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73화 (73/208)

# 73

73화. 영웅은 질투 받는다 (2)

비다르 클랜원 둘이 울컥해 덤벼들었다. 놈들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는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방패 뒤에 숨던 놈이다. 다른 놈? 채찍을 휘두르던 놈이다.

거북이와 채찍쟁이라고 부르자.

“거북이, 오랜만이군.”

“크으! 난 보쿠르다!”

거북이가 방패를 앞세우고 덤벼들었다.

창을 쓸 때야 녀석이 방어를 굳힐 때 슬쩍슬쩍 약한 부분을 노려서 이겼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 잡힌 건?

도끼다.

“으깨 주지!”

부우웅!

도끼를 거세게 휘둘렀다.

굉음과 함께 쇄도한 도끼는 방패를…….

카아앙!

밀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뒤로 쭉 밀려났다.

“대체, 이 힘은……?”

“크흐흐! 아레스 님께 받은 축복을 봐라! ‘태산 던지기’!”

쿠웅! 거북이가 내딛는 발걸음이 굉음을 냈다. 투기장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강렬한 발 구름.

울룩불룩 튀어나온 근육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르스 놈의 축복을 받았다고? 그 무식하기 짝이 없는 놈의 축복답다.

단순하다.

“힘을 늘려 준다? 허.”

그리고 단순한 만큼 강하다.

거북이가 방패를 앞세우고 다시 돌진했다.

“흐아아아앗!”

쿵쿵쿵!

거북이는 어마어마한 힘으로 바닥을 박찼다. 돌진 속도가 대단했다.

문득, 투기장에서 벌인 첫 번째 싸움이 떠올랐다.

“꼭 멧돼지 같군!”

“흐흐흐! 난 멧돼지처럼 무식하진 않다!”

글쎄, 멧돼지는 그 괴력에 비하면 꽤 날쌘 편이다.

돌진하면서도 슬쩍슬쩍 고개를 비틀어 날아오는 공격을 피할 정도니까.

하지만 갑자기 얻은 힘을 그리 쓸 수 있을까?

슬쩍 옆으로 피했다.

쿠구구국!

놈이 돌진에 제동을 걸고, 다시 바닥을 박차고 덤벼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깨를 으쓱였다.

“멧돼지가 낫군.”

“웃긴 소리! 받아라아아앗!”

쿠우우웅!

놈의 돌진과 정면으로 맞붙었다.

와아아아아아! 관객들의 환호가 들린다.

나는 히죽 웃었다.

“힘을 얻는 것보다는 힘을 다루는 것에 집중해라.”

“무슨……?”

놈은 바닥에 등을 댄 채,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장내 방송이 설명을 시작했다.

[대단합니다! 달려드는 힘을 이용해 그대로 받아 주면서 뒤로 굴렀죠?]

[허! 들이박나 싶더니 곧장 오디슨 선수가 보쿠르 선수 위에 올라탄 형세라 뭔가 했습니다. 정말 신묘한 기술입니다!]

달려드는 놈의 무게중심 아래쪽을 파고들어 뒤로 굴렀다.

그 덕에 놈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 덮쳤다. 덮치는 걸로 끝났다면 좋았으련만.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놈을 슬쩍 뒤로 밀었다.

그 결과? 빙그르르 굴러서 내가 놈에게 올라탔다.

“뭐, 뭐 하는 거야! 도와줘!”

놈이 다른 녀석들에게 소리쳤다.

놈들이 닿는 게 빠를까, 아니면 내 도끼가 닿는 게 빠를까?

히죽 웃으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끝이다!”

쉬이이잉!

공기를 가르는 소리.

생각하는 것보다 내 몸이 움직이는 게 빨랐다. 나는 곧장 바닥을 굴렀다.

쩌어억!

“끄아아아아악!”

채찍? 찢어지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피거품을 문 거북이가 끔찍한 몰골이 되어 있다. 완전 곤죽이 된 시체. 그리고 주변에 파인 자국.

“…채찍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놈이 언제 저렇게 커졌지?

날렵한 동작으로 승부하던 놈이었다. 그런데 거인, 아니 거인족보다 훨씬 더 커졌다.

대충 5미터 정도 될까? 토르손을 둘 겹쳐도 저놈보다는 작으리라.

혀를 내둘렀다.

“이 자식… 보쿠르를!”

“허, 그건 네가 한 짓이다.”

또 축복인가? 덩치에 비례해 채찍도 커졌다.

차라리 잘됐다. 꼴사납게 옷이 다 찢기는 꼴을 보고 싶진 않으니.

[갑자기 커졌죠?! 올림포스 신계의 대신(大神) 중 하나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축복입니다!]

넵투누스?

[아, 여기 있군요. ‘바다의 넓이’! 일시적으로 덩치를 확 불려 준다는 건데요. 덩치가 커지면 이득이 있을까요?]

[당연한 이야깁니다. 보다시피 채찍의 거리가 늘었죠?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물건까지 같이 키워 주기 때문에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납니다. 게다가 체중도 확 불어나고요.]

[그 말은 힘도?]

[예, 아무래도 힘만 키워 주는 축복에 비해서는 정도가 약하다 해도, 힘도 늘죠. 커진다는 게 이토록 무서운 겁니다!]

거인이 된다고? 신기한 축복이군.

[아! 오디슨 선수, 이번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주로 쓰던 창이 아니거든요? 낯선 도끼를 들고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낯설다? 과연 그럴까?

히죽 웃었다.

“온갖 치졸한 놈들이 죄다 모였군그래.”

비다르에 마르스에, 넵투누스. 악당들이 음모를 꾸몄다 이건가?

이 기회에 놈들의 콧대를 확 꺾어 주리라.

“다시는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 주마!”

“개소리! 보쿠르의 원수를 갚겠다!”

글쎄, 거북이를 때려죽인 건 네놈이다.

쐐애애애액!

채찍이 날아들었다.

* * *

경악.

모두가 상상 못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관객들은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렸다. 그건 장내 방송을 진행하는 해설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지금 오디슨 선수가 들고 있는 게…….]

[도낍니다, 도끼! 주 무기인 창이 아니에요! 그런데 저렇게 잘 쓴다고요?]

[허허, 허허허… 정말 대단합니다!]

휭휭휭!

거센 소리를 내며 날아드는 채찍. 그리고 그걸.

챙챙챙!

도끼로 쳐 내는 오디슨.

그 모습은 도끼가 주 무기가 아니라는 걸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나 도끼날을 이용해 채찍의 궤도를 바꾸고, 채찍을 잡아채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저건 도끼를 주 무기로 쓴다고 해도 어려운 기술이에요!]

[정확하게 채찍을 도끼날 끝에 걸고 잡아채죠? 그럴 때마다 거구가 뒤흔들립니다!]

관중석에서 그 광경을 보던 이그나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새끼, 창이 주 무기잖아? 도끼를 왜 저렇게 잘 써?”

이그나르가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못 한다.

저런 기술을 흉내 내는 것만 해도 어렵다. 그런데 오디슨은 주 무기가 아닌 걸 들고 그런 짓을 해내고 있었다.

토르손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장은 원래 저랬어요.”

“…원래?”

“네, 싸움터에서 무기를 뺏으면 그 상대보다 더 노련하게 쓰곤 했죠.”

“…근데 왜 창을? 아니, 저게 말이 되는 일이야? 20살도 안 됐잖아.”

이그나르는 세상에 천재라는 게 있는 건가 고민했다.

“그건 저도 잘…….”

토르손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그도 이그나르와 다르지 않았다.

오디슨을 좋아하고, 믿고 따른다. 하지만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좌절감을 느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토르손은 압도적인 재능의 차이를 느꼈다.

오디슨이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한다는 걸 알았지만, 저게 과연 훈련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두 덩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툭, 이라호드가 오징어를 뜯으며 말했다.

“오디슨은 생각을 많이 해요.”

뜬금없는 소리에 이그나르와 토르손이 오디슨을 슬쩍 보았다.

“크아아아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디슨이 거구의 팔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채찍을 든 녀석은 놀라 다른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오디슨은 도끼 하나만을 걸치고, 절벽에 매달리듯 매달렸다. 직후 몸의 탄력을 이용해 팔 위로 올라간다.

“후우! 높군.”

“이, 이… 날파리 같은 놈이!”

거인이 괴성과 함께 몸서리치고 제 팔을 찰싹찰싹 때려 댔다.

오디슨은 그 공격을 다람쥐처럼 피했다. 그사이에도 수차례 도끼를 찍는다. 도마뱀 같은 모습이다.

우아아아아아아!

[저게 뭡니까! 대단합니다!]

[오디슨, 오디슨! 피하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아요!]

관객들이 감탄하고 해설진이 흥분해 소리쳤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오디슨이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덩치가 커져서 그런지, 때릴 곳이 많구나! 많아!”

마구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

아무리 봐도 생각을 많이 하는 꼴은 아니었다.

이그나르와 토르손의 표정이 떫은 감을 베어 문 것처럼 변했다.

오징어를 씹던 이라호드가 크흠-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훈련할 때 말이에요. 그러니까 창을 휘두르면서 이걸 왜 이렇게 휘둘러야 더 센지, 항상 생각하거든요. 봐요. 지금 저 도끼도 창이랑 비슷하게 쓰지 않아요?”

* * *

료나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와아아아아- 관객들의 함성이 꼭 장송곡처럼 들렸다.

채찍쟁이는 거구에 익숙하지 못했고, 마구 휘두르는 채찍이 여기저기 튀었다.

도움? 피하는 것도 급급하다.

“죽어라!”

“끄어어, 아, 안 돼……!”

거구가 처량하게 움츠렸다.

어깨 위까지 올라간 오디슨이 나무를 패듯 도끼질을 해 댔다. 채찍쟁이가 마구 발버둥을 쳤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꼭 창처럼 쓰고 있어. 확실히, 익숙하지 않다.’

오디슨은 도끼를 창처럼 잡고 휘두르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도끼머리로 찌르듯 때리는 장면이 여러 번 나왔다.

도끼를 창처럼 다루면서 저렇게 상대를 몰아붙인다는 게 놀라웠지만, 파고들 구석이 없진 않았다.

바라르도 알아챘다.

“흐음… 어이, 알프! 내가 놈에게 덤벼들면 곧장 그걸 쓰라고!”

바라르가 칫- 혀를 차며 제 도끼를 고쳐 쥐었다.

이윽고, 쿠웅! 굉음과 함께 거구가 쓰러졌다. 동맥이 끊어졌는지 목에서 피가 마구 치솟았다.

그 피는 소나기가 되어 투기장에 쏟아졌다.

[대단합니다! 오디슨! 무려 5 대 1. 그 상황에서 셋을 먼저 쓰러트렸어요!]

[리벤저스, 이름답지 않게 몰리는군요. 아무래도 급조된 팀이라 그런가요?]

[그렇죠. 낯선 아군은 적보다 더 위험하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와아아아아! 관객들이 광분했다.

아나운서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그도 당장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자, 이제 남은 건 ‘부드러운 돌’ 바라르, 그리고 ‘광검’ 료나디입니다!]

[천상에 사는 료스알프(빛의 알프)와 지저에 사는 드베르그라. 사이가 별로 안 좋죠? 과연 둘의 팀워크는 어떨지.]

환호와 흙먼지가 점점 가라앉았다.

오디슨이 피 칠갑을 한 얼굴을 슥 닦았다.

그 모습에 바라르가 침을 꿀꺽 삼켰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꼴이었다.

오디슨이 씩 웃었다.

“이제 둘뿐이군?”

“흥! 그래도 네 승리는 없다! 크아아앗!”

바라르가 대뜸 덤벼들었다.

도끼는 창보다 훨씬 더 무겁다. 낯선 무기로 채찍을 튕겨 내는 재주를 보이려면 심력을 쏟았을 터. 도끼질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니다.

오디슨이 회복할 시간을 내줄 순 없다.

‘‘복수의 혈통’이 이미 3중첩, 그리고 ‘복수의 피’가 있으니…….’

바라르는 생각했다.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면? 지친 오디슨과 회복하는 자신.

어느 쪽이 유리할지 뻔한 일이다.

‘몰아붙인다!’

게다가 이쪽은 둘이다. 앞선 셋과 싸워도 이기는 둘.

흘려 내기의 달인인 바라르, 그리고 쾌검술의 달인인 료나디.

오디슨이 혀를 찼다.

“멍청한 놈 같으니. 그렇게 당하고 또?”

“흐흐흐, 나는 다를 거다! 흐앗!”

바라르의 도끼가 번개처럼 떨어졌다.

오디슨은 그에게서 배운 기술을 사용했다.

스르륵!

[어어엇! 바라르의 기술입니다!]

[저렇게 부드럽게 흘려 냅니다! 오디슨 선수, 이제 M300R은 수준이 안 맞다는 걸 확실히 보여 줍니다!]

[승급해야죠, 승급!]

바라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떨어지던 도끼는 부드러운 인도에 따라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는 허- 숨을 내쉬었다.

“내 기술을 이제 나보다 더 잘 쓰는군.”

“칭찬 고맙군.”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다.”

바라르가 씩 웃으며 말하고, 번쩍! 빛이 있었다.

“윽!”

오디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료나디가 갑작스러운 빛을 뿜어낸 탓이었다.

[어어어! 햇살과 왕권의 신, 프레이의 축복입니다!]

[‘왕관의 찬란함’! 저게 그냥 번쩍하는 게 아니죠?]

[예! 상대가 눈을 감든 뭐든,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게 하는 기술입니다! 일시적으로 실명을 일으키는 거거든요!]

[오디슨! 위기입니다! 바라르, 바라르!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해설진이 소리칠 때도, 이미 바라르는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마음은 없었다.

바라르가 껄껄 웃었다.

“크흐흐흐흐! 귀쟁이 알프놈들은 마음에 안 들지만… 이건 최고군!”

“닥치고 공격이나 해요!”

오디슨은 도끼를 간발의 차로 피했다.

료나디는 달려들며 검을 잡았다.

‘일격을 노린다!’

쌍검이 번뜩이며 오디슨의 심장을 노렸다.

하지만…….

“왕관이 반짝이긴 하지. 허나…….”

오디슨이 씩 웃었다.

“신이 왕관 앞에 고개 숙일 거라 믿은 건 아니겠지?”

“…뭐?”

퍼억!

바라르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료나디는 멈칫, 몸을 멈췄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마지막 수단마저도 막혔다. 다섯이 덤벼도 이기지 못하던 상대를 홀로 이길 수 있을까?

걸음을 멈췄다. 뽑아 든 칼이 땅으로 기운다.

료나디는 직감했다.

패배다.

“…대단하네요.”

료나디가 허탈하게 인정했다.

오디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랬지.”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꺄악!”

오디슨은 예쁘장한 알프 앞이라고 허튼소리나 내뱉고 있을 사람인가? 아니다.

료나디는 마음을 먹고 결사 항전을 하려 했으나…….

그녀가 마음을 먹을 때, 오디슨은 승리를 집어삼켰다.

“…이, 이런… 매너, 없는 남자…….”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도끼가 료나디의 머리에 박혀 있었다. 그녀는 그대로 쓰러졌다.

싸움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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