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97화 (97/208)

# 97

97화. 영웅은 운 없다 (2)

맑은 아침.

“음?”

눈을 뜬 오디슨은 잠결에 눈살을 구겼다.

움찔, 근육이 긴장했다. 저도 모르게 상체를 들었다.

‘여긴 어디? 나는 무슨……?’

불안과 당황이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으응.”

옆구리에 닿는 부드럽고 물컹한 느낌.

불안이 사라졌다.

“…흐응, 오디슨, 너무 세요. 아니이… 멈추지는 말구… 응, 으음…….”

새벽의 어슴푸레한 빛에 비친 크레네가 중얼거렸다.

잠꼬대였다.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내는 크레네는 무슨 꿈을 꾸는지 눈썹을 찌푸리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오디슨이 피식 웃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사했었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잠기운이 달아난다. 머릿속이 선명해졌다.

오디슨이 도박장에서 딴 돈은 대략 9억 크로나가량.

잭팟이 터지며 얻은 7억 7천 7백만 크로나에 더해, 그 이전에 딴 것들을 합친 금액이다. 오디슨은 그걸로 그 자리에서 빚을 갚았다.

자유의 몸이 되고도 5억 크로나가 남았다.

그리고 지금 남은 돈이…….

‘버는 건 어렵지만, 쓰는 건 금방이군.’

오디슨이 쓴웃음 지었다.

여기저기 돈을 썼다. 그리고 이 작은 집을 하나 구했다. 그랬더니 남은 돈이라고는 금화 몇 장. 빈털터리가 되었다.

다만, 아파트는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었다.

‘따지는 게 너무 많아.’

이라호드에게 아파트 생활에 대한 규칙을 들었다.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수십 가지였다.

훈련하지 말라 했고, 소음을 내지 말라 했다. 그리고 발소리를 크게 내는 것도 금지였다.

오디슨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무덤 속 관도 아니건만.’

집에서는 좀 편해도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파트라는 곳이 가장 살기 편하다는데, 어쩌겠나?

오디슨은 거액을 주고 아파트를 샀다.

사실 크레네의 말에 혹했다.

‘지금은 이 값이지만, 몇 년만 지나면 이 두 배는 될걸요? 그때 팔고 더 넓은 데로 가면 되잖아요.’

오디슨은 생각도 않고 있던 부동산 투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두 배.’

결국 참는 수밖에 없었다.

오디슨은 크레네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며 침실을 나섰다.

냉장고를 연 오디슨은 고민 않고 고깃덩이를 집었다.

“역시, 아침은 고기지.”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먹음직스러운 고기. 이그나르가 이사 선물이라며 건네준 세흐림니르 고기다.

오디슨은 여유롭게 요리를 시작했다.

전사들은 의외로 요리에 익숙하다. 전사는 행군과 야숙을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제 먹을 것을 알아서 마련하는 법을 배운다.

지금 오디슨이 하는 것도 그때 익힌 것이다.

치이익-!

고기에서 뚝뚝 기름이 떨어져 불에 닿았다. 곧 맛있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 냄새는 부엌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침실로 스며들었다.

크레네는 코를 킁킁댔다.

“으… 오디슨?”

잠에서 깨자마자 오디슨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치이익- 맛있는 소리. 아직 잠이 덜 깬 크레네의 입에 침이 고였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오디슨? 아침 해요? 아침이라면 내가 해 줘도 되는데…….”

크레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오디슨이 씩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좋은 아침이다. 잘 잤나?”

크레네는 요리하는 오디슨을 보고 넋을 놓았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그가 너무 멋져서?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꺄아아아악!”

크레네가 비명을 내질렀다.

오디슨이 눈을 끔뻑였다.

“뭐, 뭐지? 설마, 아침에는 고기가 싫은 건가?”

“아니,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오디슨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럼 뭐가 문제지?

‘…생소한 건가?’

크레네는 올림포스 출신 망명자다. 낯설 수도 있다.

오디슨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 이건 내가 전사장에게 배운…….”

“아니, 아니! 그, 그 불! 불불불!”

“음? 불이 어쨌다는 거지?”

오디슨이 눈썹을 찡그렸다.

크레네는 오디슨에게 상식을 요구하는 게 이상한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라호드가 온갖 자잘한 이야기를 그에게 할 때만 해도, ‘오디슨이 뭐 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야!’

지금 생각하면 오디슨은 꼬마들보다 더 상식이 없었다.

“아파트 거실에 모닥불을 피우면 안 돼요!”

크레네가 꽥 소리를 질렀다.

오디슨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모닥불도 못 피우는 건가? 그러면 겨울에는 대체 어찌 지내는 거지?”

“그야 보일러를… 아니! 오디슨, 제가 가스레인지 쓰는 거 봤잖아요! 그런데, 왜 모닥불을 피웠어요?”

오디슨이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그게, 나는 마력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마법 물품은 쓸 수가 없지.”

“…저건 전기로 돌아가는… 후, 일단 불부터 끄죠.”

“하지만 요리가…….”

“당장! 불부터 꺼요!”

크레네가 버럭 소리쳤다. 그에 오디슨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때, 쿵쿵쿵!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경비입니다! 옆집에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난다고 신고가 들어와서요! 혹시 불난 거 아닙니까?”

아파트 경비가 찾아왔다.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불은 무슨. 그냥 모닥불을 피웠다고 말해 줘야겠군.”

“아뇨… 제가 말할게요. 오디슨은 일단 여기 불부터 꺼요.”

오디슨을 내보내면 일이 더 커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오늘은 오디슨에게 중요한 일이 있지 않던가?

“…그것보다 오디슨, 오늘 컨디션은 괜찮아요? 혹시 어디가 아프다거나, 피곤하다거나 하진 않구요?”

오디슨이 씩 웃었다.

“걱정할 거 없다. 어젯밤을 세 번 더 반복해도 멀쩡할 테니.”

“…세 번 반복하면 열두 번…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닌데…….”

크레네가 푸- 한숨을 쉬고 고개를 푹 숙였다.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오디슨의 말 때문에 뜨거웠던 간밤이 떠올랐다.

쿵쿵쿵!

다시 경비가 문을 두드린다.

크레네가 호다닥 현관으로 가며 생각했다.

‘오디슨은 혼자 두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내가 꼭 붙어 있는 수밖에! 낮이든 밤이든!’

문득, 크레네가 몸을 떨었다.

“아니, 이건 꼭 밤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하지만 몸은 솔직했다.

* * *

‘피 맛보는’ 이바르 라그나르손.

그는 위대한 바이킹 영웅이다. 전설적인 바이킹 왕, '털 반바지' 라그나르의 아들로 유명한 자. 하지만 아버지를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것도 지금은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제길…….”

이바르는 대기실에서 홀로 욕을 내뱉었다.

오딘의 후계자 선정 방식 선언 이후, Top100은 난장판이 되었다. 모두가 아스가르드의 다음 왕좌를 가지고 싶어 했다.

그건 신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신들이 갑자기 끼어드는 건 반칙이지, 젠장.”

이바르가 고개를 저었다.

비다르 클랜의 클랜장이었던 그는 T100의 투사였으나, 신들이 끼어든 투기장 리그에서 버티지 못했다.

결과는 강등.

‘두고 보자, 개자식들.’

이바르는 분노했다.

실력에서 밀린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주변의 웅성거림이 짜증 났다.

‘‘그 신’의 열렬한 추종자였지?’

‘아, ‘그 신’? 오디슨한테 꽥- 한?’

‘맞아, 지원 없어지니까 단번에 강등되는 거 봐. 원래부터 지원이 없었으면 T100에서 버틸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어.’

‘그건 그렇지. ‘그 신’도 돈만 잔뜩 처바르고 나왔다가 탈탈 털렸잖아. 오딘의 아들입네- 설치다가 그 꼴이 났으니, 뭐.’

이바르는 스스로의 힘으로 T100에 올랐다.

그 이후, 비다르의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내가 비다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으드득!’

이바르가 이를 갈았다.

그는 아버지인 라그나르의 복수를 하고자 대이교군(Great Heathen Army)을 이끈 유능한 전사였다.

지금 왕국 땅에 있는 옛 나라 셋(노섬브리아, 머시아, 동앵글리아)을 멸망시킨 군의 총사령관이 실력이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옛 업적조차도 폄하되기 일쑤였다.

‘대이교군? 그건 이바르가 잘한 게 아니지. 그냥 숫자가 많아서 쓸고 다닌 거야.’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야유하는 관중의 목을 꺾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참고 또 참으면 기회가 있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바르의 눈이 대기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며칠 전 신문으로 향했다.

<니다벨리르 RF 호텔 카지노, 잭팟의 주인공은 오디슨?>

(사진/ 하계불가침법 위반으로 구속될 당시, 오디슨)

[니다벨리르 RF 호텔 카지노가 얼마 전 잭팟을 터트린 데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잭팟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프레키 오디슨. 오디슨으로 잘 알려진 이 신은 자비를 담당하고 있으며…….]

짜증에 눈살을 구겼다.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바르 선수, 경기 준비해 주세요.”

이바르는 크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 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새빨간 피가 들어 있는 유리병.

이바르는 유리병을 기울여 피를 쏟았다.

쪼르르륵-

피가 칼에 타고 흐른다. 그리고 사라졌다.

칼이 피를 머금었다.

“…오랜만에 피 맛을 보겠구나.”

히죽, 이바르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 맛보는’ 이바르. 그에게 붙은 별명은 본래 ‘약골’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성인이 되기 전에 그를 낳았기에 약골의 운명을 타고났었다.

그 운명을 뒤틀고자, 싸움이 있을 때마다 괴상한 짓을 했다. 상대의 피를 맛보는 짓. 적에게 공포를 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비다르의 지원을 받으며, 조금 달라졌다.

“…피바라기야, 오늘은 특식이다.”

비다르에게 받은 명품 바이킹소드, 피바라기.

3억 3천만 크로나짜리 물건이다. 이바르가 비다르 클랜의 그 귀찮은 업무를 처리하게 된 데에는 이 칼의 역할이 컸다.

지원으로 성장했니 뭐니, 말이 많은 것 역시 이 칼의 역할이 컸다.

이바르도 몇 번이나 생각했다.

‘피바라기를 포기하면 날 모욕하는 놈들도 사라질 텐데!’

하지만.

‘역시! 포기하기엔 너무나도 좋은 칼이다.’

이바르는 피바라기를 들고서 경기장으로 나섰다.

“오디슨의 승격 시험을 망쳐 놓는다면, 전화위복이 되겠지.”

이바르의 얼굴에 가득한 흉터들이 꿈틀댔다.

섬뜩한 웃음이었다.

* * *

와아아아아!

경기장과 대기실을 잇는 통로.

장내 해설은 이바르에 대한 설명으로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내가 입장할 순서가 되었다.

“오디슨, 다치지 말고 이겨요.”

크레네가 하는 무리한 부탁에 그저 웃었다.

그 곁에 이라호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디슨… 이바르는 세요. T100에서 떨어진 것도, 호사가들은 비다르의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니 뭐니 하지만… 신들이 투기장 리그에 뛰어든 탓이거든요. 너무 방심하지는 말아요.”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이바르가 얼마나 센지는 차라리 내가 더 잘 안다.

그와 부딪혀 본 적이 있으니까.

비다르 클랜의 본부를 습격했을 때, 내가 느낀 건 압도적인 격차였다.

그렇기에 기대된다.

“…내가 얼마나 세졌는지, 확인할 시간이군.”

그 당시에는 이바르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호승심이 들끓었다.

“후우.”

크게 숨을 들이쉬어 흥분을 가라앉혔다.

해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러분! 환영해 주십시오! 온갖 사건사고를 끌고 다니는 투사의 등장입니다!]

[프- 레- 키, 오- 디- 슨!]

철창이 열렸다. 나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절그렁, 절그렁- 쇳소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통로를 걸었다. 통로와 대비되는 밝은 경기장. 눈이 부실 정도다.

“…발할라가 날 기다리는구나.”

싸움이 날 기다린다.

흉터 가득한, 전설 속 전사가 날 기다린다.

“흐음.”

뜨거운 콧김을 뿜었다. 자꾸 치솟는 흥분을 내뱉었다.

[투기장은 사실 오랜만이거든요, 오디슨 선수. 하지만 어째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안 들죠?]

[하하, 뭐 언제나 뉴스에 나오시는 분 아닙니까? 투기장에서는 해설의 편의를 위해 신성을 가진 분들께도 존대하지 않는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실, 오디슨 선수는 그걸 신경도 안 쓰겠지만요.]

해설의 목소리에 씩 웃었다.

그렇다. 내 명예를 더럽히지만 않는다면야.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신경 쓸 게 무어더냐.

난 자잘한 일에 연연할 만큼, 쪼잔하진 않다.

[네, 그런 점도 매력이죠. 이 선수, 바뀔 거 같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괜히 별명 중에 ‘변치 않는 자’가 있는 게 아니죠? 얼마 전 니다벨리르에서 거액을 땄지만, 곧장 싸움을 향해 뛰어든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네, 그 거액으로 아담한 아파트를 한 채 구입하셨다고 하던데…….]

[사실 그 거액이면 좀 더 큰 곳으로 갈 수도 있지만, 오디슨 선수는 정말 변치 않았습니다! 전 그분이 사치를 부리는 게 상상이 안 될 정도거든요?]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뜨거운 햇살에 눈이 부셨다.

그래도 망설이지 않았다. 부옇게 보이는 이바르를 향해 당당히 걸었다.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 아? 으응?”

“어, 어음… 뭐지?”

귓가를 울리던 함성이 한순간 뚝 멎었다.

[어, 음…….]

[그게, 변치 않을 거 같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만… 하, 하하하.]

[아니, 뭐… 변할 수도 있기야 하죠?]

뭐가 문제지? 고개를 갸웃했다. 쩔렁쩔렁, 쇳소리가 났다.

이바르가 험상궂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리고 턱짓으로 날 가리켰다.

“도박장에서 딴 돈으로 볼썽사나운 졸부가 되었군!”

졸부라?

슬쩍 손을 들었다. 짤랑짤랑, 쇳소리가 난다.

내 손에 가득한 금반지와 여러 개가 겹친 팔찌 탓인가?

아니, 그뿐이 아니다. 내 목에도 금목걸이가 번쩍이고 있다.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볼썽사나운 졸부라. 난 무의미하게 황금으로 치장하는 꼴을 좋아하진 않는데.”

“허! 그 꼴을 하고 말인가? 운이 좋아 성공한 놈! 네놈의 운도 여기에서 끝이다! 전사가 졸부 같은 꼴이라니!”

이바르가 날 비난했다.

전사 운운이 좀 많은데? 관중 중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야비한 놈.

“관중들의 인기를 끌려고 날 이용하는군.”

그나저나 운이 좋다고?

턱을 쓰다듬었다. 크레네가 면도해 준 덕에 반들반들했다.

“…운이라.”

내가 운이 좋은가?

아니, 난 운이 없다. 운이 좋다는 건, 무난한 인생을 산다는 의미다.

부유한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는 건 운이 좋은 건가? 그 보물에 눈먼 이들이 덤벼들 텐데, 운이 좋을 리가.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시골의 농부가 운이 좋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그곳에 마을이 있는지도 몰라 침략당하지 않는 인생.

그런 인생이 운이 좋은 것이다.

싸울 필요도, 인생의 굴곡도 없는 삶.

운이 좋은 건 그런 삶이다. 언제나 목숨과 재산, 그리고 가족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전사는 가장 운 없는 인생이리라.

“그 우스꽝스러운 꼴처럼, 너도 우스꽝스럽게 바닥을 구르게 해 주지!”

이바르가 칼을 번쩍 치켜들고 덤벼들었다.

피식 웃었다.

“난 운이 좋지 않다.”

“개소리! 운이 좋아 신성을 얻고, 운이 좋아 부자가 된 놈이!”

운이 좋다면 느릅나무 부족이 공격당하지 않았을 거다. 운이 좋다면 나는 빚쟁이가 되지 않았을 거다.

불행이 있어야, 행운이 있다.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토론하려고 이 자리에 선 건 아니다.

창을 들어 올렸다.

“그래, 운이 좋지 않다는 말은 취소하지. 그저 나는…….”

“흐아아아앗!”

“운이 필요가 없다.”

번쩍, 황금 장신구가 우우웅- 소리를 냈다.

이바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했지 않나? 무의미한 황금 장신구는 아니라고.”

몇억이나 쏟아부어 모은 사령금이다.

-크르르릉!

한층 더 흉포해진 악령의 목소리가 울렸다.

왼손에서 검은 그림자가 치솟았다. 이바르가 이를 악물었다.

그가 버럭 소리친다.

“눈속임으로 허세를 부리려는 건가! 죽어라!”

쐐애애액!

선홍빛 광택의 바이킹소드.

서슬이 붉은 그 칼이 짓쳐 들었다.

채앵!

그 칼날이 내 살갗을 가르는 일은 없었다.

악령이 검은 혀를 날름거렸다. 이 녀석이 막아 냈다.

이바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무슨…….”

“좋은 무기를 가졌다고 비난하진 마라.”

악령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좋은 무기를 탐내는 것도 전사의 본능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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