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00화 (100/208)

# 100

100화. 영웅은 답 없다 (2)

차가운 바람으로 가득한 땅, 니플헤임.

그곳의 가장 번화한 도시 헬하임. 그 가운데 있는 가장 높은 궁전, 엘류드니르. 니플헤임의 여왕이 기거하는 그곳에는 니플헤임의 찬바람과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그 훈풍을 내뿜는 주인공은 바로 헬이다.

“후후후.”

헬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팔찌를 쓰다듬었다.

서류를 처리하다가 갑자기 느슨한 얼굴로 팔찌를 쓰다듬기도 했고,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그 모습에 충직한 집사장, 강글로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왕님, 오디슨 님께 선물을 받아 기쁜 건 알겠는데… 너무 들뜨신 것 아닌가요?”

“후후, 오디슨이 날 유난히 신경 쓴다는 증거 아니야? 기쁘지 않을 리가.”

“…그렇게 좋으세요?”

헬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선물에 헬은 의문을 품었다. 갑자기 발할라의 드베르그 장인 조합에서 보내는 물건이라니.

이게 뭔가- 생각했지만, 물건과 함께 전달된 편지에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이 편지를 봐. 오디슨도 날 신경 쓰고 있잖아?”

“그야, 당연하죠. 여왕님께서는 죽음의 주인이시자, 망자들의 여왕이시자, 이 니플헤임의 지배자이신걸요?”

강글로트가 사실을 말했지만, 헬의 귀는 그 말을 무시했다.

헬은 편지를 다시 보며 빙긋 웃었다.

오디슨의 편지는 그다지 잘 쓴 편지가 아니었다.

그간 너무 받기만 한 것 같다는 이야기. 그리고 약소하나마 자신과 같은 팔찌를 전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이야기.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콩깍지가 씐 헬에게는 저 사무적인 이야기들이 다르게 해석되었다.

‘너무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는 건, 내 마음을 안다는 의미겠지? 그리고 하필이면 같은 팔찌를 전달한다는 건 커플링과 비슷한 의미인가? 조만간 찾아와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헬의 머릿속에는 오디슨이 조만간 꽃다발과 함께 찾아와 무릎 꿇고 청혼을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강글로트가 후우- 한숨을 쉬었다.

“오디슨 님도 참… 이런 건 직접 와서 전달해야 하는 건데…….”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자, 헬이 쯧쯧- 혀를 찼다.

“오디슨도 편히 쉬는 건 아니니까. 민원 처리에 승격 시험, 거기다가 이번에는 세력전에도 참가한다지 않나?”

“아, 그 세력전 때문에 자리를 못 비우는 걸까요? 그거, 좀 안 좋은 소리가 나오던데.”

강글로트의 말에 헬이 눈살을 구겼다.

“안 좋은 소리?”

훈풍이 순식간에 삭풍으로 바뀌었다.

싸늘한 표정의 헬이 눈빛으로 강글로트를 재촉했다.

대체 어떤 자식들이 오디슨을 안 좋게 말하느냐고. 당장 말만 하면 달려가 얼음덩어리로 만들어 버릴 기세였다.

강글로트가 떨떠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헛소리긴 한데…….”

“강글로트? 똑바로 말해.”

“그게…….”

강글로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사랑에 눈먼 여왕이 미친 짓을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 * *

TV에서 들려온 소리에 눈살을 구겼다.

[N100 선수단 측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선발이라 말하며…….]

입을 꾹 다물고 TV를 노려보고 있자니, 주변에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지글지글, 불판 위의 고기가 익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그나르도, 토르손도, 이라호드도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고, 내 눈치를 살폈다.

까드득, 이를 악물었다.

“지금 그러니까, N100에서 다른 투사 놈들이 내가 세력전 대표가 된 게 못마땅하다, 이 소린가?”

내 말에 이그나르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런 모양인데……? 뭐, 지들 딴에는 이제 막 승격한 네가 의심스러운 모양이지.”

“그래 봐야, 저 선발 투사 명단은 위쪽에서 결정하는 거 아닌가? 별 쓸데없는 소리야, 대장. 신경 쓰지 마.”

이그나르와 토르손이 날 달래고자 말했다.

그들의 말처럼 신경 쓸 가치가 없다면 모를까, 그들의 주장은 짜증스러운 부분을 찌르고 들어왔다.

[아스가드르 신들이 N100의 유일한 신인 오디슨을 일부러 밀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주장을 펼치며…….]

선발의 공정성에 대해 지적한 것이다.

나로서는 기가 찰 지경이었다. 뭘 할 줄 안다고 신들을 꾀어 날 발할라 대표로 뽑으라 말하겠는가?

분노가 치밀었다.

“흥! 전사답지 못한 놈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라호드가 흠칫 놀랐다.

“오디슨? 설마… 아니죠?”

뭐가 아니냐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당당하게 말했다.

“모름지기 전사란, 입으로 나불대는 작자가 아니다.”

“오디슨… 지금 난동을 부리면 오디슨만 곤란해져요.”

“글쎄, 누가 곤란해지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 아니겠는가?”

가게를 나섰다.

이라호드가 황급히 내 뒤를 따랐다.

그녀가 날 붙잡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댔다.

“오디슨! 어차피 그냥 말하는 거예요, 불평불만을 뱉는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나는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이라호드가 계속 날 말렸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짓이라니까요? 오디슨!”

그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귀찮은 짓이다.

하지만 진실이라는 맨바닥 위에 거짓이라는 눈이 쌓이면, 그걸 치워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이라호드, 난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라호드가 내 말에 이마를 감싸 쥐었다.

“증명은 좋은데, 그게 꼭 피를 보는 방식이니까 그러는 거잖아요!”

그야 당연하다.

나는 전사고, 싸우는 자다.

피를 흘리지 않고, 어찌 전사가 스스로를 증명하겠는가?

* * *

선발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불평은 프레이야에게도 전달되었다.

그에 프레이야는 으득- 이를 갈았다.

“불공정? 별 시답잖은 소리를!”

정곡을 찔린 그녀다.

애당초 세력전의 조건에 오디슨의 참가를 지정한 것이 그녀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화를 냈다.

그녀의 집사, 고양이가 쩔쩔매며 말을 꺼냈다.

“프레이야 님, 지금 화를 내실 때가 아닙니다!”

“화? 나는 화 안 났는데? 그냥 짜증이 좀 났을 뿐이야!”

프레이야가 예쁜 얼굴을 사납게 만들며 말했다.

고양이 집사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게 화난 거예요!’

그렇게 대꾸하고 싶었지만, 고양이 집사는 강글로트가 아니었다.

프레이야의 집사가 되고 싶어 하는 고양이들은 수두룩했고, 프레이야의 심기를 건드리면 집사 자리에서 해고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고양이 집사가 바로 그렇게 빈자리를 치고 올라왔으니,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프레이야가 전화기를 들었다.

“일단, 오딘에게 연락해야겠어.”

“네? 아니, 오딘께서도 저런 여론에 휘둘리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래도, 감히… 발할라와 세스룸니르의 행사에 잡음을 넣다니! 처벌을 해야 할 거 아냐?”

적반하장이었다.

오디슨을 보겠다며 세력전을 연 프레이야가,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이들을 처벌하겠다니.

고양이 집사는 털 아래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프레이야 님!’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 충언을 할 수는 없었다.

프레이야가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지?

“오딘! 당신, 투사들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세력전에 온갖 헛소문이 끼어들게 만들어요!”

프레이야가 꽥 소리쳤다.

오딘이 아스가르드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프레이야도 그에 뒤지지 않는 권력을 지닌 여신이다.

프레이야의 말에 오딘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별일 아니군. 끊겠다.

“아니, 잠깐! 이런 헛소문이 돌면……!”

-아마 오디슨이 알아서 잘할 것이다.

오디슨?

난데없이 들려온 이름에 프레이야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녀가 굳어 있는 사이, 전화는 끊어졌다.

프레이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디슨이 뭘……? 집사! 오디슨이 지금 뭘 하는지 알아봐!”

“넷? 오디슨 말이십니까?”

“그래, 오디슨이 알아서 할 거라니… 대체 이게 무슨…….”

집사가 고개를 숙이고 정보 수집에 나섰다.

예전처럼 사람을 풀고 도둑 길드를 수소문하고-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저 신계 통신을 확인하면 금방 소문이 튀어나올 터.

고양이 집사는 서둘러 신계 통신에 접속해 이런저런 게시글들을 훑어 내려갔다.

그러는 사이, 프레이야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누구죠?”

-아레스.

프레이야가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왜 갑자기 전화를 끊는 것이지?

“…댁이 나한테 전화할 일이 뭐 있다고 이러죠? 전 유부남의 추파에 넘어갈 정도로 엉덩이가 가벼운 여자가 아니에요.”

헬이 들었더라면 어이가 없어 헛숨을 흘렸을 말이다.

아레스 역시 어이가 없었는지, 잠깐 말을 멈췄다.

프레이야가 말했다.

“할 말이 없다면 끊겠어요.”

-자, 잠깐! 네 힘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홀릴 수 있는 그 힘이!

프레이야가 멈칫했다.

“그게 무슨 소리죠?”

-헬, 그 여자를 싫어하지?

예상을 깨고 튀어나온 말에 프레이야가 미간을 좁혔다.

좀 더 이야기해 볼 가치는 있을 것 같았다.

* * *

쾅!

굉음이 울렸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N100 대기실에 모여 있던 사내들이 날 바라보았다.

나는 허- 헛숨을 흘리며 대기실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TV에 푹신한 소파, 거기다가 공짜 술까지? 수준 차이가 너무 나는군.”

메르키가 관리하는 하급 대기실은 초라했다.

벽에는 TV 대신 거미줄이 걸려 있었고, 소파 대신 낡은 나무 의자가 있었다. 공짜 술? 투사들이 마실 물조차 식당에 가야 찾을 수 있었다.

“오디슨?”

“뭐지? 갑자기 소란이라니! 교양 없긴!”

대기실에 모여 있던 투사들이 투덜댔다.

그들의 눈에는 적대감과 질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라호드가 내 곁에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칫, T100도 아닌 주제에 예전부터 전속 발키리를 데리고 다녔다지?”

“이거 원, 인맥 없는 투사들은 서러워서 살겠나, 안 그래?”

투덜대는 투사들.

나는 창을 똑바로 세우며, 창끝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콰앙!

투사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히죽 웃음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세력전에 내가 나가는 게 불만스럽다는 놈들이 있더군.”

내 말에 투사들이 눈살을 구겼다.

나는 오연히 턱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불만이 있다면 헛소리를 지껄이지 말고, 직접 나서라! 그것이 전사다운 행동 아닌가!”

버럭 소리치자, 투사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리고 한 투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인족이었다.

“신성을 가졌다고 너무 설친다고 생각하지 않나? 하급 신?”

“…흐음, 거인족인가? 내가 신성을 믿고 설친다고?”

“물론, 신성이 없는 너는 아무것도 아니건만, 지나치게 설친다. 세력전은 공평한 상황에서 치러진다는 걸 알겠지?”

그랬나? 고개를 갸웃하자, 이라호드가 속삭인다.

“세력전은 양측 모두 주최 측에서 준비한 무기만을 들고 싸워요. 신성의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공평하게 실력만을 가지고 싸우는 입장에서 내가 신성을 가지고 있는 게 문제라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뭐가 문제지?”

“신성과 비싼 무기. 그따위 걸로 승격한 네놈을 인정한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거인의 말에 투사들이 동조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바스프, 저 덩치 큰 놈이 오랜만에 옳은 소리를 하는군!”

나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

“거인이나 신, 용이나 영웅의 핏줄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데, 신성은 문제가 된다고? 별 같잖은 소리를 하는군.”

“늑대의 송곳니를 부러워하는 것과 창을 들고서 늑대를 이기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건 다르지.”

“그래, 그게 문제라면…….”

어깨를 으쓱였다.

“덤벼라, 거인아. 창도, 신성도 없이 네까짓 놈을 박살 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지.”

“흐흐흐, 콩알만 한 인간이!”

바스프라는 거인이 낄낄 웃으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우드득, 우드득. 끔찍한 소리가 그 목에서 들려왔다.

거인이 가까이 다가오니, 과연 크다.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제껏 이그나르나 토르손의 핏줄에 거인족의 피가 섞이지 않았나 의심했건만… 틀린 소리였다. 그들에 비해서도 거의 두 배는 큰 키다.

이라호드가 내 옷을 잡아당겼다.

“거인과 맨손으로 싸우겠다니… 오디슨, 무모한 짓이에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나는 자비의 신이다. 이들에게 확실한 차이를 보여 주는 것도 자비의 일종 아니겠는가?”

이라호드의 손길을 떨쳐 내고, 거인 앞에 섰다.

내 두 배가 훌쩍 넘는 키를 앞에 두고, 내가 말했다.

“누구든 좋다. 맨손으로 아무런 능력을 쓰지 않고 날 꺾을 자신이 있다면 덤벼라. 나는 스스로를 증명할 테니.”

그에 거인이 씩씩댔다.

당장이라도 날 덮칠 느낌이었다.

하지만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아니, 불청객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고귀하신 분이셨다.

“그만.”

걸걸한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시고, 세상을 굽어보시는 높으신 분, 오딘이시여!”

그를 칭송하자, 오딘께서는 외눈으로 대기실의 모두를 바라보았다.

“내 결정에 불만이 있다고?”

툭 내던진 말에 투사들이 몸을 떨었다.

날 세력전에 참가시키신 것이 오딘이신가? 그렇다면야, 저들의 불경함을 징계할 명분이 될 터.

나는 창을 꽉 쥐었다.

하지만 오딘께서는 자비로우셨다.

“그럴 수도 있지. 오디슨, 네가 제안한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단…….”

단? 꿀꺽, 침을 삼켰다.

“이렇게 재밌는 일을 몰래몰래 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게, 무슨……?”

오딘께서 낄낄 웃으신다.

그 웃음에 소름이 돋았다. 그분께서는 세력전 투사 선발전을 열 거라 선언하셨다.

나는 약간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회색 외눈이 나를 향할 때, 그 불만을 차마 뱉을 수가 없었다.

“나의 늑대여, 아직도 황금을 벌어들이는 법을 잘 모르는구나.”

“…송구스러운 말이오나, 저는 황금이 그리 필요치 않습니다.”

“과연 그럴까? 아, 혹여 황금 사과가 신들의 젊음만을 유지해 준다 여기느냐?”

황금 사과?

분명, 그 재수 없는 브라기의 아내인 이둔께서 기르시는 것이다.

신들의 청춘을 유지시켜 주는 신비한 과일.

나는 분명 그리 알았다. 하지만 뭔가가 더 숨겨진 모양이다.

브라기를 닦달하면 그에 대해 알 수 있을 터.

황금 사과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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