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93화. 영웅은 공백 없다 (1)
하계가 공포의 마왕을 떠올리며 벌벌 떨 때.
신계 연맹은 시끌벅적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오디슨 처벌 반대 서명! 참가 부탁드려요!]+999
[응, 신들의 80%는 오디슨 지지해~]+3
[솔직히 하계불가침 이거 오바 아니냐?]+871
오디슨과 아레스의 처벌 문제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언제나 하계불가침법의 폐해를 꼬집으며 끝났다. 하계불가침법이 필요하다 여기는 사람들도 감정적인 문제가 되면 입을 다물었다.
[근시안으로 법에 대해서 보면 안 되지;]+999
[같은 민족 다 뒤져도 걍 보고 있어야 되나?]+999
모든 사람이 그에 대해 말하니, 당연히 방송에서도 그에 대해 다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하계불가침법, 이대로 두어야 할까요? 하계불가침법은 신들의 개입이 클수록 하계의 신도들이 반발하고, 신도 간의 문제가 신들 간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논의에서 시작된…….]
하계불가침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지는 방송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방송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처사죠. 오디슨 님이 뭘 잘못했습니까? 제국이 선전포고했다는 건 자기들이 얻어맞고 멸망할 각오가 있단 소립니다. 게다가 올림포스에 피해가 갔습니까? 아니죠! 오히려 올림포스 신성력 지표, 오드피(ODPI)는 올랐어요. 신들의 권위가 제대로 섰단 말입니다!]
[크흠, 레이프 에릭손 기자? 지나치게 흥분한 게…….]
[뭡니까? 쿨병이세요? 이 일에 흥분하지 않는 게 비정상입니다!]
특히나 오디슨의 열렬한 추종자로 유명한 레이프 에릭손. 그는 온갖 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그리고 토론 분위기를 와장창 깨부쉈다.
그 덕에 커뮤니티에 레이프 에릭손에 대한 글도 꽤 올라왔다.
[‘그 기자’ 어록.jpg]+796
[레이프 에릭손 저 새끼 골때리넼ㅋㅋ]+82
그리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행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발할라에서는 오디슨의 팬들이 모여 거리시위를 벌였다.
“정의 구현한 오디슨 님을 석방하라!”
“석방하라!”
“신도를 지키지 못하는 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
“무슨 의미가 있냐!”
그 시위의 주동자는 메이니르코나.
그녀는 어떤 사명감을 느꼈다. 오디슨이 복수하겠다 했을 때, 큰 기대는 안 했다. 그런 소리를 하던 사람은 많았으니까.
그녀와 친해지려던 이들은 모두 제국 욕을 해 댔다.
하지만 오디슨은 달랐다.
‘그분께서는 정말로 제국을 무너뜨리셨어.’
뉴스로 소식을 전해 듣고, 메이니르코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녀는 오디슨에게 푹 빠졌다.
그저 잘생긴 투사를 따르는 수준이 아니다.
진심으로 탄복했다. 경외를 느꼈다.
오딘과 티르, 토르.
아스가르드 3주신도 못 해낸 것을 해낸 신.
메이니르코나는 오디슨을 진심으로 섬기기 시작했다. 그런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질끈, 머리띠를 동여맨 메이니르코나가 소리쳤다.
“영웅을 핍박하지 마라!”
“영웅을 핍박하지 마라!”
그 뒤를 따르는 복창 소리가 발할라를 쩌렁쩌렁 울렸다.
거리시위는 메이니르코나 혼자 시작했다. 곧 10명이 모였고, 그게 100명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500명이 넘어가는 인원이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시위대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올림포스, 오디슨 처벌치 않기로 합의!]+999
[아스가르드, 올림포스 합의 대가는?]+999
오디슨도 연맹 치안청 유치장에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 * *
손이 파르르 떨린다.
취한 자를 제압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취한 신을 제압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광신으로 비튼 법칙은 그 범위가 커질수록 더 큰 대가를 요구한다.
그 탓에 연맹에서 날 체포하러 왔을 때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이라호드가 말하기를,
‘저항했으면 죄목이 추가됐을걸요. 안 한 게 다행이에요.’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떨리는 손을 탁자 아래로 감췄다.
단단한 유리창 너머, 이라호드에게 되물었다.
“…헬께서?”
이라호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연한 표정의 그녀를 보자니, 쓴웃음이 나왔다.
“헬께서 이전 덴 마스크 지방을 침범했던 군단 절반을 넘기기로 하셨어요. 합의금 명목으로요. 그것보다 오디슨, 몸은 좀 괜찮아요?”
역시 알고 있었나?
떨리는 손을 감춘다 한들 초췌한 안색을 감추진 못하겠지. 나는 마른세수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내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말을 돌렸다.
“…또 헬께 신세를 졌군.”
군단의 영혼 절반을 넘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셨으리라.
신계라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제는 대충 안다.
황금이 중하다 한들 영혼보다는 덜했다.
그것도 순수한 말은 아니었지만.
“후우.”
영혼이 많이 모인다는 것은 신계의 힘이 세진다는 뜻이다.
신계가 강력하면? 자연히 황금은 뒤따른다.
하계에서도 잘 싸우는 전사들은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바치는 데다, 필요한 게 있으면 빼앗을 수 있으니까.
이라호드가 날 위로했다.
“헬께서는 흔쾌히 내놓으셨다고 해요. 원래부터 뭐… 그걸로 꽤 논쟁이 있었으니까요. 헬께서 말씀하시기를, 일 하나 덜었다고 하시더라구요.”
내가 신경 쓸까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리라.
쌉싸름한 맛을 느끼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도 신세는 신세지. 다음에 보답할 길이 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인 이라호드에게 물었다.
“다들 잘 있나? 아니, 합의됐다면 이제 곧 나갈 수 있겠군.”
내 말에 이라호드가 고개를 저었다.
뭐지? 합의와 관계없이 여기 갇혀 있어야 한다는 건가?
이라호드가 말했다.
“하계불가침법에 대한 처벌은 있을 거예요. 가장 강한 처벌을 주장할 올림포스 측이 포기했으니, 솜방망이 처벌이겠지만요. 그 처벌이 결정될 때까지는 여기 있어야 해요.”
“…처벌이라.”
날 괴롭히는 영혼의 고통. 그를 잠재우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싸워야 하건만. 더 참아야 하는가?
“으으음…….”
절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막고자, 눈썹을 찌푸렸다.
이라호드가 달래듯 말했다.
“아마 곧 나올 수 있을 거예요. 대충… 어?”
면회실의 문이 열리고, 이전에 봤던 선녀가 이라호드에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이라호드가 그를 받아 펼친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명령서예요!”
명령서? 고개를 갸웃하자, 이라호드가 그 서류를 내게 보여 줬다.
눈살을 구기며 글귀를 읽어 내려갔다.
“봉사활동? 민원 5건 처리?”
“네, 다행이에요. 최대한 적게 나온 거 같네요, 정말.”
봉사활동이라니, 너무 처벌이 가벼운 거 아닌가?
나야 좋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이었다.
* * *
하계불가침으로 처벌을 받은 건 오디슨 혼자만이 아니었다.
아프로디테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에요, 여보.”
“까드득, 빌어먹을… 민원처리 7건? 나, 전쟁의 신 아레스를 뭘로 보고 그딴 천한 일을……!”
아레스는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짜증과 분노로 머리에 피가 쏠렸다. 눈앞이 핑 돌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아프로디테가 잔소리했다.
“여보, 만약에 아스가르드에서 오디슨을 버리는 셈 치고 처벌을 주장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후우.”
아레스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로디테가 한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계불가침법은 상당히 엄격한 형이 집행되는 범죄였다.
한 차원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범죄다.
그러다 보니 무저갱에 처박히거나 신성 폐기형까지 당할 수 있다.
아레스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제기랄. 그렇다고 해도, 내가 잡일꾼 노릇이나 해야 한다니.”
신계 연맹의 민원 업무는 정말 이도 저도 아닌 일이었다.
엄청나게 힘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굉장히 쉽지도 않은 일.
강력한 신의 힘으로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잡일이다.
아레스가 짜증 난 것이 바로 그 점이다.
‘그까짓 것도 해결하지 못해 민원이라니. 멍청한 자식들.’
물론, 각 신계의 치안을 담당하는 이들로서는 상당한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렇다고 각 신계 신들에게 처리를 요구하기엔 비용이 너무 커지는 일.
보통 강력한 신들은 제각기 신계를 굴리기 위해 애쓴다. 그 일을 내팽개치고 덜 중요한 일을 하러 갈 수도 없지 않은가?
어쨌거나 연맹의 명령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보다 오디슨 그놈의 처벌은 어떻게 되었지?”
아레스가 물었다.
아프로디테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시선을 피했다.
아레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아무리 합의를 봤다고 해도, 놈이 무죄방면 될 여지는 없을 텐데?”
“그게…….”
아프로디테가 한숨과 함께 오디슨의 처벌에 대해 말했다.
아레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야! 왜 그 새끼가 나보다 형이 적게 나온 거지?”
“…후우, 당신 술 마셨잖아요.”
아레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 분명 심신미약이라…….”
“…고의로 심신미약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었다면 감형의 근거가 아니라고… 그 탓에 괘씸죄라며 가형되었어요.”
아레스가 멍하니 아프로디테를 바라보았다.
아프로디테는 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레스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오디슨, 그 개 같은 자식이……!”
마르스 신앙의 중심지인 제국이 붕괴했다.
안 그래도 신성이 떨어진 와중이다. 그런데 처벌까지 오디슨보다 더 많이 받는다? 아레스의 속에서 천불이 피어올랐다.
‘복수하겠다!’
하지만 그 다짐은 좀 더 뒤로 밀렸다.
“일단 민원이나 처리해요. 각 민원 처리 사이에 3개월 이상 기간을 두면 추가로 처벌될 수 있다니까.”
“후우…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그러게, 누가 그딴 짓을 하랬어요?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됐잖아요! 그럼 당신이 그리 싫어하는 오디슨만 골치 아프게 됐을 텐데. 쯧.”
아프로디테의 싸늘한 눈빛에 아레스가 입술을 삐죽였다.
신이 모두 정답을 선택한다면, 피할 수 없는 멸망을 막고자 발버둥 치지도 않으리라.
‘누가 그걸 모르냐고! 눈앞에서 당하고 있는 걸 어떻게 그냥 놔둬? 젠장맞을…….’
신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지녔다.
그래서 그렇다.
옳은 일이 뭔지는 알아도 그를 행하지는 못한다.
‘다이어트해야지! …내일부터. 오늘은 치킨이닭!’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제 잘못을 남에게 돌린다.
아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제길… 두고 보자, 오디슨!”
아레스의 복수심이 더 깊어졌다.
* * *
풀려났다.
이라호드는 몸 상태가 안 좋으니 며칠 쉬라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 몸 상태를 고치려면 일단 싸워야 한다. 싸워 이겨야 나아질 상태다.
식은땀이 흐른다. 잠깐 방심하면 다리가 풀릴 것 같다.
하지만 당당하게 걸었다.
“그래도 마침 발할라에서 들어온 민원이 있어 다행이군.”
“…각 민원 해결은 3개월 이내에만 처리하면 되는데 또 곧장… 후우.”
이라호드가 한숨 짓는다.
느릿느릿하게, 15개월에 걸쳐 해결하는 게 좋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차라리 잘되지 않았는가?
“…투기장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으니까.”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말이 많더라구요. 아마 싸움 상대가 얼마 동안 안 나타나면 승격하게 되는 규칙도 고려하고 있나 봐요.”
나로서는 좋은 이야기지만.
“그러면 남들이 꺼리는 방식으로 싸우는, 예전 그 요술쟁이 같은 놈이 승격하게 되는 거 아닌가?”
“포르디에르 말이죠?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비슷한 수준에서는 이길 상대가 없으니… 기피 대상인 것도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죠. 뭐, 투기장 쪽에서도 나름 고민해서 규칙을 만들겠죠. 아까 그 이야기에 더해서 승격 시험을 치러야 한다든가.”
승격 시험이라.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참여하고 있는 수준 이상의 시험을 처리하면 바로 승격. 그런 식이면 내 승격도 훨씬 빨랐을 테지.
“그보다 정말 그걸 처리할 거예요?”
“뭐, 이야기는 들어 보는 게 맞겠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민원을 살폈다.
<니다벨리르 철광산 트롤 처치.>
발키리들이 해결하기 힘들다며 신계 연맹 쪽으로 돌린 민원이다.
이런 식으로 민원 해결을 조건으로 걸면서 연맹법을 어긴 이들을 공익을 위해 쓴다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뭐…….
“용병이 할 일인 것 같지만.”
“맞아요. 대부분 민원은 용병들이 처리해요.”
그런가?
고개를 갸웃했다.
“신들이 처리하기에는 약간 소소하고, 발키리들이 처리하는 것도 비용적인 문제가 있는 일들 있잖아요. 찌꺼기 건이 대부분 그래요. 언제나 처리해야 하지만 일손이 부족해서, ‘사냥꾼’이라는 찌꺼기 전문 처리 용병이 생겨난 거죠.”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마음에 안 든다.
“…이놈의 신계는 죄다 황금이 얼마나 드느냐로 계산하는군.”
“어쩔 수 없죠. 그만큼 편한 계산이 없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깔끔한 건물로 들어섰다. 공방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이 민원을 넣은 드베르그 장인 조합의 건물이다. 모든 드베르그 장인들은 여기에 소속이다.
언제 봐도 적응되지 않는 여성 드베르그. 그녀가 나와 이라호드를 반겼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무리 봐도 꼬마 여자애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녀의 안내를 받아 조합장을 만났다.
“오! 오디슨 님 아니시오? 뉴스에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걸 많이 들었건만…….”
드베르그 장인 조합장은 내 머릿속 ‘드베르그’를 그대로 꺼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땅딸막한 키에 다부진 체형, 그리고 검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꼴이었다. 그가 단단하게 굳은살 박인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에게 악수하며 물었다.
“민원 건 때문에 왔다.”
“…으음, 보던 그대로 화끈하신 성격이구려. 뭐, 이야기를 길게 할 것도 없지. 민원에 적어 둔 보상 때문에 오신 거 아니오?”
고개를 끄덕였다.
봉사활동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보상을 못 받을 뿐이다. 추가 보상을 제시하는 건 받아도 된다고.
“그 빌어먹을 자식들 때문에 가장 큰 철광산 하나가 거의 못 쓸 지경이 되었다오. 그래서 요즘 철값이 완전히 미쳐 날뛰어, 아주. 어쨌든! 그런 놈을 처리하는 데 보상을 아낄 수야 없지. 어디 보자… 흐음.”
드베르그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알겠다는 듯 끄덕이며 제안했다.
“갑옷을 만들어 주지.”
거절을 생각도 하지 않는 듯한 당당한 태도다.
갑옷이라? 있으면 좋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다지 필요 없는데.”
“어… 그, 그렇소? 갑옷이 대, 대체 왜 필요가 없지?”
드베르그가 더듬거렸다.
상상도 못 했다는 태도다.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내가 바라는 가볍고 튼튼하면서 유연한 물건은 민원 해결 보상으로 받기엔 너무 비싸다.
“몸이 둔해지는 것도 있고,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공격들… 대부분 불길이지. 그런 것에 나는 해를 입지 않으니까.”
내 권능이 바로 그것이다.
드베르그가 으음- 침음을 흘리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내 손을 바라보았다.
“…그 반지. 보아하니, 사령금으로 만든 반지군?”
사령금? 생소한 단어에 인상을 찌푸리자, 드베르그가 히죽 웃으며 설명한다.
“사령금은 영혼이 스며든 황금이지. 마법력과 영혼이 뒤엉켰다는 점에서 꽤 귀한 물건이야. 영혼의 마모를 막아 주기에 피로가 덜해지고, 마법 부여도 쉬운 물건이지.”
“…그런가. 흐음.”
헬께서 해 주신 반지가 그리 귀한 것이었던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점점 커진다.
귀한 선물에 환대에 이번에는 영혼까지 올림포스에 넘기며 날 위해 주셨다. 그분께 뭔가 선물할 게 있으면 좋으련만…….
드베르그가 흐흐, 웃으며 무언가를 꺼내 놨다.
“우연찮게도 내가 사령금을 약간 가지고 있지. 그리고 사령금은 서로 공명하는 성질 덕에 여러 개를 착용할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안 그래도 <복수의 피>가 사라진 후, 싸움의 피로를 짙게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활력을 증진하는 사령금이 더 늘어난다면? 좋다.
“어떤가? 이걸로 내가 멋진 팔찌를 한 쌍 만들어 주지.”
끌리는 조건이다.
-끼이잉……!
건틀릿이 낑낑 울어 대며 검은 연기를 풀풀 뿜었다.
이 자식이 대체 왜 이러지? 눈살을 구겼다.
“…악령을 기르고 있구만? 사령금이 많이 모이면 악령이 실체화할 수 있어서 저러는 건가? 거참, 똑똑한 악령이군!”
악령이 실체화한다? 이 녀석이?
건틀릿을 쓰다듬자, 연기가 부르르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