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26화 (126/208)

# 126

126화. 두 번째 징조 (1)

계속 처절한 싸움이 이어진다.

햐드닝가빙그(Hjaðningavíg)는 신들의 저주.

동복형제들이 서로 노려본다.

자매의 아들들이 이를 갈았다.

파멸을 피하기 위해 시작한 것. 허나 늑대의 시대를 불러오리.

피와 약탈, 신과 배신, 정과 불륜.

뒤엉킨 것들은 모두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다.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서로를 죽이는구나! 겨울날 시작된 싸움은 오직 축복 받은 군세가 정리할 수 있도다.

이제 두 번째 징조.

영원 전쟁, 끝은 파멸에 닿는다.

* * *

제국, 아니 옛 제국의 땅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제각기 권세를 지닌 이들은 정통성을 주장하며 봉기했고, 그 부담은 모조리 평민들에게 돌아갔다.

군대라는 것은 본래, 소모하는 집단. 그 식충이들을 잔뜩 끌어모아 전쟁을 하니, 수확량이 좋다고 안심할 수가 없었다.

제국의 농부, 후안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다 고개를 들었다.

“후우.”

맑은 하늘이 저주스러웠다.

허리도 펴지 못하고 죽어라 일해도 원래 내던 세금에 전쟁세까지 추가로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게다가 들려오는 소문도 범상치 않다.

“4황자가 군단장의 딸과 결혼했다던데?”

“뭐? 4황자는 유부남이잖아!”

“쯧쯧, 원래 있던 부인 가문이 이번에 박살 난 거 모르나? 황제 폐하가 계시던 자리에 같이 있었다던데……. 그, 수도가 망할 때 말이야.”

“마르스의 징벌 말인가?”

“쉿! 미쳤군! 입 조심해!”

농부들이 하는 말이 후안의 귀에 들어갔다.

마르스의 징벌.

오만한 제국을 벌하기 위해 전쟁신, 마르스께서 직접 강림하시어 제국 수도를 난장판으로 만든 일이다.

혹자는 마르스의 징벌이 아니라, 붉은 마왕과의 싸움에서 그리되었다고 하지만……. 차라리 마르스의 징벌이 더 낫다 여긴 사람들이 붉은 마왕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마왕과 전쟁신의 싸움이라니. 마왕이 죽었다는 말이 없는 걸 보면, 전쟁신이 두들겨 맞은 꼴 아닌가!’

후안은 농부지만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머리가 좋다고 해도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 탓에 제국을 원망해 왔지만… 전화위복이다. 만일 후안이 제국의 관리였다면?

부르르! 후안이 몸을 떨었다.

“…죽었겠지.”

꿀꺽, 침을 삼키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아무리 힘든 삶이지만,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그의 바람일 따름이었다.

“무슨 소리 안 들려?”

“소리는 무슨… 어?”

두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소리.

후안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저 멀리 흙먼지가 이는 것을 보았다. 후안이 숨을 삼켰다.

그리고 그가 소리쳤다.

“군대다! 기마병이다아아아!”

혼란이 번졌다.

농부들은 대체 왜 갑자기 기마병이 이곳에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땅은 꽤 괜찮은 소출을 보이는 그저 그런 농경지일 뿐이다.

더 생산력이 좋은 도시도 많은데, 왜?

그 의문을 풀 새도 없었다.

“모두 죽여라! 누구에게도 이 기습이 들켜서는 안 된다!”

“와아아아아!”

우렁찬 명령에 환호하는 군대.

농부들은 심장이 철렁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으, 으아아아! 도, 도망쳐!”

“사, 살려 줘!”

으악! 끄악!

비명이 몰아쳤다. 기마병들은 자비 없이 달아나는 농부들의 등에 창을 내질렀다.

후안은 달아나기보다는 엎드렸다.

높게 자란 보리가 자신을 숨겨 주길 바랐다.

뿌려 놓은 거름 탓에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코가 썩을 것만 같은 냄새였지만, 후안은 납작 숙였다. 죽음보다는 악취가 낫다.

‘어째서!’

똑똑한 후안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본래라면 공격할 가치가 떨어지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후안은 그저 빌고 또 빌 뿐이었다.

‘제발… 제발!’

그는 살고 싶었다.

후안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콰앙!

“대체 저놈들이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이오!”

회의실의 거대한 테이블, 그걸 주먹으로 내려친 2황자가 부르르 떨며 말했다.

4황자가 살아남은 군단장 하나와 손을 잡았다는 건 안다. 혈연만큼 두꺼운 줄도 없으리라. 그 탓에 갑작스레 4황자가 2황자보다 강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다.

“놈들이 공격한 곳들은 그다지 가치 없는 곳. 그런 곳에 군세를 때려 박아 스스로 세를 줄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 아니오!”

2황자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가 한 말은 모두 그 아래에 있는 군사들이 한 말이었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군사들은 모두 4황자군의 이상행동에 당황했다.

“…악수(惡手) 중의 악수이건만……!”

“4황자군이 아무리 동맹을 얻었다지만… 우리와 크게 세력 차이가 나지 않는데… 왜? 설마, 당장 먹기 좋은 도시들을 삼키고 휴전 협정 같은 걸 할 생각이 아닐까요?”

“4황자군에 누가 있는지 잊었나?”

“아… 그 지략의 천재라는…….”

“그래, 그런 놈이 휴전할 수 없다는 걸 잊었으리라 생각하나?”

수군수군.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역시나.

이해할 수 없는 짓이었다. 1을 얻고자 2를 내던지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던져졌다.

2황자는 생각했다.

‘…이런 혼란을 노린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피해가 너무 큰데…….’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하자니, 군사들도 입을 닫고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되지 않는, 궁지에 몰린 짓이나 다름없다.

본래 2황자의 세력이 2, 4황자의 세력이 1.5, 군단장의 세력이 1 정도였다. 4황자와 군단장이 동맹했다 해도, 2.5 정도 되는 세력.

그 세력을 깎아 먹으며 공격한다? 언제 세력비가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 급보입니다!”

그때, 병사 하나가 회의가 열리는 곳으로 달려 들어왔다.

무례한 짓이지만, 아무도 그를 막지 않았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병사의 꼴을 보자니, 심장이 멎는 듯했다.

2황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무슨 일이더냐! 4황자군이 또……?”

“아, 아닙니다!”

“그렇다면?”

병사가 후우후우- 숨을 고르고 외쳤다.

“야, 야만인입니다! 야만인들이 우리 군의 군량 창고를 약탈했습니다!”

“뭐, 뭐라?!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놈들이 어찌……!”

2황자는 어이가 없었다.

야만 왕국이 생겨났다는 건 안다. 2황자가 4황자보다 더 강해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그거 아니었던가?

3황자가 죽고, 그 자리를 야만인들이 차지했다. 그 탓에 4황자의 군이 야만 왕국과의 국경에 집중되었다. 야만인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앙이었다. 3황자처럼 선전포고하고 덤비진 않으리라.

전선을 둘이나 유지하니, 4황자가 주춤할 수밖에.

그 당시, 2황자는 그게 잘된 일이라 여겼다.

‘…어떻게? 4황자가 먹고 있는 세력이 야만인을 가로막고 있을 텐데……!’

머리를 굴리던 2황자가 정답을 찾아냈다.

“…하, 하하하… 내 동생이 야만인들에게 밀렸구나.”

“그, 그럴 수가! 야만인들이 그 정도 군단을 보유하고 있다니…….”

군사들이 당황했다.

급보를 가져온 병사가 군사의 혼잣말에 끼어들었다.

“저어…….”

“무슨 일이지?”

“…야만인 군단에 제국군으로 보이는 이들도 합류한 것 같다고…….”

허-!

헛숨 삼키는 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제국의 자존심을 그렇게 굽히다니! 전향한 제국군을 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2황자는 씩 웃었다.

“보통 일이 아니군.”

“그러하옵니다! 감히 야만인들에게 고개 숙이다니! 제국의 치욕입니다!”

“아니, 그런 허례허식 따위 필요 없다. 단지, 야만인의 숫자가 늘었다 생각하라. 그리고…….”

2황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기회다.”

2황자가 군단장에게 전령을 보냈다.

군단장의 권력욕이 그저 황제의 외척일까? 2황자는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더 많이, 더 높이.

그게 권력자들 모두가 가진 욕심이었다.

* * *

무스펠헤임.

거인 왕국의 왕궁에는 언제나처럼 불의 거인, 스륌슨이 자리 잡고 있었다. 5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키에 시뻘건 피부를 한 그는 불꽃으로 된 머리카락을 가진 괴물이었다.

압도적인 힘과 뛰어난 두뇌로 거인 왕국을 휘어잡고 있는 왕.

모든 거인족이 그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후후후.”

스륌슨이 웃었다.

그는 토르에게 죽임당한 스륌의 아들. 그렇기에 언제나 아스가르드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거인족은 대부분 아스가르드를 증오하지만.

“돌연변이 놈들에게 한 방 먹일 때가 머지않았다.”

스륌슨의 말에 대군사인 바프스루드니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그렇습니다. 찌꺼기 놈들이 인간계로 가면 신들의 신경도 그리로 쏠릴 터, 우리는 그때를 노려야 합니다.”

“그래, 그렇지. 하지만 신들은 강하다.”

스륌슨의 말에 바프스루드니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신들이 강하다는 걸 모르는 자는 없었다. 그들은 분명 강하다. 특히나 토르는 선왕, 스륌을 때려죽이고도 유유히 거인 왕국을 빠져나가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바프스루드니르는 걱정하지 않았다.

“신들은 분명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에인헤랴르가 우리네 장정보다도 약하지요.”

거인족은 본디 신성을 타고난 종족이다.

태초의 거인, 위미르가 이 세상을 만들지 않았나? 긴눙가가프에서 그가 남녀 거인을 낳았고, 거인이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오딘과 그 형제들이 비겁한 술수로 위미르를 죽이고, 이 땅의 정통한 후계자인 거인들을 뜨거운 땅으로 내쫓았다.

그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신성은 거인족 모두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 본래는 치열한 싸움이 돼야 했던 일.

신들은 인간을 만들어 신성을 얻어 내는 법을 알아냈다. 그때부터 거인족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는 신들과 점점 밀리는 거인족.

거인족은 반전을 꾀했다.

“기회다. 놓칠 수 없는 기회.”

스륌슨이 눈을 빛냈다.

원래 그의 계획은 신들에게 쫓겨난 거인의 핏줄, 헬과 손을 잡는 것이었다.

위미르에게서 태어난 냉기와 열기가 만나 증기가 일었고, 그것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런 만큼, 양쪽에서 신계를 몰아친다면? 승산이 있다 여겼다.

허나 헬을 찾아가는 도중, 찌꺼기라는 기괴한 이들을 만났다. 그들이 말하기를, 헬은 결코 거인족과 손잡지 않을 거라고.

상황을 알아보니 정말 그러했다. 자존심 센 오딘이 예언을 듣지 않고, 로키 일가를 받아들였다! 기괴한 일이었다.

‘…회귀라니.’

사정을 알고 난 뒤에는 이해할 수 있었다.

본래 계획대로 거인 왕국과 니플헤임이 손을 잡고 ‘최소’ 한 번 아스가르드를 물리친 적이 있단 이야기다.

어쨌거나 거인족은 헬과 손잡는 걸 포기했다. 오히려 들킬 여지만 늘어나리라. 그렇기에 그들은 찌꺼기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찌꺼기 놈들이 잘해 내겠지?”

“믿는 수밖에 없지요. 하계로 보낸 놈들이 인간들의 신앙을 우리에게로 돌리는 순간, 아스가르드는 아무것도 못 한 채 무너질 겁니다.”

“흐흐흐…….”

스륌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아스가르드 놈들이 분명 하계로 가는 통로를 발견했을 텐데… 괜찮은가?”

트롤들이 도망쳐 와 알렸다.

반대로 도망쳤다는 것에 분노한 스륌슨이 그 트롤들을 모조리 때려죽여 버리긴 했지만.

바스프루드니르는 그게 나쁜 것만이 아니라고 여겼다.

“어차피 신계 연맹인가 하는 허울만 좋은 집단에 발이 묶였을 겁니다.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치고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놈들은 그 바보 같은 집단 탓에 휴전을 제안하지 않았습니까?”

스륌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휴전을 제안했을 때, 이 자식들이 놀리는 건가- 생각했다. 사정을 알고 보니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다가올 멸망을 막기 위해 뭉친 신계들이 모두 힘을 비축하느라, 자잘한 전쟁을 멈췄다니.

작은 게 쌓여 큰 것이 된다는 단순한 일도 잊은 겐가?

멍청한 짓은 스륌슨이 반기는 일이었다.

“라우페위의 아들은?”

“걱정 마소서. 그는 오딘의 의형제지만, 동시에 거인족입니다. 이제껏 쌓인 것이 많더군요. RF 그룹인가 뭔가……. 그걸로 안쪽에서 흔들 생각인 것 같습니다.”

“후후후. 그렇군.”

스륌슨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겨우 몇 달만 기다리면 전쟁이 시작된다.

스륌슨의 뜨거운 피가 심장을 펄떡이게 했다.

‘…기다리기 힘들구나.’

스륌슨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바란 대로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왕! 큰일 났다!”

거인 하나가 비보를 들고 왔다.

그 거인이 어버버- 말을 더듬거리며 내뱉었다.

“시, 신들이 쳐들어왔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스륌슨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어지러웠다.

완벽한 계획이었건만, 어찌? 바스프루드니르 역시 입을 쩍 벌렸다.

찌꺼기들이 하계를 흔들기도 전에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인간들도, 신들도.

이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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