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35화 (135/208)

# 135

135화. 바람의 시대 (3)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최근 들어 투기장이 가득 찬 적이 있던가? 해설 위원은 새삼 오디슨의 티켓 파워에 혀를 내둘렀다.

아나운서가 입을 열었다.

[하하하, 정말 대단한 환호성입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우렁찬 소리를 듣는 것 같은데, 해설 위원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정말 오랜만이네요. 많은 관중분들이 이런 싸움을 기다려 왔다는 증거기도 하죠.]

[네, 말씀드리는 순간, 시기 약탈단 등장합니다.]

와아아아아!

“시기! 너한테 걸었다! 오딘의 핏줄을 보여 줘라!”

“숫자 차이만 10배야, 10배! 지면 알지!”

“우우우우! 전에 한 방에 져 놓고는 무슨……!”

야유가 섞여 있긴 하지만, 대부분 시기 약탈단의 숫자에 감탄했다. 역시나 오딘의 핏줄이라며 고개를 주억이는 이도 상당한 숫자였다.

약탈단이라는 집단을 지휘하는 건 개인의 무력과는 또 별개의 문제다.

많은 바이킹 왕들이 있었고, 그 왕들은 최고의 전사가 아닌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을 폄하하는 이는 없다.

해설 위원이 감탄을 터트렸다.

[시기 선수, 세력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확실히… 세력을 지휘하는 솜씨가 대단한 것 같네요.]

[네? 방금 등장했는데, 그걸 어떻게…….]

[하하하, 제 말이 허풍 같습니까? 보십시오, 저 숫자가 딱 각이 잡혀 있지 않습니까? 약탈단이라고는 하지만, 군대에 가까운 훈련을 거듭해 왔단 거예요. 그런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뵐숭 일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시기 선수. 뵐숭 일족은 수많은 영웅을 배출한 가문이죠? 이거 참, 기대됩니다.]

[아! 오디슨 약탈단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악!

투기장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 정도로 엄청난 소리였다. 환호와 비명, 야유는 아예 묻혀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오디슨 니이이임! 꺄아아아악!”

“사랑해요, 오디슨!”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줘!”

광란에 가까운 반응에 아나운서가 헛숨을 흘렸다.

[허, 반응이 정말 대단합니다!]

[오디슨 선수, 개인에 대한 충성도 높은 팬덤, 그리고 언제나 훌륭한 싸움을 펼쳐 왔던 탓이겠죠? 게다가 성향을 보면 시기와 완전히 반대거든요? 훌륭한 지휘관에 가까운 시기 선수와 스스로의 무력을 앞세워 부하를 이끄는 오디슨 선수. 어찌 보면 남자의 로망 아니겠습니까?]

[남자의 로망이요?]

[예, 적이 얼마나 많든 간에 혼자서 모조리 무찌르는 거요.]

[하하하, 그거 정말 멋진 일이죠. 그렇기는 해도 오디슨 선수가 바보는 아니거든요? 거의 10배 차이. 이 차이 앞에 그대로 돌진하겠습니까?]

[네, 아니겠죠. 그대로 돌진한다면 그냥 처절하게 깨질 따름 아닙니까?]

[물론입니다. 아! 경기, 시작됩니다!]

[초반은 시기 측의 돌격, 아니면 서로가 눈치 싸움을… 어엇!]

[저게 뭡니까! 왜, 왜 오디슨 약탈단이 돌진합니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예요!]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장내 방송과 상반된 오디슨 약탈단의 돌진에 흥분이 들끓었다. 약간 지루한 초반이겠지- 생각하고 맥주 캔을 딴 관중들은 맥주를 마시지도 못하고 소리를 꽥꽥 질렀다. 그 덕에 맥주가 사방팔방으로 튀었지만, 누구도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경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크하하하하!”

“힘이 넘친다, 넘쳐!”

오디슨 약탈단의 용병들이 미쳐 날뛰었다.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무기를 휘두르는 데, 거기에 실린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크어억!”

“이, 이 미친 새끼들!”

시기 약탈단은 당황했다. 오와 열을 맞춰 오디슨 측을 압박하는 작전이 시작부터 박살 났다. 오와 열은 흐트러졌고, 너무 많은 아군 탓에 손발이 꼬였다.

“젠장할! 옆으로 좀 가! 휘두를 수가 없잖아!”

“크윽, 미친 새끼! 네가 옆으로 가!”

“뭐라고? 이 개, 커억! 끄르륵……!”

20명이 200명을 압도하는 기괴한 모습.

관중들은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화끈합니다! 화끈해요!]

[오오! 시기 약탈단도 무력하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서로를 도와 가며… 엇? 익숙한 얼굴입니다. 이그나르 선수!]

시기 약탈단이 흥분해 날뛰는 용병을 숫자로 몰아붙인 뒤, 끝장내려는 순간이었다. 이그나르가 끼어들었다.

퍽퍽퍽!

“크흐흐! 간지럽구만!”

“미친! 이 새끼는 뱃살이 돌로 되어 있나?”

“어허! 뱃살은 무슨! 이게 바로 인덕이다!”

부우웅!

이그나르는 예전 고기 방패를 벗어난 지 오래다. 그는 현재 발할라에서 가장 유명한 고깃집 사장이면서, 동시에 200S로의 승급을 눈앞에 둔 M300R의 투사였다.

얼음미끼? 그 불명예스럽던 별명은 이제 투기장 팬들의 추억에만 남아 있었다.

“얼음도끼 나가신다!”

콰드득!

얼음도끼 이그나르.

그의 도끼는 마검 그람의 칼날을 섞어 다시 만든 물건. 어지간한 공방제 명품들은 도끼 앞에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크아아악!”

“내, 내 방패가!”

이그나르의 도끼가 화려하게 적들을 분쇄할 때, 그람의 손잡이 부분을 받은 토르손은? 섬세하기 그지없는 검술로 적들의 약점을 찔렀다.

“끄으, 몸이 뜨겁다!”

“이 변태 같은 곰탱이는 뭐야?”

“흐아아앗!”

아니, 그리 섬세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나름 섬세하게 검술을 펼쳐도 우악스럽기 그지없었다.

찌르고 베고, 휘두른다.

토르손은 이그나르와 듀오를 이뤄 활동하는 만큼, 이그나르의 방어력에 기대 적의 약점을 후벼 파는 데에 특화되어 있었다.

용병들이 불만을 토했다.

“젠장할! 이 자식, 내가 다 잡아둔걸!”

“흐흐흐, 미안미안.”

“칫, 경기 끝나고 술은 네가 사라!”

“하하하, 그거 좋지!”

토르손이 껄껄 웃을 때, 그의 귓가에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꺅! 토르손! 오디슨 님을 위해 힘내요!”

토르손이 잘 아는 목소리였다.

메이니. 오디슨 팬클럽 회장인 만큼, 그녀도 이 자리에 있으리라.

토르손은 그녀의 목소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나, 날 응원하고 있어!’

토르손의 눈이 번뜩였다.

‘오디슨 님을 위해’라는 부분은 그의 뇌에서 알아서 편집해 버렸다. 토르손의 입가에 짙은 웃음이 걸렸다.

“크하하하! 모조리 다 죽여 주마!”

그람을 재가공한 검이 섬뜩한 빛을 내뿜었다. 토르손이 껄껄 웃는 틈을 타 그를 찌른 시기 측 용병이 그대로 비명을 토했다.

“커, 커억!”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생각했다.

왜? 대체 왜? 분명 내가 찔렀는데?

그 답이 그에게 전해지는 일은 없었다. 그람이 본래 가지고 있던 ‘반사’ 능력은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었으니까.

토르손은 이그나르의 가게에서 일하며, 엄청난 양의 세흐림니르 고기를 먹어 치웠다.

“간지럽다! 크하하하!”

살이 움푹 파이긴 했지만, 토르손의 회복력은 상대를 죽이고도 멀쩡할 정도는 됐다.

[이렇게까지 일방적인 경기가 될 거라 누가 예상했습니까!]

[지금 데이터를 보면, 오디슨 측이 무려 50명의 상대를 죽일 때, 시기 측은 고작 3명을 처치했어요! 대단합니다! 엄청난 격차예요!]

[아아! 시기, 이대로 무너집니까?]

장내 해설이 시기의 귀를 괴롭혔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시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딘의 셋째 아들인 내가 이렇게 무너진다고?’

까드득! 이를 간 시기가 제 몸에 서린 축복을 발동했다.

<광전사의 노래>!

번쩍, 불길한 회색빛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이제까지 밀리던 시기 약탈단이 괴성을 토해 냈다.

“크어어어!”

“죽어, 죽어, 죽어어어!”

[어어어! <광전사의 노래>! 아군의 공포를 없애고, 힘을 더해 주는 축복입니다!]

[높으신 분, 오딘의 축복! 가격이 만만치 않기로 유명한 축복인데요? 가격 대비 성능에 대해 말이 많죠?]

[예, 하지만 용병단에서는 이 축복을 거의 최고로 칩니다. 투기장에서야 다대다 전투라고 해도 그 숫자가 적지만… 저거 보세요! 시기 약탈단 전원이 미쳐 날뜁니다!]

장내 해설의 말처럼, 시기 약탈단이 마구 날뛰었다. 오디슨 약탈단은 그에 당황했다.

“크아아악! 크으… 내, 내가 죽어도… 넌 데리고 간다!”

“젠장할! 이 새끼들 완전히 미친놈 아냐?”

광전사.

베르세르크. 그들은 버섯을 비롯한 환각제에 취해 공포를 잊고 맹목적인 파괴를 일삼는 이들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전사들 중에 광전사를 모르는 이들은 없다.

약탈단의 대장인 오디슨만 해도 베르세르크 중의 베르세르크, 울프헤딘이었으니까.

오디슨은 탄식을 뱉었다.

“오딘의 축복… 대단하군.”

하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그는 제 목에 걸린 룬스톤을 붙잡았다. 그리고 개중 가장 도움이 될 구절 하나를 소리 내 읽었다.

“나, 백하고도 둘째 자리 앉는다!”

오딘이 총애하는 에인헤리, 그 수를 따지자면 102번째. 그 휘하의 전사들은 명예로운 에인헤리를 뒤따른다.

룬스톤이 번쩍 빛났다.

《금반지를 부수니, 마흔세 조각.》

그와 함께 약탈단의 협동이 더욱 유기적으로 변했다.

“크아아아!”

“피해!”

광전사 하나가 칼을 휘두른다. 용병이 그 칼을 피하자마자, 그가 있던 자리에 창이 하나 날아들어 광전사의 심장을 찔렀다.

“크윽!”

광전사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창을 붙잡아 동료들에게 기회를 주려 했지만, 서- 걱!

“커어어억……!”

숙였던 용병이 그의 손을 잘라 냈다.

한 몸이 된 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합격술. 광전사들이 광란을 펼친대도, 완벽한 팀워크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시기가 이를 악물었다.

“젠장할! 저 빌어먹을 자식들!”

분을 터트렸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광전사들을 끌어들이고, 병목현상이 일어난 곳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그 덕에 양측의 교환비는 여전히 좋지 못했다.

광전사 10명이 달려들어 오디슨 약탈단원 하나를 잡아내는 수준. 좁은 경기장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경기장이 넓었더라면… 잠깐 생각한 시기지만, 그렇다고 답이 나오진 않았다. 특히나 오디슨이 문제였다.

“약하구나!”

덤벼드는 광전사들을 아무렇지 않게 쓰러트리는 오디슨.

혼자서 쓰러트린 광전사가 30명을 넘을 지경이다. 시기는 답답함에 가슴팍을 두드렸다. 열등감이 그를 짓눌렀다.

오딘의 아들이라는 시기보다 왜 오디슨이 더 압도적이지? 오디슨이 오딘의 아들이 아니라, 시기가 오딘의 아들이라고? 농담이겠지.

관중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괴롭혔다.

시기가 이를 갈았다.

으드득!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사내가 있었다.

“볼 만큼 봤으니, 내가 저놈을 맡지.”

“오, 그, 그래 주겠나?”

“말이 짧군, 추방자.”

싸늘하게 그를 보는 이는 이쪽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외모를 가진 사내였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 황금처럼 번쩍이는 금발. 이국적인 미남이 눈살을 찌푸리자, 시기는 고개를 툭 떨궜다.

“…미, 미안하오.”

“흥.”

금발 미남이 칼 한 자루를 늘어뜨린 채 오디슨에게로 향했다.

시기는 입술을 깨물었다. 모멸감에 치를 떨었다. 그 입술에 피가 송골송골 맺혀 떨어졌다.

하지만 어쩌랴?

자신은 의절한 추방자고, 저쪽은 혼외자라 해도 오딘의 정식 아들인 것을.

‘빌어먹을 자식……!’

시기의 열등감이 스스로를 좀먹었다.

[어어? 오디슨에게 한 명이 다가섭니다!]

[마치 싸울 장소를 제공하는 듯, 주변 시기 약탈단이 자리를 내어 주는데요? 저 선수, 누구죠? 어딘가 익숙한… 어!]

장내 해설의 놀람과 동시에 오디슨 앞에 금발 미남이 섰다.

범상치 않은 외모와 기세에 오디슨이 흠칫 몸을 떨었다.

“…누구시오?”

금발 미남이 씩 웃었다.

“발리(Wali). 비다르와 함께 복수의 신좌를 맡은 몸이지.”

오디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발리, 발드르를 죽인 회드르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딘이 예언에 따라 린드를 범해 낳은 아들. 태어난 즉시 발리는 오딘께 칼 한 자루를 받았다. 그 칼을 가지고 그는 곧장 회드르의 심장을 찔렀다.

오디슨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다르의 일은…….”

“아아, 그에 관해 타박할 셈은 없다. 그저…….”

발리가 눈을 빛냈다.

“한 수 겨뤄보자꾸나.”

“한 수? 으음, 딱히 댁과 악감정은 없지만…….”

오디슨이 겨뤄 보자는데 피할 위인이던가?

“싸움은 언제나 환영이지.”

오디슨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창을 들어 올렸다. 유명한 신과의 대결, 비다르는 너무 약했다. 순수하게 싸우기엔 아레스나 손오공은 너무 강했다. 그렇다면 발리는?

‘…지금 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겠지.’

오디슨은 호승심을 느꼈다. 발리를 정면에서 이길 수 있다면, 스스로 걸어온 길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으리라.

발리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가 장검을 천천히 들며 말했다.

“찌꺼기, 거인족, 그리고 다른 신계. 혼란의 시대다.”

“…그렇지.”

“게다가 아버지께서는 아스가르드 내부에 폭탄을 던지셨지.”

투기장 최고가 후계자가 된다는 그것? 오디슨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아스가르드의 왕관을 손에 넣는 건 그리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발리는 다른 모양이었다.

“바람의 시대다. 바람은 모든 걸 먼지투성이로 만들지. 혼란스러운 때다. 하지만 바람은, 여러 바람이 합쳐져 태풍이 된다.”

발리가 제안했다.

“나라는 바람에 너라는 바람을 합치지 않겠나?”

자신이 후계자가 되게 도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오디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야가 좁군.”

“시야가 좁다?”

“그래. 지금은 바람의 시대지만, 동시에 늑대의 시대다.”

그리고 늑대는.

“우두머리가 약해지는 동시에 그 목덜미를 물기 위해 이를 드러내지.”

배신과 불륜, 패륜이 뒤섞인 시대에 협력?

애지중지 기르던 늑대는 피 맛을 보게 되면 죽여야 한다. 언제든 피 맛을 다시 보기 위해 주인을 물 테니까.

그렇다면 주인이 아니라, 늑대의 처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부터 믿지 않는다.”

주인이 없다면, 언제든 피 맛을 볼 수 있다.

오디슨은 창을 앞세워 곧장 달려들었다.

제 목에 목줄을 걸고 싶어 하는 건방진 신에게 송곳니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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