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79화 (79/208)

# 79

79화. 영웅은 의심받는다 (2)

아스가르드의 후계자를 발할라 투기장에서 뽑기로 한 탓일까?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 발할라 투기장 리그, 특별 경기를 중계할…….]

오디슨과 비다르의 결투는 투기 경기의 형식으로 치러졌다.

본래 결투가 수많은 사람 앞에서 펼쳐지는 것이라곤 하나, 이런 방식은 특히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비다르의 경우에 그 부담이 더 컸다.

[해설위원께서는 오늘 경기, 아니 결투군요. 어쨌든 어떻게 보십니까?]

[위험한 승부죠. 결투라는 게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은 특히나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신들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입니다.]

왜?

[이게 중계된다는 게, 사실상 신성의 파손을 의미하는 거거든요? 둘 중 어느 쪽이 지더라도, 신성이 많이 손상될 겁니다.]

[허어, 그렇군요. 그래도 오디슨 님은 약간 부담이 덜한 편이죠?]

[뭐, 그렇죠. 오디슨 선수… 아니, 오디슨 님은 아직 애드피 1000에도 포함되지 못한 하위신입니다. 그에 비해 비다르 님은… 뭐, 말 안 해도 아시겠죠.]

비다르가 진다면?

그의 신성은 지금처럼 반 토막 나는 걸로 그치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해설위원께서는 비다르 님의 승리 가능성을 높게 치시겠군요?]

[하하하, 뭐… 딱 잘라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오디슨 선수… 아니, 오디슨 님이 그리 녹록한 상대는 또 아니거든요?]

[음, 아무래도 입에 잘 붙지 않네요. 어쨌든 오디슨 님은 이제껏 어려운 승부를 계속해서 펼쳐 왔거든요? 그리고 그 결과로 승리를 거머쥔 일이 많구요.]

[최근 아예 패배가 없었죠. 그래서 모르는 겁니다. 만약, 오디슨 님이 승리한다면? 신성 투자 시장이 아주 난리 날지도 몰라요.]

TV 중계를 듣던 아프로디테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들어 몇 번째 한숨인지 셀 수 없을 지경.

오랜만에 본가를 찾은 에로스와 프시케 부부는 움찔 몸을 떨었다. 에로스가 슬쩍 프시케를 감쌌다.

아프로디테가 탁- 찻잔을 놓았다.

“…이기면 본전, 지면 쪽박인 데에 승부를 걸어요? 상식적으로 거긴 거는 게 아니잖아요!”

꽥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아레스가 눈살을 구겼다.

“거, 그만하지. 애들도 와 있는데.”

“아니, 지금 그만하게 생겼어요? 네? 저러다 지면, 지면 어쩔 건데요? 당신 전 재산 다 털어 넣었다면서요?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을 다 털어 넣고서, 지금 그만하자는 말이 나와요?”

아레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 숙인 남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망할. 내가 누구 때문에 거지가 됐는데!’

까드득, 이를 갈았다.

요즘도 헤파이스토스에게 위자료를 보낸다. 그 금액은 엘리시움의 영웅이라면 떵떵거리며 먹고 살 정도의 돈.

아레스는 심호흡했다.

“후우.”

올림포스 12주신 중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

신계 연맹에서 어떤 여신이 가장 아름답냐를 두고 이야기를 하면 여러모로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어떤 여신이 가장 유명하냐를 두고 이야기하면? 단연, 아프로디테가 1위다.

그건 그녀의 아름다움으로만 이뤄 낸 결과가 아니다.

아레스와의 불륜 동영상이 지금도 알음알음 퍼지는 중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녀가 뛰어난 사업가이기 때문이었다.

<뷰티비너스 그룹>.

아프로디테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화장품 제조 기업이다. 미의 여신으로 유명한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업종을 찾았다.

그 결과가 바로 뷰티비너스 그룹이다.

처음에는 색조화장품으로 시작한 회사다. 하지만 지금은 분야를 늘려 보통의 화장품 외에도 바디로션이나 바디오일 등을 생산하는 바디 분야, 향수와 네일, 심지어 음료까지에도 진출한 입지전적 그룹이다.

그 덕에 올림포스 12주신 중에서도 하위권에 속해 있던 아프로디테는, 최상위 4신에 포함되게 되었다.

아레스는 신성 순위로 치자면 하위 4신에 포함되는 이.

‘참자.’

여기에서 더 싸워서 남는 게 없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당신, 이번에 비다르가 지면, 나가서 살 생각해요.”

“뭐? 나가라고?”

아프로디테가 팔짱을 끼고 싸늘하게 말했다.

“이 집에서 당신이 뭘 했는데요? 애들이 어릴 땐 전쟁이랍시고 맨날 집을 비웠지, 내가 힘들게 돈 벌어 와도 뭐 청소를 해 놨나, 빨래를 해 놨나. 하다못해 설거지라도 해 둬야 하는 거 아니에요?”

“…허. 설거지? 올림포스의 왕태자인 나한테, 설거지?”

“어쩔 거예요? 나갈 거예요?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하면, 봐줄게요.”

아프로디테가 흥- 콧방귀를 뀌며 말하자, 아레스가 부들부들 떨었다.

에로스와 프시케는 대신(大神)들의 부부싸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에로스가 슬쩍 화살을 꺼내 들었다.

‘…어떻게, 쏴야 하나? 다시 열렬한 사랑을?’

프시케가 에로스를 말렸다.

에로스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가 속삭인다.

“아버님 피부를 뚫을 수 있어요?”

“어…….”

에로스가 포기했다.

그는 중급 신이지만, 전쟁의 신 아레스의 피부를 뚫을 정도로 강하진 못했다. 괜히 불똥이 튈까 걱정되기도 했다.

‘엄마라면 아빠 편을 들지도 몰라. 너는 애가 아빠한테 왜 화살을 쏘고 그러니! 하면서…….’

에로스가 화살을 내렸다.

사랑으로 메꾸기엔 황금이 너무 찬란했다.

“그래! 좋아! 비다르, 저 병신이 진다면 내가 나가지! 그런데? 비다르가 이기면? 그러면 어쩔 거야? 응?”

“…후우, 그러면 에리스를 데리고 들어와도 좋아요. 어때요?”

불화의 여신, 에리스.

아레스의 애인이다. 아프로디테는 에리스를 죽을 만큼 싫어했지만, 아레스가 매일같이 술을 퍼마시며 한탄하는 꼴을 보는 것보다 차라리 그녀를 데리고 들어오는 게 낫다 여겼다.

게다가 아프로디테는 사업으로 바빠 집안에 신경을 못 쓰는 경우도 많았다. 남편의 첩실이지만, 참을 수 있었다.

“흥! 후회하지 마라?”

“안 해요, 후회. 차라리 비다르가 이겼으면 좋겠네요, 진짜.”

아프로디테가 지친 듯 한숨 쉬며 말했다.

그 말에 아레스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이기고말고! 비다르 저놈은 신성이 반 토막 났다고 해도, 아직 애드피 200에 포함된 놈이야! 그에 반해서 오디슨, 저 새끼는 애드피 1000에도 이름을 못 올렸고!”

아스가르드 신성력 지수, 애드피.

거기에는 세부 지표가 몇 개 있다. 그게 바로 애드피 200과 애드피 1000, 그리고 애드피 2000이다.

상위 200위의 신에 대한 지수가 애드피 200이며, 상위 1000위의 신에 대한 지수가 애드피 1000이다.

그런데 오디슨은 상위 1000위에도 이름을 못 올렸다.

“아무리 신성이 하락했다곤 해도, 애드피 200에 이름 올린 놈이야. 오디슨에 비하면 끌어다 쓸 수 있는 황금의 양이 다르다고!”

“…후우, 그냥 황금으로 이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허, 황금의 양이 다르면, 장비가 달라. 싸움에서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진 않겠지? 응?”

무시하는 듯한 어조로 틱틱대는 아레스.

아프로디테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 결투 당사자들이 입장합니다!]

TV 속, 화면이 투기장으로 바뀌었다.

휘황찬란한 갑옷에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칼을 든 비다르. 그가 오만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복수의 신, 비다르께서 입장하십니다!]

와아아아아- 시끄러운 함성이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어… 아직은 딱히 담당하시는 분야가 없으신 분이죠? 하지만 모두가 아는 그분! TV 광고 등으로 친숙하며 투기장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계신 오디슨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다르보다 훨씬 큰 함성을 몰고 나오는 오디슨.

하지만 아레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 새끼, 저거 제정신인가? 허허허!”

아레스가 삿대질하며 가족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동의를 바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에로스가 맞장구를 쳐줬다.

“진짜 그렇네요. 늑대 가죽 하나 떡하니 걸치고 나와서… 창도 싸구려 같은데요?”

“공방 마크도 없잖아. 싸구려지, 싸구려.”

비다르에 비하자면 초라한 행색이다.

가름의 가죽으로 만든 단망토는 낡고 헤진 모습이었고, 흉갑 하나 없이 맨몸뚱이를 떡하니 드러냈다. 그렇다고 하의가 튼실한가?

아니다. 바지 위에 가죽을 둘렀을 뿐.

신발도 꼬질꼬질하다.

“멍청한 새끼! 저 꼴로 비다르와 싸우겠다니…….”

쯧쯧, 아레스가 혀를 찼다.

아프로디테와 프시케는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TV 속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만일 이게 드라마였다면 그녀들은 꺅꺅 소리 지르며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오디슨은 서늘한 눈빛으로 비다르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야성이 선명히 살아 있었고, 보는 이를 긴장케 하는 살기가 풀풀 풍겼다.

야성미가 철철 넘쳤다.

“흐흐, 아무래도 내기는 내가 이긴 모양인데?”

아레스가 빈정대며 말했다.

아프로디테는 입을 꾹 다물었을 뿐.

아레스가 슬쩍 핸드폰을 들어, 신계 연맹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리고 곧장 신성 투자 소모임에 들어갔다.

온갖 글들이 넘쳐났다.

[비다르한테 투자 안 한 흑우?]+87

[오디슨 포기한 거 아님? ㅋㅋㅋ 뭐 준비가 안 됐네]+44

[비다르 떡상 가즈아아!!!]+312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들.

아레스는 히죽 웃었다. 승리가 눈앞에 있었다.

‘반 토막 난 상태에서 투자했으니까, 적어도 50%는 불어서 오겠지…….’

좋은 패를 들고 판돈을 키우지 않는 건 바보짓이다.

아레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와아아아아!

함성 속에서 나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머니를 떠올렸다.

‘오디슨? 어휴, 이 꼴이 뭐야?’

그분은 언제나 다정했다.

먹거리가 없던 추운 겨울날.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어머니는 묽은 죽을 끓여 내게 양보하셨다.

그때는 어찌나 멍청했는지, 어머니가 하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

‘엄마는 요리하면서 먹어서 배불러.’

마른버짐을 볼에 달고서 하신 말씀. 나는 그러려니 생각하고 죽을 몽땅 먹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칭얼댔다.

좀 더 달라고.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셨을까?

마을 전체가 먹을 게 없어 꼬르륵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와중, 날 먹이신다고 며칠이나 먹질 못하셨건만.

그렇게 사셨다. 몸이 축나신 것도 당연하다.

온갖 후회가 아직도 내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 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자랐더라면.”

그랬더라면, 어머니께 좋은 걸 많이 먹여 드렸을 텐데.

지금 그분은 어디에 계실까? 삼촌처럼 찌꺼기가 되셨을까?

아니면 니플헤임에서 빚을 다 갚고, 다시 하계에서 태어나셨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단 하나는 분명했다.

“허, 그 꼴로 나와 맞서겠다고? 이 복수의 신, 비다르와?”

눈앞에서 이죽거리는 저놈의 입을 찢어 놓겠다.

부르르, 피가 끓어올랐다. 놈을 찢어 놓는 상상을 하며 창을 꽉 쥐었다.

비다르가 혀를 찼다.

“거지도 아니고, 거적때기를 걸친 놈과 싸워야 한다니. 지금이라도 사과한다면 죽이진 않으마.”

그 말에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심장이 벌컥 튀어나와 녀석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크게 숨을 고르고 말했다.

“내 경고하지. 사과하지 마라. 빌지도 말고.”

“…건방진 놈! 부모가 없어 못 배워 처먹은 놈 같으니.”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무식하고 무모한 짓이다. 장내 방송 역시 그런 소리를 했다.

[아아! 너무 흥분하면 안 돼요!]

[오디슨! 심장은 뜨거워도, 머리는 차갑게 해야죠!]

하지만 관중들은 내 편이었다.

“가라! 그 개자식을 죽여!”

“저깟 놈이 신이라니! 웃기지 말라 해!”

신성 모독이나 다름없는 말이었지만, 수많은 사람이 있는 투기장에서 누가 그걸 신경 쓰랴?

비다르의 얼굴이 굳었고, 칼이 날아들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쐐애애애액!

번쩍이는 보석이 박힌 칼은 분명 공방제 명품이리라. 거기다 놈의 괴력이 더해진 것이다.

허공을 가르는 칼날이 어찌나 매섭던지, 풍경이 왜곡되어 보일 지경이었다.

“크으……!”

이를 꽉 물었다.

창을 믿었다. 마검을 부수고, 영웅을 안식에 밀어 넣은 쇠봉으로 자루를 해 넣었다. 그리고 창날은 아누비스라는 다른 신계의 신에게서 빼앗은 신물.

돈을 덕지덕지 처바른 공방제 명품에 뒤질 이유가 없다.

카아아앙!

굉음이 귓가를 아프게 했다.

웅웅웅- 고막이 울리고, 비다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무어라 지껄였다.

그 얼굴이 가까워진다. 비다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콰앙!

“크억!”

[박치기! 그대로 들이박았습니다!]

[오디슨! 멈추지 않습니다! 이마가 찢어졌는데요?]

“크흐……!”

멈출 이유가 없다.

이마가 따끔거렸지만, 그보다는 눈앞에 있는 놈을 찢어 죽이는 게 우선이다. 비다르가 비틀거리다 날 보고 얼굴을 붉혔다.

“가, 감히!”

나는 창을 휘둘렀다.

쐐애애액- 창이 놈에게 날아들었고, 녀석이 칼을 휘둘러 맞받아쳤다.

챙챙챙! 쾅쾅쾅!

창과 칼이 연이어 엇갈린다. 쇳덩이가 부딪혀 불꽃이 튀어 오른다.

나도, 놈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마치 물러서면 자존심이 더러워지기라도 하는 듯.

와아아아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단합니다! 비다르 님의 괴력을 받아 내고 있어요!]

[허, 오디슨 님이 언제 저렇게 세졌죠? 비다르 님이 약해진 걸까요?]

[아무래도 신성이 손상되면서…….]

“…건방진 자식들!”

비다르가 분통을 터트렸다.

결투를 보며 이야기하는 관중이나 장내 방송이나 모두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큭큭 웃었다.

“아무래도 네가 약해진 것 같다는군.”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약해지지 않았다! 저깟 쓰레기들의 신앙 따위, 필요 없다!”

쾅쾅쾅!

어금니를 악물었다.

비다르가 전심전력을 다하자 제대로 받아낼 수가 없었다. 괴력이 내 몸을 뒤흔들었고, 비다르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하지만…….

쐐액!

“뭣?”

내가 몸을 젖혀 칼을 피했고, 전력을 다해 휘두른 비다르의 몸이 휘청였다. 안 그래도 엉성한 자세가 완전히 무너졌다.

“속임수도 싸움의 일부다.”

“이 개자식이……!”

비다르가 이를 갈았지만, 내 창은 이미 허공을 가르는 중이었다.

놈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빠각!

“커윽!”

비다르가 그대로 허공을 날았다.

와아아아아아아!

함성이 쏟아졌다. 귀가 먹먹한 와중에도 관중들이 환호하는 건 확실히 알아들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관중들이 미쳐 날뛰었다.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오디슨 님의 권능인가요? 불변의 권능! 강력한 힘 앞에서도 굳건할 수 있는 권능인 모양입니다!]

권능? 그게 무슨 소리지?

아직 나는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 얻은 창 자루의 튼튼함에 기대 비다르와 맞선 것일 뿐.

게다가…….

[그래도, 이제 조심해야죠!]

[네, 비다르 님의 권능은 복수! 당할수록 강해집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굴을 구긴 비다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성난 근육들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음을 알려줬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미 녀석의 약점을 파악했다.

“감히, 감히, 가암히이!”

씩씩거리는 비다르.

나는 피식 웃었다.

“덤벼라, 오늘 복수를 부숴 줄 테니.”

“크아아악! 오디슨!”

비다르가 달려들었다.

마치 거대한 돌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는 듯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풍기는 돌진이었다.

그의 칼이 허공을 가른다.

엉성하기 그지없는 칼질이지만, 괴력으로 휘두르는 공격이다. 맞는 순간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으스러지리라.

허나…….

“엉망이다!”

채앵!

“…뭐? 무슨…….”

비다르의 칼이 내 창에 튕겨 날아갔다.

허공을 풍차처럼 휙휙 도는 칼.

푹-

그 칼이 투기장 저 멀리 박혔다.

“원래 역사와 달리 복수가 필요 없어진 탓인가?”

“무슨 소리냐! 대체 어떻게 내 칼을…….”

고개를 저었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 무기를 쳐 날리는 건 기초 중의 기초다.

너무 기초적인 수법이기 때문에 그를 역이용하는 이들과 싸우다 보니, 쓸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런 놈에게라면?

이렇듯 유용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무기에 맞아 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아, 아무것도 모른다니!”

이 자식은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오딘께서 후계자 자리를 투기장에서 뽑고자 하시는 것도 이해가 됐다.

라그나로크가 사라지고, 숱한 원한들이 사라졌다.

평화. 좋은 일이다.

하지만…….

“평화는 전쟁을 대비하는 자에게 허락된 휴식이다.”

타고난 신력을 가지고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싸움을 대비해 기술을 갈고 닦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을까? 아니, 없다.

“안주하는 자에게 평화는 사치일 뿐!”

나는 창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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