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92화. 영웅은 망설임 없다 (3)
콰앙! 굉음이 터져 나왔다.
바닥 타일이 높게 튀어 올랐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깔렸다.
아레스가 꿀꺽 침을 삼켰다.
[죽였나?]
“아니, 여기다.”
[언제……!]
오디슨은 아레스의 어깨 위에 있었다.
그의 주먹이 날아들 때, 그 팔을 타고 뛰어올랐다. 목쿨켈피와의 싸움에서 한번 했던 일인지라, 어렵지 않았다.
‘그보다는 더 빨랐지만.’
그때와 비교하자면, 오디슨도 많이 성장했다.
오디슨이 씩 웃었다.
“그렇게 느려 터져서 어떻게 날 잡겠단 건가?”
[크으으! 이 자식!]
아레스의 석상이 몸을 흔들었다.
오디슨은 그 어깨에서 뛰어내려 거리를 달렸다.
아레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쥐새끼 같은 놈! 도망치느냐!]
쿵쿵쿵!
아레스 신상이 발을 디딜 때마다 파괴와 비명이 뒤따랐다.
“꺄아아아아아악!”
“무, 무너진다! 피해!”
수도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붉은 마왕을 잡고자 강림한 신이 오히려 수도를 때려 부수고 있었다. 그들은 대체 누굴 믿어야 할지 몰랐다.
혼란은 기회를 낳았다.
“에잇! 뭣하느냐! 당장 이 돌무더기를 치워라! 치워!”
“…흥!”
“이 노예 놈이? 채찍 맛을 보고 싶으냐!”
“채찍? 그 채찍이 대체 어딨지? 저 돌무더기 너머에? 응?”
“이, 이 자식이……!”
투실투실 살이 오른 상인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에는 그의 가족들과 노예들뿐.
노예들의 눈이 험악하게 빛났다.
“그러고 보니, 어제 내 밥에 침을 뱉었지?”
“노예? 노예라고……? 긍지 높은 푸른바다 부족의 전사인 내게 족쇄를 달았지?”
“흐흐흐, 채찍 맛은 보여 주지 못하겠지만, 주먹맛은 보여 줄 수 있겠군.”
상인이 움찔 몸을 떨었다.
“제, 제국법에 의거해 너희들은…….”
“제국법? 그 제국 수도가 이 꼴인데?”
노예들이 상인을 둘러쌌다. 상인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간다는 걸 알아챘다.
“자, 잠깐! 이 일은 차후에…….”
“노예에게 미래가 어딨나! 당장 쳐 죽이자!”
와아아아아!
노예 반란이 일어났다.
노예를 험하게 부리던 이들은 덜덜 떨었다. 치안이 불안정한 이때, 노예들의 반란을 진압할 방법이 없었다.
처음 하극상을 일으킨 이들은 오디슨을 믿고 따랐다.
“일어서라! 오딘의 아들들이여!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전사, 전사 중의 전사, 붉은 늑대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내리셨다!”
반란은 들불처럼 번졌다.
험한 대우를 받던 노예들이 주인을 때려 죽였고, 성노로 부려지던 여자들이 주인을 할퀴고 깨물었다.
그들은 자유를 부르짖었다.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
그 외침은 오디슨의 귓가에도 들렸다.
“음?”
거리를 달리던 오디슨이 자신에게 고개 숙이는 이들을 보았다.
얼굴에 룬 문자를 새긴 전사들. 그들은 삐쩍 마른 꼴로 오디슨에게 경애를 표했다.
오디슨이 씩 웃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전사들아! 일어나라! 싸워서 쟁취하라! 이 혼란이 내가 내리는 자비니라!”
그 목소리는 난리 통 속에서도 모두의 귓가를 때렸다.
노예들은 광분해 날뛰었고, 제국 시민들은 공포에 덜덜 떨었다.
아레스는 이성을 잃었다.
[오디스으으은!]
부우웅!
그가 휘두르는 주먹질에 건물이 무너졌다.
콰앙! 허공을 날아다니는 돌덩이가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켰다.
오디슨은 히죽 웃었다.
“자! 여기라면 싸울 만하겠구나!”
거대한 원형 경기장. 제국의 자랑거리인 투기장이다.
노예 검투사들이 머무르는 투기장은 철저한 감시로 가득한 곳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거대한 석상이 광분해 날뛰는데, 겨우 병사들이 이를 어찌 저지할까?
[으아아아! 죽어라, 죽어!]
쾅쾅쾅!
아레스의 주먹질이 오디슨을 노리고 떨어졌다.
오디슨은 그 주먹을 요리조리 피하며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빈틈은 많지 않았다. 오디슨이 피할 곳이 점점 줄었다.
[크하하하! 끝이다, 끝!]
콰아아앙!
오디슨을 궁지에 몰았다 여긴 아레스. 전력을 다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오디슨은 그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큰 공격에 자연스레 뒤따르는 경직. 오디슨은 날다람쥐처럼 아레스 쪽으로 굴러 공격을 피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발목.
“흐아아앗!”
카아앙!
구르는 힘을 그대로 전달하는 찌르기!
[으아아아! 이 자식이!]
“젠장할, 돌덩어리라 피를 흘리지도 않는군.”
오디슨이 짜증을 부렸다.
피와 살로 이뤄지지 않은 괴물이다. 찌르기로는 그저 구멍 하나를 남길 뿐. 아누비스의 낫으로 만든 창날은 너무 날카로웠다.
아레스를 저지하려면 부수는 수밖에 없다.
[벌레 같은 놈!]
쾅쾅쾅!
마구 떨어지는 발바닥.
바닥이 우르릉- 지진처럼 흔들렸다.
오디슨은 공격을 포기하고 도망쳤다. 투기장 안으로.
아레스는 좁은 입구로 들어선 오디슨을 비웃었다.
[멍청한 놈! 죽어라!]
콰앙! 투기장을 걷어찼다.
쩌적, 쩌저적! 제국의 자랑거리가 무너졌다.
아레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는 그저 아이들이 장난으로 만든 건물 같았으니 말이다.
신계에서는 이런 건물쯤이야 하룻밤 사이에 뚝딱 만들어 낸다.
콰광! 콰과광!
“콜로세움이…….”
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수도 시민들의 감상은 달랐다.
그들은 제국의 자랑거리가 무너지는 걸 보았다. 그들은 제국의 권위가 박살 나는 걸 보았다. 그들은 제국의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과 가장 사나운 노예 전사들이 풀려나는 걸 보았다.
“…도망치자.”
“피난해야 해요.”
수도 시민들의 마음도 모른 채 아레스는 껄껄 웃어 댔다.
[크하하하! 크하하하! 네놈의 영혼은 지하 세계로 떨어지리라! 너는 가장 극악한 괴물들이 갇혀 있는 타르타로스의 품에 자리하리라!]
타르타로스.
올림포스 명계의 최하층. 티타노마키아에서 패배한 거인들이 갇힌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다. 고대 신인 타르타로스가 지배하는 장소이며, 명계의 지배권을 가진 하데스조차도 꺼리는 곳.
아레스는 오디슨이 그곳에서 어떤 벌을 받을지 기대하며 미친 듯 웃어젖혔다.
‘영원토록 회전하는 불타는 수레바퀴에 매달릴까? 아니면 시시포스처럼 영원토록 돌을 굴려 산 정상에 올려야 할까? 뭐든 좋구나!’
연맹법 상 다른 신계의 신에 대한 여러 가지 처리가 있겠지만, 취한 아레스는 그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다.
무언가 그런 그의 뇌리를 때렸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흐아아아앗!”
콰아아앙!
[으어어억!]
오디슨이 아레스 신상을 후려갈겼다.
아레스 석상이 휘청였다. 도대체 뭐에 얻어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허, 역시, 철거 작업에는 망치가 제격이지.”
오디슨이 히죽 웃었다.
창대에 커다란 돌덩이를 끼우고 망치로 만들었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돌덩이가 조각났지만, 상관없다.
널린 게 돌덩어리니까.
[으, 으윽! 오디슨, 오디슨, 오디스으으은!]
아레스가 광분했다.
석상의 머리 반쪽이 날아갔다.
오디슨은 퉤- 침을 뱉어 입안의 흙먼지를 씻어 냈다.
“무식하기 짝이 없더군.”
갑자기 투기장을 무너트리다니.
슬쩍 그쪽을 바라본 오디슨이 혀를 내둘렀다.
장대한 콜로세움의 절반이 무너진 모습.
돌덩이를 끼우고 콜로세움 꼭대기 난간에서 뛰어내리며 머리를 후려갈겼건만… 아레스 석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목쿨켈피마냥 약점이 있나?’
[오디스으으은! 네놈을 찢어 죽이리라!]
“…아무래도 약점은 딱히 없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할 일은 뻔하다.
오디슨이 양손으로 창, 아니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히죽 웃었다.
“모조리 박살 내면 움직이지 못하겠지.”
장대한 철거가 시작되었다.
* * *
투기장이 무너졌다.
돌진을 피하고, 빈틈에 마구 망치질을 했다.
돌덩어리는 널렸고, 덩치가 큰 만큼 빈틈도 널렸다.
마르스가 괴성을 내질렀다.
[치직, 치지직! 오디ㅅ……! 치지지직!]
귓가를 따갑게 하는 이상한 소리다.
쯧, 혀를 찼다.
“제대로 말도 못 하는 건가?”
[끄어어어! 치지직! 오디슨! 치지지직!]
쾅쾅쾅!
녀석이 다시 달려들었다.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뒤쪽에는 희고 큰 신전.
나는 저 신전을 안다.
“판테이온이던가?”
[치지지직! 네, 네놈을, 치지지직!]
마르스가 코앞이다.
나는 투우를 하듯 부드럽게 녀석을 타고 넘었다. 육중한 몸뚱이, 전력을 다한 돌진, 그것들이 아무짝에도 소용없게 되었다.
마르스 신상이 신전을 들이박았다.
콰아아아앙!
“큭… 힘 하나는 대단하군…….”
혀를 내둘렀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신전과 정면으로 들이박은 마르스가 버둥댔다.
나는 그 다리를 노렸다.
“흐으으읏!”
콰아아앙!
망치질하자, 마르스가 비명 질렀다.
[치지지직! 으아아아악! 분하다! 분해! 오디ㅅ… 치지직! 내 너를 용서치 않으리라! 치지지지직!]
개소리다.
콰아앙! 쾅! 쾅쾅쾅!
계속해서 망치질했다. 석상이 마구 요동쳤다.
대리석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허둥대던 마르스의 공격이 정확히 날 노리고 날아들었다.
[죽어라아아! 치지직-!]
소음이 뒤섞인 저주.
주먹이 내가 있던 자리를 때렸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제 다리를 박살 내다니, 대단한 놈이군!”
[크아아아! 이 개자식!]
다리를 잃은 석상은 일어서지도 못한 채 버둥대기만 했다.
그 꼴을 비웃다 주변을 보았다. 난장판이다.
풀려난 노예와 검투사들이 살인과 약탈, 방화를 일삼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우뚝 선 궁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궁전을 부숴야 하나?”
황족이니 귀족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궁전에 있을 터.
다리를 잃은 마르스를 어찌 끌고 가야 하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난 취한 자에게 지지 않는다.”
여전히 영혼은 타오르고 있었다.
그 특유의 간질간질한 느낌이 끔찍하다. 만일 군단과 맞붙어 영혼을 약탈하지 않았다면, 이미 고통에 몸서리치고 있으리라.
제국 놈들의 영혼이다.
갑자기 역겨워졌다.
“…싹 태우는 게 낫겠지.”
나는 마르스 곁으로 다가섰다.
녀석은 설치다 지쳤는지, 나지막이 저주를 내뱉고 있었다.
[세상 모든 뱀은 널 미워할 게다. 치직! 전차는 너를 거부할 것이며, 너는…….]
“시끄럽게 중얼대는군.”
꼭 주술사 영감이 삐쳐서 구시렁대는 꼴 같다.
초라하기 그지없다. 나는 망치를 번쩍 추켜들었다.
“일단 이 귀찮은 입부터 으깨 주지.”
쾅쾅쾅쾅!
얼굴을 마구 내리쳤다.
그때마다 마르스가 손을 휘저었지만, 제대로 된 반응은 없었다. 입이 부서지며 눈도 부서졌다. 게다가 판테이온과 충돌하며 팔도 멀쩡하진 않았다.
얼굴을 으스러뜨리고, 팔을 뭉개 버렸다.
그리고…….
“흐으으읏!”
[치지직- 치지지지직!]
거대한 석상을 붙잡았다.
영혼의 고갈이 빨라진다. 나는 온 힘을 끌어모아, 석상을 들어 올렸다.
지독하게 무겁다!
“크으으……!”
하지만 견딜 만했다.
마르스가 취한 탓인가? 자신감이 차오른다.
나는 이 자식을 어떻게라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선택은 하나다.
* * *
콰아아아아앙!
피난을 가던 시민들이 움찔 떨었다.
아까부터 들리던 굉음이지만, 지금 들린 소리는 좀 달랐다.
누군가가 어어- 삿대질했다.
“저, 저거 봐……!”
“아, 아아아아……! 제국이, 제국이……!”
그야말로 제국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언제나 화려하게 우뚝 솟아 수도를 굽어보던 황궁.
제국의 심장, 수도. 심장의 대동맥이 터지는 소리였다.
“황궁이… 무너졌어.”
털썩, 한 사람이 주저앉았다.
거대한 석상이 황궁을 들이박았다. 튼튼하게 지어진 황궁도 버틸 수 없는 충격이었다. 높은 건물이 그대로 기울었고, 쓰러졌다.
굉음이 연이어 들렸고, 그 광경을 보던 모두는 전율했다.
혹자는 황궁을 지은 초대 황제의 말을 떠올렸다.
‘제국이 천년은 갈 테니, 궁전도 천년은 가도록 지어라.’
천년 제국의 꿈이 단 한 사람에게 저지되었다.
이 소식은 곧 전 세계로 전달되었다.
제국의 속국이던 이들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독립을 준비했고, 제국을 경계하던 서쪽의 왕국은 겁에 질렸다.
여러 가지 소문이 전염병처럼 퍼졌다.
“올림포스는 제국의 오만함에 철퇴를 내리시었다. 포세이돈께서 황태자를 지진으로 죽이셨고, 아레스께서 황제를 때려 죽이셨다.”
가장 강력한 국가가 이렇게 무너지자, 올림포스의 권위가 급상승했다.
올림포스를 믿는 이들은 더 많은 공물을 준비하여, 신의 분노가 자신들을 덮치지 않기를 빌었다.
그런가 하면 오디슨에 대한 소문도 있었다.
“천년은 갈 제국을 무너뜨린 자. 시대를 이끄는 자가 아닌가.”
시대를 이끄는 자. 왕국 아카데미 교수가 꺼내 놓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디슨의 새로운 별명이 되었다.
그 탓에 운명이 바뀌었다.
* * *
“끌끌끌… 운명이 돌부리에 걸렸구만.”
“언니도 참. 이건 웃을 일이 아니에요.”
울드의 말에 베르단디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 스쿨드가 키득거렸다.
“베르단디 언니도 참! 이게 더 재밌잖아요? 까르륵!”
“…스쿨드, 헬께서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니?”
“끌끌끌, 그의 아내가 되는 건 변치 않았지 않나?”
“그래도요.”
후우, 베르단디가 한숨을 내쉬었다.
노르니르 중 헬과 유일하게 연령대가 맞는 베르단디는 헬과 친했다.
이걸 어찌 전달해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지옥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라니.”
바람둥이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