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84화 (84/208)

# 84

84화. 영웅은 도전 받는다 (1)

결국, 비둘기는 먹지 못했다.

이라호드가 배려해 준 덕에 빵을 사러 왔다. 튀긴 감자, 그리고 넥타라는 과즙 음료도 함께였다.

[현실을 잊어버리는 충격적인 맛!]

[레테리아! 불맛 가득 플레게톤 버거 출시!]

포장지에 그려진 걸 보자니, 아무래도 올림포스 쪽 음식점인 모양이다.

“레테도 그렇고 플레게톤도 그렇고, 크레네가 자주 읊던 이름이군.”

“뭐, 올림포스 쪽 가장 유명한 저승의 강들이니까요.”

“역시 올림포스 쪽이었나.”

“연맹에는 온갖 가게들이 출신 지역을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짓이죠. 그나저나 망각의 여신이 햄버거라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참.”

망각의 여신과 음식이라.

내가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조합이긴 하다.

이라호드가 제 몫의 빵 포장을 벗기며 말했다.

“차라리 막-리르로 갈 걸 그랬나요? ‘빅막’은 꽤 괜찮은데… 아니, 생각해 보니까 마난난 막 리르도 명계 쪽 신이던가?”

대체 왜 명계 쪽에서 음식 장사에 욕심내는 거지? 이라호드가 중얼거렸다.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막리르는 뭐지?”

“아, 막-리르는 이 레테리아 비슷한 곳인데요…….”

이라호드가 설명했다.

마난난 막 리르(Manannán mac Lir)라는 옛 신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라고. 신도를 잃고 신이 아니게 된 불쌍한 양반이라 한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신도를 모두 잃은 신이 살아남을 수 있나?”

“거의 힘들죠. 브리튼 왕실 쪽에서 밀어낸 신인지라… 신성도 잃고, 신계 연맹 차원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그냥 사는 거예요. 어쨌든, 얼른 먹어요. 도착하면 바로 들어가야 하니까.”

포장지를 벗기고 한입 베어 물었다.

“음?”

고기를 끼워 파는 건 줄 알았더니, 생선튀김이 끼어 있었다! 뭔가 내가 기대하던 맛이 아닌데.

맛은 있으니 먹어 치웠다.

확실히 비둘기 통구이보다는 이게 맛있다. 하지만 사냥한 동물을 먹는 그 특유의 감성이 없다.

약간 아쉬웠다.

“약간 새롭긴 한데, 제 입에는 역시 막-리르가 더 나은 거 같아요.”

“나는 역시… 비둘기가…….”

“…오디슨, 괜찮겠어요?”

비둘기가 뭐가 안 괜찮은 거지? 고개를 갸웃하자, 이라호드가 딴소리했다. 그냥 내 비둘기 이야기를 무시한 모양이다.

“연맹 내부에서는 담당 발키리라고 해도 같이할 수 없어요. 저도 나름 조사에 협력해야 하는 처지인지라…….”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난 애가 아니다.”

“허, 그런 사람이 공원에서 비둘기를 사냥해요?”

질린 듯한 표정으로 말하지만, 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게 대체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군.”

“으으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어쨌든! 이걸 가지고 가요.”

이라호드가 내민 것은 볼펜이었다. 다이스에 파는 필기도구.

이걸 왜? 그녀를 바라보자, 이라호드가 설명했다.

“여기를 누르면 녹음이 돼요. 녹음이 뭔지는 알죠?”

“목소리를 담는 거 아닌가?”

“맞아요. 어쨌든 취조 중에 저쪽에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 싶으면 바로 이걸 눌러서 녹음해요. 그리고 무시해요. 그런 거 하나하나가 재판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니까요.”

흠, 뭔가 고자질하는 느낌이라 좋지 못한데.

어쨌거나 알았다. 볼펜을 받아 들었다.

끼익-!

타고 가던 철마차가 멈췄다.

이라호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착했네요. 가요.”

철마차 밖으로 나왔다. 감탄을 흘렸다.

살아생전 상상하지 못한 풍경이 거기에 펼쳐져 있었다.

“…대단하군.”

온갖 풍경이 조화된 곳이다.

거대한 나무 속을 파고 건물로 쓰는 곳도 있었고, 제국식 건축물도 있었으며, 딱딱해 보이는 네모난 건물들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스케일 아머를 걸친 듯한 지붕도 있었다.

어지럽게 엉켜 있는 거리에는 무수한 사람들과 온갖 마차들이 오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은…….

[신계 연맹 치안청]

마치 전설 속의 요새처럼 웅장하고 굳건해 보였다.

이라호드와는 들어가자마자 헤어졌다.

“이쪽으로.”

생소한 복장을 한 여자의 안내를 받았다. 검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예쁜 여자다.

“여기서 대기해 주세요, 오디슨 님.”

“으음… 음…….”

“저한테 무슨 이상한 점이라도?”

“아니… 옷차림이 신기해서 그랬소.”

여자가 옷을 보기 좋게 양팔을 벌리고 한 바퀴 휙 돌았다. 형형색색의 나풀거리는 천이 눈을 어지럽힌다.

멍하니 보자니, 그녀가 눈을 반달처럼 휘며 웃었다.

“선녀들의 날개옷이에요.”

“선녀?”

“네, 저는 선녀니까요. 여기에서는 온갖 신계의 공무원들이 일하곤 하니까, 다양한 복식과 다양한 문화, 그리고 다양한 종족이 머물죠.”

허- 감탄을 흘렸다.

설명을 더 듣자 하니 동방의 발키리 같은 여자라고.

저 가느다란 팔로 싸울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름답군.”

“킥킥, 감사해요. 그럼 전 이만.”

선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섰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취조실이라는 곳에 들어가 각진 책상 앞, 철제 의자에 앉았다.

영 딱딱한 곳이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머리가 살짝 벗겨진 중년 사내가 이쑤시개를 질겅질겅 물고 들어왔다.

“어어, 많이 기다렸나?”

대뜸 반말이라니, 눈살을 구겼다.

“댁은 뉘시오?”

“나? 그쪽이 사칭한 오디세우스지.”

허, 이 양반이 그 올림포스의 영웅이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영웅 같은 느낌은 없는데.”

내 말에 오디세우스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잘생긴 새끼들은 이래서 문제야, 젠장.”

그가 거칠게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 있던 램프가 번쩍 빛을 발했다.

오디세우스가 램프를 내게 비췄다.

“그럼 어디, 심문을 시작해 볼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사내다.

* * *

티르는 언제나처럼 두통약과 위장약을 복용했다. 스트레스 탓에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었다.

당장 위그드라실 최상부를 찾았다.

발키리들은 티르의 얼굴을 슬쩍 보고, 바로 문을 열어 주었다.

‘…티르 님, 저러다 과로사하는 거 아니실까?’

발키리들이 티르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아스가르드 전체의 행정과 사법의 책임자인 티르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는 그만큼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우스개도 있다.

-오딘께서 사라지시면, 아스가르드가 불안에 떤다. 토르께서 사라지시면, 아스가르드가 움츠러든다. 티르께서 사라지시면? 아스가르드가 사라진다.

티르가 일을 손에서 놓는 순간, 아스가르드가 멈추고 붕괴한다는 농담.

그게 단순한 농담이라고 하기엔, 티르의 일은 많고 중요했다.

“오딘!”

티르가 꽥 소리 질렀다.

오딘은 무덤덤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이걸 지금 어쩔 겁니까? 네?”

오딘이 피식 웃었다.

왕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오디슨을 싫어하는 것 아니었나?”

툭 내뱉은 말에 티르가 움찔 몸을 떨었다.

분명 멋대로 구는 놈이다. 하지만…….

오딘이 킬킬 웃었다.

“그 번쩍이는 재능. 키워 보고 싶지 않나?”

티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분명 놀라운 재능이다. 이제까지 해 온 일을 생각하면 그의 업적도 무시할 만한 건 아니었다. 어느 전사가 발할라에 온 지 1년도 안 되어 신성을 얻고, 기존의 신을 무찌른단 말인가?

티르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불안하다.

오딘이 궁니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올림포스의 왕은 등신이 아니니까.”

번개를 던지는 제우스.

오딘은 수많은 역사 속에서 그와 부딪혔다. 그저 여자만 밝히는 난봉꾼이라기엔 심계가 깊고, 무예가 뛰어난 신이다.

‘쥐 한 마리 잡으려 집을 태우진 않겠지.’

오딘은 생각했다.

물론, 오디슨이라는 쥐가 보통 쥐는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티르의 얼굴이 어둡다.

오딘은 눈살을 찌푸렸다.

“좀 더 풀어서 말해야 하나? 올림포스에서는 절대로 판도라의 항아리 건으로 오디슨을 핍박하지 못한다.”

오딘은 이미 보았다.

오디슨을 그 건으로 잡아들였다는 보고를 받고 당황한 제우스를.

올림포스 측에서는 그걸 숨겨야만 했다.

신계 연맹에 보고되지 않은 비장의 무기였으니까. 그것도 사용법이 아주 까다롭고, 자폭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비장의 무기.

티르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오.”

“그게 아니다?”

티르가 말을 이었다.

“판도라는 애초에 하계불가침법 제정 이전에 처벌받은 여자. 그녀를 들먹인다면 그녀의 재판을 연맹법에 따라 해야 할 터인데… 올림포스에서 자신들의 치부를 들출 리가 없지.”

티르가 주목한 건 판도라의 항아리가 아니라 판도라였다.

그녀를 죄인 취급하기엔 연맹법과 너무 상충한다. 연맹법은 인간들을 처벌하는 것에 기준을 확고하게 뒀다.

‘무작정 인간들을 처벌하다가, 멸망할 수도 있으니.’

특히나 찌꺼기라는 것들이 등장하며 더욱더 심해졌다.

신의 권위를 내세우겠다며 억지스러운 벌을 함부로 내리면? 벌을 받은 인간과 그 주변인이 죽었을 때 찌꺼기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제정된 것이 하계불가침법이었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내가 보지 못한 다른 문제가 있었나?”

“…후우.”

티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모르겠냐고.

오딘이 눈살을 구겼다.

티르는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오디슨이 취조 중에 담당 형사를 패거나 하지 않을지…….”

“…음.”

오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연맹 수사권을 가진 형사를 때린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발할라에 익숙해지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공권력에 대한 저항은 보통 처벌로 끝나는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오디슨이라면.’

오딘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오딘이라지만,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 내는 재주는 없었다. 후긴과 무닌이 기억과 생각을 수집해 오딘에게 바치는 건 그런 이유다.

“…으음.”

티르가 침음을 흘렸고, 오딘도 답지 않게 표정이 어두웠다.

신계 연맹 치안청에 까마귀들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 *

취조는 지루하고 짜증 났다.

오디세우스는 크게 세 가지에 대해 반복해서 물었다.

“죄인의 탈출을 도왔지?”

“그 과정에서 살인을 했고?”

“판도라의 항아리. 그 물건은 어쨌지?”

그에 나는 당당히 말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지만, 죄인의 탈출을 도운 기억은 없다.”

“판도라가 도망치게 했잖아!”

“그건 그 여자가 알아서 한 일이다.”

오디세우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말이 안 통하네, 말이! 그 여자가 알아서 했다면 왜 그 여자가 널 모시는 신관이 되었지?”

그건 나도 잘 모르는 일이다.

하계를 살펴볼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볼바가 되어 있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어깨를 으쓱이자, 한숨을 푹 쉰 오디세우스가 말을 이었다.

“살인은?”

“죽일 놈들을 죽였을 뿐.”

“부정하지 않는군!”

건수를 잡았다는 듯 오디세우스가 히죽 웃었다.

대체 뭐가 저리 신나는 걸까? 내가 죽였는지 확신하지 못한 건가?

하지만 괜한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중에는 제우스 님의 신관도 있다는 걸 아나?”

어쩌라는 거지?

“신관은 개 같은 짓을 해도 봐줘야 한다는 법이 있나?”

“그건…….”

오디세우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놈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일단 살인은…….”

“죽였어야 하는 놈들이었다.”

“젠장할, 그러니까 그걸 판단하는 게 댁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쿡쿡, 오디세우스가 내 가슴팍을 찔렀다.

“응? 댁이 무슨 권한으로 그걸 판단해? 응?”

쿡쿡 찌르는 그의 손.

까드득- 이를 갈았다. 오디세우스가 허- 헛숨을 흘린다.

“아주 그냥 치겠네, 치겠어. 엉?”

쿡쿡, 찌르는 손가락을 붙잡았다.

오디세우스가 흠칫 놀랐다.

“어? 지금 형사를 패려는 거야? 난 정식으로 신계 연맹에서 수사권을 받은… 끄아아악!”

우두둑!

손가락을 비틀어 부쉈다.

오디세우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끄으… 이, 이 미친 새끼! 정식 수사권을 받은 형사를…….”

그 말에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정식 수사권을 받은 놈은 신성모독도 괜찮더냐? 응?”

“어, 어어… 그건…….”

어버버- 입을 벙긋거리는 걸 보니 안 괜찮은 모양이었다.

나는 녀석의 가슴팍을 쿡쿡 찔렀다.

“으윽!”

“아까부터 계속 시비를 걸더군. 응?”

“시, 시비는 무슨… 새, 생사람 잡지 마시오!”

오리발을 내밀어?

이라호드에게 받은 볼펜에 모두 녹음되어 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재판 때에 터트리라 했다.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소인배 같지 않은가?

볼펜을 꺼내 보여 주었다.

“발뺌하지 마라. 이제까지 네가 한 말은 모두 녹음되어 있으니.”

오디세우스가 어버버- 말을 더듬었다.

“아니, 취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난 전사다.”

딱 잘라 말했다. 놈의 변명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저 쥐새끼 같은 놈은 내 말을 이해 못 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자비를 베풀어 알려 주도록 하자.

“전사는 모욕 앞에 참지 않는다.”

“그게 무슨? 아니, 씨… 신이면 다야? 어? 그래서 날 진짜 때리기라도… 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커억!”

오디세우스의 몸이 취조실 안을 날았다. 벽에 부딪힌 놈이 바닥에 엎어진다.

끄어어- 신음을 흘리는 오디세우스가 입에서 피를 주르륵 흘렸다.

두둑, 우두둑!

나는 손가락을 꺾어 풀고 목을 빙빙 돌렸다.

한참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뻐근하다.

“끄으으… 이 미친 새끼가 진짜……! 씨바, 내가 싸움을 못해서 쳐 맞는 줄 아냐!”

오디세우스가 버럭 덤벼들었다.

나름 올림포스의 영웅. 하지만 덤비는 꼴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

나는 주먹을 피했다.

“어?”

퍼억! 배에 무릎을 찔러 넣었다.

“커억!”

“싸움을 못 해서 맞았나 보군.”

끄엑끄엑- 오디세우스는 배를 붙잡고 바닥을 구른다.

한참을 헐떡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으, 으어… 제, 젠장할……. 난 군사라고……!”

그러니까 입만 털어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과 같은 부류라는 건가? 그런 놈들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덥석, 머리숱이 적은 머리를 잡아 일으켰다.

"난 예전부터 입을 나불대는 놈이 싫었다."

“어, 어어! 아니 잠, 잠깐!”

퍼억! 아악!

비명과 함께 오디세우스가 다시 취조실을 뒹굴었다.

용서는 없다. 몇 번이고 놈을 일으켜 후려쳤다.

오디세우스가 이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겁먹은 표정으로 녀석이 버둥거렸다. 마구 손을 휘저었다.

“끄어, 끄윽… 자, 잠깐! 댁은 자비의 신이 아니오? 이, 이건…….”

멈칫했다.

“으음.”

“그, 그러니 자비를 베푸시오, 자비를! 겨우 반말 때문에 사람을 이렇게 패는 게 자비요?”

자비의 신.

내가 영역으로 받은 건 자비였다. 사실 나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라호드는 설명했다.

-복수를 이기는 건 자비예요. 자비를 베푼다면 복수 당할 일도 없죠.

그런가?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무자비하게 군다면, 복수할 사람도 남지 않을 텐데 말이지.”

무자비도 일단은 자비의 종류가 아니겠는가?

나는 자비를 베풀어 오디세우스에게 몇 번이나 기회를 줬고, 전사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게다가 지금도 자비를 베풀고 있지 않은가?

“무기를 안 쓰는 것만 해도, 자비롭다 여겨라.”

“어, 어어…….”

오디세우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퍼억!

그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와 동시에 벌컥, 문이 열렸다.

“끄으… 헤, 헤라클레스!”

엉금엉금 기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의 발치에 들러붙는 오디세우스. 그가 내뱉은 이름이 낯익다.

“허…….”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이그나르보다, 토르손보다 훨씬 덩치가 큰 사내. 영웅의 풍모가 불끈거리는 근육에서 풍기는 사내.

이자가 바로 그…….

“헤라클레스.”

말 한마디 안 하고 있지만, 과연 영웅신다운 기세다.

창 없이 이 남자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 가슴 속에서 호승심이 펄펄 끓었다.

마침내 침묵으로 상황을 살피던 헤라클레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오디슨 님.”

무슨?

넙죽 그가 내게 사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