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74화 (74/208)

# 74

74화. 영웅은 질투 받는다 (3)

“와아아아아아아!”

“최고다, 오디슨! 승급해, 승그으읍!”

“사랑해요, 오디스은! 꺄아아악!”

관중들이 미쳐 날뛰었다. 화끈하기 그지없는 경기에 찬사를 보냈다.

개중에서는 제 속옷을 벗어 경기장으로 내던지는 여자들도 있었다.

광란의 도가니 한복판, 이그나르가 혀를 내둘렀다.

“완전 광신도가 따로 없구만.”

까득!

“저년들이……!”

“응? 뭐라 했소?”

“아, 그… 투기장 관리 발키리들이 힘들겠다구요.”

이라호드가 헤헤 웃었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는 속옷을 던지고 방방 뛰는 여자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그나르가 머쓱한 웃음을 짓고 다시 오디슨을 바라보았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 사방을 둘러보며 손을 들어 보였다.

당당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허, 참. 저놈 저거도 대단해졌단 말이지.”

그 말에 토르손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요?”

“…열심히 하다 보면 되겠지.”

이그나르가 툭, 토르손의 어깨를 두드렸다.

멍하니 오디슨을 보던 토르손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디슨이 손짓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설마, 그 속옷들을?”

이라호드가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지만, 고성에 가려져 남에게 들리진 않았다.

오디슨이 받아 든 것은 마이크였다.

이라호드, 이그나르, 토르손은 문득 등골이 서늘했다.

셋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마, 대놓고?’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이 비겁한 작자들아-!”

오디슨이 버럭 소리쳤다. 한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삿대질을 하는 모습. 그의 손가락을 따라, 관중의 시선이 돌아갔다.

모두의 눈이 멈춘 곳에는 VIP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VIP석의 유리창에는 시뻘건 얼굴의 신이 하나.

이라호드가 관자놀이를 눌렀다.

“…아아.”

사건의 예감이 들었다.

하필이면 그 자리에 있는 게 비다르다.

오디슨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진 않을 터.

그가 소리 질렀다.

“날 꺾고 싶다면! 직접 나서라! 이까짓 놈들을 시키지 말고 말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비다르가 눈을 번뜩였다.

까드득 이를 갈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몸이 분노로 잘게 떨렸다.

“마이크.”

클랜장에게 마이크를 요구했다.

이전이라면? 신성 모독이라며 한 소리하고 끝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디슨도 신이다. 신들 간의 언쟁으로 신성 모독이 어쩌고저쩌고하는 건 멍청하기 그지없는 짓이다.

비다르 클랜의 클랜장, ‘피 맛보는’ 이바르 라그나르손은 기겁했다.

“비다르 님! 헛소립니다! 무시하시고 돌아가시는 게…….”

하지만 비다르는 재차 손바닥을 내밀고 말했다.

“마- 이- 크!”

“후우…….”

이바르가 한숨을 푹 쉬었다. 불경하기 짝이 없는 태도건만, 비다르는 오디슨을 노려보느라 한숨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더 말린들 소용없으리라. 이바르는 불안했다.

‘저 자식… 은근히 입을 잘 놀리는데…….’

하지만 비다르는 체면을 구기고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쪼잔하기 그지없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오디슨은 비다르 클랜 소속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다르 입장에서 약간의 손해를 피하고자 오디슨을 클랜에 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판단 미스를 남에게 돌렸다.

일이 이 모양이 된 데에는 잘못 꿴 첫 단추가 아주 컸다.

이바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젠장할.’

침몰하는 배에서 내릴 때가 되었나? 이바르가 생각했다.

이바르의 생각도 모른 채 비다르는 마이크를 받아 들고 입을 열었다.

“네까짓 놈이 뭐가 잘났다고 설치느냐!”

“흐흐흐, 입만 털어 대는 네놈보다는 낫지!”

갑자기 말싸움이 시작됐다. 유치하기 그지없는 싸움이지만, 모두가 주목했다.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비다르가 볼을 파르르 떨며 경고했다.

“까불지 마라, 오디슨!”

“허, 까불면 어떻게 할 수는 있나? 응?”

“내가 차마 아버지의 투기장에서 신살의 죄를 지을 수 없어 참고 있다는 걸 알아 둬라!”

비다르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누가 들어도 바보 같은 변명일 뿐이었다. 오만하고 편협한 비다르가 신살의 죄를 지을 수 없어 참는다? 우스운 소리.

그는 그저 혹시나 했다.

‘아누비스는 여전히 행방불명. 저놈이 연관된 사건이라고 했던가?’

분노한 상황에서도 비다르는 몸을 사렸다. 오시리스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우연히 생긴’ 차원문을 넘어온 오디슨이 아누비스를 어떻게 했다는 소리.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비다르는 그 말을 믿었다.

자신과 같은 편인 오시리스가 아스가르드 신계 소속 신에게 해를 끼쳤다는 걸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믿어야만 했다.

오디슨이 껄껄 웃었다.

“크흐흐, 겁쟁이 같으니!”

“뭐, 뭐라고?”

“겁쟁이라고 했다! 네놈이 위대하신 오딘의 피를 이었다는 게 신기하구나!”

비다르가 울컥해 선을 넘었다.

“허! 비천한 놈!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놈이 감히……!”

비다르의 말에 투기장이 술렁였다.

‘미친!’

이바르는 이마를 짚었다. 악수 중의 악수였다.

오디슨이 으르렁 이를 드러냈다.

“내 아버지를 모욕하지 마라!”

“허! 하계에서는 애비 없는 놈의 이름을 위대한 신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지? 네놈 애미도 네 애비가 누군지 모를 게다! 왜인 줄 아느냐? 응?”

투기장의 술렁임이 심해졌다.

오디슨이라는 이름은 사실 흔한 이름이다.

비다르가 한 말처럼 아버지가 누군지 확실치 않은 이에게 붙이는 이름이니까. 토르손 역시 마찬가지다.

술렁이는 이들 중 토르손도 끼어 있었다.

까드득!

토르손은 사실 오디슨이 비다르와 싸울 때마다 불편했다.

복수는 전사의 덕목 중 하나였고, 그 복수의 상징이 바로 비다르다. 그런데 믿고 따르는 오디슨이 마찬가지로 믿고 따르는 비다르와 싸우니 불편할 수밖에.

“어머니…….”

토르손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그나르가 침을 꿀꺽 삼켰다.

‘…비다르가 완전히 돌았군!’

발할라에 도달하는 민족들은 예로부터 싸움과 전쟁으로 물든 인생을 살아왔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비가 죽는 경우가 흔했다.

그럴 땐 아버지 이름을 따서 짓지 않는다. 아이도 단명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토르손…….”

“형님, 크으…….”

토르손이 차마 분을 참지 못하고 덜덜 떨었다.

아버지가 죽은 경우는 사실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적에게 몹쓸 짓을 당하는 여자들도 많았으니까. 그런 경우에는 생물학적 아버지가 부족의 원수이며, 어머니의 원수다.

“…괜찮다.”

이그나르는 토르손을 달랬다.

이라호드는 주변의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곳에서 오디슨을 고아라 매도하다니… 미친 건가? 전속이 아니었으면, 나도 온갖 업무에 치여 죽었을지도.’

TV로 중계를 보던 티르가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이라호드는 눈썹을 씰룩이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신성이 얼마나 깨질지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이들은 전사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리고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비다르를 믿고 따르는 이가 대부분 그런 이들이다. 믿음을 배신당한 이들의 싸늘한 분노가 비다르에게 향했다.

오디슨은 입을 벙긋거렸다.

“이, 이……!”

오디슨은 잠깐 헛숨을 토했다. 분노가 뇌를 달궈 차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비다르는 그게 제가 정곡을 찌른 덕이라 생각했다.

“흐흐, 대답하지 못한다면 내가 가르쳐 주마. 네놈의 애미는 아무 남자에게나…….”

“비다르 님, 말씀이 과하십니다!”

이바르는 재차 뭐라 내뱉으려는 비다르를 말렸다.

“놔라! 저깟 천한, 애비 없는 놈이 뭘 어쩌겠느냐!”

이바르는 땀을 주르륵 흘렸다.

‘발할라에 그런 이름을 지닌 이가 몇 명인지 진정 모르는 건가!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한다!’

침몰하는 배에서는 탈출할 수 있지만, 폭발하는 배에서는 그럴 수 없다.

지금 비다르라는 배 밑바닥에는 째깍째깍, 시한폭탄이 초를 세고 있었다.

“그만.”

비다르의 앞날이 컴컴해질 때 걸걸한 목소리가 투기장을 가득 채웠다.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경기장에 있는 오디슨에게도, VIP석에 있는 비다르에게도 선명하게 들렸다.

“그만하라.”

모두의 시선이 다리 여덟 달린 말로 향했다. 슬레이프니르는 어느샌가 투기장 위에 둥둥 뜬 채 푸르르-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슬레이프니르 위에 탄 오딘은 외눈을 찌푸린 채 비다르를 내려다보았다.

“그게 네 자부심이더냐? 내 아들이라는 게?”

“아버지, 이건! 그러니까…….”

비다르가 입을 벙긋거렸다.

하지만 오딘은 변명을 듣지 않았다.

“내 핏줄이 고귀한 이유가 무엇이더냐.”

오딘이 투기장을 슥 둘러보다 오디슨에게 시선을 멈췄다.

분노한 오디슨은 오딘 앞에서도 비다르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누구라도 부모 욕을 들으면 화가 나기 마련이니.

오딘이 쯧- 혀를 차고 말을 이었다.

“아스가르드의 왕좌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 아니더냐.”

침묵이 이어졌지만 무언의 긍정이었다.

오딘이 담담하게 폭탄을 던졌다.

“하지만 너는 오디슨보다 왕좌에서 멀리 있구나.”

비다르가 눈을 부릅떴다.

“그, 그게 무슨…….”

오딘이 말했다.

“전쟁의 끝은 승리가 되어야지, 복수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오딘이 회색 외눈으로 비다르를 보며 툭 내뱉었다.

“나는 투기장 최고의 자리를 1년간 지킨 이에게 왕좌를 물려줄 생각이다.”

모두가 제 귀를 의심했다.

하얗게 질린 비다르도, 관중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도, 그리고 TV로 중계를 보는 다른 신계의 신들도.

오직 한 사람이 당황하지 않았다.

“투기장 하급 투사도 투사가 아닌 겁쟁이보다는야, 최고에 가깝겠군.”

오디슨이 씩 웃으며 물었다.

“안 그런가, 겁쟁이?”

비다르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오딘을 바라볼 뿐이었다.

오딘은 킬킬, 홀로 즐겁다는 듯 웃어젖혔다.

그리고 내뱉었다.

“원한다면, 도전하라.”

그 말은 다음 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리고 하나 더 특종이 따라붙었다.

“나는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오디슨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비다르에게 소리쳤다.

비다르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차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허! 그러면 내가 봐줄 줄 알았느냐? 다시는 건방진 소리를 내뱉지 못하도록 박살 내 주지!”

비다르가 결투를 받아들였다.

* * *

TV로 그 광경을 보던 티르가 목덜미를 잡았다.

“저 미친 새끼들!”

골이 지끈지끈 아팠다.

대담한 미친놈과 쪼잔한 미친놈이 부딪혀 감당할 수 없는 사고가 터졌다.

티르가 어찌 수습할 수 없을 수준의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결투의 신으로서 이 결투를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티르 본인의 신성에 금이 가리라.

티르는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비다르, 저 멍청한 새끼. 지금 제 상황이 어떤지 알긴 하는 건가?’

모니터에 뜬 상황은 끔찍했다.

[애드피200][242.82]

[▼1.22(-0.49%)]

애드피.

아스가르드 신성력 지수(Asgard Divinity Power Index)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이 지표는 신계의 모든 신성을 계산하여 신계 전체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한 것이다. 애드피 외에도 올림포스의 오드피(ODPI), 곤륜의 고드피(GDPI) 등이 공개되어 있다.

신계 연맹의 일 중에서는 이 신성 지표를 확인하고, 신성이 부족한 신계를 지원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이후, 지원받은 양만큼을 영혼이든 황금이든 어떤 식으로든 갚아야 한다. 티르가 예민하게 구는 것도 그 탓이었다.

아스가르드의 살림이 거덜 나게 둘 수는 없으니까.

“…제기랄.”

티르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약간의 상승세였으나, 비다르의 발언과 동시에 급락했다. 비다르의 신성이 크게 금 간 것이다.

이게 끝일까?

‘…더 떨어지겠지.’

오디슨과 싸울 때가 되면 그 격차가 얼마나 좁아져 있을까?

티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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