서, 이 땅의 번영과 모든 이들의 계몽을 이 자리에서 엄숙히 맹세하는 바요. 더불어 진심으로 아내를 아낄 것을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오.”
짝짝짝-
2황자를 따라온 이들이 손뼉을 쳤고, 이 자리를 차지한 왕국의 신하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판도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몽이라니.’
깔보는 것이 분명하다.
판도라는 입술을 짓씹으며 시그니료드를 바라보았다.
예식을 위해 화장한 시그니료드는 아름다웠다. 이런 작자에게 정절을 바치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판도라는 한숨을 푹 쉬며, 시그니료드의 맹세를 요구했다.
“신부? 맹세하세요.”
시그니료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전사의 앞에 경건히 말하노니, 나는 이 땅의 여왕으로서 이 땅에 번영을 가져 올 것이다. 또한, 쓰러질 줄 모르는 붉은 마왕 앞에 다짐하니, 이 땅을 노리는 적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내 행동으로 증명하리라.”
시그니료드가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마치 오디슨이 직접 그녀를 위로하는 듯했다.
‘네 선택이 옳다.’
시그니료드는 환청에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를 이었다.
스스로의 권리와 보호를 맹세한 뒤에 따를 것은 결혼에 대한 맹세이리라.
시그니료드가 천천히 말했다.
“태양을 되찾아 온 자, 그분께 허락을 구하나니, 시작은 지금이다.”
“음? 내가 전해 들은 예법과는 좀…….”
2황자가 고개를 갸웃할 때, 시그니료드가 그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리고 머리를 고정한 비녀를 뽑았다.
사르륵-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이 여자도 보통 미색은 아니야.’
2황자는 감탄했다.
길게 이어지는 감탄은 아니었다.
푸욱!
“컥……!”
그 비녀가 2황자의 심장을 찔렀으니까.
모두가 딱딱하게 굳었을 때, 시그니료드가 외쳤다.
“이 땅을 노리는 적들을 모조리 죽여라!”
와아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혼례에 참석한 전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당장 일어나 2황자를 따라온 이들을 때려죽였다.
2황자가 이끌고 온 군대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군대는 혼인을 축하한답시고 내준 술과 고기에 흥청망청했다. 그들은 시그니료드가 은밀하게 준비해 둔 전사들에게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모조리 시체가 되었다.
시그니료드는 그 끔찍한 광경을 눈에 똑똑히 담았다.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고, 내장이 쏟아졌지만 그녀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왕관을 쓴 자가 견뎌야 할 책임이었다.
“시그니.”
판도라가 격앙된 표정으로 그녀 앞에 섰다.
시그니료드는 흐릿하게 웃었다. 판도라가 왜 저렇게 화내는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비열한 짓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죠, 언니?”
“그래, 늑대 같은 짓이었어. 어쩌자고 이런… 차라리, 그냥 혼인을 거절했더라면…….”
시그니료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이렇게 쉽게 없앨 수 없었겠죠.”
“하지만…….”
판도라는 여전히 복잡한 얼굴이었다.
2황자라는 쓰레기 같은 놈과 시그니료드가 결혼하지 않아 다행이다? 혼인을 빌미로 2황자를 함정에 빠트린 시그니료드의 평판?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시그니료드가 부드럽게 웃으며 판도라를 토닥였다.
“늑대의 시대예요. 저기 죽어 나자빠진 남자도, 저와 혼인하기 위해 아내를 버렸죠. 그런 시대예요, 지금은.”
“…그렇다고 해도, 잘 모르겠어. 늑대의 시대다? 늑대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네가 늑대가 될 필요가 있었을까?”
시그니료드가 쓰게 웃었다.
“난 여자이기에 앞서 왕이에요. 과부 거미니 뭐니 마음대로 부르라 해요. 왕의 명예? 그보다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는 게 더 급해요.”
판도라는 시그니료드가 듣게 될 온갖 모욕을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시그니료드가 한 짓은 이 땅에 엄청난 혼란을 몰고 오리라. 시그니료드가 2황자를 이런 방식으로 죽이면서, 흘리지 않아도 될 민초들의 피가 땅을 적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판도라 자신이 왕관을 썼다면?
‘…이렇게는 못 했겠지. 자신을 포기한 자만이 걸을 수 있는 왕도(王道)야. 피와 비명으로 가득한…….’
판도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물었다.
“시그니, 너는 왕이니? 아니면 오디슨의 동생이니?”
그 말에 시그니료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판도라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다시 시그니료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그니, 복수가 두렵지 않니?”
시그니료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훗날 ‘겨울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여자답지 않게 따뜻한 봄날처럼 부드러운 웃음을 띤 채 대답했다.
“복수는 오빠 앞에 무릎 꿇었잖아요.”
농담 섞인 투였지만, 곧 펼쳐진 대륙의 정세는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
2황자의 죽음이 알려지며, 그의 세력에서 온갖 이들이 군주랍시고 봉기했다. 그리고 4황자와 군단장은 그 땅을 삼키기 위해 애쓰면서도 왕국을 견제했다.
왕국이라고 가만히 있을까?
“우리를 억압해 온 자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성전이다!”
전사들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에 성전이 선포되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전사, 쓰러지지 않는 붉은 마왕, 그리고 태양을 되찾아 온 자. 세 가지 신명을 내세운 전쟁이었다.
이름 셋이 가리키는 자를 향한 숭배가 더욱 두터워졌다.
바야흐로 늑대의 시대였다.
지식인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신을 꼽았다.
오딘의 늑대, 프레키 오디슨.
왕국 모두가 자긍심을 가슴에 품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성전의 승리를 바랐다.
오직 한 사람만이 걱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우리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기를.”
출정식이 끝난 밤, 판도라는 오디슨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를 받을 신은 외사촌 여동생의 바람대로 복수를 무릎 꿇렸다. 그리고 또 다른 복수마저도 무릎 꿇리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