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75화 (75/208)

# 75

75화. 영웅은 상속받는다 (1)

발할라발 특종이 신계 연맹을 뒤흔들었다.

그로 인해 신계 연맹 커뮤니티가 기사들로 도배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사건은 딱 세 개. 수백 개의 기사 중 가장 양질의 기사도 딱 세 개였다.

[원한다면, 도전하라!- 아스가르드 후계자 선출 방식 공고!]+999

[오디슨 VS 비다르! ‘한판 붙자!’ 자존심 강한 두 신의 결투!]+999

[비다르 신성 폭락? 오만한 신의 추락인가?]+999

셋 모두 조회수, 추천수, 댓글수가 엄청났다.

가장 주목받는 기사는 역시나 오딘이 공고한 후계 선출 방식에 대한 기사였다. 다른 신계의 신들, 모두가 그 기사를 주목했다.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헤라: 너무 무식한 방식 아닌가? ㅉㅉ 발할라 놈들이 다 그렇지 뭐.]

[로키: 헤라/ 너희 신계 후계자는 참 공평하게 뽑았다. 그지?^^]

[헤르메스: 우리도 올림픽으로 후계자 뽑으면 좋을 텐데. 마라톤 같은 거ㅎㅎ]

의외로 이름 높은 신들은 그에 말을 아꼈다. 헤라와 로키 사이에 작은 말다툼이 있었고, 헤르메스가 뜬금없는 소리를 흘렸지만 그뿐.

유명한 신들은 모두 침묵했다. 기사를 안 본 것은 아닐 터, 그들은 스스로 조심했다.

특히나 올림포스의 신들은 이 분위기를 반기면서도, 불안해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아폴론이다.

“흐음… 나쁘지 않은 방식인데…….”

투기장에서 싸워서 뽑는다는 게 야만스럽긴 하지만, 강력한 후계자가 탄생하리라. 아폴론은 나쁘게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대놓고 드러낼 수도 없었다.

“뭐, 우리 쪽은 사실 방식을 바꾼다는 게 그냥 후계자를 바꾸겠단 소리밖에 안 되니…….”

특히나 올림픽의 경우에는 종목이 너무 한정적이다. 그렇다고 전공을 따지자? 그러면 그냥 헤라클레스를 후계자로 지목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이번 일로 인해 올림포스 내의 권위주의가 흔들리긴 하리라. 그게 얼마나 흔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아폴론의 관심을 잡아끈 것은 오디슨과 비다르의 결투.

이번 오디슨 경기는 아폴론도 봤다. 노골적인 시비였다. 그가 언뜻 끼어든 신들을 짐작한 것만 해도 비다르와 아레스, 포세이돈, 프레이다.

그리고 주먹질 한 방에 훅 가 버린 가라르는 사실 오시리스의 축복을 받고 있었다. 뭘 쓰고 어쩌고 할 여지가 없이 끝난 탓에 오시리스가 끼어들었다는 건 다들 잘 몰랐지만.

“쯧쯧, 멍청한 새끼.”

아폴론은 비다르를 욕했다. 그리고 이그나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디슨에게 내 이야기를 제대로 하긴 했느냐고.

예언 능력을 가진 아폴론도 신들의 미래를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오디슨이 좀 고생해 줬으면 했다.

‘…안 그러면 오디슨의 주가가 폭등할 거야.’

그 전에 계약을 맺어야 할 텐데.

불안했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오디슨의 몸값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최대한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사업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게 잘될까?

아폴론이 비다르의 신성에 대한 기사를 클릭했다.

<비다르 신성 폭락? 오만한 신의 추락인가?>+999

[어제, 비다르가 투기장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에 비다르의 변호인으로 나선 비다르 클랜의 클랜장, ‘피 맛보는’ 이바르 라그나르손이 나서 해명했다.]

[이바르: “모두를 비난할 의도는 없었다. 말싸움이 격해지다 보니 비다르 님께서도 저도 모르게 한 말일 뿐. 오해치 말아 달라.”]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하계에도 번진 상황이다.]

(사진)

(▲하계의 전사들이 볼바에게 비다르의 발언을 전해 듣고 망치로 그의 이름이 새겨진 룬스톤을 부수는 모습.)

[비다르의 신성 지수가 폭락했을 뿐만 아니라, 비다르 슈즈의 CEO는 구조 조정 규모를 늘리겠다 밝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폴론은 쯧쯧 혀를 찼다. 아스가르드 후계 기사에서 보이지 않던 이들이 모두 이 기사에 몰려들어 있었다.

[펜리르: 비다르 코인 떡락ㅋㅋㅋㅋㅋㅋㅋㅋ]

[요르문간드: 꺼~ 억! 아직 비다르 손절 안 한 흑우 없제?]

[아레스: 하계 놈들이 뭘 안다고 그러는지… 일비일희해서는 대박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존버, 또 존버입니다.]

[프레이: (차단된 댓글입니다.)]

[오시리스: 음…….]

[요르문간드: 어~ 억! 흑우들ㅋㅋㅋㅋ 완전 소 떼넼ㅋㅋㅋㅋㅋ]

아폴론은 고개를 갸웃했다.

“흑우라니. 제사 때 검은 소를 바치는 건 최고의 경의이건만… 이게 무슨 소리지?”

신계 연맹 커뮤니티 중 가장 격하기로 유명한 신성 투자 소모임. 그곳에서 댓글로 두들겨 맞던 누군가가 ‘호구’를 금지어로 요청한 탓에 생겨난 신조어였다.

아폴론은 턱을 쓰다듬다 문득 걱정이 들었다.

“…그것보다 아르테미스… 신성 투자한다더니, 비다르 신성에 투자한 건 아니겠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신성 투자는 신성을 신뢰도로 측정해 사업이나 기타 잡비를 지원하고, 차후에 이자를 붙여 받아 내는 방식이다.

그렇게 투자를 받고, 입을 닦으면? 신성이 깨진다.

반대로 신성이 먼저 몰락하면? 황금도 날아간다.

아폴론이 불안해하거나 말거나 댓글은 점점 쌓여만 갔다.

[헤르메스: 근데 오디슨은 뭐함? 이렇게 시끌벅적한데 오디슨 소식은 하나도 없네.]

[스카디: 훈련 중일 듯. 훈련량 엄청나다고 나오던데.]

[헤르메스: ??? 그런 게 어디 나옴?]

[스카디: ‘월간 투기장’에 실린 적 있음ㅇㅇ]

[헤르메스: 엌, 투기장 오타쿠가 여깄넼ㅋㅋㅋ]

다들 오디슨이 훈련 중일 거라 생각했다.

비다르는 분명 비중 있는 신이었고, 그런 신과의 대결을 앞두고 자신을 갈고닦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D-7.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결투.

그 시각 오디슨은…….

* * *

“그래, 좋아, 좋아. 좀 더 피의 잉걸을 내세우듯!”

갑자기 웬 숯 이야긴가? 저것도 또 케닝그겠지.

지금 내가 든 것은 도끼. 도끼를 꽉 쥐고 슬쩍 내밀었다.

찰칵!

불빛이 번쩍이고, 브라기가 껄껄 웃었다.

“좋아, 좋아! 이야, 어제 피의 잉걸불을 제대로 휘둘렀으니, 이것도 딱 맞네!”

꼭 저렇게 케닝그를 남용해야 하는가? 영 이해할 수 없는 신이다.

고개를 휘휘 저었다.

“예술하는 놈들이란…….”

브라기는 잠깐 휴식 후에 다시 촬영하겠다며 카메라를 들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잠깐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별것 아닌데, 은근 지친다.

후우- 한숨을 내쉴 때, 웃음소리가 들렸다.

“큭큭.”

펜리르가 킬킬 혼자 웃고 있었다.

저게 그 스마타폰? 이라호드에게 들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이다.

저런 검은 돌 조각으로 멀리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순간을 담아낸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흐음.”

손에 쥔 도끼를 만지작거렸다.

나쁜 물건은 아니었다. 다이스에서 파는 것에 비하면 명품이라 불러도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부족하군.”

작게 읊조렸다.

낄낄 웃던 펜리르가 검은 안경을 으쓱이고 날 보았다.

“뭐야, 뭐가 부족해? 훈련 시간? 결투 때문에?”

“으음. 결투 때문인가? 좀 다른 것 같기는 하지만 비슷한 일이오.”

“자세히 말해 봐 봐, 뭣 때문에 그러는데? 자신 없어?”

고개를 저었다.

자신? 넘친다.

겁먹은 것도 아니다. 내 부모를 모욕한 놈과 싸우는데 움츠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릴 적 나를 따스하게 안아 주시던 어머니 품이 떠오른다.

까득, 이를 갈았다.

“그까짓 놈, 목을 비틀어 엉엉 울게 할 거요!”

내 호언장담에도 펜리르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 그런데 대체 왜 한숨이야?”

“…창이 문제요.”

어제 경기에서 이기고 막대한 상금을 받았다.

상대가 다섯이기 때문이었을까? 무려 5천만 크로나에 달하는 승리 수당을 받았다.

드베르그 관리인이 호들갑을 떨며 말하기를, M300R 최고 기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그럭저럭 쓸 만한 창 자루를 해 넣는데 1억 크로나를 달라 하니…….”

“뭐야, 돈 문제였어? 말했으면 내가 해결해 줬을 텐데 말이야. 어때, 추가 대출해 줄까? 그 정도는 문제없는데.”

“…또 그 광대 짓을 하는 조건으로 말이오?”

큭큭큭, 펜리르가 웃었다.

나는 질색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돈이 있다 해도 창촉을 견딜 자루가 없다더군. 몇 번 쓰고 망가질 물건에 그 정도 돈을 쓰긴 아깝지.”

이제 겨우 아슬라 아줌마와 라드게리타를 데리고 올 돈을 마련했다.

두 사람을 데리고 온 뒤, 집을 구해 주면 빈털터리가 될 터.

집에 쓰는 돈을 줄이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둘을 토르손처럼 대할 수도 없다. 더는 아는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고, 여자는 남자와 달리 꽤 섬세했다.

쓰게 웃으며 마른세수할 때, 브라기가 돌아왔다.

“흐음. 무기가 문제라 이거지? 만약에 싸움을 연주하는 악기 중에 마음에 차는 게 있다면 가져가도 좋아. 차마 전에 건수 하나로 퉁치긴 미안해서 말이지.”

브라기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금 내 몸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나 뭐라나.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비다르가 멍청하고 오만하긴 해도, 복수의 신이오. 펜리르를 찢어 죽인… 아.”

“괜찮아. 원래 역사가 그랬었다는 건 나도 몇 번이나 들었으니까.”

곁에 펜리르가 있다는 걸 잊고 말하다, 흠칫 놀랐다. 하지만 펜리르는 손사래를 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자유분방한 로키 슬하에서 자란 탓일까? 차라리 로키스 패밀리는 다른 신들보다 오만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토록 강력한 자를 꺾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한 법 아니겠소? 적어도 드베르그 공방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좀 더 좋은 것이…….”

내 말에 펜리르와 브라기가 생각에 잠겼다.

별수가 없는 건가? 부족하다 한들, 그냥 맞붙어야지, 뭐.

어쩌겠는가? 언제나 철저하게 준비해 싸울 수는 없다.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리라.

“흠, 창 자루가 문제라 이거지? 견딜 만한 재료가 없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그게 문제다.

창촉을 단검처럼 들고 싸울 수도 있지만… ‘길이’를 포기하고 싸우기엔 비다르가 만만찮다.

브라기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혹시, 태초의 공허로 여정을 떠나는 건 어떤가?”

태초의 공허?

긴눙가가프 말인가? 그러고 보면…….

-키이잉.

내 손에 깃든 악령도 그쪽에서 주워 왔다고 했던가?

창이 부러지고 온갖 사건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건틀릿은 흠집 하나 없다.

이런 물건을 좀 더 얻어서 창 자루로 쓴다면?

펜리르가 짝-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 긴눙가가프라면 온갖 신비가 잠든 곳이잖아! 운이 좋다면야 엄청난 걸 얻어 올지도 몰라. 궁니르나 묠니르에 필적할 무기를 말이야.”

침을 꼴깍 삼켰다.

“궁니르, 묠니르…….”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두 무기에 대해 듣자니, 심장이 기대감으로 쿵쾅인다.

브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거 많지. 구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 일단 내가 만든 터미널 주변 지도를 주지. 한 번 찾아가 봐.”

“그래! 비다르, 그 자식을 박살 내야지?”

두 신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긴눙가가프라니. 오디슨,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죠? 전에 사냥대회 때도 히드라를 만나 죽을 뻔했잖아요.”

이라호드가 경고했다.

확실히 히드라 같은 녀석이 대뜸 튀어나오는 곳이다.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무기를 구하려다 죽을지도 모른다.

준비를 해야겠다.

“…조심해서 돌아다닌다 생각하면, 며칠은 걸리겠군.”

“오디슨? 제 말 들었어요? 혼자 가는 건 절대 금지예요!”

이라호드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면 되지 않나?”

“…네? 그, 같이요? 그렇다면야, 뭐…….”

이라호드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만큼 내가 걱정된 건가?

펜리르가 킥킥 웃으며 툭, 나를 쳤다.

“바람둥이 같으니. 누이에게 이른다?”

이 늑대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왜 바람둥이라는 건가. 나는 그런 비열한 족속들과 달리, 여자를 현혹하지 않는다.

그저 수줍게 다가오는 이들을 안아 줄 뿐. 이라호드가 원한다면 나는 언제라도…….

아니, 게다가 이라호드와 둘만 가는 것도 아니다.

“이그나르와 토르손도 같이 가자 해야겠군. 둘 다 좋은 무기가 필요할 테니.”

오딘께서 하신 말씀 탓에 투기장에 기웃거리는 작자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겨우 하루 만에 말이다.

대부분이 어중이떠중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을 터. 게다가 다른 직업을 두고 부업으로 기웃거리는 이들 중에서는 부자도 많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U500에서 공방제 물건을 칭칭 감고 나오는 놈들도 있을지 모른다.

“…장비의 질 때문에 패배한다면, 얼마나 분한지 잘 알지.”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얼마나 분하던지.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니, 어째 주위 분위기가 싸늘했다.

펜리르가 볼을 긁적이고 있었고, 브라기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라호드는…….

“…준비에는 철저한 ‘훈련’도 포함되어 있겠죠? 네?”

어쩐지 의욕이 과했다.

* * *

3일이 지났다.

나는 일행을 이끌고 긴눙가가프로 들어섰다. 터미널 근처는 관광객으로 붐볐다.

그들 중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이도 있어, 귀찮은 짓을 조금 해야 했다.

이그나르가 봇짐을 든 채 푸후- 크게 숨을 골랐다.

“내가 긴눙가가프에 오게 될 줄이야.”

토르손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신화에서나 듣던 곳이라 설레네요, 형님.”

“그렇지? 우리도 여기서 한탕 제대로 하자고.”

두 덩치가 시시덕거리는 꼴에 고개를 저었다.

소풍 가는 게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여기가 긴눙가가프… 정말 신기한 곳이네요! 올림포스에서는 이쪽이랑 연결된 곳이 명계 쪽에 있거든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크레네가 해맑게 하는 말에 나는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물의 님프. 먹고 마시는 걸 조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큰 도움이 되리라.

언제나처럼 허공에 땅이 둥둥 떠 있고, 기묘한 색의 나무들이 삐죽삐죽 자란 곳이다.

그냥 보기만 하자면 좋다. 관광을 올 법한 곳이다.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지만, 터미널 근처는 안전하다.

“터미널 근처는 방어 마법이 있어서 괜찮지만, 우리가 갈 곳은 위험한 곳이에요. 너무 긴장 풀지 말라구요.”

이라호드가 일행에게 경고했다.

그녀의 말이 맞다. 이전 내가 히드라와 마주쳤던 금지(禁地)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장소로 갈 예정이다.

영원의 전쟁터.

브라기가 말했다.

‘이런저런 재미난 것들을 구하는 데는 ‘도시의 시체’가 더 괜찮지만… 쓸 만한 무기는 ‘영원의 전쟁터’로 가는 게 나을 거야. 이름처럼 영원히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거든.’

영원한 전쟁이라.

대체 어떤 방식으로 싸우고 있을까? 심장이 쿵쿵 떨렸다.

그때, 까아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내가 왜 같이 와야 하는 것이냑!”

메르키가 툴툴댔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쪽을 제일 잘 아는 게 메르키라 하더군.”

“까아아악! 그게 문제가 아니다! 투기장이 한창 바쁜 와중에 왜 이런 일을…….”

메르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반응에 이라호드가 볼을 긁적였다.

“아니, 전 그냥 발키리 본부 측에 긴눙가가프로 갈 테니까, 안내인 하나만 붙여 달라고 했는데요…….”

그런데 까마귀 본부에서 후긴과 무닌이 메르키를 붙여 준 것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게 생각해라. 투기장이 한창 바쁘니, 거기에 있었으면 일에 치여 죽었을 게 아닌가?”

“까악… 까악. 괴르인가 하는 발키리는 못 미덥단 말이다. 그 녀석이 뭔가 실수를 해 뒀으면 일이 늘어날지도 모른다악…….”

괴르라.

흠, 확실히 못 미덥긴 하군.

그래도 어쩌겠나? 여기까지 와 버렸는데.

“메르키. 제국 놈들의 말 중에는 이런 게 있다.”

“까악?”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카르페 디엠이라고 하던가?

내 박식함에 감명 받은 메르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까악… 즐길 수 없으면 피해야지. 바보냣!”

맞는 말이지만, 일단은 움직이는 게 좋을 터.

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억지 미소를 짓고 싶진 않았다.

“가자.”

“까악! 그러니까 난…….”

메르키가 뭐라 외쳤지만 무시했다.

후긴과 무닌이 붙여 준 메르키다. 무슨 도움이 되겠지.

“그러고 보니, 메르키. 넌 무슨 능력이 있지? 후긴과 무닌은 온 세상의 생각과 기억을 읽지 않나?”

“까악, 나는 그런 거창한 능력은 없다.”

그런가? 메르키가 포기했는지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그냥, 뭔가를 찾는 데에 재주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 이름도 메르키 아니겠느냣? 까악까악!”

메르키(merki)는 깃발이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다.

깃발이 있다면야, 적의 군세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쉽다.

녀석이 행운을 불러다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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