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30화 (130/208)

# 130

130화. 해와 달 (1)

와아아아아!

커다란 고함과 함께 파도가 몰려들었다. 무수한 사람들로 이뤄진 파도는 거칠게 도시를 덮쳤다.

도시를 방어하는 병력이 있었지만,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손발도 맞지 않는 야만적인 공격이다! 막아! 막을 수 있다!”

“으, 으아아악! 사, 살려 줘어……!”

지휘관의 독려가 무색하게, 팔랑크스가 무너져 내렸다. 커다란 방패를 든 병사와 장창을 든 병사가 2인 1조를 이뤄 고슴도치 같은 방진을 꾸리는 팔랑크스다. 하지만 야만 전사들과 비교하자면 손색이 컸다.

그들은 훈련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세웠지만, 야만 전사들은 개인의 단련을 통해 개개인의 무력을 끌어올리는 식이었다.

숫자가 비슷하다면 효율적인 움직임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숫자에서 밀리고 기세에서 밀렸다.

“불 지르지 마라! 식량이 탄다!”

“크하하하! 오랜만에 포식하겠군!”

야만 전사들은 굶주림으로 인해 광기를 내뿜었다.

전투 경험이 적은 4황자 군은 그 광기 앞에 덜덜 떠는 수밖에.

결국, 그들이 한 선택은 뻔했다.

“퇴각하라! 퇴각해!”

뿌우- 뿌우-!

뿔피리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그 웅장한 음색과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도주가 이어졌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야만 전사들은 훈련받은 병력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그리고 도시를 탈탈 털어 버렸다.

벌써 몇 번이나 이어진 약탈이다.

“오오오! 포도주다!”

“여기 고기도 있어!”

희색이 만연한 와중, 야만 왕국에 점령당한 도시에는 태양이 내리쬐지 않게 되었다. 몇 번이나 본 광경이다. 처음에는 신의 저주라며 덜덜 떨던 이들이 이제는 불만을 품었다.

“빌어먹을 신들.”

“올림포스인가 하는 놈들이랬지?”

“아스가르드의 에인헤랴르들이 저 썩을 놈들의 머리통을 쪼개 줬으면 싶건만…….”

덴마크 왕국, 혹은 야만 왕국이라 불리는 나라는 엉망이었다.

태양이 내리쬐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식량 수급이 불가능해졌다. 오디슨이 내린 자비의 축복이 없었더라면 진작 모두가 아사했으리라.

전사들을 이끄는 대장급 인사들은 모두 상황을 낙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시그니료드를 찾았다.

“이대로 계속 약탈한다 해도 그 끝은 파멸입니다! 제국 잔당들이 접경 지역에서는 군량을 최소한으로 보급하고 있습니다!”

약탈품이 점점 줄었다.

이대로 간다면 어쩔 수 없이 무너지리라.

그렇기에 빌고 또 빌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이름 없는 그분, 전사의 귀감이신 분께서는 우리가 멸망하도록 두고 보지 않으실 겁니다!”

“그렇소! 시그니료드 님께서는 그분과 피가 섞인…….”

시그니료드가 고개를 저었다.

“하계의 인연을 끌어들이지 마라.”

그녀는 오디슨에게 기도할 마음이 없었다. 그건 시그니료드를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볼바인 판도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분께서는 이미 엄청나게 베푸셨어요. 계속해서 그분께 기대기만 할 걸까요? 우리는 그분께 제대로 된 공물도 바치지 못했는데요?”

판도라가 예쁜 눈과 어울리지 않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타박했다.

사람이 말이야, 양심이 있어야지! 양심이!

판도라의 눈빛이 그렇게 따지는 듯해 전사들이 모두 헛기침을 뱉었다. 그들도 이제까지 계속해서 오디슨에게 받기만 했다는 걸 잘 알았다.

염치없지만, 어쩔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전사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하지만 해가 비치지 않습니다. 이대로 계속 약탈한다 한들, 다 같이 죽을 뿐이지요. 태양을 어찌하는 건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그니료드는 독한 마음을 먹었다.

“우리가 무너져도 제국 잔당을 끌어안고 무너진다면 어느 쪽이 더 손해일까요? 본래 이쪽에 기반이 없던 아스가르드? 아니면 이쪽이 기반인 올림포스? 대답해 봐요.”

“그건…….”

대전사가 입을 다물었다.

시그니료드가 눈을 빛냈다.

“뺏고 또 뺏으세요. 태양을 가리는 게 손해가 될 정도로. 그러면 결국, 우리가 이길 겁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둘 다 깨진다면, 바위가 더 억울하지 않겠나?

시그니료드는 탐탁잖은 표정을 짓는 전사들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그분은 스스로 돕는 이를 돕습니다. 그러니…….”

시그니료드의 눈에는 강철도 녹여 버릴 독기가 진득하니 묻어났다.

“모조리 죽이고, 빼앗으세요.”

그 결과가 고토를 버리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유목민이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시그니료드는 올림포스라는 맹수의 목덜미를 물어 버릴 셈이었다.

야만 왕국의 공세가 훨씬 더 거칠어졌다.

* * *

잔치를 벌였다.

아는 사람을 몽땅 초대한 잔치는 이그나르의 가게에서 열렸다. 예전과 달리 확장 공사를 해서 넓어진 가게건만, 그 가게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반가운 얼굴이 많았다.

“오디슨!”

크레네가 방긋 웃으며 내게 안겼다.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느끼며 마주 웃었다.

“어려운 시험을 친다더니?”

“합격했어요! 이제 관련 직종은 거의 골라갈 수 있죠!”

후후- 웃는 크레네는 답지 않게 흥분한 모습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이 언뜻 비쳐 키득키득 웃었다.

크레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툭툭- 내 어깨를 치는 손길이 있었다. 슬쩍 돌아보니, 펜리르가 자주 쓰는 검은 안경을 쓴 여자다.

하지만 그렇게 정체를 숨긴들, 내게는 빤히 보였다.

“오! 헤…….”

텁, 입이 막혔다.

헬은 쉬잇- 하고 내 입을 단속했다. 내가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니, 그제야 입을 막은 손을 떼어 냈다.

“한참 바쁠 텐데, 어찌……?”

“뭐… 전쟁이 아니라 하지만, 사실상 전쟁이긴 해. 그런데 그런 전쟁은 내가 직접 나서는 경우가 별로 없거든.”

씩 웃는 헬.

아마 강글라티가 그녀를 대신해 거인 왕국의 반격을 방비하고 있으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왔노라 그녀를 반겼다.

헬이 슬쩍 내 팔짱을 끼더니 속삭였다.

“약탈로 꽤 벌었다며?”

툭 내뱉는 말에 당당히 수긍했다.

“그럼 이제 곧이네?”

뭐가 곧이라는 거지? 아. 결혼인가.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었다. 이번에 두당 3억 크로나가 떨어진다고 해도, 이제까지 헬이 찾아 둔 부족민들을 부활시키면 얼마 남지 않는다.

혹은 모자랄 수도 있다.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헬이 검은 안경 너머로 날 노려보았다. 괜스레 뜨끔해서 크흠- 헛기침을 했다.

“좀 더 기다려야 할 거 같다.”

“좀 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전쟁이다 뭐다 하는 와중에 식을 올리면 손가락질을 받을 거 아닌가?”

“손가락질? 어떤 버릇없는 새… 새, 새 나라의 어린이가 감히…….”

헬이 까뜩 이를 갈았다.

분기탱천한 와중에 내 앞이라고 말조심하는 게 퍽 귀엽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괜한 구설수에 오르는 건 별로지.”

“…그건 그렇지만…….”

“아, 일단 크레네와 잠깐 앉아 있어라. 난 저쪽에 인사를 좀 하고 와야겠군.”

헬을 떨어뜨리고 거리를 벌리자, 그녀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곳에는 내가 이 잔치를 벌인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한참 시달리겠지만, 지금은 헬과 함께할 수 없다.

숱한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간 곳에는 익숙한 늑대가 한 마리 있었다.

“오! 오디슨이잖아. 이번에 한탕 했다며?”

낄낄거리며 내 가슴팍을 툭 치는 펜리르. 언제나처럼 검은 옷에 검은 안경을 낀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껄껄 웃으며 슬쩍 눈길을 돌렸다.

이그나르와 신나게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보았다. TV로 몇 번 본 얼굴이기에 그들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크흠, 이그나르? 이분들을 소개해 주겠나?”

“…으음,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예의를 차리지? 나 방금 소름 돋았는데…….”

이그나르가 부르르 몸을 떨며 헛소리를 뱉었다.

인상을 와락 구기자 이그나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소개했다.

빨간 머리가 인상적인 사내, 그리고 파란 머리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어어, 이쪽은 미식가로 유명한 스콜과 하티. <스콜하티에>라는 잡지를 출간하지. 그리고 또…….”

“해와 달을 삼키는 늑대.”

내 말에 두 사람이 킥킥 웃었다.

“펜리르 형님이나 이그나르나, 오디슨, 네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 만나서 반갑다.”

“아, 그리고 우리는 이제 해와 달 안 먹어. 솔이랑 마니는 꽤 친한 녀석들이거든. 어릴 적에 그 뒤꽁무니를 많이 쫓았지.”

스콜과 악수를 하는 사이, 하티가 옛 추억을 그리듯 주억였다.

나는 이런 사교 활동에 익숙하지 않지만, 최대한 그들의 이야기에 맞춰 하하 호호 할 수 있었다. 특히나, 미식가로 이름 높은 늑대들인 만큼, 음식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는 게 파고들 부분이 확실했다.

크흠- 내가 목을 가다듬고 물었다.

“이그나르가 말하기를, 요리에는 온도가 중요하다던데.”

툭 뱉은 화제에 스콜과 하티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이그나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적당한 온도가 가장 중요하지. 그래서 우리 식당도 이번에 쓰는 숯을 바꿨다 이 말씀이지. 전에 쓰던 것에 비해서 온도가 몇 배나…….”

영양가 없는 이야기다.

나는 스콜과 하티에게 물었다.

“태양으로 익힌 것, 달로 식힌 것……. 그런 건 꽤 맛있지 않겠나?”

스콜과 하티는 흐음- 침음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극한의 열기로 단숨에 익힌 것이라면… 독특한 식감을 낼 수 있겠지. 이제까지 먹지 못한 용고기도 익힐 수 있을지도…….”

“흐음, 급속 냉각은 재료의 신선도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지. 좋은 일이야. 하지만…….”

하티가 피식 웃으며 내게 물었다.

“해와 달을 건드릴 생각은 없어. 해와 달이 없어지면 얼마나 곤란한지 잘 알거든.”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솔과 마니… 두 사람과 친하기 때문인가?”

“뭐… 그 점도 있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 말고 다른 해와 달은?”

내 말에 스콜과 하티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변에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단어를 툭 던졌다.

“다른 신계.”

스콜과 하티가 흠칫 몸을 떨었다.

곧이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건 너무 심각한 문제야. 아스가르드에서도, 연맹에서도.”

“그 문제, 해결할 방안이 있다면?”

스콜과 하티가 귀를 쫑긋거렸다.

사람 모습을 하고 있어도 본래가 늑대라 그런가? 귀를 움직이는 게 꽤 자연스러웠다.

나는 품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약탈단 허가증.]

아스가르드에서의 면책권이었다.

스콜과 하티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이건 거인족 약탈을 허가하는…….”

쯧쯧- 혀를 차 스콜의 말을 끊었다.

가장 첫 줄을 읽어 주었다.

[약탈 행위에 대한 책임은 약탈단 단장에게 있으며, 아스가르드는 그 일에 무관하다.]

스콜과 하티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을 때, 설명을 덧붙였다.

“거인 왕국만 약탈해야 한다는 말은 없지.”

“하, 하지만… 연맹에서는…….”

히죽 웃었다.

“놈들이 먼저 하계 불가침을 어겼으니, 할 말 없을 거요.”

아스가르드와 연맹, 모두가 말리지 못하는 식사다.

스콜과 하티가 눈을 끔뻑였다. 곧 둘이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나 역시 달콤한 만찬이 기대됐다.

메인디쉬는 올림포스라는 요리. 그에 앞선 애피타이저, 해와 달.

입에 침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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