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22화 (122/208)

# 122

122화. 신이 보우하사 (3)

“감히!”

프레이야가 분노했다.

안 그래도 노리던 남자를 빼앗긴 그녀. 눈에서 시뻘건 불똥이 튈 정도였다. 하지만 사랑에 눈먼 여자는 두려움을 몰랐다.

아프로디테가 콧방귀 뀌었다.

“흥! 감히는 무슨……!”

“올림포스의 더러운 창녀야! 염치없는 개소리를 취소해라!”

으르렁대는 프레이야의 모습에 관중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왜 프레이야가 저렇게 화내는 거지? 기자들의 머릿속에서는 질척거리는 삼각관계의 막장 로맨스가 펼쳐졌다.

‘대박이다!’

기자들이 눈을 번뜩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프로디테와 프레이야는 치열한 눈싸움이 한창이었다.

“더러운 건 너야! 프레이야!”

“뭐라고?”

분홍색 신성과 황금색 신성이 서로 맞붙으며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사이에 끼인 오디슨만 골치 아플 뿐. 오디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뭐 하는 거요?!”

“오디슨은 가만히 있어요!”

미의 여신 둘이 딱 잘라 말했다.

오디슨은 호흡이 척척 맞는 두 여신을 보고 움찔 몸을 떨었다.

꿀꺽 침을 삼켰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몰아치는 신성의 폭풍은 매혹 면역인 오디슨도 무시할 수 없었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에 슬쩍 눈치를 볼 뿐.

“하핫! 개판이군!”

“오디슨 님……!”

관중들은 그저 즐거웠다.

어마어마한 미모를 지닌 여신들의 신경전에 절로 입이 심심해졌다. 상인들이 그를 놓칠 리 없었다.

“말린 생선! 손질 잘된 어포 팝니다! 전문가의 손길을 느껴 보세요!”

“맥주! 시원한 맥주 있습니다! 아, 물론 다른 술도 있어요!”

“튀긴 옥수수! 다른 신계에서 즐겨 먹는 간식입니다! 한번 맛보세요!”

해설진도 팝콘을 먹으며 그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이야, 오디슨 선수, 인기가 대단한데요?]

[하하하! 부러워 죽겠습니다!]

[그런데… 음, 이렇게 그냥 보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쿠구구궁- 쿠구구궁.

경각심을 가지는 이가 없는 건 아니었다.

거대한 신성의 격돌. 매혹 대 매혹이지만, 투기장이 덜덜 떨릴 정도로 거대한 힘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둔다면? 이 신성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몰랐다. 대폭발이 일어날 수도, 관중들이 모두 지나친 매혹에 백치가 될지도 몰랐다.

그 꼴을 아스가르드에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 만!”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회색 신성이 분홍색과 황금색 신성을 짓눌렀다.

무식한 방법에 오디슨이 입을 쩍 벌렸다.

‘더 큰 힘으로 그대로 누르다니!’

신성이 작은 편인 오디슨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오디슨이 침을 꿀꺽 삼켰다.

“큭……! 이 힘은…….”

“오딘!”

아프로디테와 프레이야가 휘청였다.

그저 기세만 뿜어내고 있었건만, 압도적인 기세에 신성에 살짝 충격이 온 것이다. 두 여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프레이야였다.

“오딘! 어떻게 당신의 땅에서 다른 신계의 미친년이 설치게 둘 수 있죠!”

그 말에 흥- 콧방귀를 뀐 아프로디테가 오딘에게 말했다.

“난 정당한 방법으로 입국 심사를 통과해 들어왔어요! 그런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발할라의 손님 접대가 형편없군요!”

“뭐라고? 헤임달이 너를 통과시켰다고?”

“그야 당연하지! 내가 너처럼 음흉하게 수작이나 꾸미는 줄 아니? 응?”

“이년이……!”

프레이야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

아프로디테가 하는 말로 봐서는 대충 어떤 수작을 부리려 했는지 아는 모양이었다. 프레이야의 눈초리가 나빠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프로디테가 흥- 콧방귀를 뀌었다.

‘선수끼리 딱 보면 딱이지!’

프레이야가 오디슨을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건, 아프로디테쯤 되면 척 보면 척이었다.

오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프로디테의 입국 심사는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

오딘의 외눈이 관중석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미남에게 꽂혔다. 그 남자의 정체는 에로스. 어머니가 사랑의 묘약 탓에 심각한 상사병을 앓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데리고 왔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가 할 일은 빤했다.

‘어서 엄마한테 납 화살을 쏘고 오디슨을 보게 해야 하는데…….’

사랑에 빠지게 하는 금 화살과 달리, 처음 본 사람을 미워하게 만드는 납 화살. 그를 통해 아레스 부부의 관계를 정상으로 만들 셈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권능이 적용되는지 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실험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밀실에서 오디슨의 사진과 영상을 보게 하며 납 화살을 쏘았으나…….

‘유부남이 괜히 뺀질뺀질하게 생겼네! 칫! 돈만 아니었으면 이딴 거 안 하는 건데……. 음흉한 시선 좀 봐! 어휴, 끔찍해!’

밀실에 단둘뿐이었기에 그녀들의 미움은 에로스에게 향했다.

의도치 않게 안티팬을 양성한 에로스의 마음은 급했다.

‘제발!’

기회를 노렸다.

오딘 역시 그를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아프로디테가 계속해서 오디슨에게 애정 공세를 한다? 올림포스와 사이가 틀어질 여지가 다분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오딘의 생각이었다.

아프로디테와 프레이야는 오딘의 앞에서도 서로를 비난했다.

오딘은 골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 그만하라지 않았는가!”

웅혼한 외침에 두 여신이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오딘이 한숨을 푹 쉬었다.

“사랑이 어디 일방적이던가? 오디슨의 뜻을 물어야 하지 않겠나?”

오딘이 한 말은 상식적이었다.

아프로디테와 프레이야가 기대감에 가득 차 오디슨을 보았다.

아프로디테가 울먹이며 말했다.

“당신의 첫 키스 상대를 버릴 셈인가요?”

프레이야가 눈살을 구기며 말했다.

“다른 신계와 내통할 셈은 아니겠죠?”

모든 시선이 오디슨에게 향했다.

오디슨은 볼을 긁적였다.

“일단 내가 처음으로 한 입맞춤은 아니오.”

오디슨은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아니라면 하계에서 들은 주술사 영감의 말과 전사장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관중들이 술렁였다.

오디슨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어머니를 제외하면, 라드게리타가 첫 입맞춤 상대겠군.”

툭 뱉은 말이었지만, 사람들은 눈을 꿈뻑였다.

라드게리타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웅성이든 말든, 오디슨은 제 할말을 계속 이었다.

“그리고 둘 중 하나? 난 둘 다 싫은데.”

툭 뱉은 말에 아프로디테의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프레이야가 휘청였다.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그런데 황금 사과는 안 주는 거요?”

그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 * *

발할라가 한창 시끌벅적할 때, 올림포스도 시끄러웠다.

양측으로 나뉜 의견이 좁혀질 줄 몰랐다.

“지금 겨우 아프로디테 하나 때문에 이 시급한 일을 미루겠단 거예요?”

아테나를 주축으로 한, 유연한 원칙적용파.

그리고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주축으로 한, 원칙주의파.

“겨우 아프로디테 하나? 겨우 태양이 늦게 떠도 상관없다고 말하지 그래?”

“작은 것 하나가 바뀐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는 않잖아요, 아테나.”

둘 다 일리 있는 소리였다.

반으로 나뉘어 유연해야 한다,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로 투닥였다. 고귀한 12주신 회의가 시장바닥이나 다름없는 고성방가의 장이 되었다.

“그렇게 원칙을 따져서 온갖 미소년, 미소녀를 애인 삼았나요? 게다가 애인이 되기를 거부한 카산드라에게 신뢰를 박탈하는 짓을 했죠? 네?”

“허! 유연한 원칙이 어쩌니 저쩌니 하지만, 댁이야말로 원칙을 어기고 포세이돈 숙부와 사랑을 나눈 메두사에게 과한 수를 쓰지 않았나? 응?”

아테나와 아폴론이 으르렁거렸다.

제우스는 점점 과격해지는 비난을 듣자니 짜증이 났다.

“그만! 그만! 그만!”

쾅쾅쾅!

천둥이 세 번이나 내리쳤다.

제우스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제 왕관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쿠웅!

소리와 함께 시선이 집중됐다.

“신왕의 권리로 이번 안건을 처리하겠다!”

그 말에 제우스를 제외한 모두가 침묵했다.

올림포스가 12주신 회의를 거쳐 돌아간다 한들, 제우스를 무시하는 이는 없었다. 그는 가장 강력한 신이었으며, 하늘을 대변하는 자였으니까.

천륜(天倫), 그게 바로 제우스였다.

“이번은 소집에 응하지 않는 아프로디테에게 문제가 있다 생각하는 바!”

좌중을 둘러본 제우스가 결론을 내렸다.

“아프로디테를 제외하고 만장 일치된 사항을 따르겠다!”

원칙을 뒤튼 말이었지만, 신왕의 권리는 본래 원칙 위에 있는 원칙.

다들 입을 다물고 그 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우스가 말했다.

“데메테르.”

“응, 말해.”

제우스와는 남매지간인 데메테르다.

대지와 농사를 담당하는 여신. 딸인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납치되었을 당시, 그녀의 분노로 인해 대기근이 들어 인간이 멸망할 뻔했다.

하지만 인간이 멸종할 경우, 피해를 보는 건 인간만이 아니었다. 신들 역시 인간에게 받는 신앙이 줄어 큰 피해를 본다.

그렇기에 지금 데메테르를 불렀다는 건, 모두가 긴장할 일이었다.

제우스가 말했다.

“야만 왕국이 들어섰다 한들, 그 땅의 농사꾼들은 널 섬길 터.”

“그렇지.”

“그대가 기근을 내려, 배교자들을 굶게 하라.”

제우스가 눈을 번뜩였다.

“먹을 게 없는 놈들이 우리를 배신할 수 있을 리 없다.”

옳은 말이었다. 상황이 좀 더 좋았다면 말이다.

데메테르는 빠르게 움직였다. 스마트폰으로 신계 연맹 커뮤니티에도 접속 한번 않고 곧장 움직였다.

대지의 여신인 만큼, 그녀는 영토에 민감했다. 야만 왕국이 그녀의 영토를 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녀를 몰아붙였다.

데메테르가 신탁을 내렸다.

“아아. 피치를 좀 낮추고, 에코 좀 넣고…….”

신탁은 신성한 느낌을 제대로 내야 했다.

데메테르가 살짝 고민했다.

“오토튠을 살짝 쓸까?”

결국, 그녀는 메스트 신계의 최신 문물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오토튠을 살짝만 쓰면 훨씬 더 몽환적인 느낌이 나니까!

그리고 야만 왕국의 케레스(Ceres)신전에 신탁이 내려왔다.

‘배교자들에게 내릴 곡식은 없다.’

그 선명한 신탁은 인간의 목으로 낼 수 없는 소리였고, 신관들은 덜덜 떨며 그 신탁을 전파했다.

농부들은 기겁했다. 오디슨의 자비로움을 칭송하던 그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동시에 반발도 있었다.

“올림포스는 다시 또 우리를 벌주시는구나!”

한탄이었다.

귀족들의 목을 싹 날리고, 평민이나 노예를 건드리지 않던 시그니료드의 태도와 너무 달랐다. 하지만 이미 저장해 둔 농작물에도 빠른 속도로 곰팡이가 피어오르자,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이 일은 새롭게 여왕이 된 시그니료드에게도 전달되었다.

“뭐라고! 올림포스의 신들이?”

시그니료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언제나 더 많은 사람이 믿는 신이 주신이 되어 왔다. 본래 법을 담당하던 신인 티르가 주신이었으나, 험난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전쟁과 약탈의 신인 오딘이 주신이 된 것 역시 그런 흐름이었다.

아주 옛적의 일이지만, 볼바인 시그니료드는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의 싸움이다!’

시그니료드는 신들의 영역 다툼에 무력한 인간이었다.

그녀는 판도라와 함께 기도실에 들어섰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자비로우신 분.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오딘의 늑대시여. 당신의 종이 기도를 드립니다!”

“악한 신들이 우리의 곡식을 곰팡이 슬게 했으며, 우리의 농사를 망쳤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내려 주세요!”

시그니료드와 판도라는 열렬히 기도했다.

온종일 이어진 기도는 간절함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신계와 하계의 시간이 달라, 언제 그 대답이 내려올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시그니료드의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아직 대다수 평민은 제국에서 믿던 올림포스를 믿는데…….’

후우!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 일을 어찌 헤쳐 나가야 한단 말인가?

아스가르드 대 올림포스. 전장이 옛 제국 땅인 만큼, 힘든 싸움이 되리라.

시그니료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때, 기도실을 찾는 이가 있었다.

“시, 시그니료드 님!”

“무슨 일이냐! 기도 중에는 방해하지 말라 하지 않았나!”

“그, 그게…….”

황급히 다가온 전사가 이상 현상을 알렸다.

데메테르를 믿던 이들과 아프로디테를 믿던 이들이 부딪혔다는 것이다.

시그니료드가 눈을 끔뻑였다.

“대체 왜……?”

“그, 그게 비너스 신전에서 신탁이 내려왔답니다.”

“신탁이?”

시그니료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스가르드 대 올림포스가 아니었던가?

그 신탁의 내용을 들은 시그니료드가 입을 쩍 벌렸다.

“…그, 그러니까…….”

“비너스가 그분께 구애했다가 차였답니다!”

“어…….”

시그니료드의 표정이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판도라 역시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오빠,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미의 여신이 매달리다 차였다는 건, 오디슨의 모습을 모르는 이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소문이 돌았다.

‘오디슨이 비너스보다 아름답다.’

헛소문이었지만, 미의 여신을 섬기던 여신관들은 거기에 홀라당 넘어갔다. 아름다움을 추구해 비너스의 여신관이 된 여자들이다.

미의 여신보다 아름다운 남신이라니!

혹할 만한 일이었다.

“아스가르드 대 올림포스가 올림포스 내전이 됐네요.”

데메테르가 내린 신탁이 쓰레기가 되었다.

배교자들에게 내릴 곡식이 없다고 했는데, 아프로디테가 오디슨에게 차였다는 것은…….

‘오디슨이라는 신도 올림포스 신인 거 아냐?’

헛소문을 낳았다.

곤란해진 것은 데메테르였다.

“…그 망할 년!”

까드득, 이를 간 데메테르가 부식의 저주를 거뒀다.

야만 왕국에 속한 농부들은 환호했다.

“여왕님께서 기도를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곰팡이 스는 일이 없어졌다며?”

“그분께서 도우신 거지!”

“정말 자비로우신 분이야!”

신의 보호에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은 그저 기뻐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상황이 급반전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저장된 곡식의 절반 이상이 상했어.”

겨우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대로라면 1할 정도의 백성들이 굶어 죽을 터.

시그니료드와 판도라는 기도를 계속했다.

오디슨에게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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