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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발할라-109화 (109/208)

# 109

109화. 신이 내린다 (3)

“뭣……? 아프로디테? 이게 무슨!”

마르스가 덜컥 굳었다.

비너스의 권능 탓이었다. 빈틈이 크게 벌어졌지만, 덩굴 탓에 칠 수가 없었다. 끙끙 앓고 있을 때, 비너스가 복잡한 얼굴을 했다.

그녀가 마르스를 보았다.

“아레스, 너무 지체했어요. 물러나요.”

“뭐라고? 다 잡은 놈을 놔주자고? 이미 늦었어, 늦었다고!”

마르스는 비너스의 근처 있는 빈 병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가 비너스의 권능에 저항하고자 신성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비너스의 분홍색 신성은 이미 마르스를 꽁꽁 옭아맨 상태였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다.

“비너스! 날 풀어 주시오!”

크게 소리치자, 마르스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당황한 눈빛이다.

“허! 정신이 나갔나? 아프로디테가 왜 널…….”

“오시리스, 그를 풀어 줘요.”

“뭐?”

마르스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오시리스 역시 그랬다.

하지만 오시리스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서 덩굴을 풀었다.

스르륵- 덩굴이 사라졌다.

“후우, 꽁꽁 묶여 있으려니, 아주 피곤하군.”

우둑, 우두둑.

손발을 비틀어 몸을 풀었다.

마르스가 입을 쩍 벌리고 내게 삿대질했다. 그리고 홱! 비너스를 노려보았다.

“아프로디테! 어째서 이놈을……?”

“오디슨, 많이 아픈가요? 미안해요. 당신을 상처 입힐 생각은 없었어요. 전 아레스와 오시리스에게 속았어요.”

비너스가 진심이 묻어나는 얼굴과 몸짓, 그리고 말투로 말했다.

어깨를 으쓱였다. 사랑의 묘약 때문에 날 사랑하게 됐다 한들, 마음을 내 뜻대로 헤집는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비겁한 짓거리다.

“괜찮소.”

짧은 대꾸에 비너스가 불안해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어떻게 이 일을 사과해야 할지…….”

비너스의 마음을 이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불리한 상황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한 가지 더 부탁했다.

“혹, 헬을 풀어 줄 수 있겠소?”

“헬을요?”

언뜻 고운 눈동자에 질투가 스쳤다. 하지만 담담히 바라보자니, 입술을 앙다문 채 고민하던 비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너스는 곧장 명령을 내렸다.

“오시리스, 헬을 풀어 줘요.”

“크으… 그, 그건…….”

“오시리스?”

비너스가 입술을 살짝 삐죽이자, 오시리스의 고뇌가 사라졌다.

바보같이 헤실헤실하며 그가 대꾸했다.

“알겠도다.”

그리고 헬을 감싼 덩굴이 풀려났다.

헬께서는 손목을 쓰다듬으며 쳐다보셨다. 그 얼굴이 복잡해 보여 쓰게 웃었다. 영민하신 헬이시라면, 이 상황을 눈치챘으리라.

나는 입술을 벙긋거려 그분께 뜻을 전했다.

‘어쩔 수 없었소.’

헬께서는 눈썹을 구기시면서도 고개를 끄떡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단순무식한 마르스 역시 비너스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아프로디테! 사랑의 묘약을 삼켰구나!”

이제야 비너스의 발 언저리에 있는 빈 병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늦었다. 나는 천천히 창을 집어 들었다.

목표는 훤히 드러난 목덜미였다.

* * *

아레스는 정신이 혼미했다.

아프로디테가 갑자기 권능을 발휘해 오디슨에 대한 공격을 막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생각했다. 아프로디테는 언제나 자신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 왔으니까.

하지만 텅 빈 사랑의 묘약을 보자니 두통이 일었다.

오디슨을 풀어 주고 그에게 사과한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에로스의 권능이라 해도, 어떻게?’

아레스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렸다.

문득, 에로스의 아내인 프시케가 떠올랐다. 아레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분명,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명으로 프시케를 골탕 먹이러 갔었지.’

하계에 프시케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왕왕 돌 때 이야기다.

‘프시케가 그렇게 예쁘다며?’

‘그럼! 미의 여신이신 아프로디테 님께 비견될걸?’

‘예끼! 그런 소리 하면 벌 받아, 이 사람아!’

농담인 걸 알기에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껄껄 웃고 넘겼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감히 하계의 인간 주제에 미의 여신과 비견된다는 게 건방졌다.

그리하여 아프로디테는 에로스를 보냈다.

‘프시케라는 년이 최악의 추남에게 반하도록 하라!’

그 명령에 에로스는 프시케를 찾아갔다.

에로스는 잠든 프시케를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어머니께서 바라시는 일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구나.’

에로스의 권능은 두 가지, 금 화살과 납 화살이다.

금 화살을 맞은 이는 처음 보는 이에게 사랑에 빠지고, 납 화살을 맞은 이는 처음 본 이를 죽도록 싫어하게 된다.

금 화살을 꺼내 든 그때, 에로스는 어린아이였다. 손가락이 짧았다. 활을 쏘기에는 좋지 않은 체형.

그 덕에 그는 작은 실수를 했다.

‘어? 윽!’

그 화살촉에 손가락을 다쳤다. 그리고 다시 프시케를 쏘려고 그녀를 본 에로스가 사랑에 빠졌다.

사랑의 묘약은 바로 그 금 화살을 녹여 만든 약이다.

“아프로디테…….”

복잡한 마음을 담아 그녀를 불렀다.

아프로디테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로디테! 나다, 네 남편인 아레스다! 날 봐라,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는 그 목소리에 반응했다.

아레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 발치에 있는 빈 병은 그저 모래폭풍으로 저기 떨어졌을 뿐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프로디테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레스는 절망했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이었다.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마! 같이 살지도 않는데 무슨 남편!”

정색하며 말하는 아프로디테.

언제나 사근사근 말하던 그녀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낯선 모습. 아레스는 겁이 났다. 그녀에게서는 한 줌의 사랑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혐오가 선명하게 묻어나왔다.

아프로디테가 중얼거렸다.

“내가 미쳤지, 저런 멍청이랑… 어휴!”

아레스의 심장이 천 갈래, 만 갈래 찢겼다.

그가 절규했다.

“어떻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는가!”

그에 아프로디테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흥!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그 말에 아레스가 풀썩 주저앉았다.

멍한 눈으로 아프로디테를 쳐다보던 그는 제게 닥치는 공격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목덜미를 노린 공격이 짓쳐 들었다.

“죽어라, 마르스!”

푸욱!

“크어억!”

오디슨의 창이 그의 목덜미를 꿰뚫고 가슴팍으로 튀어나왔다.

뇌리를 불사르는 짜릿한 고통. 아레스는 이를 악물며 뒤를 돌아보았다.

오디슨이 혀를 찼다.

“질기군! 하지만…….”

“크아아아아악!”

쿠구구궁!

석실이 요동쳤다. 지독한 고통이 그를 감싸던 아프로디테의 권능을 찢었다. 아레스의 눈에는 선명한 분노가 서렸다.

‘모두 이놈 탓이다!’

그는 모든 책임을 오디슨에게 넘겼다.

“죽여 주마, 오디슨! 네놈이, 네놈이 모든 걸 망쳤다!”

오디슨은 당황했다.

급소를 제대로 노린 공격임에도 아레스가 죽지 않았다.

아프로디테가 나섰다.

“그만! 멈춰!”

핑크빛 신성이 아레스를 감쌌으나, 지독한 통증과 분노에 아레스를 보듬지 못했다. 아레스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몸에 박힌 창이 우둑우둑 소리를 냈지만, 오디슨의 힘으로는 도저히 아레스를 막을 수 없었다.

오디슨의 얼굴에 짙은 긴장이 서렸다.

아레스가 씩 웃었다.

“네놈만 없으면……!”

아레스가 번쩍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 주먹에 담긴 힘이 어찌나 강렬한지, 주변 공기가 일렁일 지경이었다.

오디슨은 자신이 전쟁 신을 얕봤다는 걸 알아챘다.

‘…이 정도일 줄이야.’

어서 창을 뽑고 방어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으윽, 제길……!”

뽑히지 않았다.

아레스의 몸은 신성이 들끓으며 한층 더 강인해졌고, 촘촘한 근육은 한 치의 틈도 없이 창을 옥죄었다.

“죽어라!”

아레스가 주먹질했다.

하지만 분노로 제정신이 아닌 그는 제대로 된 상황 판단을 하지 못했다.

“누가 누굴 죽이겠다는 거지?”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니플헤임의 지배자가 이 상황을 좌시할 리가 없었다.

쩌저적!

“크으, 크으으윽……! 이 한기는……! 그사이 이런 힘을 모으고 있었나? 헬!”

“누구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헬이 서늘한 한기를 뿜으며 말했다.

그녀의 신성이 더욱더 거칠게 몰아쳤다.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쩍!

아레스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차가운 얼음 속에서도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분노를 품고서.

그리고 얼어붙은 것은 깨지기 마련이었다.

쨍그랑!

* * *

분노한 마르스는 깨졌다.

나는 창을 집어 들고, 헬을 바라보았다.

헬께서는 내게 눈인사를 건네셨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우리 둘은 동시에 하나 남은 적을 바라보았다.

“…어찌, 어찌 이 지경이 된단 말인가! 왕좌를 다시 찾을 날이 머지않았었건만!”

서늘한 죽음의 한기가 핑크빛 신성을 얼린 탓일까?

오시리스는 비너스의 권능을 벗어난 채 당황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갈았다.

“추악한 괴물아!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이다!”

“교양 없는 놈! 짐을 시해하겠다고? 어리석구나!”

창을 들었다.

지독한 피로에 눈이 감길 것만 같았지만, 저놈을 놔둘 수는 없다.

헬을 납치하고, 날 죽이려던 놈이다.

“죽음의 한기! 무서운 권능이다. 허나, 짐에게는 통하지 않아! 짐은 죽음과 부활을 다루는 자. 끝이 있다면 시작도 있는 법! 그 시작을 보여 주리라!”

오시리스가 번쩍 팔을 치켜들었다.

나는 그의 덩굴을 경계하며 바닥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헬께서 콧방귀를 뀌셨다.

“흥! 너와 나는 천적이라 할 수 있지. 그렇다면 누가 먼저 신성을 펼치느냐의 싸움이다. 알겠는가, 시체여?”

“…얼어붙은 땅에는 내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는 것? 그걸 누가 모를까!”

“그렇다면 얌전히 그 목을…….”

“훌륭한 왕은 때로 천도도 망설이지 않을지니!”

지이잉- 공간이 갈라지고 찬란한 햇빛이 내리쬈다.

그리고 오시리스가 히죽 웃으며 그 차원문에 발을 디뎠다.

어이가 없다. 이를 악물었다.

“도망? 왕이라는 작자가 도망을 치겠다고?”

창을 번쩍 치켜들었다.

이 창을 던져 놈을 꿰뚫어 죽이리라.

오시리스가 흠칫 몸을 떨고 잽싸게 달렸다. 이제까지 짐이 어쩌니 하던 꼴에 어울리지 않는 허둥대는 꼴이었다.

“두, 두고 보자! 이 일은 내 잊지 않으리!”

끝까지 헛소리다.

“그냥 보내 줄 것 같은가!”

전력을 다해 바닥을 박찼다.

창을 치켜들고 허공을 가로지를 때, 오시리스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깜짝 놀라고 황급히 차원문으로 들어섰다.

한 방이라도 먹일 수 없는가!

“으아아아아!”

전력을 다해 창을 내질렀다.

쐐애애애액!

오시리스가 흠칫 놀라 돌아보고 차원문을 넘는다. 늦었나?

아니, 오시리스가 무언가에 튕긴 듯 돌아온다.

늦지 않았다!

“죽어라!”

전력을 다한 공격.

하지만 그 공격은 고운 손가락에 튕겨 나갔다.

채앵!

눈을 부릅떴다.

내 창을 튕겨낸 것은 호리호리한 여자였다. 갈색 피부에 길게 기른 검은 머리, 그리고 짙은 눈화장을 한 여신.

허공에서 몸을 추슬러 착지했다.

갑자기 끼어든 여신이라니… 새로운 적인가? 미간을 찌푸릴 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오시리스가 덜덜 떨며 말했다.

“이, 이시스!”

오만하던 태도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이시스라는 여자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분명 내가 얌전히 두아트나 다스리라 했을 텐데? 그런데 이런 사고를 쳐? 제정신이야?”

“크, 크윽……!”

“내가 되살리면서 뇌를 빼먹었나? 그도 아니면 내 경고가 우습게 들렸나?”

눈살을 좁혔다.

저 여자는 오시리스의 아군인가, 적군인가?

어쨌거나 나는 창을 쥐었다. 뭐가 됐든 이놈에게 한 방 먹이지 않으면 기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이시스가 날 보았다. 이제까지 폭언을 쏟아 내던 여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서.

“오디슨, 당신의 이름은 왕왕 들었어요. 이 짧은 시간에 신계 연맹 전체에 이름을 떨치다니! 대단한 분이시네요.”

달콤한 말에 눈살을 구겼다.

이시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무 과격해요.”

과격하다?

그녀를 노려보자, 그녀가 빙긋 웃었다.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철저히 할 거예요. 그리고 이 쓰레기에 대한 처벌도 확실히 할 거고요.”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공격을 멈춰 주세요. 쓰레기 같은 남자긴 하지만, 제 체면을 봐서요. 물론 보상은 바라는 만큼 해 드릴 거예요.”

보상을 바라는 만큼 해 주겠다?

내가 바라는 보상은 언제나 뻔하다.

“저놈의 목을 바란다.”

승리.

하지만 그 간단한 보상에도 이시스는 빙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넌 내 적이군.”

“네? 그게 무슨…….”

푸욱!

창날이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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