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69화. 영웅은 구애받는다 (1)
TV 속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는 티르가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중이었다.
발할라 시민들에게 티르는 언제나 깐깐하고 똑 부러지는 신으로 기억되었다. 그렇기에 지금 저 모습은 꽤 독특했다.
[티르 님! 이전 전쟁 준비설에 대해서 한마디 해 주십시오!]
[오디슨 님이 이집트 신계와 갈등을 빚은 게 사실입니까? 티르 님!]
[아누비스가 지금 행방불명이라는데, 이에 대해…….]
기자들은 집요했다.
무려 아스가르드 3주신 중 하나인 티르를 몰아붙일 정도로.
티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 건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 중이다. 딱히 할 말은 없다. 조사 결과를 공문으로 보내 줄 테니…….]
하지만 기자들이 그에 만족할 리가 없었다.
다시 집요한 질문이 이어졌고, 티르의 얼굴이 피로로 찌들었다.
TV를 보던 여신 하나가 흐응- 콧소리를 흘렸다.
“…역시 탐난단 말이야.”
그녀가 말하는 대상은 TV 속 티르가 아니다.
티르를 곤란하게 만든 사고뭉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신이라 할지라도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순 없었다.
“후우. 너무 잘나가도 문제야, 문제.”
와락, 쪽지를 구겼다. 그것은 오디슨의 후원 거절 편지였다.
“좀 다급하다면 내 후원을 거절할 수 없을 텐데… 일단 만나기만 한다면, 브리싱가멘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텐데.”
모두 만약의 이야기다.
오디슨은 지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프레이야와는 만날 생각도 없었다. 그는 오는 여자를 막는 성격은 아니지만, 오지 않는 여자에게 찾아가는 성격도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응?”
프레이야가 엄지손가락을 살짝 씹을 때, 벌컥- 문이 열렸다.
감히 누가 노크도 없이 여신의 침실에? 프레이야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얼굴을 펴고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
프레이야의 오빠.
풍요의 신이자, 알프헤임(Ālfheimr)의 주인인 프레이(Freyr)가 미소 짓고 있었다.
수백 년간 아스가르드 최고 미남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신답게, 그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오, 프레이야. 오늘도 참 아름답구나.”
“에이… 오라버니도 참. 그나저나 어쩐 일로 오셨어요?”
“우리 예쁜 여동생을 보러 왔지. 그런데… 음?”
프레이가 프레이야의 얼굴에 서린 불편한 기색을 알아챘다.
그가 눈썹을 팔(八)자로 늘어뜨리며 물었다.
“이 오빠가 반갑지 않니?”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 왜 얼굴을 흐리고 있어?”
“그냥…….”
프레이야가 말을 줄였다. 우물쭈물 주변을 더듬던 그녀가 툭, 책상 위에 있던 찌그러진 종이를 떨어뜨렸다.
“아!”
노골적인 고의였다. 하지만 프레이는 제 여동생을 의심치 않았다.
그가 종이를 집어 들고 펼쳤다.
잘생긴 얼굴이 찡그려졌다.
[내 비다르에게도 후원이라는 걸 받아 봤지만, 남에게 무언가를 받는다는 게 그리 좋은 일은 아니더군. 게다가 비다르 그 쪼잔한 놈은 별 이상한 트집을 잡아 날 공격하기도 했지. 그런고로 지금은 딱히 후원이 절실하지 않소. 이런 제안을 해 준 것은 감사히 생각하나…….]
[-물푸레나무 부족의 붉은 늑대, 오디슨.]
“이, 이 건방진 놈!”
프레이가 쪽지를 쫘악 찢어 버렸다. 분노를 담아 갈기갈기 찢은 종이가 허공에 휘날렸다.
프레이는 쯧- 혀를 차고 프레이야를 달랬다.
“저놈 때문에 네 마음이 아팠나 보구나.”
“그게…….”
프레이야가 입을 오물거렸다.
그 모습에 프레이가 버럭 화를 냈다.
“제까짓 놈이 얼마나 잘났다고, 감히 가장 아름다운 여신의 후원을 거절한단 말이더냐? 이 오빠가 놈의 콧대를 콱 꺾어 주겠다!”
“하지만 그는…….”
“오디슨? 나도 예전에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그는 비다르의 재판을 떠올렸다.
“분명 인간이었지?”
“인간이라 해도 M300R에…….”
“허! 겨우 M300R? 마침 거기에도 내 신민이 있다. 내 그녀에게 연락해 놈을 완전히 박살 내라고 명령하마.”
프레이가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만일 그가 조금이라도 발할라에 관심이 있었다면, 대뜸 이런 짓을 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는 발할라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자신의 영지인 알프헤임과 프레이야의 영지인 폴크방뿐. 그는 알프들을 농노로 부려, 자신의 영지를 번영케 하는 것에 온 신경을 쏟았다.
가끔 시간이 남으면? 폴크방에 있는 세스룸니르의 운영에 손을 보탰다.
그래서 M300R의 알프가 난색을 보였을 때, 당황했다.
“뭐라? 어려워?”
-예. 그는 분명 인간이지만, 신성을 품은 몸. 얼마 전에는 이집트 신계의 신과 싸워 이겼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아무래도…….
“허! 신성을 품고 있는 인간이라……. 최하급 신, 영령쯤 되나?”
프레이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핸드폰에서 무어라 대꾸가 들려왔지만, 프레이는 듣지 못했다.
그는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그런 놈이 왜 겨우 M300R에? 이대로 오빠의 위엄을 구기고 물러날 수는 없건만…….’
프레이가 매끈한 이마를 찌푸렸다.
그때, 프레이야가 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그의 권능을 무효화할 방법을 알아요. 그의 권능을 역으로 이용할 방법도요.”
“오… 그런 걸 알고 있단 말이더냐?”
프레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프레이야가 입을 가리며 후후 웃었다.
“아스가르드에 마법을 가르쳐 준 게 저 아니겠어요? 가장 뛰어난 볼바도 바로 저잖아요.”
“과연, 내 동생이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오딘 그 작자가 마법을 배웠겠느냐? 미친 짓을 해서 너보다 더 뛰어난 마법 솜씨를 얻었다고 한들, 경험을 이길 수야 없지.”
프레이가 고개를 주억였다. 프레이야가 슬쩍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걸 가르쳐 준다면, 이길 수 있는지 물어봐요.”
프레이가 핸드폰에 대고 말하려 할 때, 대답이 먼저 날아왔다.
-권능이 없다면야, 20년도 안 산 인간에게 제가 질 이유가 없지요.
“그렇고말고! 네가 알프헤임 최강이 못 된 것은 검술의 문제가 아니지 않더냐. 그저 아직 힘이 자랄 여지가 남았을 뿐! 그렇다면…….”
-예. 그 방법을 일러 주신다면야, 제가 놈을 꺾겠습니다.
프레이가 프레이야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프레이야는 먼저, 오디슨의 권능을 역이용하는 방법을 일러 줬다.
“마법으로 살펴본 바 그는 자기최면을 걸어서 힘을 끌어올려요. 그렇다면 그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척 허장성세를 부린다면? 자신의 힘을 너무 과용하다 스스로 파멸할 거예요. 하지만 이건 쉬운 일이 아니죠.”
연기는 어렵다. 불과 계략의 신, 로키쯤 되지 않는다면 시도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까딱 잘못하면 역으로 그의 자기최면이 강해질지도 모르니까.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씀입니까?
“그의 권능을 무효화하는 법에 대해서 알려 줄게요. 잘 들어요.”
프레이야가 말을 이었다.
* * *
투기장으로 가서 싸우겠노라 천명한 지 거의 일주일이 지났다. M300R의 관리인인 드베르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 댁이 너무 세니, 아무도 안 붙으려 하는 걸 나더러 어쩌란 말이오?’
언제나처럼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한 대 때려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확실히 참기를 잘했다.
드디어 경기가 잡혔다.
“이걸 꼭 해야 하는가?”
“기왕 TV 나가는 거 예쁘게 하고 가면 좋잖아요.”
크레네가 내 머리를 깎고, 내 수염을 말끔하게 밀어 버렸다.
언제 받아도 묘한 느낌이었다. 부족에서는 딱히 이발이나 면도를 하지 않았으니까.
크레네가 빙그레 웃었다.
“다 됐어요. 이기고 와요. 저는 돌아갈 거예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경기를 보지 않고?”
“네, 아무래도 심장 떨려서 못 보겠더라고요.”
어색한 미소를 짓는 크레네. 나는 그녀를 살짝 안고 그 등을 토닥였다.
“이길 텐데.”
“그래도요. 그냥 안 보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러니까 상처 입지 말고 이기고 와요. 알았죠?”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라호드가 불쑥 끼어들어 내뱉었다.
“가긴 어딜 가요. 이기고 나면 이그나르 가게로 간다면서요?”
“음, 그것도 그렇군. 그럼 크레네. 가게에서 보자.”
내 말에 크레네가 빙긋 웃었고, 이라호드가 입술을 삐죽였다.
앞 경기를 마친 투사들이 칫- 혀를 찼다. 하지만 그들의 시샘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
창을 집어 들었다.
묵직한 창, 아누비스의 낫으로 만들어 낸 물건이다. 그 낫이 어찌나 단단했던지, 드베르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럼 다녀오지.”
두 여자에게 인사를 하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통로에서 벌써 와아아아- 하는 함성이 들린다.
그늘진 통로의 끝은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장내 방송이 들린다.
[그 선수가 돌아왔습니다!]
[네! 한 달간의 출장 정지를 마치고, 드디어 돌아왔네요!]
[그거 아십니까? 이 선수를 찾는 전화만 수십 통이 왔었다네요. 오디슨 선수, 요즘 왜 안 나오냐고.]
[저런. 뉴스를 안 보신 분들인가 보군요.]
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린다.
밝은 빛으로 걸었다. 눈이 부셔 한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함성에 정신이 아찔했다.
와아아아아아!
“오디스으으은!”
“화끈하게 하자고, 화끈하게!”
관객들이 내지르는 함성에 씩 웃고 손을 번쩍 들었다.
또 함성이 터진다. 저 관객들은 목을 강철로 만들었나?
혀를 내둘렀다.
[네, 오디슨 선수가 돌아왔습니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온갖 일들이 있었죠? 재판을 받는다든가, 다른 신계의 신이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죠.]
[니플헤임에서 한 활약도 빼놓을 수가 없겠죠.]
[아, 그거 빼먹었다간 레이프 에릭손 씨가 달려와서 꽥 소리 질러요. 하하.]
[아, 반대쪽에서도 선수가 나왔습니다.]
우어어어어어어!
거대한 함성이 울렸다. 아까보다 훨씬 낮은 목소리.
아무래도 남자 비율이 훨씬 더 많은 함성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라호드가 한 말이 틀리진 않군.”
그녀의 말을 되새겼다.
‘오디슨 대 광검 료나디예요. 아마 만원 관중일걸요? 오디슨이 지금 M300R에서 제일 인기가 좋다고는 해도, 남성 관객 대상으로 조사하면 료나디가 더 인기 있을 거예요.’
투사의 인기는 투사의 수익과 직결된다.
여기에서 내가 승리한다면? 곧장 아슬라 아줌마와 라드게리타를 불러올 수 있으리라.
빙그레 웃었다.
나를 찌릿 째려보는 알프, 료나디가 제 쌍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퍼엉!
경기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터졌다.
[아! 곧장 경기 시작합니다!]
[오디슨 대 료나디! 전사 대 광검! 정말 재밌는 경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료나디 선수가 M300R에 있는 이유는 딱 하나 아닙니까? 기술에 비해서 신체 능력이 떨어진다. 그거거든요? 그에 반해 오디슨 선수는 여러 차례 괴력을 선보인 바 있죠.]
[그렇다고 오디슨 선수가 기술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 료나디 선수, 달려듭니다!]
타다다닥!
날렵한 돌진이었다.
과연 료스알프인가? 반짝이는 햇살처럼 예쁜 얼굴이다.
감탄을 토할 때, 그녀의 쾌검이 빛을 뿜었다.
챙!
칼집에서 튀어 오른 칼이 내 창에 막힌다. 하지만 그 검은 방향을 바꿔 다시 날아든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었다.
챙챙!
두 자루의 검.
검들이 춤을 춘다.
창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햇살을 반사하며 날아드는 검격은 무수한 송사리 떼처럼 번뜩였다.
[료나디 선수, 일방적으로 공격합니다!]
[숨 쉴 틈도 없는 쾌검이 무수히 날아듭니다! 오디슨 선수, 반격은 엄두도 못 내고 막아 낼 뿐입니다!]
[보통은 막아 내면서 치고 들어가거든요? 방패를 들고 나오는 게 일반적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오디슨 선수, 자만했나요? 준비가 미흡했어요!]
챙챙챙챙!
검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나기처럼 소리 하나하나가 뭉쳐서 뭉개진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를 따갑게 한다.
“계속 막기만 할 셈?”
료나디가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칼을 멈추지 않았다.
날렵한 검격에 관객들이 흥분해 비명 질렀다.
“우어어어어어어! 료나디!”
“광검! 광검! 우어어어어어어어!”
“꺄아아아악! 오디슨! 피해요!”
피하라니.
피식 웃었다. 내 웃음에 료나디가 눈살을 찌푸린다.
“웃을 틈이 있나?”
“뭐, 그저 허탈해서 말이오.”
“허탈?”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휘둘렀다.
료나디의 검격을 막아 낸 창이 부르르 떨며, 내 손바닥을 아프게 했다. 반발력을 줄여 주지 않는 창이 낯설다.
원래 이랬는데 말이다. 창을 고쳐 쥐었다.
움찔, 몸을 떤 그녀가 버럭 소리쳤다.
“권능을 쓰려고? 네 권능 따위, 내게 통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내 권능이 통하지 않는다니? 내 권능은 방어용이다.
애당초 이 여자에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쯧, 혀를 찼다.
쐐애애액!
검이 날아든다.
“하아아앗!”
은빛 궤적은 현란하기 짝이 없다.
장내 방송이 난리를 피웠다.
[료나디 선수! 상단과 하단을 동시에 노립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공격인데요! 오디슨, 오디슨! 이걸 어떻게 막을 겁니까!]
캉캉캉캉!
나는 창을 휘둘러 공격들을 튕겨 냈다.
하지만 검은 끊이지 않고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어어어어어어어!
관객들이 내지르는 소리.
[어엇! 어어!]
[눈이 팽팽 돕니다! 저걸 대체 어떻게 막는 거죠?]
[오, 오디슨 선수, 밀리는 거 맞나요?]
검을 쳐 내면서 말했다.
“난 사실 당신과 싸울 날을 기다렸소.”
“으으윽!”
알프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검을 휘둘러 댔다.
나와 말을 섞을 상황이 아닌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고블린과 싸우기 전, 나는 이 알프의 경기를 봤다.
이 알프의 경기는 빠르고 화려했고, 그녀의 쾌검술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걸 따라 하겠답시고 이런저런 짓을 했다.
그렇기에 난 기다렸다. 그녀와 싸울 날을.
료나디와 맞붙어 당신에게 배웠노라 말해 주고, 실제로 그녀의 검술을 견식하고 싶었다. 더 배울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린 모양이군.”
달콤해야 할 포도주가 시큼한 식초가 되었다.
퍼퍽!
창 자루가 그녀의 양어깨를 때렸다.
료나디의 팔이 우뚝 멈췄다.
“끄윽!”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을 벙긋거린다. 거친 호흡을 반복하며 벙긋거린 입 모양은 읽어 냈다.
‘어떻게?’
창을 회수하고 그 답을 던졌다.
“이제는 내가 너무 커 버렸어.”
“뭐? 무슨…….”
분명 내 창술 중 일부는 그녀를 보고 배웠다.
다만, 이제는 다르다.
“그때는 당신을 보고 배웠지. 이제는 당신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군.”
창을 잡고 자세를 취했다.
“이게 앞으로 당신이 가야 할 길이오.”
그대로 창을 내지른다.
근육을 혹사하고, 관절을 비틀며, 체중을 실었다.
마지막으로, 창이 나아갈 길을 뚫는 것은 영혼이다.
쩍-!
검은 번개가 쳤다.
창이 료나디의 심장을 꿰뚫었다.
“컥……!”
료나디가 눈을 부릅뜨고 그대로 꼬꾸라졌다.
[어…….]
[어으… 이게…….]
장내 방송이 말을 더듬거렸다.
주변을 빙 둘러보니, 관객들이 모두 입을 쩍 벌린 채다.
“흠.”
시시하다.
이제 M300R도 재미가 없다.
빙글 돌아 경기장을 나서는데, 등 뒤에서 폭발하듯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에 씩 웃어 보였다. 영혼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 * *
[오디슨 선수! 압도적입니다! 압도적이에요!]
[하… 정말, 그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어떻게 저렇게 달라질 수가 있습니까? 네?]
[몰라요!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알겠습니다. 오디슨 선수는 이제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해요!]
와아아아-!
TV가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그 화면을 보던 남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옳지, 그렇지!’ 하던 프레이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왜 저런 놈이 M300R에? 으음.”
프레이야는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그녀가 마법으로 알아 낸 오디슨의 약점을 파고들 여지조차 없었다.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도 압도하는데 어떻게 하란 건가?
프레이야는 생각했다.
‘명품 백은 비싸니까 갖고 싶은 거야.’
언제나 갖고 싶던 물건은 수고를 동반해야 했다.
꿀꺽, 침을 삼킨 프레이야는 이제 그 수고를 해 볼 셈이었다.
프레이를 불렀다.
“오라버니?”
“으응?”
프레이는 주눅 든 채 대꾸했다. 자신 있게 내놓은 료나디가 처참하게 패배했다.
프레이야는 사뭇 싸늘하게 말했다.
“저 다음 일정이 있어서 그러는데, 알프헤임에는 언제 돌아가시나요?”
“…아, 그, 그렇구나. 안 그래도 돌아갈 참이었단다.”
프레이야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프레이는 고개를 툭 떨군 채 나갔고, 프레이야는 외출 준비를 했다.
혹여 누가 알아볼까 머리카락 색을 바꿨다. 얼굴도 확실히 가렸다.
그리고 고양이 마차에 몸을 실은 채 말했다.
“발할라로 가자꾸나.”
진심이 된 미의 여신은 체면 따위는 접어 뒀다.
그저 갖고 싶은 걸 참을 수가 없었다.