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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발할라-114화 (114/208)

# 114

114화. 신중충(身中蟲) (2)

어디서 들어봤더라? 눈살을 찌푸릴 때, 이라호드가 나를 잽싸게 철마차에 던져넣었다. 말 없는 마차다.

“억!”

차에 구겨지자니 죽을 맛이었다. 특히나 변신이 풀리면서 엉성하게 끼인 탓에 온몸이 아팠다.

“으어억!”

“어휴, 참… 좀 똑바로 앉아요.”

“아니, 내가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라…….”

“흥.”

콧방귀와 함께 날 무시하는 이라호드.

앞자리에 앉은 마부(?) 발키리가 킥킥 웃었다. 이거 참, 여러모로 부끄럽구만. 어쩌고저쩌고해서 제대로 앉았다.

한참을 달리는 동안, 이라호드는 뭔가 심각한 듯 인상을 구긴 채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아, 머쓱한 얼굴로 물었다.

“그리 심각한 일인가?”

“후… 아무래도 좀 그렇죠.”

그러고서는 손오공이라는 놈에 대한 정보를 잔뜩 안겨 준다.

이야기를 듣자니, 예전 막 날 불러 대면서 한번 싸워 보자 한 원숭이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허, 그 원숭이가 그리 세다고?”

이라호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요. 투선(鬪仙) 중에서는 가장 큰 신성을 가진 신이니까요.”

투선, 그러니까 싸움하는 신선이라는 놈들은 전쟁 신과 비슷한 놈이었는데, 개중에서 제일 세단다.

흥미가 동했다.

“그놈이 토르보다 센가?”

머뭇머뭇하던 이라호드가 고민에 빠졌다.

“신들의 싸움이라는 게 단순히 신성의 크기로 판가름 나는 건 아니라서 딱히 뭐라 하긴 그렇지만…….”

대충의 흐름을 읽자니, 토르보다 더 큰 신성을 가졌다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그런 놈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건가?”

신성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 그 원숭이도 어마어마한 실력을 가졌으리라.

무려 토르와 비견되는 놈이니까.

“글쎄요… 나름 연맹에도 생각이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오디슨.”

이라호드가 말을 딱 자르더니, 푸른 눈으로 날 똑똑히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몸 사려요. 손오공은 이제껏 오디슨이 상대한 이들과는 격이 다른 수준이니까.”

그 말에 씩 웃었다.

“이제 날 똑바로 보는군.”

이라호드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 모습에 킥킥 웃음을 흘리자니, 퍽- 이라호드가 날 쳤다.

과연 발키리라는 걸까? 상당히 아프다.

“…무슨 소리예요!”

“아니, 어쩐지 기분이 상한 것 같아 그랬지.”

어깨를 으쓱이고 맞은 팔뚝을 쓰다듬자니, 이라호드가 눈썹을 와락 찌푸렸다. 철마차를 몰던 발키리가 킥킥 웃더니 말했다.

“서운해서 그럴걸요?”

“선배!”

이라호드가 깜짝 놀라 외쳤다.

나 역시 놀랐다. 서운하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고개를 갸웃하자니, 휙- 종잇장이 날아왔다. 마부가 던진 종이 다발이었다. 거기에는 내가 헬의 전송을 받는 그림이 떡하니 실려 있었다.

[오디슨♡헬, 핑크빛 무드?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적힌 글귀를 보자니, 머쓱해졌다.

어깨를 으쓱였다.

“안 그래도 헬한테는 말했다.”

이라호드와 마부가 귀를 쫑긋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결혼은 여러 번 할 거라고.”

내 말에 이라호드가 홍당무가 됐고, 마부가 넋을 놓았다.

이라호드가 꽥 소리쳤다.

“누, 누가 당신이랑……!”

그 말에 깜짝 놀란 척을 하며 말했다.

“아니, 난 크레네를 두고 한 말인데?”

이라호드에게 몇 대나 맞았다.

껄껄 웃으며 맞자니, 내가 변태가 된 기분이었다.

* * *

“못살아, 정말…….”

이라호드가 한숨을 푹 쉬고 손부채질로 얼굴을 식혔다.

그 모습에 또 낄낄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라호드의 선배이자, 철마차를 끄는 마부 발키리가 내게 장단을 맞춰 줬다. 그 덕에 오는 동안 심심하진 않았다.

이라호드가 세모눈을 하고 날 째려보았다.

“어쩔 거예요, 정말!”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뭐가 말이지?’ 하고 대꾸했고, 이라호드가 버럭 화를 냈다.

“처녀 혼삿길을 다 막아 놓고서……!”

그 말에 씩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 마라, 내가 데려갈 테니.”

“아, 아으, 그게 아니라……!”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이라호드의 얼굴.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런 걸 보면 이라호드도 날 싫어하지 않건만, 그때는 왜 그렇게 철벽을 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라호드가 입을 벙긋거리며 또 뭐라 소리치려 할 때, 내가 선수 쳤다.

“그보다, 어서 가야 하지 않나?”

“으, 진짜… 가요, 얼른.”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치안청으로 들어섰다.

이전 오디세우스가 시비를 건 바로 거기였다. 물론 향하는 곳은 다른 곳이었지만.

선녀가 티격태격하는 나와 이라호드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허.”

수많은 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면면이 예사롭지 않았다.

“드디어 왔군.”

시뻘건 피부를 지닌 거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풀풀 풍기는 그는 머리에 산양의 뿔을 매달고 헐벗은 몸을 하고 있었는데,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쩐지 반감이 치솟았다.

눈살을 구길 때, 이라호드가 슬쩍 내 옷소매를 잡았다.

“사탄이에요, 오디슨.”

사탄? 사탕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그리 좋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절반이 흉흉한 기운을 풍기고 있건만, 저 사탄이라는 작자는 그저 웃어넘길 수준을 넘었다.

늑대 무리에 끼어든 호랑이 같다고 해야 하나? 다른 이들이 종이 위에 검게 칠해진 수준이라면, 저자는 마치 종이가 뚫려 비치는 어둠 같았다.

“협력자 대장이죠.”

협력자는 또 뭐란 말인가?

눈살을 구기자니, 이라호드가 속삭이며 설명했다.

협력자란 다른 이름으로 말하자면, ‘토벌 예정자’라고. 다만 그 말을 공공연히 하면 싸움이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 했다. 제국 놈들이 우리 민족을 야만인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수준의 멸칭이라고.

“그래서 왜 토벌 예정자지?”

“저들은…….”

악신(惡神). 본래의 신성을 잃고 악명만이 남은 신들이란다.

그 말에 덜컥, 심장이 멈췄다. 이라호드를 바라보니, 그녀도 내 눈빛을 읽어 낸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만일 당신이 신성을 지키지 않았다면, 저렇게 됐을지도 몰라요.”

눈살을 구겼다.

그런데도 날 막았단 건가? 뚱한 표정을 짓자니, 이라호드가 쓰게 웃었다.

“악신들은 사실, 그리 악하진 않아요. 그저…….”

“사이가 좋은 건 알겠지만, 거기서 너무 속닥거리진 말게.”

사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다시 울컥하는 마음이 치솟았으나, 내게 내민 수프를 보고 눈을 끔벅였다.

사탄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어, 음…….”

양배추와 베이컨을 듬뿍 넣은 수프는 맛있어 보였고, 치즈와 빵도 따로 챙겨 주었다. 그뿐인가?

“고기가 빠지면 섭하겠지.”

손수 만든 스테이크까지 한 덩이 놓아 주었다.

눈을 끔뻑이자니, 사탄이 낄낄 웃었다.

“사바스(sabbath)에서 마녀들을 먹이다 보니, 솜씨가 꽤 좋아졌지. 먹을 만할 걸세.”

시뻘겋던 피부는 피와 불꽃을 연상케 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어째 그냥 술 취한 아저씨 같다.

나는 떨떠름하게 그를 받아 들었고, 이라호드는 허- 하고 헛숨을 내쉬었다.

“이게 바로 사악한 연회 음식…….”

어, 음.

어디가 사악한지 잘 모르겠는데.

* * *

접시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식사가 끝났다. 사탄의 말처럼 솜씨는 굉장히 좋았다.

뭐, 식사를 하면서 사탄이 내뱉는 말은 오디슨을 당황하게 했지만.

“까도 까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양배추와 소금과 고기를 잔뜩 써서 사치를 부린 베이컨, 게다가 새끼에게 돌아가야 할 젖을 훔쳐 만든 치즈와 버터. 얼마나 사악한가?”

“그뿐인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이 고기를 보게. 무려 소고기 450g을 얻으려면 3kg의 사료가 필요하다는 것 알고 있나? 그야말로 사악한 음식이지.”

오디슨은 그게 왜 사악한지 알 수 없었다.

사탄은 ‘본래라면 내 휘하에 있는 서큐버스를 부려 광란의 파티를 열어야 하지만…….’ 하고 말을 줄였다.

오디슨은 ‘허, 것 참 아쉽군-’ 하고 말하다, 이라호드에게 꼬집혔다.

그 모습에 사탄이 킥킥 웃었다.

“뭐, 여기는 마녀들이 잔뜩 모인 사바스가 아니니… 약식으로 연회를 여는 게 맞겠지.”

그 말에 오디슨이 인상을 찌푸렸다.

“사바스라는 게 뭐요?”

“음? 모르나? 마녀들이 나를 부르고자 여는 사악한 제사라네.”

“허… 과연.”

오디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는 소리를 뱉었다.

“마녀와 여자 악마가 접붙다니… 생산성 없는 짓이군.”

그 말에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졌다.

사탄 역시 낄낄 웃었고, 이라호드만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이라호드가 오디슨을 잔뜩 꼬집었다.

사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여 나중에 타락한 악신이 된다 하면, 친하게 지내지.”

“음? 지금은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거요? 같이 밥 먹고 싸우러 갈 거 아니오?”

사탄이 당황했다.

어깨를 으쓱인 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사탄으로서는 처음 보는 형태의 신이었다.

“마음에 드는 소리군.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짝짝- 손뼉을 쳐 주목을 끌어모은 사탄이 말했다.

슬라이드를 내리고, 프로젝터로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모두 대충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

곤륜의 요괴 소동.

그 소동을 막고자 곤륜에 소속된 천군들이 모두 하계로 가 요괴를 때려잡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곤륜 휘하의 주술사라 할 수 있는 도인(道人)들도 요괴를 때려잡는 데에 한 손을 보탰다고.

“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네. 특히나, 곤륜에서 판단을 잘못했어.”

사탄이 쯧- 혀를 차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리고 화면에 떠오른 얼굴은 유명한 원숭이였다.

“태풍의 눈을 제거해서 태풍을 없애고자 했지만… 그 태풍의 눈이 보통이 아니라서 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모인 이들이 추가로 투입된다 해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악(惡)의 종주(宗主), 적대자, 사탄답지 않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모인 이들 모두가 인상을 구겼다. 사탄이라고 하면 다른 차원에서 무려, 그 차원을 장악한 이와 다투는 위치 아니던가?

그런데도 저렇게 머뭇거린다? 모두의 마음에 제천대성이라는 네 글자가 깊이 박혔다.

그때, 사탄이 씩 웃었다.

사악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우리 임무는 손오공 포획만이 아니다.”

모두가 물음표를 띄울 때, 사탄이 슬라이드를 넘겼다.

[1차 목표, 손오공 포획.]

[2차 목표, 손오공 저지.]

[3차 목표, 요괴 퇴치.]

사탄이 어깨를 으쓱였다.

“1차가 어려울 것 같다면, 2차로 가면 되겠지.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새 나왔다.

자료를 보자면 손오공은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 목표지가 아마도 서역일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서역에서는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에게 스카우트를 제의한 바가 있으니까. 그 당시에는 그저 명예직을 받고 땡이었지만… 곤륜에서 내린 벌에 토라져 서역으로 간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계획을 기다렸다. 손오공을 그저 막아서기도 쉽지 않을 거라는 건 모두 아는 일이었으니.

사탄이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서 내가 널 기다렸다.”

새빨간 손가락이 한 사내를 가리켰다.

그가 눈을 끔벅이며 말했다.

“누구 말이오? 나요?”

사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바로 이 계획에서 가장 중요하다.”

명예를 드높일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맡겨 두시오!”

탕탕, 오디슨이 가슴팍을 두드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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