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72화. 영웅은 질투 받는다 (1)
으득, 한 신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앞, 티 테이블에는 서류가 하나 있었다.
<비다르 슈즈, 구조 조정 계획안>
전문경영인에게 온 계획이었다.
비다르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비다르 클랜이 박살 났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비다르가 오디슨에게 사과했다는 건 크게 화제가 되진 않았다.
허나 비다르 클랜이 끙끙 앓는데, 모회사인 비다르 슈즈에 타격이 없을 수 없다. 비다르 슈즈의 메인 광고 모델이 바로 비다르 클랜이다.
게다가 신들의 사업은 언제나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비다르의 가죽신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해 봐야, 오디슨한테 와장창 깨졌잖아? 품질이 별로인 거 아닌가?’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는 서류다. 비다르 슈즈 매출 하락으로 인한 구조 조정.
비다르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TV 속에서는 원수가 오만하게 웃고 있었다.
[덤벼라, 겁쟁이들아! 난 도망치지 않는다!]
“개자식……!”
비다르의 주먹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뭐라고 했더라? 분명, 제 놈의 사재를 털어 승리 수당을 추가해 주겠다고? 그렇다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쌓인 원한과 치욕을 조금이나마 떨쳐 낼 찬스다.
“당장 오디슨에게 도전할 놈들을 모아라! 내가 그들을 후원…….”
부르르르!
명령을 내리던 비다르가 눈살을 구겼다.
이 밤중에 웬 메시지? 그가 핸드폰을 들고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아레스: 자니?]
면식 하나 없는 다른 신계의 왕태자다.
비다르가 눈살을 구겼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답장했다.
[비다르: ㄴㄴ]
[아레스: 혹시 그거 봤냐?]
[비다르: 그 새끼?]
[아레스: ㅇㅇ]
그러고 보면 아레스도 오디슨에게 원한이 있었다. 비다르는 갑자기 이 채팅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레스로 끝날 이야기도 아니었다.
부르! 부르! 부르르르!
핸드폰이 연이어 울린다.
제각각 다른 신들의 메시지다.
“이거 봐라?”
비다르가 씩 웃었다.
일은 한 번에 끝내는 게 제일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비다르가 손가락을 놀렸다.
[비다르 님이 포세이돈 님을 초대했습니다.]
[비다르 님이 오시리스 님을 초대했습니다.]
[비다르 님이 프레이 님을 초대했습니다.]
[아레스: 뭐임 ㅡㅡ]
[포세이돈: 아래스!아ㅈ;ㄱ도삐졋느나?오해다]
타자에 익숙하지 않은 듯, 포세이돈은 오타를 냈다. 하지만 비다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삼촌 조카 간의 불화는 지금 흥밋거리가 못 됐다.
[비다르: 모두 그 새끼가 졌으면 하는 분들이지?]
그에 모두가 긍정의 메시지를 보냈다.
비다르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비다르: 그럼 제대로 판을 벌여 보자고.]
무려 다섯 신의 후원을 받는 상대. 오디슨이 이겨 낼 수 있을까? 그의 패배를 떠올린 비다르는 킬킬 웃었다.
그러다 문득 걱정이 들었다.
‘…이거 아스가르드 내란죄에 걸리는 건 아니지?’
하지만 인제 와서 무를 수도 없다.
체면을 구긴 신이다. 그 덕에 신발 사업도 구겨졌다.
이 상황에서 [어, 생각해 보니까 이거 좀 아닌 듯……;]하고서 체면을 구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슬쩍 한마디를 적어 보냈다.
[비다르: 일단 합법으로 가자.]
비다르와 신들은 법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오디슨을 패배하게 할 확실한 방법을 사용했다.
자본주의의 꽃, 돈질이다.
* * *
추가 보상을 내걸고, 도발한 덕일까? 반응이 빨랐다.
나는 흐뭇하게 드베르그 관리인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 이름이 뭐더라? 한 번 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일은 아니다.
드베르그 관리인이 머뭇거렸다. 그를 재촉했다.
“뭐지? 분명 도전자가 나타났다고 부르지 않았던가?”
“으음,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그게 좀… 곤란해서 말이지.”
관리인이 눈을 데굴거리며 말했다.
나는 훈련 도중 온 탓에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그리고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관리인이 입술을 질끈 씹고서 말을 꺼냈다.
“상대가 다섯이야.”
오! 다섯이나?
과연 도발한 보람이 있다.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인이 말을 이었다.
“근데, 그쪽에서는 5 대 1로 하자는군.”
“허, 그런다고 놈들이 날 꺾을 수 있다 생각하는가! 어리석은 작자들!”
“…으음, 그럼 5 대 1은?”
“수락이다. 5 대 1이 아니라 50 대 1이라고 해도, 받아주지!”
탕탕, 가슴팍을 두드리며 말하자, 쯧쯧- 이라호드가 혀를 찼다.
그녀가 찬란한 금발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상대를 얕보면 안 돼요, 오디슨.”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상대를 얕보다 크게 당한 게 바로 얼마 전의 이라호드 아니던가?
“그래서 공원에서 그랬나?”
“…그때, 제가 술만 안 마셨어도, 곧장 투구를 꺼내 썼을 걸요?”
투구? 눈을 끔뻑이자, 이라호드가 입술을 삐죽였다.
“싸움에 집중하게 해 주는 발키리 장비가 있어요.”
“…그래? 이제까지 쓴 걸 한 번도 못 봤는데?”
“보통은 쓸 일이 없으니까요.”
보통은 쓸 일이 없다는 여자가, 술만 안 마셨으면 투구를 썼을 거라고?
미덥지 못하다.
뚱한 눈으로 그녀를 보자, 이라호드가 울컥해 소리쳤다.
“그래도, 지, 집에 가서 바로 연락했어요!”
“연락? 어디에?”
발키리 본부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건만.
이라호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쨌거나 어떤 수단을 취한 모양이다. 프레이야가 광분해서 날뛰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쨌거나, 이야기는 끝인가?
슬쩍 관리인을 보자, 그는 여전히 곤란한 표정이다.
“뭔가 할 말이 더 남았나?”
“…그게. 그쪽 조건이 이게 다가 아니라서 말이야.”
다가 아니다? 미간을 좁혔다.
관리인이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쪽은 다섯 명이니 이겼을 때, 수당을 1억의 다섯 배로 달라는군…….”
허. 웃긴 작자들이다.
1억의 다섯 배라면 5억이다. 어마어마한 황금이다.
큰돈을 걸라고? 그러면 놈들이 날 이길 수 있다든가?
어림도 없는 소리. 봐줄 필요는 없으리라.
내가 그에 알겠노라- 대답하려는 순간, 관리인이 한마디를 더 던졌다.
“…그리고 또…….”
또? 요구 사항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드베르그 관리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마지막 조건이 그리 어려운 건가? 5 대 1이나 5억보다 더?
“말해 봐라.”
“…그, 놈들이 이걸 거절하면 M300R에서 더 이상 싸움할 생각을 말라는군. 이런 걸… 보내왔다.”
드베르그 관리인이 내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들었다.
<우리는 오디슨과 싸움을 거절한다!>
당당한 외침을 제목으로 달고, 수두룩한 이름이 적힌 종이다. 여기 적힌 작자들이 모조리 나와 안 싸우겠다고 서명한 놈들이라니.
기분이 나쁘다.
드베르그 관리인이 황급히 말을 꺼냈다.
“물론! 이런 담합은 당연히 투기장 규칙에 위배되는 것이니까…….”
서로 말을 맞추는 건 위배되겠지.
허나 나와 싸우지 않겠다 하는 건 위배되지 않으리라. 투사들은 제 상대를 고를 권리가 있으니까.
눈살을 구기고 버럭 소리쳤다.
“이딴 협잡질을 해? 전사가 아니라 사기꾼들이었군!”
심장에 불길이 들끓었다.
싸움하는 놈들이 이까짓 종이쪽으로 사람을 협박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치졸한 짓거리다.
짜악!
종이를 찢어 버렸다.
눈을 부릅뜨고 드베르그 관리인에게 외쳤다.
“거기에 조건을 하나 추가하겠다면! 내, 이 싸움을 받아주겠다 하시오.”
“…조건을?”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항복은 없다.”
“…그 정도라면 그쪽에서도 거절할 수 없겠지. 알겠다. 바로 전달하지.”
드베르그 관리인이 짧은 다리를 놀려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이라호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겠어요? 무려 다섯이잖아요. 게다가 창도…….”
결국 아누비스의 낫으로 만든 창촉을 견딜 창 자루는 구하질 못했다.
이전과 같은 걸 쓴다 해도 금방 부러지리라. 그런데도 1억 크로나를 내야 한다는 게 불합리했다.
그래서 나는 새 창을 구했다.
슬쩍, 창을 들어 올렸다. 가볍고 반짝이는 창이다.
“다이스에서 산 창도 꽤 쓸 만하다.”
손가락으로 창 자루를 튕기자- 태앵! 하는 소리가 울린다.
웃으며 말했다.
“이그나르 놈도 다이스에서 산 도끼를 가지고 열심히 싸우는데, 나라고 못 할 거 없지.”
하계에서 내가 쓰던 창은 사실 이것보다 못했다.
삼촌… 아니, 배신자가 넘긴 것이라 의미가 있었지만, 질은 나빴다.
잡철로 대충 만들어 낸 조잡하기 그지없는 창. 그저 나무로 만든 창 자루는 싸움 한 번에 금방 부서졌다.
그럴 때면 난 창촉을 잘 챙긴 뒤, 적의 무기를 빼앗아 싸웠다. 싸움이 끝나고 나면 대장간에 맡겨 대충 수리를 하고 나무 자루를 끼워 다시 썼다.
그런데 다이스에서 산 창은?
적어도 그럴 일은 없다. 통짜 쇠로 만들어진 녀석이니까.
창을 쓰다듬고 있자, 이라호드가 입술을 삐죽였다.
“뭐… 상대 무기가 좋아 봐야 얼마나 좋겠어요? M300R 투사들의 수입으로는 잘해 봐야 중고 무기죠. 오디슨처럼 고가품을 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그 말에 히죽 웃었다.
“그렇지?”
“…그렇긴 한데… 조건이 과한 게 마음에 걸리네요. 이건 꼭…….”
이라호드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닫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걱정? 고민과 마찬가지다. 사치다.
어차피 부딪힐 거라면 아무 생각 없이 부딪히는 게 낫다.
‘리벤저스’라는 이상한 이름을 달고 있는 놈들은 항복 금지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경기 날이 밝았다.
* * *
[어엇! 저거!]
[노골적인 공격입니다! 오디슨의 약점을 노리는 공격!]
서걱!
댕그렁!
“허.”
나는 헛숨을 흘렸다.
킬킬 날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드베르그 형제 중 동생인 가라르가 날 비웃고 있었다.
“무기가 없어졌군?”
리벤저스라는 놈들은 익숙한 얼굴로 이뤄져 있었다.
바라르 가라르 형제, 그리고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료나디. 남은 둘은 또 비다르 클랜 소속이다.
모두 내게 당했던 놈들이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싸움에서 승패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으니까.
[오디슨 선수, 어쩐 일인지 늘 쓰던 검은 창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창을 들고 나왔는데요……. 이거, 너무 쉽게 본 걸까요?]
[아무래도 그렇죠? 오디슨 선수가 내건 조건이 너무 과해요. 아무리 대단한 전사라고 해도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을 이겨 내긴 힘들거든요.]
사방에서 몰아치는 건 괜찮다.
놈들의 장비가 문제였다. 은빛 번쩍이는 제국식 철갑옷, 그리고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제국식 무기에 삐까번쩍한 신발까지.
으드득, 이를 갈고 소리쳤다.
“치졸하기 그지없는 신들이 손을 잡았구나! 비열한 비다르 놈! 감히 제국의 망종과 손을 잡아?”
내 외침에 가라르가 킬킬 웃었다.
“투기장은 모든 신계에서 즐기는 스포츠라고! 그딴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나대니까, 이렇게 되는 거 아니겠냐!”
이렇게 돼? 뭐가 이렇게 됐다는 건가?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가라르가 히죽히죽 웃었다.
“무기도 없이 어찌 싸울 거지? 응?”
“허, 겨우 무기가 없다고 덜덜 떨 줄 알았나? 전사를 얕보는군.”
내겐 언제나 무기가 있다.
창? 그건 내가 가진 무기 중 가장 편리한 것일 뿐이다. 좀 불편하지만 다른 무기를 꺼내는 수밖에.
두 손을 들어 주먹을 말아쥐었다.
단단한 두 주먹에 가라르가 폭소했다.
“맨손으로 싸우겠다고?! 크하하하하! 걸작이군!”
쯧, 혀를 찼다.
“전사가 될 꼬마들은 늘 주먹질을 하며 놀았지. 무기를 잡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무기를 들고 놀았지만 말이야.”
오랜만에 옛 기억을 떠올려 볼 참이다.
가라르가 헛숨을 내뱉었다.
“꼬맹이들 싸움 놀이와 비교하는 것이냐?”
“글쎄, 상대는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이는군. 꼭 7살 때 토르손이 너만 했지.”
가라르가 으득 이를 갈았다.
“7살짜리가 130cm를 넘는다고? 허튼소리! 그만 나불대고, 죽어라!”
확실히 큰 녀석이었다. 그래도 지금 덩치를 생각하면 ‘그렇게 작았다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말이다.
“흐아아앗!”
가라르가 바닥을 박차고 돌진해 온다.
[어엇! 오디슨! 무기가 없어요!]
[가라르, 가라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전사장이 습관처럼 하던 소리를 되새겼다.
“슬레이프니르처럼 미끄러지고…….”
부우웅!
가라르의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게걸음으로 도끼를 피해 낸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허리를 비틀었다.
[어어어어어?! 피했습니다! 완벽한 사이드스텝!]
가라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궁니르처럼 쏴라!”
퍽퍽! 퍼억!
“켁!”
[잽잽! 스트레이트!]
[오오오!]
주먹이 가라르의 턱에 꽂히고, 그의 턱이 휙 돌아갔다.
그르르- 기괴한 소리와 함께 눈에서 눈동자가 사라지고, 흰 눈으로 쓰러진다.
철퍼덕.
가라르가 그대로 뻗었다.
[와! 오디슨 선수! 복싱에도 일가견이 있었나요? 스트레이트가 저렇게 박히면 그대로 의식이 날아가거든요?]
[회복력을 아무리 올린다고 해도 소용없죠? 뇌가 흔들렸어요!]
[정말 대단합니다! 오디슨!]
와아아아아아아!
관중들이 환호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남은 넷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허공에 주먹을 번갈아 내뻗으며 전사장이 늘 하던 말을 입에 담았다.
“쉭쉭, 이건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전사장은 늘 그런 헛소리를 했다.
아, 놈들을 족치기 전에.
“여기 좋은 게 있군.”
가라르가 놓친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들에게 시선을 보내자, 놈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나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녀석들에게 부탁했다.
“제국 도끼 맛이 어떤지, 너희들이 내게 알려다오.”
역시 주먹보다는 제대로 된 무기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