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99화 (99/208)

# 99

99화. 영웅은 답 없다 (1)

이집트의 명계, 두아트.

그곳은 언제나처럼 황량한 곳이었다. 세상 전체가 꼭 시청과 같은 느낌이었다. 죽어 두아트로 오게 된 이들은 멍하니 기다릴 뿐이었다. 언젠가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심판의 때가 오기를. 간간이 새로 온 영혼이 소란 피우긴 했지만, 그뿐이다. 그 영혼도 며칠 지나면 이 무기력에 잠긴다.

두아트가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후우.”

오시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라인 그에게 피로는 없다. 잠도 필요 없다. 그저 가끔 썩어 가는 몸을 위해 타르를 바르고 붕대를 감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는 한숨 지었다.

“아누비스…….”

충직한 부하를 떠올렸다.

아누비스가 있을 때는 그다지 실감이 없었다. 그저 충실하게 일을 처리하는구나- 하는 생각뿐. 그가 불륜으로 태어난 아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렇구나- 생각할 따름.

난 자리는 몰라도 빈자리는 안다던가?

뒤늦게 오시리스는 아누비스를 떠올렸다.

“대저 어찌 된 영문인고…….”

무심코 중얼거렸다.

오디슨과 연관된 일이라는 건 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가 났다.

그까짓 놈 하나 처리하지 못하다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아누비스가 실종된 지 약 3개월이 지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재판장은 대대적인 조사가 한창이었다.

“흐음…….”

아누비스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오시리스가 고민을 거듭할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라.”

짧은 대꾸에 문이 열렸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오시리스가 아누비스의 수색을 맡긴 신관. 오시리스가 그를 바라보았다.

기대하는 눈빛에 신관이 흠칫 떨었다.

“그래, 무얼 알아냈는고?”

“그, 그것이…….”

신관이 우물쭈물 말을 더듬었다.

오시리스가 눈살을 구겼다.

“똑똑히 말하지 못할까!”

“헉! 그, 그게… 저, 저언하아!”

쿵!

신관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오시리스의 표정이 한층 더 나빠졌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무슨 일이더냐! 뭣 때문에 이리도 소란을 피우는 것이야!”

“그, 그, 그게… 이, 이것 때문이옵니다!”

신관이 덜덜 떠는 손으로 물건 하나를 건넸다.

그건 구리로 만들어진 앙크(Ankh, ♀)였다. 오시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디에서 찾았는가!”

“아, 암무트의 둥지에서…….”

“아!”

오시리스가 휘청였다.

구리로 만들어진 앙크는 오시리스에게 익숙한 물건이었다. 본디 앙크라는 게 이집트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익숙한 건 아니었다.

“아, 아누비스……!”

오시리스가 손을 떨며 앙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꽉 쥐었다. 이 감촉, 이 크기, 모두 너무 익숙하다.

바로 자신이 아누비스에게 내린 것이었다.

아누비스는 앙크를 받고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제가 소멸하기 전까지, 이 잉크가 제게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헉헉- 혀를 내밀며 기뻐하던 그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오시리스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오디슨, 이 비열한 놈이 감히……!”

명계의 왕이 분노로 치를 떨었다.

아누비스의 소멸이 확인되었다. 이전에도 신성이 느껴지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징조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확신할 수 없었다.

태초의 공허로 간다면야 신성 감지가 불가능하니까.

그 외에도 신성이 봉인되어도 감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앙크를 본 순간 이집트 신계의 모든 신이 확신했다.

아누비스는 죽었다.

오시리스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아니, 참지 않았다.

“오디슨, 내 그놈을 찢어 죽이고야 말리라!”

하지만 어떤 수로?

다른 신계에 있는 신이다. 빈틈을 노리더라도 차원을 여는 아누비스의 힘 없이는 그에게 위해를 가할 방법이 없었다.

오시리스는 그에 도움을 요청했다.

오디슨을 싫어하면서 꽤 도움이 될 법한 위치에 있는 이를 불렀다.

-무슨 일이지? 폐왕?

건방진 목소리가 들려왔고, 오시리스는 단단하게 말했다.

“오디슨에게 복수해야 하지 않겠나?”

헬과의 결혼보다 오디슨에 대한 복수가 우선이었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음- 침음을 흘렸다.

-복수, 좋지. 이 빌어먹을 잡일이라니! 내 체면을 구긴 놈을 그냥 둘 생각은 없다. 하지만…….

“허! 겁먹은 것인가?”

오시리스가 어물쩍거리는 아레스를 부추겼다.

아레스가 으득- 이를 갈며 말했다.

-그저, 우리끼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끼리 할 수 없다?”

-그래, 복수하겠다고 아스가르드에 전쟁을 선포할 셈은 아니겠지?

오시리스는 그에 입을 다물었다.

전쟁은 불가능했다. 오시리스는 호루스에게 왕위를 빼앗긴 폐왕이다.

전쟁을 시작할 권한조차 없었다. 아레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아직 왕태자. 전쟁을 벌일 권한은 없다.

“네 동생 중에 헤르메스가 있지 않나? 그의 힘이라면 오디슨 놈을 위그드라실 밖으로 빼내는 것도…….”

-헤르메스? 그 자식을 믿자, 이건가?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순간, 아바마마께 바로 일러바칠 놈이다!

오시리스가 쯧- 혀를 찼다.

복수를 위해 손잡아야 할 신이지만, 왕태자의 자리에 올라 집안 단속조차 못 하는 한심한 놈이었다.

그때, 아레스가 묘한 소문을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면, 프레이야와 헬이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는데.

써먹을 수 있는 소문이었다.

* * *

“흐으으읍……!”

팔뚝에 핏줄이 불거진다. 지독한 무게에 땀이 뻘뻘 흘렀다.

그럼에도 나는 천천히 움직였다.

이라호드가 소리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해요!”

이를 악물고 천천히 움직였다.

관절이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팔뿐만 아니라, 어깨, 그리고 허리와 옆구리도 지독하게 당겼다.

하지만 나는 오만상을 쓰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창을 내지른다. 속도는 오히려 예전보다 빨랐다.

30초에 1회 찌르기.

처음 이라호드와 훈련할 때와 비슷한 속도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 내가 들고 있는 목창이었다.

“크윽……!”

쿵!

신음과 함께 목창을 떨어뜨렸다.

정해진 50회를 모두 채운 뒤라,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너무 용을 썼는지, 머리가 핑핑 돈다.

“수고했어요, 오디슨.”

“아아, 무게가 느니, 죽을 것 같군.”

“저도 저 무게는 들 수가 없으니까요.”

이라호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수건을 건넸다.

나는 그 수건을 받아 이마와 목덜미의 땀을 닦아 냈다.

“그런데…….”

바닥에 내던지 목창을 보며 눈살을 구겼다.

내가 떨어뜨린 목창에는 무게추가 수두룩하게 매달려 있었다.

대충 50kg이 넘는 무게를 달고 천천히 움직이려니, 죽을 지경이었다.

“내 힘도 많이 늘어난 것 아닌가?”

“그럴걸요? 500kg짜리 아령도 그렇게까지 안 힘들지 않아요?”

“흐음…….”

턱을 쓰다듬었다. 까끌까끌했다.

아침마다 면도하는 일은 귀찮았다. 그래서 난 크레네가 없으면 면도는 잘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라호드에게 의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창 자루는 가벼워지는 느낌이 아니지? 언제나 묵직한 느낌이야.”

그게 의문이었다.

긴눙가가프에서 얻어 온 창 자루는 언제나 묵직했다.

얻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힘은 상당히 늘었으나, 창을 내지르는 횟수는 그 이상 늘릴 수가 없었다.

대략 100회. 따로 체력을 채우지 않는다면, 그게 한계점이었다.

이라호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오디슨 수준에 맞춰 원래 무게에 가까워지나 보죠.”

“원래 무게라고?”

“네, 대충 8톤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8톤? 화들짝 놀라 창 자루를 바라보았다.

그런 무식한 무게를 지닌 자루라고? 그런데 왜 난 몰랐지?

아니, 그보다 이라호드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거지?

눈살을 좁혔다.

“커튼 봉이라 한 것도 있고… 이라호드. 너는 저 자루가 뭐 하는 물건인지 아는 건가?”

“아, 그야… 음.”

이라호드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녀가 찬란한 금발을 쓸어 올리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게 뭔지 알려 주면 오디슨이 곤란해질 수도 있어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그런 말도 있잖아요?”

그런 말?

이라호드가 웃으며 말했다.

“모르는 게 약이다.”

흐음, 글쎄.

나는 그리 동의하지 않는데.

이라호드가 손을 내밀었다.

“수건 줘요. 물에 적신 시원한 걸로 바꿔 줄 테니.”

나는 그녀의 손에 수건을 얹고 그녀를 끌어당겼다.

이라호드가 ‘어어?’ 하고 내게 딸려왔다.

“오디슨?”

“이라호드, 나는 궁금하다.”

내 무릎 위에 엉거주춤하게 앉은 이라호드가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어, 으… 그게, 좀 가깝지 않아요?”

상관없다.

나는 그녀의 귓가에 가까이 입을 가져다 댔다.

이라호드가 흠칫 몸을 떨었다.

“이라호드, 알려 주지 않겠나?”

“어, 으… 그, 그게 그러니까…….”

이라호드의 귓불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한 번 더 들쑤셔 보자.

“이라호드.”

끈적하게 그녀를 불렀다.

이라호드가 부르르 떨었고, 나는 살짝 혀를 내밀어 그 귀를…….

“까악까악! 오디슨, 네게 배달이 왔닥!”

“꺄아아아악!”

화들짝, 이라호드가 나를 밀치고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대로 뒤로 굴렀다.

과연 발키리인가? 전의 터미널에서 써먹은 방법이 잘 안 통했다.

하계에 있을 적 토르손과 다른 전사들이 말하기를.

‘대장이 가까이 다가가서 귀에 숨 좀 불어넣으면서 알려 달라 하면 대부분 알려 줄걸요?

라고 했다.

그런 방법으로 쳐들어갈 곳의 처녀에게 정보를 캐낸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실패다. 하필이면 이럴 때 들어온 메르키 때문에.

원망스러운 눈으로 메르키를 보자, 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으응? 뭐, 뭐냑?”

멍청하게 고갯짓하는 녀석을 보자니, 화낼 마음도 사라졌다.

나 때문에 고생하고도, 숙박이 아니라면 투사의 권리라며 훈련장을 빌려주는 맘씨 착한 까마귀다.

쓰게 웃었다.

“아니, 그보다 배달이라면……?”

“드베르그 장인 조합에서 온 배달이닷.”

오! 탄성을 내지르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르키가 내게 포장된 상자 하나를 건넸다. 나는 곧장 상자를 뜯었다.

“완성됐나 보군!”

“까악, 다행이닥! 이제 전처럼 눈이 괴로운 꼴은 안 당하겠닷!”

메르키의 말에 눈살을 구겼다.

“내 꼴이 그리 엉망이었나?”

“그야 물론이닥!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랏! 자비의 신이라지만, 그렇게까지 자비로워 보일 필요는 없닥!”

자비의 신과 황금 장신구가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다.

사령금을 그냥 가공해서 악령을 불러내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사령금이 필요했다. 돈을 털어서 사령금을 사 모으긴 했지만, 반지와 마찬가지로 효율 높게 압축하는 데는 또 돈이 들었다.

이번 승격시험의 승리로 그 금액을 마련했다.

팔찌를 꼈다.

“좋군.”

“까악, 여기 편지도 있닥!”

내가 마구 뜯어 버린 상자에서 메르키가 편지를 발견했다.

편지를 뜯어 읽어 내렸다. 내용은 단순했다.

똑같은 물건을 헬께도 보냈다는 것.

“좋군.”

그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헬께서 기뻐하실까? 흐뭇한 마음에 웃고 있자니, 깜짝 놀랐던 이라호드가 날 불렀다.

“오디슨!”

“아… 하던 일을 계속할까?”

“그,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뭐, 뭘 계속하겠단 거예요!”

어깨를 으쓱였다.

“훈련 말이다.”

“아…….”

이라호드의 얼굴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눈살을 찌푸려지고,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다. 삐친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후우- 이라호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보다 상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상부라면?”

“투기장 쪽이에요.”

이라호드의 말에 고개를 갸웃할 때, 메르키가 깍깍 웃었다.

“까악! 세력전 이야기인각!”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라호드가 이럴 줄 알았다는 투로 이마를 짚었다.

“…TV에서 그렇게 떠들어 대는데…….”

그녀가 한탄하며 설명했다.

그 설명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승리할 경우 얻게 될 보상에 눈을 번쩍 떴다.

“정말, 그걸?”

놀라 묻자, 이라호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매의 날개옷이 승리한 쪽에 제공된대요.”

매의 날개옷.

뒤집어쓰면 매로 변할 수 있다는 옷이다.

매로 변해 하늘을 나는 게 부러운 게 아니다.

매로 변할 수 있다면……?

“터미널을 통하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다.”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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