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90화. 영웅은 망설임 없다 (1)
걸음을 서둘렀다.
거리에서 날 보고 수군대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시선을 주진 않았다. 간혹 꺅 소리 지르며 다가오는 여자들도 있었다.
“오디슨 님! 사인 좀 해 주세요!”
“미안하다. 지금 좀 바쁘군.”
“네에? 어디 가시는데요?”
아가씨들이 따라붙으며 질문을 던져 댔다.
귀찮다. 나는 쓰게 웃으며 슬쩍 창을 들어 보였다.
“싸우러 간다.”
“네? 싸움이요? 대체 어디에…….”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고 말했다.
“제국.”
내 말에 따라붙던 여자들이 멈췄다. 슬쩍 보니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약간은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발길을 멈췄다.
“…왜 그러나?”
“그게, 제국이라면… 그?”
그녀의 눈에서 공포를 읽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제 몸을 감싼 채 움츠러든 모습.
나는 그 모습에 분노를 느꼈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윽!”
여자가 깜짝 놀랐다.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이름이 뭐지?”
“제, 제 이름은… 메이니르코나(Meinir-kona)예요. 그냥 코나라고 불러 주세요.”
이름을 듣자, 그녀의 공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것 같다. 그녀의 이름부터가 ‘상처의 여자’다.
“그냥 메이니라고 부르지, 메이니.”
“아, 예……? 그, 오디슨 님?”
메이니가 볼을 붉혔다.
나는 그녀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네 상처는 지워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약속하마.”
“…무슨?”
“복수.”
복수를 소멸시킨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복수를 지운 책임져야겠지.
내 말에 메이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오늘 제국을 없애러 간다.”
메이니를 남겨 두고 터미널로 향했다.
창을 어깨에 짊어지고 걸었다. 누구도 이제 내 발길을 막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 고개 숙여 내 길을 축복할 뿐이었다.
다만, 발키리는 달랐다.
“…오디슨 님.”
착 가라앉은 목소리의 주인은 이전에도 봤던 발키리다.
용병단과 함께 하계로 갈 때 보았던 발키리.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군.”
“…오늘은 혼자신가요?”
고개를 끄덕였다.
발키리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러지? 그 답은 곧 튀어나왔다.
“하계로 가실 거라면 용병단 등록증과 의뢰 접수증이 필요해요. 그게 아니라면 헤임달 님의 승인이 난 출입국허가서가 필요한데…….”
“…용병단 등록증이라.”
할랴헤랴르를 데리고 올 수 없어 그냥 왔더니.
귀찮은 일이 생겼다.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떻게 안 되나?”
“네, 그게 아무래도…….”
발키리가 허가 없이 하계로 간 이들이 일으킨 문제에 대해 말하며, 얼마 전에 출입국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방법이 없나?”
“네, 어쩔 수가 없어요.”
“하지만 하계로 가는 곳을 관리하는 발키리지 않은가?”
“그렇지만 저도…….”
칫, 이런 방법을 쓰고 싶진 않았는데.
발키리에게 다가섰다. 그녀가 흠칫 놀라 날 보았다.
나는 발키리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못 본 척해 줄 수도 없겠나?”
“그게… 그러니까…….”
발키리의 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좀 더 다가서자, 그녀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그녀가 도망칠 수 있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턱!
“오, 오디슨 님?”
발키리가 벽에 등을 기대고, 겁먹은 토끼처럼 날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이렇게 부탁해도, 안 되는 건가?”
그녀의 뒤, 벽을 짚은 채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발키리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색이 되었다. 그녀가 꿀꺽 침을 삼킨다.
“아, 으… 그, 그게에…….”
“내 간절히 바라는 바일세.”
슬그머니 그녀의 턱을 잡았다.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발키리가 ‘아으!’ 하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후…….”
정말, 이런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 * *
“…젠장.”
티르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
전차에 올라탔다. 전차는 곧장 출발했다. 하늘을 나는 말이 발을 굴러 허공을 박찼다.
오딘과의 이야기를 되새겼다.
‘막을 수 없다. 잊었느냐?’
오딘의 말.
티르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막을 수 없긴 뭘 없어? 이대로 가다간 진짜…….’
티르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제국의 선전포고가 들려오자마자 이라호드에게 연락했다. 설마 했던 일이 이미 일어난 상태였다. 오디슨이 하계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모든 발키리들에게 긴급 명령을 내렸다.
[오디슨을 막아라.]
후우- 티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터미널을 통하지 않고 내려갈 수 있는 신은 극소수. 그러니까 오디슨은 분명 터미널로 갔을 터.”
터미널에는 발키리들이 잔뜩이다.
그녀들이 오디슨을 순순히 하계로 보내 주진 않았으리라.
물론, 오디슨이 자신의 신성을 앞세워 발키리에게 비키라고 명령한다면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오디슨은 아직 신성을 내세우는 법조차 모른다.
티르가 까득 이를 갈았다.
‘막을 수 없다고 하셨소? 난 막을 거요. 아스가르드뿐만 아니라 오디슨을 위해서도 막아야만 하는 일이니까.’
터미널에 발이 묶인 오디슨이 티르를 만나면? 격한 반응을 보이리라.
매도는 기본이오, 덤벼들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이렇게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제기랄.’
티르는 오디슨과 싸워야 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디슨 정도쯤이야 눈 감고도 이길 수 있다. 티르는 비다르와 전혀 달랐으니까. 하지만…….
“후우.”
사이가 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티르는 그게 착잡했다. 오디슨의 가능성을 본 만큼, 그와 사이가 크게 틀어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개 같은 제국…….’
법과 질서. 때로 티르도 그에 자괴감을 느꼈다.
하지만 저버릴 수 없다.
“…모두를 위한 일이니까.”
이윽고 마차가 터미널에 닿았다.
마차에서 내린 티르는 곧장 하계행 플랫폼으로 달렸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수군거렸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반응할 정도로 여유롭지 못했다.
하계행 플랫폼에 닿은 티르는 헛숨을 흘렸다.
“허.”
어이가 없었다.
오딘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잊었느냐?’
오디슨의 무력을? 오디슨의 운명을? 아니다.
오디슨의 성격을 잊었느냐는 소리였다. 그놈이 얼마나 막 나가는 놈인지 잊었느냐는 질문이었다.
“발키리를 기절시키고 하계행 수레를 탈취해 달아나다니… 도대체 지금 몇 개나 되는 죄를 저지를 셈이지?”
티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젠장할. 나도 기절하고 싶군.”
기절한 발키리의 얼굴이 묘하게 기뻐 보였다.
* * *
선전포고를 알리는 연설을 했다고 한들, 곧장 전쟁을 할 수는 없었다.
일단 병력을 모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 군단장을 선출해야 했다.
그뿐인가? 아니다.
전쟁을 앞두고 제사가 필요했다.
“전쟁의 신이시여, 제국의 수호신이시여.”
아레스의 신전, 황제는 경건한 태도로 아레스 신상 앞에 무릎 꿇었다.
“인간의 우두머리가 당신께 기원합니다. 제국의 앞날을 위해 가호를 내려 주소서.”
웅변 황제라던 별명을 지녔던 현 황제.
그의 깊고 맑던 중저음은 목을 다치며 사라졌다. 인제 와서는 쇠를 긁는 듯한 거친 목소리만이 남았다.
“마르스시여, 저는 전쟁의 끝에 남는 것이 승리이길 바라옵니다. 마르스시여, 저는 전쟁의 끝에 남는 것이 야만인의 멸망이길 바라옵니다. 마르스시여……!”
탁한 목소리가 고요한 아레스 신전을 가득 채웠다.
신관들은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고, 고관대작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침묵했다. 군단장들은 무장을 갖추고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수 있을 차림으로 눈을 꾹 감고 있었다.
모두가 전쟁 신의 가호를 바랐다.
‘붉은 마왕…….’
‘다시 또 그런 괴물이 튀어나온다면?’
‘제발!’
붉은 마왕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는 탓이다.
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아레스의 신탁에 기대고 있었다.
우우우웅-
아레스 신상이 묘한 울림을 냈다.
황제가 흠칫 몸을 떨었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신탁의 징조다.
[당장…….]
당장? 당장 쳐들어가라는 소린가?
군단장들이 흠칫 몸을 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옷과 무기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쇳소리가 났지만, 그들을 탓하는 이들은 없었다.
우우웅- 치직치지직.
“…신계와의 연결인지라, 간단한 이야기도 상당히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혹여 황제가 화를 낼까 싶어 말하는 대신관.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해도 아예 다른 세계에서 전해지는 목소리가 선명한 쪽이 더 이상했다.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일진대, 어찌 경망스레 굴겠나?”
황제의 말에 군단장들이 크흠- 헛기침을 했다.
실상은 하계 쪽에 통신 시설이 미비한 탓이었지만.
[도망…….]
눈살을 구겼다.
도망? 막무가내인 전쟁 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대신관이 그 신탁을 해석했다.
“아마 도망치는 야만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흐음… 그도 그렇군.”
그리고 마지막 말이 전달되었다.
[…쳐- 라!]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장 도망쳐라?’
황제의 눈이 신관들에게로 향했다.
신관들은 모두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황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레스의 신상을 향해 말했다.
“신이시여! 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까? 하지만 소용없는 일입니다!”
황제가 소리쳤다.
“저는 야만인들에게 제 분노를 보여 줄 겁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려 주고야 말 것입니다! 제 분노, 내 아들의 목숨을 앗아 간 놈들에게 복수할 거란 말입니다!”
치지이이익- 칙칙.
[당장, 도망쳐라! 당장! 그가… 가고 있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대신관을 보며 이를 아드득 갈았다. 그 눈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대신관! 설마, 전쟁을 막으려 수작을 부리는 겐가!”
“네, 넷? 그, 그게 무슨 소리시옵니까, 폐하! 제가 감히 어찌 신을 사칭하여…….”
“허! 그렇지 않다면 마르스께서 이런 소리를 하셨다는 걸 날더러 믿으라는 건가? 응?”
황제가 대신관에게 다가갔다.
대신관은 흠칫 몸을 떨며 뒷걸음쳤다. 다가오는 황제의 걸음걸이에는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광기가 두려웠다.
황제가 눈을 부릅뜬 채 대신관의 멱살을 잡았다.
“네 사생아가 이번에 징집되었지? 응? 그렇기에 이딴 개수작을 벌이는 것 아닌가? 내 아들의 복수에 네 아들의 피를 흘릴 수 없다는 것 아닌가!”
황제가 미친 듯 말을 쏟아 냈다.
대신관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누군가 황제를 막아 주길 바랐지만, 그 누구도 황제를 말릴 수 없었다.
황제가 버럭 소리쳤다.
“칼, 칼을 내놓아라!”
“…폐, 폐하! 여기는 신전이옵니다! 신전에서 신관을 해하는 것은…….”
“허! 마르스의 신관이 도망치라는 소리를 하는 겁쟁이라도 말이더냐!”
사실관계가 파악되지 않았지만, 분노로 미쳐 버린 황제는 확신했다. 대신관이 제 아들을 지키고자 이런 개수작을 부렸다고 말이다.
대신관은 억울했다.
“폐하! 아니옵니다! 절대 아니옵니다!”
“시끄럽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분께서 도망치라 하시겠는가! 여긴 제국 수도 한복판이다! 게다가…….”
황제가 신전 출구를 가리켰다.
“밖에는 5만에 달하는 병력이 대기 중이다! 그런데 내가, 제국의 황제인 내가 제국의 수도에서 도망을 쳐? 그것도 군단이 도열한 앞에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 그건……!”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변명은 필요 없다! 겁쟁이의 목을 잘라, 마르스께 바치리라!”
스르릉!
황제가 총군단장의 칼을 빼 들었다.
대신관이 오들오들 떨며 눈을 꾹 감았다.
황제가 외쳤다.
“죽어라, 겁쟁이야! 너 따위는 제국에 필요 없나니!”
그리고 그의 칼이 떨어진다.
콰아아앙!
“으, 으윽?! 이, 이게 무슨……!”
“폐하아아아! 괜찮으십니까!”
“또, 또! 지진이란 말이더냐! 다시 야만인들이 넵투누스를……!”
“이, 일단 밖으로 피신하소서! 지진이라면 여기는…….”
쩌적!
쩌저적- 신전 천장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욱한 먼지, 고관대작들은 모두 갑작스러운 충격에 우왕좌왕했다.
황제는 지진의 공포에 덜덜 떨면서도 미친 소리를 내뱉었다.
“으아아아! 지진! 이 빌어먹을 것 같으니! 내, 야만인을 모조리 도륙하여 넵투누스께 바치리라! 그래, 그리한다면 넵투누스께서 플루토께 부탁하시어, 내 아들을 돌려주시리라!”
“폐하, 일단 대피하소서!”
“흐흐흐, 일단 이 겁쟁이를 먼저…….”
혼란의 상황에, 낯선 언어가 모두에게 들렸다.
“겁쟁이는 네놈이다.”
칼을 치켜 든 황제가 움찔 몸을 떨었다.
칼날이 멈췄다. 대신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안도할 때가 아니었다.
익숙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어야 정상인 말소리. 그 소리가 대신관을 겁먹게 했다.
“야만인의 언어…….”
대신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황제는 눈을 부릅뜨고 꽥 소리쳤다.
“무, 무슨 주술을 부린 건가! 어째서 야만족의 말을 내가 알아듣는단 말인가! 사악한 주술을 부리다니! 당장 나와라! 내 너의 목을 잘라 마르스께 바치리라!”
먼지 사이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털가죽을 걸친, 조각 같은 미남자였다. 아니, 조각보다 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남자다. 그는 묵빛 창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가 씩 웃었다.
“마르스? 그 개자식의 신전이 여기란 말이지?”
“시, 신성모독이다!”
“글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신성모독이 아닐 텐데.”
“여봐라! 뭣하느냐! 저 야만인을 죽여라!”
황명이 떨어지고, 군단장들이 칼을 빼 들었다.
그에 사내가 씩 웃었다.
“다행스럽게도, 제국을 박살 내기에 딱 좋은 장소로군.”
“죽여라! 죽이란 말이다!”
군단장들이 칼을 들고 덤벼들었다.
힘으로 유명한 거구의 제2군단장이 사내를 단번에 가르려는 듯, 전력을 다해 칼을 내려친다.
“흐아아앗!”
하지만 사내는 대수롭지 않게 한 손으로 창을 휘두를 뿐.
스걱!
가느다란 소리가 나고, 제2군단장이 우뚝 멈췄다.
사내가 씩 웃었다.
“발키리의 수레를 부숴 먹은 보람이 있다. 이곳에서 제국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야.”
“뭐, 뭣 하느냐! 왜 갑자기 멈추냔 말이다! 당장 저놈을……. 엇!”
황제의 재촉이 제2군단장에게 닿고, 제2군단장이 쓰러졌다.
그제야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알아챌 수도 없을 속도로 공격이 이뤄졌다는 것을.
적막이 감돌았다.
“…사, 사악한 주술이다.”
황제의 목소리에 사내가 씩 웃었다.
“죽고 나서 마르스에게 불평하려면, 내 이름 정도는 알아야겠지.”
“뭐라?”
황제가 침을 꼴깍 삼켰고, 사내가 버럭 소리쳤다.
“나는 물푸레나무 부족의 붉은 늑대, 프레키 오디슨이다! 감히 내 동족이 사는 땅을 침범하려던 죗값을 받아 내겠노라!”
사내가 바닥을 박찼다.
어쩐지 익숙한 이름에 모두가 오싹함을 느꼈다.
재상이 눈을 부릅떴다. 그 익숙한 이름의 주인공을 깨달았다.
“붉은 마왕…….”
“아무래도 악마보다는 그쪽이 듣기 좋군.”
피식 웃은 사내가 창을 내질렀다.
퍼억!
“컥……!”
재상의 뒤통수에 뿔이 돋았다.
그는 자신이 죽음의 손아귀에 잡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내 손으로 제국의 끝을 불러왔구나.’
제국의 심장에 마왕이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